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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35화 (236/266)

〈 235화 〉 234. (P)경계의 저편에서(10)

* * *

그날 밤.

­끼익. 끼익. 끼익.

류태현과 오은수. 두 사람은 고아원 정원에 설치된 그네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로맨스 만화 같은 곳에서 커플들끼리 하듯이.

“……왜 굳이 이런 곳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데?”

떡하니 옆에 건물이 있는데 왜 이 밤중에 바깥에서 궁상이냐고. 류태현의 불만에 오은수가 이빨을 다 드러내보이며 웃었다.

“안에서 하면 애들이 들을 수도 있잖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더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순 없다고. 안 그래?”

“따지자면 나도 아직 미성년자인데…….”

“그래도 넌 알 건 다 아는 나이잖냐. 건방지게 반말 찍찍 뱉는 것도 그렇고.”

“……요.”

“됐다 인석아.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존대받고 싶은 꼰대는 아니니까.”

오은수가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류태현에게도 한 대 권했다.

“난 담배 안 펴.”

“의외군. 슬럼에서 열다섯이면 다들 피기 시작하는데 말이야. 저 여자애도 그렇고, 둘 다 묘하게 착실하단 말이지.”

“은하는 잘 지내고 있어?”

“아직 여기 온 지 이틀밖에 안 됐다. 그렇지만 뭐, 잘 지내고 있지. 표정만 봐도 알 거 아니냐.”

“그건 그래. 엄청 웃더라.”

“너랑 있을 땐 안 웃었나 보지?”

“……나한테도 많이 웃어줬어. 그렇지만 뭐…….”

권은하는 류태현과의 만남을 진심으로 즐거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시간은. 류태현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가, 다시 그를 만나기까지의 시간도 과연 즐거웠다 할 수 있을까.

언제 후보생에서 잘릴지 모르는 압박감, 믿을 사람 하나 없는 고립된 단체생활. 권은하가 류태현과 순식간에 친해지게 된 건, 어쩌면 그 험난한 일상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그게 원인인 게 거의 확실했다.

……라고, 류태현은 생각했다.

그야 류태현 본인부터가 그랬으니까.

“……하여튼,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네.”

“그럼 다행이고말고! 일이란 것도 즐겁게 해야 능률이 오르는 법이거든! 뭐, 반대로 여기서의 생활을 힘들어하고 괴로워했어도 베푼 만큼은 억지로 뽑아냈을 테지만 말이지. 물론 너도 마찬가지고.”

오은수는 일부러 악인처럼 억지로 일을 시키네 뭐네 말했지만, 류태현은 그에게서 조금의 악의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명백한 악인. 범죄조직 부두목이란 자리는 슬럼에서도 손에 꼽히는 악인이란 뜻이었다. 허나 오은수는 강진윤 같은 자들과는 어딘가 분위기가 달랐다.

­명심해라 꼬맹아! 되먹지 못한 범죄자라 해서 늘 못된 짓만 하는 건 아니야!­

그것은 그가 나름대로 자신만의 ‘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일까. 혹은 그저 평소의 경박하고 친근해보이는 언행 때문일까.

류태현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그와 만난 지 아직 하루도 되지 않았다. 단번에 오은수라는 사람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의 앞에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리라.

“할 이야기라는 건 당연히 내 ‘빚’에 대한 거겠지.”

“그래. 낮에도 말했지만 난 자선사업가가 아니니까. 베푼 은혜에 대해선 확실히 그만큼 받아낼 생각이다.”

슬럼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자선사업가가 아니라니. 번번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오은수를 보며 류태현은 기분이 오묘해지는 느낌이었다.

“헌데 미성년자인 네가 5억이나 되는 돈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지. 그러니 저 여자애처럼 돈 대신 노동력으로 빚을 변제받을까 생각한다만, 구체적으로는­”

“그렇게 돌려 말할 필요 없어. 내가 가지고 있는 거라고 해봐야 이거 하나 뿐이잖아.”

