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222. 주인공 VS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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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태현’의 상태창 ]
이름 : 류태현
성별 : 남성
신장/체중/나이 : 186.1cm/84.5kg/20세
직업 : 아카데미 재학생
소속 : 그린하우스 헌터과 1학년 1분반
보유 초능력 : 신체 강화(B)
[ 능력치 ]
근력 A
민첩 B
내구 A+
마력 B
기교 A
의지 A
행운 B
[ 보유 스킬 ]
1. 근접 격투(커먼. A)
2. 전투광(레어. C)
3. 무예백반(유니크. B)
4. 심안(유니크.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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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지금부터 이번 스파링의 규칙을 설명하겠다.”
마르코의 선언에 안수호가 손가락을 튕겨 눈앞에 띄웠던 상태창을 지웠다. 허나 한 번 뇌리에 깊게 박힌 그 내용은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확실히 주인공은 주인공이네. 민첩이랑 행운 빼곤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이겠는데.’
그나마 1학년 시점이라 이정도지 나중에는 능력치 태반이 S를 넘어 OVER라고 적힐 예정이었다. 안수호는 류태현의 상태창을 보며 새삼 그의 강함을 실감했다.
“승부는 10분 1라운드. 룰은 무기나 아티펙트의 사용 및 급소 타격 외에는 전부 허용. 승패 판정은 범용 랭킹전 룰에 따라 한쪽이 전투불능에 빠졌거나 항복 의사를 밝힐 시 반대편의 승리로 한다. 단, 장외 판정은 링의 크기가 작으니 제외하겠다. 둘 다 이의 없나?”
“이의 없습니다.”
“어차피 연습용 스파링인데 그렇게까지 빡빡하게 할 필요가…….”
“Practice makes perfect.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도 실전처럼. 그런 말 모르나?”
“끄응…….”
갑작스레 성사된 류태현과의 대결.
안수호는 그 부담스런 대결을 앞두고 어딘가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투광적 면모를 지닌 마르코나 류태현과 달리, 안수호는 치고받고 싸우는 데에서 딱히 희열을 느끼지 않았으니까.
‘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마르코 팀장 말마따나, 나도 내심 궁금하긴 했잖아. 지금의 내가 류태현을 상대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류태현과 자신 중 누가 더 강한가, 따위의 건방진 의문은 품지 않는다. 온갖 아티펙트와 스킬을 버무려 아득바득 싸워온 안수호는 자신의 본 실력이 그보다 훨씬 못 미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자신은 지난 5개월 동안 온갖 고난을 넘어왔으며. 비록 류태현에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본신의 무력 또한 강해진 것은 사실.
‘이기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3분 동안 다운되지 않고 버티는 정도라도 할 수 있다면…….’
승리 따윈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싶다. 호승심을 불태우는 류태현과 달리, 안수호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자, 그럼 슬슬 시작해보자고. 3. 2. 1……Fight!”
마르코의 호령과 함께 시작된 스파링.
정식 시합이 아니라 공소리도 없었고, 관중 또한 없는 탓에 링 주위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두 사람의 분위기 또한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마치 편안한 술자리에서 서로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럼 형. 먼저 들어갈게.”
그 느긋한 한 마디와 함께 류태현이 앞발을 내딛은 순간, 링 위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스팡!!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 푸른색 오픈 핑거 글러브에 감싸인 주먹이 안수호의 관자놀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스팡! 팡! 파앙! 팡! 스파앙!
계속해서 뻗어지는 푸른 직선. 류태현의 동작은 기계처럼 간결했다. 안수호와는 대비되는, 정식으로 격투기를 배운 엘리트의 싸움이란 이런 것이라고 몸소 보여주는 듯한 모범적인 궤적.
스파앙!!
그러나 그 궤적은 죄다 애먼 허공만 가르고 있을 뿐이었다. 스파링이 시작된 지 10초, 벌써 족히 이십은 넘을 공격을 피한 안수호가 팔을 휘둘렀다.
류태현에 비하면 다소 느리고, 군더더기 많은 동작이었지만, 그를 물러서게 만드는 데엔 충분한 일격.
“후우!”
숨 막히던 접전이 끝나자 안수호는 크게 숨을 뱉었다.
고작 10초의 공방만으로도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스파링 시작 전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던 압박감, 중압감이 그의 전신을 바위처럼 짓누른다.
그제야 안수호는 실감했다.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학년 1위.
이것이 이 세상의 주인공, 류태현의 진면목이라고.
그와 알고 지낸 것만 해도 벌써 4개월. 그러나 그간 공동의 적을 두고 공투는 해보았을지언정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
안수호는 지금껏 류태현과 싸워왔던 이들이 느꼈을 중압감을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없고, 자세에는 빈틈이란 게 없었으며, 비처럼 쏟아지는 연격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이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렇지만 전부 피했다.’
