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27화 (228/266)

〈 227화 〉 226. (P)경계의 저편에서(2)

* * *

인간이란 으레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탐내는 법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비물질의 영역에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탐내는 것. 이는 곧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마음, 미지에 대한 본능적인 끌림을 나타낸다.

즉 호기심.

앞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는 불이해로, 불쾌감으로, 그리고 이윽고 배척으로 이어진다 했다. 그러나 사람간의 차이가 꼭 부정적인 감정만을 낳겠는가. 어떨 때는 그것으로부터 호기심이 비롯되기도 하며, 이는 곧 서로를 이해하는 첫 걸음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류태현이 권은하에 대한 호기심을 품게 된 건 그녀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었다.

류태현은 슬럼에 대해 이른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슬럼이란 자신을 배척하던 바깥과는 달리 편견이 없고 자유로운 곳.

그러한 슬럼에서 어느 날 돌연 마주친 미지의 소녀에게 자신과 비슷한 나이임에도 슬럼을 삼분하는 거대세력의 간부 후보생이라는 배경이 있다는데. 호기심을 갖지 않고 배길쏘냐.

“그게 이유야? 내가 궁금해서?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냥 기왕 알게 된 거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친해져보고 싶다 그거지.”

“미안한데 난 너랑 달리 한가한 몸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그만 찾아왔음 하는데.”

“?? 넌 학교도 안 다니잖아. 난 그래도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꼬박꼬박 학교에 박혀있는데. 그럼 내가 더 바쁜 몸 아니냐?”

“이게 진짜…….”

권은하는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을 찾아온 불청객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던 날 후보생 숙소를 알려준 게 화근이었다. 어차피 외지인이고 다신 안 볼 사이니 말해도 상관없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설마 그날 이후 매일같이 자신을 찾아올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건 건물 안까지 직접 찾아오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류태현은 방과 후 5시 즈음부터 건물 앞에서 핸드폰 따윌 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 보면 저녁 즈음 찬거리를 사러 나오는 권은하와 마주치곤 했다. 그게 며칠 반복되자 나중에는 권은하가 나올 시간에 맞춰 건물 앞에 딱 도착했다.

“……하아, 됐다 됐어. 일단 장소부터 옮기자. 여긴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으니까…….”

“오늘은 시내 쪽에 대형마트로 갈 거지? 자전거 가지고 왔으니까 뒤에 타. 걸어가면 1시간도 넘게 걸리잖아.”

“……내가 오늘 마트에 갈 건 어떻게 알았어?”

“화요일에 네가 그랬잖아.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슬럼 바깥에 있는 마트로 장보러 간다고.”

“내가 그런 것까지 말했었나?”

“말했어, 말했어. 얼른 가자. 너 7시에 봐야 할 드라마도 있다며.”

“…….”

류태현은 권은하의 사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그가 독심술 따위를 쓸 리는 없었으니 이는 즉 전부 권은하가 말해주었단 소리였다.

권은하는 겉으로 보기엔 류태현의 방문이 달갑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정작 류태현이 찾아오면 내색하진 않으면서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유는 류태현과 같았다.

호기심.

류태현이 권은하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면, 권은하 또한 류태현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류태현이 슬럼에 환상을 가지고 있듯 권은하도 바깥세상을 은연중에 선망하고 있었기에.

­촤르륵.

우중충한 슬럼가의 길을 두 사람을 태운 자전거가 가로지른다.

슬럼이라고 해서 사람이 못 사는 인외마경인 건 아니다. 이곳에도 삶이 있으며 사람이 있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두 사람의 모습은 상당히 눈에 띄었다.

한 자전거에 둘이서 탄 채 소년의 허리에 팔을 두른 소녀라니. 요즘 시대엔 청춘 로맨스물에조차 나오지 않을 광경이었으니까.

“살 건 다 샀어? 뭐 잊어먹은 건 없지?”

“응. 확실히 자전거가 빠르긴 빠르네. 평소 같으면 이제야 마트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쇼핑이 끝나고 대형마트를 나서던 권은하가 시계를 확인했다. 아무리 초인이라도 걷는 속도는 일반인과 다름이 없는지라, 류태현 덕에 그녀는 오늘 1시간 정도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너만 괜찮으면 앞으로 토요일마다 데리러 올게. 대신 그만큼 남는 시간에 나랑 좀 어울려주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나랑 못 다녀서 안달인데?”

