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31화 (232/266)

〈 231화 〉 230. (P)경계의 저편에서(6)

* * *

강진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그는 요즈음 들어 하루가 멀다하고 삶의 지루함에 대해 탄식하곤 했다.

그는 의정부 북부에서 양주, 동두천을 거쳐 구 휴전선 인근에까지 이르는 거대한 슬럼을 삼분하는 범죄조직, 용문의 열두 간부 중 한 사람이었다.

슬럼에는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다. 그곳에선 무력과 재력이 곧 권력이고 법이다. 그리고 강진윤은 그런 슬럼에서 열손가락에 꼽히는 권력자였다.

당연히 그의 삶은 윤택하기 그지없었다. 슬럼에서 그는 왕이나 다름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범죄라 하더라도. 감히 누가 그를 막을 수 있겠는가.

슬럼에서 그에게 반기를 든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예전에야 그런 자살희망자가 이따금 나오긴 했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었다. 용문의 지위가 공고해진 이후로 그를 포함해 용문에 거역하는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까.

심지어 삼대 세력의 나머지 두 축인 성철파나 블랙스미스조차 용문과의 마찰을 피하며 자신들의 것을 지키는 데에 급급한 실정인데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고난과 역경 없이 그저 충족되기만 하는 삶이란 머지않아 지루해지는 법.

강진윤은 근래 들어 평화롭고 유유자적하기만 한 자신의 삶에 내심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 지루함을 달래보고자 술이며 여자며 도박이며 마약이며, 그 외에도 온갖 유희와 향락을 시도해보았지만, 그것들마저 한 순간의 위안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간부 후보생이던 권은하를 노리개로 삼으려는 것 또한 그러한 ‘유희’의 일환이었다. 지금껏 여자는 질리도록 안아보았고 미성년자를 품은 적도 몇 번은 있었다.

그러나 같은 조직의, 그것도 간부 후보생이던 여자아이를 안은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말도 제대로 떼지 못한 어린아이 시절부터 오직 용문의 간부가 되기 위해 죽기살기로 달려온 소녀. 그 소녀의 삶을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뜨렸을 때 소녀가 보여줄 반응이 분명 색다른 자극이 될 거라고.

강진윤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고, 권은하가 그가 보낸 부하들에게 저항하다 훔씬 두들겨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믿음은 증명되었다. 강진윤은 벌써부터 권은하를 어떻게 가지고 놀지 기대되었다.

기대라니,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감정이던가.

헌데 그런 와중 뜻밖의 소식이 강진윤에게 전해졌다.

“뭐? 권은하의 친구라는 녀석이 후보생 숙소를 뒤집어놨다고? 나랑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새벽 중에 날아든 부하의 보고에 강진윤은 처음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입가에 진한 웃음이 떠올랐다.

외부인에 의한 습격은 분명 안 좋은 소식이었지만, 무료함에 질려있던 그에겐 색다른 자극이기도 했으니.

용문을 상대로 덤벼드는 이를 보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강진윤은 기대감으로 잔뜩 상기된 얼굴로 곧장 후보생 숙소로 향했다. 물론 그의 수족이자 방패막이인 수많은 경호인력들과 함께.

그리고, 이윽고 그가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크핫! 흐하하하하하!!”

강진윤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웃음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쏴아아아아.

비가 억수처럼 쏟아져내리는 건물 앞, 열댓 명은 될법한 소년소녀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대부분은 기절한 채였으며 개중에는 의식이 있는 자도 있었으나 얕은 신음만 흘려대며 끙끙 앓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마치 이 광경을 자신이 만들어냈다고 과시하듯 서있는 남자가 한 명.

나름 건장한 체격이지만 얼굴에는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었다. 대충 중, 고등학생 정도 될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강진윤은 저 소년이야말로 부하의 보고에서 들은 ‘권은하의 친구’임을 알 수 있었다.

“야, 웬 아저씨들 잔뜩 왔는데 저 안에 그 강진윤이란 사람 있어? 함 찾아봐.”

“네…! 맞습, 니다…! 가운데 있는 올백, 정장 입으신 분이……”

“오케이.”

­퍼억!

류태현의 주먹에 유일하게 의식이 있던 후보생이 털썩 쓰러졌다. 이로써 모든 후보생을 쓰러뜨린 류태현이 강진윤과 경호원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거 참 많이도 몰려왔네. 이쪽은 한 명밖에 없는데 뭘 이리 잔뜩 끌고 왔어?”