스스로도 어떻게 다 피해낼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와 달리 자신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투성이였으니까.
다만 예상하기를, 그간 수많은 실전을 겪으며 갈고닦아온 ‘감’ 덕분에 기적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걸 다 피하네. 적어도 가드 위로라도 몇 대는 맞힐 줄 알았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류태현의 얼굴엔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마치 ‘형이라면 그 정도는 해줘야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그럼 안심하고 기어 좀 높여볼게!”
“뭐?”
퍼억!!
안수호가 멈칫한 찰나 좀 전보다 더욱 빨라지고, 그리고 더욱 무거워진 일격이 그의 가드를 강타했다. 뼛속까지 지이잉 울리는 위력에 그가 놀란 것도 잠시, 사방에서 뱀처럼 휘어든 주먹이 그를 물어뜯으러 달려들었다.
“크윽?!”
기어를 올린다. 그 말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신체 강화’라는 초능력을 지닌 그는 능력의 출력에 따라 신체능력 자체가 달라졌으니까.
좀 전보다 더욱 매서워진 맹공에 안수호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미처 피해내지 못한 공격은 그의 가드를 두드렸고, 이따금 그 가드마저 찢어발긴 일격이 그의 몸을 깎아나갔다.
그야말로 폭풍 그 자체.
안수호는 맨몸으로 폭풍 속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폭풍 속에서 휘몰아치는 게 날카로운 바람이 아니라 바람처럼 빠른 주먹들이라는 점.
‘공격이 아예 눈에 안 보이는 수준은 아니야! 눈으로는 제대로 쫓아갈 수 있어! 하지만 몸이 그 속도에 반응하질 못해!’
안수호는 그간 자신이 상대했던 강적들을 떠올렸다. 빌헬름과 성유진. 그 둘이 눈앞의 류태현의 모습과 겹쳐진다.
지금의 류태현이 그 수준이란 건 아니다. 류태현의 공격은 성유진에 비하면 가벼웠고, 빌헬름에 비하면 느렸다.
그렇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는 막막함만은 안수호로 하여금 그 두 존재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퍼억!!
“크흑?!”
집중을 잃은 안수호의 명치에 그의 주먹이 꽂혀들었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신물을 억지로 삼키며 심신을 가다듬는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오직 눈앞의 공격에 집중해라.
그렇게 생각하는 그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스파링 시작 전에는 보이지 않던 호승심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허나 호승심만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기에.
퍼억!!
또 한 번의 일격이 그의 옆구리를 후려치고, 다음 순간 류태현의 입에서 얕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설마 이게 전부야?’
류태현은 안수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초조함이었다.
기실 안수호는 류태현을 상대로 상당히 선방하고 있었다. 진심을 내기 시작한 그를 상대로 비등하진 못할망정, 어떻게든 가까스로 그 공방을 따라가고는 있었으니.
허나 류태현의 기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가 바란 것은, 그가 기대한 안수호와의 대결은 고작해야 이정도가 아니었으니까.
‘대답해봐 형. 정말 이게 전부냐고!’
안수호.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그런 초인이었다. 약한 건 아니지만 강하지도 않은, 그냥 많고 많은 경비대 초인들 중 한 명.
그러나 다음에 만났을 때 그는 전보다 더욱 강해져 있었다.
이중 던전 사태. 오버랭크 던전 보스인 빌헬름을 상대로 홀로 싸워 버텨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알고 있던 안수호는 그정도로 강하지 않았으니까.
허나 불신은 곧 호기심이 되었고 호기심은 곧 흥미가, 그리고 마침내 두근거림이 되었다.
고작해야 한 달,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던 걸까.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다면, 앞으로도 더욱 강해지지 않을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스런 기대. 그 기대가 보답 받았음을 확인한 건 네버랜드에서였다.
흉악하리만치 강한 범죄자들을 상대로 함께 싸웠던 그날. 안수호가 보여준 무위는 자신과 엇비슷하거나 혹은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적어도 호적수라 부르기에 부족함 없을 수준. 언젠가 싸우게 된다면 분명 희열을 느낄 수 있을만한 상대이리라고.
그렇게 생각했건만 지금 이 초라한 모습은 무엇인가.
처음 봤을 때에 비하면 강해지긴 했지만, 아티펙트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정도가 한계인가.
이럴 바에야 차라리 아티펙트를 허용하고 다시 붙는 편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스스로의 기준을 충족치 못한 안수호를 보며 류태현은 실망 섞인 한숨을 살짝 뱉었다.
허나 그 순간.
스팡!!
폭풍처럼 몰아치던 주먹들 사이에서 피어난 이질적인 파공성.
퍽.
“……어?”