“모처럼 사귄 슬럼가 친구인걸. 최대한 친해지고 싶어서.”

“난 아직 너랑 친구 아닌데.”

“우리 또래에 통성명하고 마주칠 때 인사하면 그게 친구지 뭘. 어쨌든 앞으로 주말마다 내 덕에 아낀 시간은 나랑 노는 데에 써. 너 평소엔 매일 바쁘다면서 얼굴 보기도 힘드니까.”

“……마음대로 하든가.”

“좋았어. 그럼 오늘은 어디 갈까? 모처럼 시내로 나왔잖아. 이 동네가 서울만큼은 아니어도 은근 있을 건 다 있거든.”

저녁 시간대의 번화가를 거니는 두 소년소녀.

그렇게만 놓고 보면 영락없이 데이트 중인 풋풋한 학생 커플로 보였다. 실제로 거리에는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다만 그들 중 누구도 두 사람처럼 양손 가득 대형마트 봉투를 들고 있진 않았다.

“돌아갈 시간 감안하면 시간 여유가 대충 1시간 정도니까……. 노래방은 어때?”

“나 노래 아는 거 없어.”

“그래? 그럼 PC방?”

“게임 안 해.”

“당구장은?”

“당구 못 쳐.”

“볼링은 칠 줄 알아?”

“아니, 전혀.”

“그럼 근처 카페라도 갈까?”

“커피 싫어해.”

건네는 권유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절하는 권은하의 모습에 류태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류태현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런 부분이 권은하의 피곤한 점이었다. 본인도 류태현에게 호기심이 있어 만남 자체를 거부하진 않지만, 정작 만남에 대한 태도는 비협조적이기 그지없다. 그녀가 아직 류태현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한 탓이었다.

“카페라고 꼭 커피만 파는 건 아니잖아. 요즘 보니까 주스에 스무디에 잔뜩 있던데. 최근에도 그 뭐더라? 딸기 요거트 스무디? 친구가 먹는 거 한 입 뺏어 먹어봤더니 엄청 맛있던데.”

“……흐응. 그래?”

“커피야 싫다 쳐도 너도 여자애니까 달달한 건 좋아할 거 아니야. 안 그래?”

“…….”

그 질문에 권은하가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류태현을 무시하거나 하는 일은 왕왕 있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류태현은 살짝 고개를 돌린 그녀의 뺨이 약간 붉어진 걸 알아차렸다. 노을빛 때문은 아니었다.

“너도 궁금하지? 그럼 그거 먹으러 가자. 마침 나도 달달한 게 땡겼거든.”

“카페 같이 사람 많은 곳은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럼 테이크아웃하면 되지.”

“……그러든가.”

“오케! 그럼 저 앞에 프랜차이즈 들렀다 슬럼으로 넘어가자. 어디 빈 건물 옥상이라도 가서 노을 보면서 마시면 되겠네. 크으! 생각만 해도 미쳤다. 이게 바로 풍류지 아주 그냥.”

두 사람은 그 길로 곧장 카페에 들러 각자 음료수를 사들곤 슬럼 초입에 있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두 사람 다 짐이 잔뜩 있었지만 둘 다 초인인지라 힘들어하진 않았다.

“크, 풍경 죽이네.”

옥상에서 보이는 전경은 온 사방이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무슨 20층짜리 고층 건물에 올라온 것도 아니니 전경 자체야 그저 그랬지만, 산등성이 너머로 저물어가는 노을만으로도 그 값어치를 했다.

“은하 네가 딸기맛이던가? 어때? 맛 괜찮아?”

“……맛있네. 달콤하고.”

“그치? 내가 뭐랬어 맛있다니까. 내꺼 바나나맛인데 이것도 함 먹어봐. 아직 빨대 안 썼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잠시 망설이던 권은하가 이내 류태현이 들고 있던 컵의 빨대를 앙 물었다. 걸쭉하고 새하얀 스무디가 그녀의 입으로 넘어가며, 빨대를 빠는 소리가 작게 주위로 새어나갔다.

