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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40화 (241/266)

〈 240화 〉 239. (P)경계의 안쪽에서(5)

* * *

오은수는 슬럼가를 삼분하는 거대 세력 성철파의 부두목이다.

류태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실감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의 앞에서 오은수는 범죄조직의 부두목이라기보다는, 좋게 말해서 성격 좋고 나쁘게 말하면 경박한 중년 아저씨에 불과했으니.

허나 오늘 류태현은 그러한 인식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

온몸에 붕대를 둘둘 감은 류태현이 가만히 오은수를 바라봤다.

“그래. 회유를 하든 고문을 하든 해서 무조건 뒤를 캐내라. 듣자하니 이제 막 개업한 청부업자라며? 슬럼 사정도 제대로 모르고 아무 일이나 덥썩 문 것 같은데, 적당히 구슬려주면 알아서 술술 불지 않겠냐?”

오은수는 자신 앞에 도열한 정장 차림의 조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연락한지 20분도 되지 않아 집합한 10명의 조직원은 누구 하나 예외랄 것 없이 전원 정예 중의 정예였다.

“알겠습니다 형님. 사무실에 도착하는 대로 바로 조지겠습니다.”

“꽤 강한 년이니까 수갑이랑 확실하게 채워두고. 차로 이동할 때 옆에 실력 있는 애들로 붙여둬라. 그리고 저 뒤에 다친 애들 병원 좀 보내주고. 특히 류태현 저놈은 부상이 심하니까 포션도 팍팍 쓰라고.”

“예, 형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청부업자년 호송에 넷. 쟤네들 병원 보내는 데에 둘. 나머지는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여기 좀 잘 지키고 있어라. 또 누가 습격해오면 곧장 연락하고. 알아들었으면 알아서 인원 뿜빠이 쳐.”

“옙!!”

오은수의 말에 조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행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오은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류태현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조금 전 부두목다운 모습을 봐서 그런가,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그 모습이 류태현은 어딘가 남달라 보였다.

그러나.

“푸하하하하핫! 류태현 이 짜식. 당해도 아주 제대로 당했구만! 응? 어깨도 뽑혀, 발목도 뿌러져, 칼빵도 십수 군데에……. 아주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졌겠어? 응? 낄낄낄, 내 언젠가 이럴 줄 알았다 이 건방진 꼬맹이 자식아.”

“…….”

조금 전의 모습이 거짓말이라는 듯 한순간에 경박한 중년으로 돌아온 오은수의 모습에 류태현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나마 오은수라는 남자를 다시 본 자신의 안목을 자조하며.

“……그래서, 상처는 좀 괜찮냐? 막 그 뭐냐, 당장 뒤질 것처럼 아프고 그런 건 아니지?”

그러나 류태현은 곧 그 경박함의 뒤에 숨은 걱정어린 시선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짓궂은 말도 해학적인 웃음도 다 분위기를 유쾌하게 하기 위한, 그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별로 성공적인 시도는 아니었지만.

“발목만 빼면 괜찮아. 이것도 뭐 한 2, 3주 목발 짚다 보면 낫겠지.”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얼른 나으라고 포션을 팍팍 써줄 테니까. 내 고아원을 지키려고 싸운 녀석한테 인색하게 굴 순 없지 암.”

“의외네. 아저씨 성격이면 1원까지 철저하게 받아낼 줄 알았는데.”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긴 한데 나도 나름 체면이란 게 있잖냐. 성철파 부두목이란 놈이 은혜를 입은 사람한테서도 돈을 뜯어내더라~ 같은 소문이 퍼지면 곤란하거든. 물론 자진해서 주겠다면야 감사히 받겠다만­”

“모처럼의 호의를 마다할 순 없지.”

“에라이 씨발롬. 이럴 때는 아주 칼 같네.”

서로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동시에 피식 웃었다. 나이 차이만 30살도 넘게 나는 두 사람이었지만, 이럴 때면 꼭 동갑내기 친구사이 같았다.