류태현이 슬쩍 주먹을 올려보이자 오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강진윤을 상대로도 내 무력을 팔아 은하를 구할 생각이었어. 거래 상대가 그 싸이코자식에서 당신으로 바뀐다면 나야 좋지.”

“긍정적이라 좋구만.”

“그래서, 구체적으로 내가 당신 밑에서 어떻게 일해주길 원하는데?”

“3년.”

오은수가 손가락 세 개를 쫙 펴보이며 말했다.

“3년만 우리 조직에 들어와 내 직속으로 일해라. 일하는 동안 기본적인 생활과 다소의 유흥, 사치 정도는 보장해주지. 이래저래 다 감안하면 연봉으로 2억은 될 거다. 꽤 후하게 쳐주는 거라고.”

“A급 초인 연봉으로 2억이면 좀 많이 낮은데.”

“날 속일 생각 마라 꼬맹아. 네가 재능도 실력도 뛰어난 건 맞지만 그렇다 해서 벌써 A급 수준인 건 아니야. 네 싸움을 멀리서 봤다만, 잘 쳐줘야 B급 중간. 초능력이 신체 강화 계열이라면 평상시엔 C급 수준이겠지. 안 그러냐?”

“……칫.”

“으하하하! 정곡을 찔렀나 보구만! 속일 사람을 속여라 인석아! 허투로 성철파 부두목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 말대로, 강진윤 패거리와의 싸움에서 보여준 활약과 달리 류태현의 현재 초인 등급은 C급에 불과했다. 올해 초에 측정한 등급이니 다소 성장했을 여지야 있겠다만, 그래도 류태현의 말처럼 A급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그만한 활약을 보일 수 있었던 건, 심플하면서도 강력한 그의 초능력 ‘신체 강화’ 덕분.

“……알겠어. 그쪽 조건은 받아들일게. 대신 나도 조건이 있어.”

“꼬맹아, 네가 지금 조건을 걸 상황이냐?”

“날 멋대로 살린 건 당신이야.”

“이 새끼가….”

“뭐 돈을 깎아달라거나 그런 게 아니잖아. 일은 착실하게 할게. 그렇지만 나로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는 거라고.”

“……일단 들어나 보자. 그 조건이란 게 뭔데?”

“세 가지 있는데.”

“더럽게도 많네 씨부럴.”

오은수는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듯 턱을 까딱였다. 이에 류태현이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말했다.

“우선 첫 번째. 익명 활동.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이래저래 적도 많이 생기고 원한도 쌓일 것 아니야. 그거 자체는 별 상관없는데 가족한테까지 피해가 가는 건 곤란해서. 아무쪼록 조직에서 일할 땐 익명이나, 아니면 가짜 신분 같은 걸 내세운 채 활동하고 싶어.”

“꼬맹이 너 가족도 있었냐?”

“그럼 없겠어? 난 누가 낳고 누가 키웠는데.”

“그야 당근 고아일 줄 알았……크흠! 커흠!”

자연스럽게 패드립을 박으려던 오은수가 멋쩍게 입을 다물었다.

“그래, 음, 가족 중요하지. 가족이 위험에 빠지면 일할 의욕도 안 날 테고. 오케이! 첫 번째는 수용! 그럼 두 번째는 뭐냐?”

“두 번째 조건은 내 생활과 관련된 건데….”

류태현의 두 번째 손가락이 펴졌다.

“좀 전에 당신 빚을 갚는 동안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네 뭐네 말해줬잖아. 그거 필요 없어. 난 그냥 지금처럼 내 집에서 살게. 대신 내가 필요한 일 있으면 그때마다 불러. 바로 달려갈 테니까.”

“그래서야 조직원이라기 보단 외부 용병 느낌인데…….”