20여 명이나 되는 건장한 조직원들을 앞에 두고도 류태현은 겁먹은 기색 하나 없었다. 그 태도에 강진윤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움직이면 이 정도는 당연한 거다 꼬맹아. 왜, 네 생각보다 많아서 겁나기라도 하냐?”

“딱히. 숫자는 많지만 그래봐야 간부는 아저씨 한 명이잖아? 일반 조직원이 몇 명이든, 간부 후보생이던 이 녀석들에 비하면 약할 것 같은데…….”

“크하하핫! 허세도 그 정도면 칭찬받아야 할 수준이군! 아니, 허세는 아닌가! 보아하니 여기 숙소에 있는 후보생 전원을 너 혼자서 쓰러뜨린 것 같은데. 안 그런가?”

“잘 보셨네. 다들 별 거 아니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류태현이라고 한 대도 맞지 않고 그들을 쓰러뜨린 건 아니었다. 얼굴처럼 드러나는 부위는 깨끗했지만 옷으로 가려진 부분에는 군데군데 피멍이 올라와 있었다.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욱신거리는 걸 보면 아마 갈비뼈도 금 정도는 갔으리라.

허나 그런 사정을 친절하게 밝혀줄 도리는 없었다. 수십 대 1이라는 상황에서 얕보였다간 끝장이니까. 건물 위에서 쓰러뜨린 후보생들을 일부러 바깥에 널브러뜨려둔 것도 얕보이지 않기 위한 일종의 허세이자 과시였다.

그리고 그 허세는 확실하게 먹혀 들어갔다.

‘개방된 장소에서 후보생 전원을 상대로 싸워 어렵지 않게 승리라. 최소로 잡아도 C급 상위는 되겠군. 어쩌면 B나 A급일지도 모르고.’

강진윤은 새삼 류태현이 가졌을 재능에 소름이 돋았다.

아직 몸이 제대로 여물지도 않은 나이로 A급을 넘보다니. 잘만 키워낸다면 S급은 물론이요 국내 1위조차 꿈이 아닐 정도의 압도적인 재능이었으니.

허나 그렇기에 강진윤은 의문이었다.

“그래서, 분명 너는 나와 ‘할 이야기’가 있다 그랬지. 너 정도 되는 꼬맹이가 이런 짓을 벌이면서까지 나랑 할 이야기라는 게 도대체 뭐지?”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 아저씨. 난 아저씨한테 거래를 제안하고 싶어.”

“거래라고?”

“은하한테서 손 떼. 그리고 걔를 자유롭게 풀어줘. 이게 내 요구 조건이야.”

“푸핫!”

그 말에 강진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와 함께 온 경호원들도 따라서 웃었다. 비가 내리는 밤의 골목에 수십 개의 웃음소리가 겹쳐 울려 퍼졌다.

“크흐흐….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그년 때문이었나? 왜, 혹시 그 꼬맹이년이 네 여자친구라도 되는 건가?”

“아니. 걔랑은 그냥 친구야.”

“그런가! 그거 다행이군! 모처럼 어린년을 품으려는데 중고품이면 찝찝하잖아! 안 그런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그 웃음에 류태현의 얼굴에 불쾌함이 번진다. 허나 류태현은 얌전히 선 자리를 지킨 채 그의 웃음소리를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뭐, 친구든 연인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 건 거래 내용이니까. 그래서, 내가 그년을 풀어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거지? 돈이라도 한 10억 쥐어줄 거냐?”

“아니. 내가 당신한테 줄 건 이거야.”

그 말과 함께 류태현이 꽉 쥔 자신의 주먹을 들어보였다.

“이 힘을 댁한테 팔게. 슬럼에선 힘이 곧 법이잖아? 그리고 내 스스로 말하긴 뭐해도 난 꽤 강하거든.”

류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자기 주위에 쓰러진 간부 후보생들을 과시하듯 가리켰다.

“어린 초인들을 가둬다가 간부 후보생이랍시고 경쟁시키면서 키워댄 것도, 결국 조직을 위해 싸워줄 강한 초인이 필요해서잖아. 안 그래?”

“즉 그년 대신 네가 조직에 들어오겠다? 간부후보생으로? 네 말은 그런 뜻이냐?”