“……아저씨. 좀 전에 저 여자의 배후를 캐낸다 그랬잖아. 근데 내 생각에 아마 배후는 강진윤일 것 같아.”

“너 치료받는 동안 이미 은하한테 들었다. 너희 둘을 노리고 왔다며? 그럼 백이면 백 그놈이겠지.”

“그래. 100%는 아니겠지만 거의 확실하게 그 자식이겠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아저씨는 어떻게 할 거야?”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러냐. 그땐 전쟁이지.”

오은수의 답에 류태현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조직 간의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용문의 피해가 막심하다곤 해도 성철파 또한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성철파 입장에서도 어지간히 이득을 봤겠다, 이 이상 피해가 심해지기 전에 전쟁을 멈추고 싶은 게 솔직한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오은수는 그러한 류태현의 예상을 단칼에 부정했다.

“이 고아원은 내 사유재산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내 사람들이다. 니들까지 포함해서 말이지. 근데 그 사실을 알고 뻔히 고아원을 공격했다? 이건 나에 대한 선전포고야. 그것도 아주 비겁하고, 좆같은 선전포고지.”

“하지만 만약 그쪽이 의도하는 바가 전쟁 재개라면 위험한 거 아니야?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그런 거였다면 지들 조직원을 끌고 와서 덮쳤겠지. 굳이 실력 보증도 안 된 신생 업자 한 명만 보낸 거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자기 짓인 게 들키지 않고 니들한테 복수하고 싶었던 거겠지. 졸렬한 놈 같으니라고.”

“확실히 그건 그러네.”

“뭐 정확한 의도야 놈만 알겠다만은, 일단 내 생각은 그렇다 이거야. 그리고 뭐가 됐든 간에 꼬맹이, 네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지. 전쟁은 우리 더러운 범죄자들 일이니까. 꼬맹이 넌 신경 끄고 평소처럼 애들이나 돌봐주면 된다. 알겠어?”

“…….”

류태현을 위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선을 긋는 그 모습에 류태현은 조금 서운함을 느꼈다.

오은수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는 말이었다. 외지인에 미성년자인 류태현은 그들의 전쟁에 대해 왈가왈부할 이유도, 자격도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아저씨, 혹시 내가 도와줄 일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아서라. 코찔찔이 애송이한테 손 벌릴 정도로 약한 조직이 아니에요. 정 나한테 도움을 주고 싶거든 적어도 나보단 강해진 다음에 말해라. 어딜 약해빠진 놈이 건방지게.”

낄낄낄 웃어대는 오은수에게 류태현은 이렇다 할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확실히, 오늘 오은수가 보여준 강함은 나랑은 차원이 다르긴 했어.’

류태현이 고전한 러스티네일을 상대로 단 한 대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고 초전 압살.

투명화 능력으로 기습을 가했다 해도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노련한 기술과 수십 년의 경험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움직임.

류태현은 설령 자신이 투명화 없이 오은수와 맞붙는다 해도 그를 이길 수 없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정도로 그의 강함은 류태현에게 지대한 충격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류태현의 인생에서 이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하여튼 거듭 말하지만 쓸데없는 생각 말아라. 알겠지? 난 간다.”

생각에 잠겨 있던 류태현을 뒤로하고 오은수가 조직원들 쪽으로 갔다. 류태현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복잡한 눈빛으로 말없이 쫒았다.

“태현.”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들려온 또 다른 목소리.

“아, 쏨밧.”

“상처는 어떤가. 상당히 많이 다쳤다 들었다.”

돌아본 곳에 있던 자는 오은수의 오른팔인 쏨밧이었다. 태국 특유의 구릿빛 피부에 이국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그 남자는 오은수를 제외하고 류태현과 교류가 있는 거의 유일한 조직원이었다.

“별로 심하진 않아. 어깨도 일단 끼워 맞췄고. 발목이 좀 아프긴 한데 아저씨가 포션도 제공해준다 그래서…….”