“강진윤한테도 제시한 조건이야. 솔직히 내가 당신네 조직에서 하는 일이래 봐야 주먹 빌려주는 것밖에 없잖아. 그럼 용병이든 뭐든 상관없지 않아?”

“그건 그렇……지? 오케이! 두 번째도 수용! 세 번째는?”

어째 불만이 많았던 것과 달리 류태현의 조건을 쉽게 수용해주는 오은수.

그 모습을 보며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어떨지 고민하던 류태현이 이내 세 번째 손가락을 펼쳤다.

“세 번째 조건은 이거야. 슬럼 안에서의 일에만 날 부를 것.”

“그건 또 뭔 개씹소리냐.”

“말 그대로의 의미야. 나한테는 돌아갈 집이 있고 기다리는 부모가 있어.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그것들을 망치고 싶지 않거든. 슬럼 안에서야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으니 괜찮지만, 바깥은 다르잖아. 난 우리 가족이 사는 바깥에서까지 범죄자가 되고 싶진 않다고.”

“가족이 사는 바깥……이라고?”

“그래. 이 조건만은 절대 양보 못해. 게다가 어차피 내 힘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해봐야 조직 간 항쟁 같은 게 대부분일 거 아냐? 뭐 나한테 지역 상인 삥뜯기를 시킬 것도 아닐 테고. 그래, 그런 지저분한 일은 가급적 시키지 말아줘. 그리고 또…….”

조건은 세 개뿐이라면서 어느 새 넷, 다섯 번째 조건을 말하기 시작하는 류태현.

그러나 오은수는 그런 그에게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멍하니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또, 되도록이면 학습권은 보장해줬으면 해. 고등학교야 검정고시 보면 되긴 하는데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서. 너무 많이 빠지면 여러모로 귀찮아지거든. 출석일수만 채우면 되니까 급할 땐 며칠 정도 빠져도 되겠지만….

“…………야, 꼬맹아.”

“아 그러고 보니 부모님한테 연락하는 거 까먹었다. 사흘이나 지나서 경찰 같은 데에 신고했을지도 모르는데­”

“잠깐만 기다려봐라, 꼬맹아. 있지, 뭐 하나만 묻자.”

줄줄이 조건을 이어나가던 류태현이 오은수를 바라봤다. 오은수는 어느새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류태현이 ‘하긴 장마철이라 좀 후덥지근하긴 하지.’하고 생각한 찰나…….

“그 꼬맹아. 혹시 너 지금, 그, 사는 곳이 어디냐? 가족이랑 어디에 살고 있어?”

“그걸 내가 왜 말해야하는­”

“중요한 문제니까 대답해 새끼야! 주소를 부르라는 게 아니잖냐! 그냥 대충 어디쯤 사는지만 말하라고!”

“……의정부 효원동 근처. 근데 그건 왜?”

“효원동이면 슬럼 바깥 아니냐?”

“그렇지.”

“그럼 너 외지인이냐?”

“그런데?”

“이런 씨발…?”

그 욕지거리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오은수는 말이 없었다. 당황한 것처럼도 보이고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도 보이는 오묘한 표정을 지은 채,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다 허탈하게 피식 웃었다.

“뭐야, 갑자기 말없이 왜 그러는­”

­벌떡!

한참 동안 침묵하던 오은수가 돌연 벌떡 일어섰다. 그가 앉아 있던 그네가 휘청휘청 흔들리며 사슬이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이봐,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꼬맹아. 거래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겠다. 넌 당장 집에 돌아가라.”

“……뭐?”

갑작스러운 파토에 당황스러워하는 류태현.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거래를 없던 걸로 하겠다니?”

“난 네가 슬럼 주민인 줄 알았다. 근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넌 외지인이잖냐. 외지인을 조직에 들일 순 없다. 그러니까 거래는 무효다.”

“외지인이고 자시고가 뭐가 중요하다고­”

“적어도 나한테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니까 넌 당장 돌아가. 볼일도 끝났잖냐. 부모님 걱정하신다고.”