“아니, 정식으로 조직 아래로 들어가진 않겠어. 내가 파는 건 어디까지나 내 힘. 필요하면 그때 부르라고.”

“용병이라 그거군.”

“댁이 10억이라 그랬으니 딱 10억만큼만 일해 줄게. 실력 있는 청부업자 고용 비용이라 생각하면 싼 편 아니야?”

류태현은 슬럼가나 청부업계의 생리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의 말은 제멋대로인 주장에 불과했다.

허나 강진윤이 주목한 건 류태현이 내보이고 있는 자신감이었다. 이만한 인원을 앞에 두고도 따박따박 반말로 제 할 말을 하는 것이 보통 내기는 아니다 싶었기에.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긴 하다만 애송아. 그 전에 네가 10억만큼의 값어치를 할 정도로 강한지 아닌지부터 증명해야 되지 않겠냐?”

“그건 이미 증명 됐다고 보는데. 여기 널브러진 이놈들 안 보여?”

“그놈들은 그래봤자 후보생에 불과하다. 그놈들 중에 실제 간부가 되는 건 한 명 정도 있을까 말까야. 나머지는 대부분 간부 휘하의 정예 전투원이 되지. 바로 얘네들처럼.”

강진윤이 자신이 데리고 온 조직원들을 가리켰다. 그 말에 류태현의 얼굴이 흠칫 굳는다.

“애송이. 조금 전에 네놈이 뭐라 그랬지? 내가 끌고 온 이 녀석들이 간부 후보생들보다 약하다? 천만에! 이 녀석들도 전원 후보생 출신이다. 게다가 젖비린내나는 꼬맹이들이랑 달리 몸도 다 자랐지. 그깟 후보생 몇 이겼다고 해서 용문이 네 아래인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야!”

“……그래서? 나보고 댁이 데리고 온 조직원들도 쓰러뜨려보라고?”

“그래. 물건을 팔고 싶다면 먼저 고객에게 물건을 보여주는 게 순리 아니겠냐. 어이! 누구 나가서 저 꼬맹이 실력 좀 봐줘라!”

“예, 형님! 제가 하겠습니다!”

강진윤의 외침에 그의 뒤편에 있던 조직원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이름은 박형석.

그는 간부 직속의 정예 전투원 중 한 명이자 B급 승급을 목전에 둔 초인이었다. 그가 손을 쫙 펴자 주위에 널려있는 콘크리트 덩이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래 형석아. 꼬맹이라고 봐주지 말고 확실히 해라.”

“예, 형님.”

박형석이 앞으로 나서자 류태현이 말없이 자세를 낮췄다. 그러는 사이 박형석의 주위로 모인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그를 중심으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죽기살기로 피해라. 잘못하면 대가리가 터져 뒤질 테니까.”

“염병하네. 네 대가리나 간수 잘 하세요.”

“이 새끼가!”

­쐐애애액!!

박형석이 분노에 차 팔을 휘두르자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류태현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어?”

박형석이 노리던 곳에 류태현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자세를 한껏 낮춘 채 달려든 그는, 박형석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품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대가리!”

류태현의 외침에 흠칫 굳은 박형석이 자기 머리를 방어했다.

­퍼억!!

“끄헉?!”

그러나 류태현의 주먹이 향한 곳은 그의 가슴이었다. 우드득 소리와 함께 갈비뼈에 쩌저적 금이 간다.

“또 대가리!!”

직후 이어진 제2격. 턱을 노리는 듯한 주먹에 가드를 올렸지만 이번에도 주먹은 다른 곳에 꽂혔다. 옆구리를 후려치는 리버 블로우에 박형석의 입에서 한 웅큼 피가 울컥 새어나왔다.

“병신, 그걸 곧이곧대로 믿네.”

“이 새끼가­!”

“마지막으로 대가리 한 번 더 간다!”

두 번이나 당했는데 또 속을쏘냐. 박형석은 크게 뒤로 물러서며 콘크리트 조각으로 다시 한 번 공격을 시도했다. 전과 달리 피할 수 없도록, 전방위에서 일제히.

­퍼억!

그 의도대로 류태현은 박형석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아니, 피하지 않았다.

­퍼억! 퍽! 퍽! 퍼어억!!

날아든 파편들은 전부 류태현의 주먹과 격돌하고 부서졌다. 하나하나가 수kg에서 수십kg는 될 흉기들이었지만 류태현의 주먹 앞에선 솜방망이만 못했다. 폭풍처럼 휘둘러지는 양팔에 자잘한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쐐애애애액!!