“은수형. 너에게 감사해서 그런 거다. 그리고 나도 똑같다. 은수형 대신 이곳을 지켜줘서. 여기는 그의……. 그의……, 소중한…….”

“소중한 곳이다?”

“Yes. 그렇지만 조금 다르다. 소중한데 편안한……휴식의 장소? 휴식소? 아니, 휴식처?”

“안식처?”

“그래 그거다. 안식처. 은수형. 나한테 매일 말했다. 조직 생활 힘들지만, 이곳이 자신의 안식처라고. 때문에 은수형, 지금 엄청 화났다. Bloody vengeance. 피는 피로 갚아줄 생각이다.”

“아마 그러겠지. 나뿐만 아니라 애들도 몇 명 다쳤으니까.”

“Exactly. 그렇지만 태현. 너 덕분에 죽은 사람은 없다. 다시 한 번 감사한다.”

“감사할 것까지야…….”

일견 겸손한 표현인 것 같았으나 그렇게 말한 류태현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못 하며 끙끙 앓는 모습에 쏨밧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나.”

“……그냥. 만약 내가 좀 더 강했다면 애들이 다치는 것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싶어서.”

“스스로 탓하지 마라. 불가항력이다. 적이 너무 강했을 뿐이다.”

“그래. 적이 너무 강했지. 그에 비해 난 약했고.”

“Oh man…. 넌 지금 내 말을 잘못 해석했다.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자책하는 류태현을 보며 쏨밧이 미간을 찌푸렸다. 류태현은 그 특유의 표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이따금 하고 싶은 말을 한국어로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짓는 표정이었다.

“Umm……. 적은 강했지만, 태현 너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스스로 탓하지 마라. 그리고 태현. 넌 충분히 강하다. 그리고 더 강해질 거다. You gifted man. OK?”

“……재능은 무슨. 나중에 강해져봤자 지금 약하면 아무 소용없잖아. 지키고 싶은 사람도 못 지키는데…….”

류태현이라고 해서 스스로의 재능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강진윤 때나 지금이나, 당장 지키고 싶은 사람조차 지키지 못하는데 재능이 무슨 소용이고 미래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슬럼에서 오늘 같은 일은 결코 드문 게 아니었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류태현은 한시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만 했다.

그런 류태현의 뇌리에 불현듯 오은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강했던 적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유린하다시피 하던 그의 모습이.

단순 신체능력은 물론이요, 기술 자체가 세련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벽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부분이 바로 지금의 류태현에게 부족한 부분이었다.

기술.

자신의 막강한 신체능력을 120%로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줄 기술의 필요성. 류태현은 그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만약 오은수의 기술을 내 걸로 만들 수 있다면…….’

당장 자신에게 부족한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충당할지. 류태현이 지면을 내려다본 채 깊은 고민에 잠겼고.

“…….”

쏨밧은 그런 류태현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그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

“……으음.”

덜컹거리는 진동에 러스티네일이 의식을 되찾았다. 그녀가 가늘게 눈을 뜬 채 천천히 주위를 살핀다.

­부우우우우웅.

귓가에 울리는 엔진음. 전신에 느껴지는 차체의 진동.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슬럼가의 거리였고, 그녀의 양 옆에는 떡대 좋은 두 남성이 그녀의 팔을 붙들고 있었다. 손목 아래로는 수갑보다 족쇄라는 말이 어울릴법한 초인용 수갑으로 손목부터 손가락 끝까지 감싸여 있었다. 발목 또한 마찬가지.

“하.”

그 모습에 러스티네일이 조소를 흘렸다. 그제야 자신이 어떻게 된 건지를 떠올렸기에.

“험악하게 생긴 남자 여럿이서 가녀린 여자 한 명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야? 납치 감금이라도 하려고?”

“조용히 해라.”