“둘 다 먹어보니까 어때? 뭐가 더 취향이야?”

“둘 다 맛있네.”

“그치? 나도 뭐 하나 고르기가 어렵더라. 그래서 가끔 사먹을 때마다 되게 고민해.”

“……그래? 난 아예 처음 먹어보는데.”

그 말에 류태현의 표정이 순간 흠칫 굳었다.

카페에서 파는 음료수를 처음 먹어본다니. 자기도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따금 마시는데. 도대체 얼마나 가난한 생활을 하면 그조차 못하는 걸까.

“간부 후보생 생활이 그렇게 쪼들려…?”

“돈이 없는 건 아니야. 필요성을 못 느낀 거지. 슬럼 바깥 카페에 가서 음료수를 주문하는 것도. 이렇게 건물 옥상에 올라와 한가롭게 경치 구경하는 것도 다 ‘시간낭비’니까.”

그 말을 시작으로 권은하는 용문의 간부 후보생이 어떠한 처지인지 담담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녀를 포함해 숙소에 있는 미성년자 간부 후보들은 전원 슬럼 태생의 고아였다. 즉 ‘신원’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바깥세상에서 보면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요, 그렇기에 범죄조직 입장에선 귀중한 인재였다.

“간부 후보생은 그런 고아들 중에서도 엄선되고 엄선된 인재들이야. 기본적으로 다들 초인에, 최소 B급 초인 이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져야 겨우 후보생이 될 수 있어. 만약 그만한 자질을 보이지 못하면…….”

“못하면? 어떻게 되는데?”

“조직에 여유가 얼마나 있냐에 따라 달라지지. 여유가 있으면 말단 조직원으로라도 키우는 거고. 여유가 없으면 다시 버려지는 경우도 많아. 특히 초인이라도 E급이던 애들은 일반인이랑 거의 차이도 없으니까.”

그 애들이 어떻게 되었냐고.

류태현은 굳이 이를 묻지 않았다. 한편 그는 권은하의 이야기 덕에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권은하라는 소녀는, 그러한 거름망을 몇 번이나 빠져나온 끝에 살아남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사는 슬럼이라는 공간이, 범죄조직의 간부 후보생이라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확 체감이 되었다. 그동안엔 그저 흥미나 호기심, 혹은 선망의 눈길로만 바라보았던 그녀의 삶을, 류태현은 이제야 제대로 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너도 참 힘든 일이 많았겠네.”

“힘들었지. 그렇지만 이젠 나름 살만해. 후보생 걸러내기도 거의 끝났고. 이대로만 가면 설령 간부가 못 되더라도 조직에서 괜찮은 자리 하나쯤은 꿰찰 수 있을 테니까.”

범죄조직에 있어서 초인은 귀중한 자원이다. 초인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무기였으니까. 일정 이상의 실력만 받쳐준다면 조직 입장에서 초인인 권은하를 내칠 이유는 없었다.

“쯧. 이런 이야기 하는 게 아니었는데. 괜히 기분만 꿀꿀해졌잖아. 왜 이런 걸 물어봐선…….”

“아니, 내가 물어본 게 아니라 네가 먼저 시작한 건데…….”

“그래? 하도 너한테 질문을 많이 받다보니 착각했네. 뭐, 아무튼. 내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제 네 이야기나 들어보자. 생각해보면 늘 나만 말하고 정작 넌 너에 대해서 뭘 말해준 적이 없는 것 같아.”

“내가 할 이야기가 뭐가 있다고.”

“할 이야기가 왜 없어. 넌 외지인이잖아. 나 같은 주민번호도 없는 고아랑 달리, 제대로 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어. 그게 다 이야깃거리가 아니면 뭔데?”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밥은 뭘 먹었는지. 친구들과는 어떻게 놀았는지. 부모님과의 사이는 어떤지. 그 외에도 온갖 것들.

류태현이 겪는 모든 삶은 권은하의 입장에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류태현이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권은하에게 호기심을 품었듯, 권은하 또한 류태현의 삶이 궁금했다.

그리고 류태현이 권은하의 자유로운 삶을 선망했듯, 권은하도 류태현의 안정된 삶이 부러웠다.