이윽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콘크리트.

­터억!

류태현은 그것을 깨부수는 대신 공중에서 낚아챘다. 그러곤 있는 힘껏 박형석을 향해 던졌다.

박형석이 조종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속도로.

“자, 잠까­”

­퍼억!!!

“우붑?!”

그리고 그 파편은 정확히 박형석의 안면을 강타했다. 콘크리트 파편이 부서지고 박형석의 안면 또한 부서졌다. 시뻘건 코피와 새하얀 이빨 하나가 비산하는 파편들 사이로 튀어 올랐다.

­타앗!

동시에 류태현이 박형석에게 달려들어 그 안면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콰앙!!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박형석의 몸이 공중에서 휘릭 180도 돌았다. 뒤통수부터 지면에 쓰러진 그가 신음조차 흘리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대가리 간수 잘 하라고.”

완승.

문자 그대로 박형석을 압도해버린 류태현이 너스레를 떨며 주먹을 털었다.

“어떻게. 더 보여줘야 하나?”

“…….”

명백하게 도발하는 말투.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의 말에 노발대발했겠지만 강진윤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준효야.”

“예.”

“밟아주고 와라.”

“예.”

강진윤은 류태현을 확실하게 밟아주기 위해 자신이 가진 가장 강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곽준효.

강진윤 산하 전투원들의 행동대장이자 그의 오른팔. 그 이력을 나타내듯 남자는 190 가까이 되는 거한에 두꺼운 근육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시발 근육 봐라. 얼마나 두꺼운지 수트 아래로 꿈틀거리는 게 다 눈에 보이네.’

류태현은 단번에 그가 조금 전 박형석처럼 손쉬운 상대가 아님을 직감했다. 그러나 권은하를 구하기 위해선 강진윤이 내건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했다. 고로 물러설 순 없었다.

곽준효는 박형석과 달리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 과묵한 모습이 그에게서 뿜어지던 압박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생긴 걸 보면 육체파 초인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거리를 좀 둘까? 아니, 차라리 방심한 사이 달려들어서 초능력을 쓰기도 전에 쓰러뜨리면…….’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족히 5미터는 떨어져 있을 거리에서 곽준효가 대뜸 주먹을 내질렀기 때문이다.

‘저 거리에서?! 초능력인가? 불꽃? 번개? 충격파? 그것도 아니면­’

다급하게 머리를 굴리던 류태현의 눈앞으로 붉은 채찍이 날아들었다. 가까스로 이를 피해내며 그가 생각했다.

무기는 들고 있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 어디서­

그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공격을 피한 찰나의 순간, 방금 자신을 덮친 ‘그것’의 정체를 그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문어?’

류태현을 덮친 건 시뻘건 문어의 다리였다. 곽준효의 팔 전체가 몇 가닥의 문어다리로 변한 것이었다.

‘시발. 몸 꿈틀거리던 게 근육이 아니라 문어다리였냐?!’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곧 류태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휘둘러진 문어다리와 교차하듯 류태현이 바깥쪽에서 곽준효에게 파고들었다.

‘팔이 저렇게 길어서야 가까이 붙었을 때 속수무책이지!’

번개처럼 파고든 류태현의 주먹이 곽준효의 가슴에 꽂혔다.

­물컹!

“어?”

그러나 주먹은 마치 트램펄린에 박힌 것처럼 튕겨져나갔다. 곽준효는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과묵한 표정 그대로 류태현을 걷어찼다.

­휘리릭! 퍼억!!!

“끄흡?!”

골격구조를 무시하며 탄력 있게 휘어진 발길질이 류태현의 옆구리에 꽂혔다. 날카로운 충격과 함께 그의 몸이 주르륵 밀려나고, 직후 날아든 추가타에 그의 고개가 홱 꺾인다.

“크으…! 이 문어다리 자식이!”

기세 좋게 외쳤지만 류태현은 곽준효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기본적인 사거리부터가 차이가 심했으며, 어떻게 접근해서 일격을 먹여도 탄력 있는 문어의 근육이 충격을 흡수해버리니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투웅!

벌써 몇 번째인가. 류태현의 주먹이 곽준효의 가슴에 꽂혔지만 그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직후 날아든 반격에 류태현의 몸이 속절없이 튕겨나가 지면을 굴렀다.