“수갑은 또 뭐가 이리 두꺼워. 너희 이런 게 취향이야? 요즘은 플레이용으로 귀여운 털 달린 수갑도 팔고 그러던데­”

“조용히 하라고 했어. 마지막 경고다.”

옆에 앉아 있던 조직원의 위협에 러스티네일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는 걸 잊지 않는다.

‘방금 지나친 전봇대에 붙어 있던 표지판…. 주소를 보면 이미 성철파의 구역 안인가. 아무래도 날 지들 사무실로 끌고 가려는 모양이네.’

정보라도 캐려는 걸까, 하며 러스티네일이 웃었다. 고문이라면 이골이 났고 어떠한 고문 앞에도 정보를 발설하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 있었지만, 여명단도 아닌 용문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의리는 없었다. 애초에 고문은 익숙해져도 아프기도 하고.

‘그냥 다 불고 몸만 성히 보내달라고 빌면……. 살려줄 것 같긴 한데 더 이상 청부업자로 일하진 못하겠지. 게다가 용문 쪽에서도 곧바로 보복이 들어올 거고…….’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면 용문과 대대적으로 한판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으나, 러스티네일은 혹시 모를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로 했다.

‘도망쳐야겠네.’

그렇게 생각한 러스티네일이 몸을 슬쩍 일으키자 조직원들이 칼같이 저지했다.

“쓸데없는 저항 마라. 팔다리가 묶인 상태로 저항해봐야 쓸데없이 매만 벌 뿐이니까.”

“이깟 수갑? 이런 것쯤 내 능력으로 얼마든지 먼지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데.”

“절대 녹이 슬지 않는 특수 합금으로 만든 수갑이다. 네 능력은 통하지 않아.”

초인을 구속하기 위해 만든 수갑이 대충 만든 물건일 리가 있겠는가. 기본적인 강도는 물론이고 고온 및 저온, 부식 등으로 인한 손상에도 차고 넘칠 정도의 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내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고? 누가 그래?”

러스티네일의 입가에는 어느새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파사사삭….

가루가 날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발을 감싸고 있던 구속구가 시꺼멓게 바스러졌다. 순간 당황한 조직원들이 곧바로 행동에 나섰으나, 러스티네일 쪽이 한 발 빨랐다.

­파사사삭….

그녀의 양손에서 발생한 부식파가 단숨에 차량 전체를 집어삼킨다. 차체의 프레임은 물론이고 가죽으로 된 시트까지. 결코 녹이 슬 수 없는 물건마저 검붉은 녹으로 변하여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진다.

­우당탕탕!!

자동차가 통째로 삭아 없어지니 당연히 타고 있던 사람들은 지면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유일한 예외는 미리 알고 대비하고 있던 러스티네일뿐.

­촤아아악!

지면을 미끄러지며 제동한 그녀가 곧바로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망할! 쫓아!”

조직원들이 그 뒤를 곧바로 쫓았지만 이미 거리는 상당히 벌어진 상태.

러스티네일의 입가에는 미소가, 조직원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

다음날 저녁.

고아원의 저녁 시간을 틈타 류태현은 정원에 있는 그네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네가 삐걱삐걱 천천히 흔들렸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응? 꼬맹이 너. 거기서 뭐하고 있냐?”

마침내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하자 류태현이 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네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라. 그거 참 별일인데. 혹시 조직 간 전쟁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제 말했듯 그건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니까­”

“아저씨. 나 강해지고 싶어.”

그 말에 오은수의 입이 우뚝 굳었다.

“……강해지고 싶다고? 넌 이미 강하잖냐.”

“아니, 난 약해. 평범한 수준에서야 강할지도 모르지만 어제 만났던 그 습격자나……. 아저씨 같은 사람하고 비교하면 약해도 너무 약하다고.”

“그거야 네가 아직 몸도 다 안 자란 미성년자니까 그렇지. 네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이미 괴물 같이 강한 거다. 조급해하지 말고 몸이 다 자라길 기다려. 그래, 성인이 돼서 헌터 아카데미라도 입학하면 분명 더 강해질 수 있을­”

“5년이나 뒤의 이야기잖아. 그래선 너무 늦어.”