묘하게 류태현을 어린애 취급하는 듯한 말투.

그 말투에 류태현이 잠깐 발끈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곧바로 표정을 풀고는 이성적으로 그에게 질문한다.

“거래를 없는 걸로 하면, 내 빚은 누가 갚는데?”

“여자애가 갚겠지. 상관없지 않냐? 어차피 저 애는 달리 갈 곳도 없고. 여기서 고아원 일을 도우며 숙식이 해결되면 좋잖아. 한 1, 2년 의무로 일해야했던 게 10년 15년으로 늘어나긴 하겠다만…….”

“…….”

“아마 그 편이 그 여자애한테도 좋겠지. 어쩌면 자진해서 네 빚을 떠맡으려고 할지도 모르고.”

오은수의 그 말을 류태현은 곧장 부정할 수 없었다.

용문을 떠난 권은하가 의지할 곳이 없는 건 사실이고, 아직 그녀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범죄조직에서 피나는 경쟁 속에 살던 것보다 고아원에서의 평화로운 삶을 더 원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니, 오늘 하루 동안 본 그녀의 웃음을 생각하면, 분명 지금의 삶이 권은하에게도 더 나은 삶이겠지.

허나 그렇다 해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권은하에게 빚을 다 떠넘기고 혼자 도망가라니. 류태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이에 류태현이 그럴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버티고 서있자 오은수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좀 전보다 살짝 풀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꼬맹아. 솔직하게 말하마. 내가 널 구해준 이유는 너도 이미 알겠다만 네 힘이 탐나서였다. 지금도 강하긴 하다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가 되었지. 그 어린 나이에 진윤이네 패거리 상대로 그렇게 싸운 걸 보면 엄청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아마 성인이 되고 계속 수련하면 A급은 따놓은 거고, 어쩌면 S급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몰라. 슬럼에서 그 정도면 조직 간부? 그게 대수겠냐? 한 조직의 장이나 어쩌면 슬럼을 통일하는 게 가능할지도 몰라. 네 재능은 그만큼 뛰어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어. 그래서 네게 은혜를 입힌 거다. 일단 치료비라는 명목으로 널 잡아두면, 그 다음에는 돈으로 꾀든 정에 호소하든 널 내 편으로 만들 자신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담담하게 자신의 계획을 고백하는 오은수의 모습이 류태현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오은수가 이토록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처음 봐서 그럴까.

게다가 류태현은 그의 행동 또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계획이 있었다면 그대로 실행하면 될 것이지 왜 그걸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가.

“……그런데, 네가 외지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범죄조직의 두목? 슬럼의 통일? 그게 뭐가 대수라고! 네 재능으로 바깥세상을 살면 헌터든 뭐든 간에 분명 대성할 거 아니냐. 합법적인 영역에서 돈이고 명예고 다 손에 쥘 수 있다고. 응? 안 그러냐?”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네 미래가 창창하단 거다 꼬맹아. 그리고 난 그 미래를 짓밟고 싶지 않고.”

“…….”

류태현은 그제야 오은수가 순전히 그를 걱정해서 이 말을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 배려는 분명 감사해 마땅할 일이지만, 류태현은 어째 순순히 감사할 수가 없었다.

“……배려는 고마운데. 그렇다 해서 은하를 버려두고 혼자 갈 순 없어. 아무리 걔가 자진해서 내 빚을 떠안는다 해도, 그래서야 찝찝하잖아. 내 일은 적어도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건데­”

“고작 찝찝함 때문에 지 미래를 걷어차겠다는 거냐? 이제 보니 멍청한 놈이었군! 야 이 새끼야! 나나 저 여자애한테야 슬럼이 고향이고 삶의 전부라지만 넌 다르잖냐! 응? 너한테 슬럼은 그저 한때의 반항, 사춘기의 짧은 일탈 아니냐고? 안 그러냐!?”