“……내가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그런 걸 들어봐야 뭐해. 따분하기만 할 텐데.”

“그 따분함이 소중한 거야 이 철없는 녀석아.”

“하긴, 네가 보기엔 그렇겠지. 내가 배부른 소리를 했네.”

류태현이라고 삶의 고충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만 해도, 권은하가 말한 ‘제대로 된 사회’에서 받은 상처 때문이었으니까.

허나 권은하의 사정을 듣고 나니 자신의 사정을 밝히기가 꺼려졌다. 적어도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그녀보다야 자신의 처지가 낫지 않은가. 이 자리에서 ‘나도 사실 힘든 일이 있다.’하고 말한들, 권은하가 보기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리라.

그렇기에 류태현은 입을 다물었다.

다문 채로, 이가 시리도록 차갑고도 달콤한 음료수만 쭉쭉 빨았다.

“뭐야. 왜 갑자기 입을 다물어? 네 이야기 좀 해보라니까?”

“지금 생각 중이야. 무슨 이야기 할지.”

“그냥 아무 이야기나 해. 우리가 언제 이야기 주제 가렸나. 난 네가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 궁금할 뿐이야. 그니까 편하게 말해. 뭘 들어도 난 재미있을 테니까.”

“그렇다면야…….”

잠시 고민하던 류태현이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누나가 컴퓨터에 몰래 숨겨둔 야동 폴더를 발견했는데…….”

“미친 뭐야. 엄청 흥미로운데? 그래서? 누나가 숨겨둔 야동을 찾아서 어떻게 했는데?”

“나도 예전에 누나한테 그런 걸 들킨 적이 있어서 복수하려고 했지. 일단 파일명을 싹 다 지운 다음에 순서대로 이름을 바꿔서…….”

그로부터 약 40분 동안. 두 소년소녀는 노을빛으로 물든 옥상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소년이 하는 이야기도. 그리고 소녀가 하는 이야기도.

둘 다 아무래도 좋을 평범한 삶의 이야기였다.

***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이 계속되던 어느 날.

류태현은 여느 때와 같이 권은하가 사는 숙소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기다란 우산을 든 채로. 오늘 저녁부터 비가 온다기에 미리 챙겨둔 것이었다.

‘비 내리면 건물 옥상은 못 가겠네. 뭐 사방이 빈 건물이니까 대충 아무 건물 계단에라도 가면 되겠지만…….’

우중충한 하늘을 불안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걷자, 어느덧 그는 숙소 앞에 도착했다. 남은 건 늘 그렇듯 5시 반쯤 은하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때우는 것뿐이었다.

……그럴 터여야 했다.

­……깐만요! ……슨 말이에요? …………놓고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류태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서 나는 거지? 숙소 건물인가?’

목소리의 근원은 숙소 건물이었다. 조금 울리면서 작게 흩어지는 목소리로 보아 누군가 층계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걸리는 점은 그 목소리라는 게 상당히 다급하게 느껴졌다는 점.

그리고 그 목소리가 어째, 권은하의 목소리와 많이 닮았다는 점이었다.

­반항하는 게 아니라요…! 납득이 되는 설명을 해달라고요!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는데, 왜 오늘 와서 갑자기 이런 식으로….

계단을 점점 내려오고 있는 것일까, 목소리는 점점 뚜렷해졌다. 류태현은 그 목소리가 권은하의 것임을 확신했다.

동시에 엄습하는 불길한 예감.

어느새 류태현의 몸은 건물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두 주먹을 꽉 쥔 채.

그리고 다음 순간.

­아아아악!!

“!!”

계단을 타고 분명하게 들린 비명소리에 류태현이 지면을 박찼다. 다급하게 계단을 올라간 그의 눈에 이내 권은하의 모습이 잡힌다.

“은하야!!”

외침과 동시에 그가 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입술에서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권은하. 그리고 그런 권은하의 팔을 우악스럽게 틀어쥐고 있는 덩치 큰 남성.

­빠직.

그 광경을 본 순간 류태현의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뚝 끊어졌고.

“누구­”

“그 손 놔. 당장.”

­콰앙!!

다음 순간, 류태현의 주먹에 남성의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