그 말에서 진하게 묻어나는 초조함에 오은수의 표정이 변했다.

“……그래선 늦는다고? 뭐에 늦는다는 거지?”

“어제 같은 일이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르잖아. 그때가 되서 ‘지금은 약하지만 난 나중에 강해지겠지’ 따위 생각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난 지금 당장 강해져야해. 언제 또 나쁜 놈들이 쳐들어와도 이길 수 있도록. 그러지 않으면 여기 아이들이나…………은하를 지킬 수 없을 테니까.”

“흐음….”

묵직한 뼈가 담겨있는 말이었다. 류태현이 입에 담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어제의 사태에 대한 진한 후회와 회한이 여실히 묻어나왔다.

기실 슬럼에 있는 고아원을 지키기 위해서 류태현이 강해져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류태현은 결국 외지인이고, 슬럼 안의 일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울 이유가 그에겐 없으니까.

……라고, 예전의 오은수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류태현이 고아원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고, 오은수도 그동안 몇 번이나 류태현과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눴다.

덕분에 그는 류태현에게 있어서 이 장소가.

정확히는 이 장소를 집으로 삼은 권은하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었다.

권은하를 지키기 위해선 죽음조차 불사하리라. 류태현에게 있어 그녀는 이미 친구 이상의, 가족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그는 이미 두 번이나 권은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았던가.

“…………그래. 강해지고 싶다 이거지. 그래서,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

“날 강하게 만들어줘. 나한테 부족한 기술을 가르쳐줘. 아저씨는 수십 년 동안 조직 생활을 하며 계속 싸워왔잖아. 그 노하우를 나한테 전수해줬으면 해.”

“맨입으로?”

“필요하다면 돈은 낼게. 언제 갚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농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그 모습에 오은수가 피식 웃었다.

“됐다. 나는 애새끼 코묻은 돈이나 뜯는 그런 양아치가 아니니까. 기술을 알려달라라. 까짓 거 못 해줄 것도 없지.”

그 말에 류태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은수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 또한 더욱 진해졌다.

“그래 좋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 노하우! 뭐든 간에 전부 너한테 전수해주지! 장담하는데 어디서도 못 받을 존나게 값진 수업이 될 거다. 아카데미 교관들은 꼴에 싸움 좀 해봤다 하는 샌님들이지만, 난 순도 100% 실전파 파이터니까! 대신!”

류태현에게 바짝 다가선 그가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내 가르침을 받고 싶다면 이거 하나만은 약속해라. 그러지 않으면 국물도 없을 테니까.”

“……무슨 약속인데?”

“존나 쉬우면서 존나게 어려운 약속.”

오은수가 꽉 쥔 주먹을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내 책임지고 널 강하게 만들어주마. 대신, 절대 그 힘을 나쁜 짓에 쓰지 마라! 내가 가르쳐주는 건 사람 패는 기술이지만 패는 건 나쁜 놈들 한정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강한 힘을 가지게 될 류태현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자신과 같은 범죄자가 되지 말라는 염원을 담아 던진 말.

그 말에 류태현 또한 오은수와 마찬가지로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오케이. 약속할게. 근데…………. 따지고 보면 아저씨도 나쁜 놈이긴 하잖아. 그럼 아저씨는 때려도 되는 거지?”

“이 새끼 이거 이거 이해력이 남다르구만! 그래!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해봐라! 나도 절대 안 봐줄 테니까!”

곧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정원 가득 울려 퍼졌다. 서로 마주선 채 호탕하게 웃어대는 꼴이 누가 보면 친한 친구 사이, 혹은 사이가 좋은 부자지간으로 보였다.

그렇게 류태현은 정식으로 오은수의 제자가 되었고.

그로부터 1년 뒤. 류태현은 슬럼을 떠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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