류태현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가 슬럼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오은수의 말마따나 반항이요 일탈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 해서 류태현에게 있어 슬럼이 가지는 의미가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만.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그의 미래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 배때지에 칼도 쑤셔박혀봤겠다, 슬슬 철이 들 때도 되지 않았냐. 이제 일탈은 관두고 얼른 부모님한테 가서 효도나 해라. 효자동 사는 새끼가 불효자라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응?”

“…효자동이 아니라 효원동인데­”

“그거나 그거나! 암튼 불효자인 건 똑같잖냐 씨발! 있을 때 잘해 새끼야! 누군 진즉에 부모가 뒈졌거나 태어날 때부터 고아여서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니까! 씨발, 내가 말해놓고도 존나 웃기네. 내가 뭐라고 너한테 이런 말을 하고 있다냐.”

범죄조직 부두목이 청소년에게 효도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꼴이라니 꽤나 웃긴 블랙 코미디였다. 허나 오은수는 비록 범죄자라 해도 자신만의 ‘선’을 지키고자 하는 자였고, 류태현 또한 그의 성격을 알았기에 구태여 지적하진 않았다.

“……아무튼 꼬맹아. 네가 무슨 일로 슬럼의 일에 이렇게까지 깊게 개입한 건진 묻지 않겠다만. 슬럼과 바깥세상 사이에는, 그 뭐시냐,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 거다. 그리고 꼬맹이 너는 지금 그 선을 씨게 넘어버렸다고. 아직은 돌아갈 수 있지만 지금이 그거다. 그 건널목? 아니 교차로? 그 시발, 아무튼! 이 이상 깊숙이 들어오면 돌이킬 수 없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알겠으면 씨발 토달지 말고 얼른 돌아가! 그리고 다신 얼씬하지 마라! 네 빚은 여자애한테 갚으라고 하거나, 아니면 뭐 그냥 없던 걸로 해줄게! 그니까 얼른 돌아가! 효자동 사는 부모님한테 가서 효도나 하라고! 아무튼! 난 할 말 다 했으니까 이제 꺼져!”

가서 내일 학교 갈 준비나 해라!

그렇게 외친 오은수가 홱 몸을 돌리곤 고아원 건물로 향했다. 차마 반박할 새도 없이 속사포처럼 제 할 말만 뱉곤 가버리는 오은수의 뒷모습을, 류태현이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다.

“……효자동 아니고 효원동이라니까…….”

이내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뒷모습을 향해 뒤늦게 그렇게 반박해보지만, 기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말이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건 아니었다. 돌아가고야 싶었다. 비행청소년이라고 해도 류태현은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고, 그가 결국 있어야 할 곳이 바깥세상의 자기 집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자신이 저지른 일의 수습은 해야 할 것 아닌가.

권은하에게 빚을 떠맡기고 이대로 꺼지라니. 그리고 다신 슬럼에 얼씬도 하지 말라니. 그 말을 어떻게 지키겠느냐고.

설령 떠나야 한다 하더라도 그 전에 책임은 확실히 지게 해달라고.

“…….”

그러한 일련의 반박들은, 오은수에게 말해지는 일 없이 그의 입 안에서만 계속 맴돌았다.

중간에 그의 말을 끊고, 혹은 건물로 들어가던 그를 붙잡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씨발. 범죄자 주제에 존나 맞는 말만 하네.”

오은수가 자신에게 한 인생 설교가 하등 틀린 말이 없기 때문이리라.

류태현은 마치 방과 후 교무실에서 선생님한테 잔소리를 잔뜩 들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말하는 사람이 범죄조직 부두목이라 그런가, 말 하나하나에 묘하게 뼈가 실려 있어 더욱 깊게 와닿았다.

이에 류태현은 한참동안이나 그네에 앉아 오은수의 말을 곱씹었고.

그날 밤, 류태현은 장장 사흘만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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