“꼬맹아. 슬슬 인정해라. 넌 날 못 이겨.”

“……못 이기긴 지랄…! 끝까지 가면 내가 다 이겨, 이 문어대가리 자식아…!”

곽준효가 공격했다. 류태현이 이를 피했다. 파고든 류태현의 주먹이 그의 가슴에 박혔다. 허나 전혀 화가가 없었고 박준효의 공격에 류태현이 다시 한 번 지면을 굴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된 일련의 과정에 싸움을 구경하던 이들의 표정엔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그건 강진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애초에 류태현을 밟아주기 위해 곽준효를 보낸 것이었지만, 일방적이기만 한 싸움이 지지부진하기까지 하니 재미가 있을 리가.

­투웅! 휘릭! 퍼벅!

­투웅! 휘리릭! 퍼버벅!

그러거나 말거나 류태현은 우직하게 달려들었다. 어떻게든 파고들어 일격을 꽂아넣는 실력만은 대단했으나, 그래봐야 공격 직후의 빈틈을 찔려 그만 일방적으로 데미지를 입을 뿐이었다. 류태현의 공격은 곽준효의 탄력 있는 근육에 속수무책으로 막혔으니까.

류태현의 발버둥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발버둥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단 한 사람, 류태현만 빼고.

­투웅!!

우직한 것도 이쯤 되면 멍청한 거라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효과도 없는 주먹질에 열중인 류태현을 내려다보며 곽준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허나 그 순간.

“쿨럭.”

한숨과 함께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한웅큼 쏟아져내렸다. 곽준효의 얼굴에 일순 의문이 떠오른다.

­투웅!!

그러는 사이 류태현의 주먹이 다시 한 번 그의 명치를 때렸다. 탄력성 있는 근육은 이번에도 주먹을 튕겨냈지만, 동시에 곽준효의 목구멍에서 또 한 번 핏물이 역류했다.

‘어떻게 된 거지? 이 놈 공격은 전부 통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이 토혈은 뭐란 말인가. 주춤 물러선 곽준효의 한쪽 무릎이 덜컥 꺾였다. 동시에 몸 안에서 퍼지는 저릿한 고통에 설마 하는 가능성이 스친다.

‘설마 근육을 뚫은 충격이 내장에 직접 쌓인 건가?’

가까스로 떠올린 가능성에 곽준효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숱하게 싸워오면서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능력은 타격계에 한해선 무적이었다. 그것만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실이었노라고, 이제껏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퍼억!!

“크허어업!!”

류태현의 주먹이 꽂힐 때마다 온몸에 퍼지는 둔중한 충격, 목구멍을 역류하는 붉은 핏물은 그의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야 이 문어대가리 새끼야. 내가 분명 말했지.”

곽준효가 필사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고통에 굳은 공격은 류태현의 몸에 닿지 못했다.

이윽고, 벌써 몇 번이고 반복했듯 류태현이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끝까지 가면, 내가 다 이긴다고…!!”

“이 새끼가……!!!”

­퍼억!!

­퍼억!!

두 사람의 공격이 교차하고, 그 순간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공방이 멎었다.

­쏴아아아아

드디어 결착이 난듯한 모습에 주위에 정적만이 감돌았다. 억수처럼 쏟아지는 빗물 한 가운데에서, 류태현과 곽준효 둘 다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굳어 있었다.

“…………크.”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곽준효의 입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새어나오고.

“커헉!! 크허어억!!”

다음 순간 그가 대량의 피를 쏟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위액과 혈액, 그리고 잘게 찢어진 핑크빛 살점들이 한데 섞여 그의 식도를 역류해 뿜어져나왔다. 누적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내장 몇 개가 동시에 파열된 것이었다.

“크허, 너, 허윽, 너 이 새끼…….”

­콰득!!

그럼에도 곽준효는 일어서려 했지만, 류태현은 자비없이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 그 일격을 마지막으로 곽쥰효는 지면에 고꾸라진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쏴아아아아아.

다시금 주위에 흐르는 정적. 그러나 그 전과는 다른 정적이었다. 조금 전의 정적이 긴장감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정적은 온전히 충격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강진윤의 오른팔 곽준효. 그가 고작해야 중학생에게 처절하게 패배해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다음.”

그 정적의 한가운데서 류태현이 말했다.

주위에 들리는 빗소리처럼,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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