다음 순간 류태현은 시야가 덜컥, 하고 흔들림을 느꼈다. 직후 아릿한 아픔이 턱에 찾아옴과 동시에 그의 무릎이 덜컥 풀렸다.
‘맞았어? 턱에? 뇌가 흔들려. 이러다가 쓰러지겠’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류태현이 비틀,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 두 걸음 사이에 그는 완벽하게 태세를 정비했지만, 이는 즉 두 걸음만큼의 ‘틈’이 발생했다는 뜻.
타앙!!
그 틈을 노리고 안수호가 파고들었다. 뻗어지는 주먹. 류태현과는 달리 어딘가 어설프고, 군더더기가 남아있는 일격.
스팡!!
허나 그 속도는 전보다 훨씬 빨라져 있었다. 가까스로 피해낸 주먹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좀 전보다 명백히 빨라졌어. 어떻게? 설마 몰래 아티펙트를……. 하지만 아티펙트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잖아. 형이 그런 반칙을 저지를 리가 없는데’
류태현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안수호가 휘두른 주먹, 그 궤적에 미세하게 남아있는 검은 연기를 본 순간 하나의 가능성이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설마?’
투슈우우욱!!
그리고 다음 순간 류태현은 똑똑히 보았다. 일직선으로 뻗어지는 안수호의 오른팔. 그 팔꿈치 부분에서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시커먼 연기를.
‘연기를 로켓 엔진처럼 뿜어내서 속도를 더한 건가? 형이 저런 식으로 능력을 쓰는 건 처음 보는데. 최근에 만든 기술인가?’
류태현은 안수호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의 초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제껏 몇 번이고 그와 등을 맞대고 함께 싸워왔었으니까.
그가 기억하기로 안수호의 초능력은 두 손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것. 그 심플한 능력을 이제껏 안수호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응용해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활용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애초에
‘지금까지 수호 형이 손바닥 외에서 연기를 뿜은 적이 있던가? 기껏해야 손가락 정도였을 텐데.’
그 순간 류태현의 뇌리에 한겨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본래 양손에서밖에 불꽃을 쏠 수 없었으나, 고단한 노력 끝에 두 발로도 불꽃을 뿜어낼 수 있게 성장한 그의 라이벌.
“……하.”
다음 순간 류태현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한겨울도 그렇고 안수호도 그렇고. 자신은 벽을 만나 제자리걸음 중인데 보란 듯이 성장해서 자신을 넘어서려 한다고.
‘그래봤자 결국 잔재주지!’
예상치 못한 신기술 덕에 주먹의 속도만은 안수호가 근소하게 우위. 그러나 아직 나머지 모든 영역에선 자신이 우위라며, 류태현이 입술을 잘근 깨물며 주먹을 질러댔다.
스팡! 팡! 파방! 파바바바바방!!
주먹과 주먹이 교차하며 어지러운 소음을 뿜어댔다. 스파링 시작 당시보다 훨씬 빨라진 공방.
허나 달라진 것은 공방의 속도만이 아니었다. 여유롭던 류태현은 여유를 잃었고 미적지근하던 안수호는 어느새 필사적인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기에.
“호오.”
그 뜨거운 대결을 마르코는 한 발자국 떨어진 자리에서 흥미롭게 직관하고 있었다. 특히 그의 시선은 류태현보다도 안수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신입 꼬맹이가 쓰고 있는 저 기술. 당장 직전에 나랑 싸울 때만 해도 쓰지 않았던 기술이다. 그렇다는 건 즉 둘 중 하나지. 그동안 실전성이 없어서 봉인해뒀거나, 아니면 이번 스파링 중에 즉석에서 만들어냈거나.’
어느 쪽이든 안수호가 류태현을 이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궁여지책을 짜냈다는 뜻.
자신과 스파링할 때와 달리 사뭇 진지하고, 더욱 필사적인 그 모습에 마르코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저 1학년 1등 꼬맹이가 신입 놈한테 꽤 자극을 줬나본데.’
그 말대로 류태현과의 스파링은 안수호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다. 비단 상대가 류태현이란 것뿐 아니라, 아티펙트를 전부 봉인하고 싸운다는 상황 그 자체가.
지금껏 안수호는 강적을 상대할 때 늘 편리한 아티펙트나 스킬의 은혜를 입은 채로 싸웠다. 하나같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들이긴 했지만, 편법의 존재는 그의 사고를 경직시키고 그가 그 본연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에 장애물로 작용했다.
그러나 지금.
탈리스만, 샛별의 숨소리, 서리정령의 증표, 태초의 은, 그리고 연심의 벚꽃에 이르기까지.
그간 자신이 이용해왔던 모든 편법을 버린 채, 류태현이라는 강적을 상대로 몰리고 또 몰린 결과.
안수호는 그제야 스스로가 가진 본연의 힘을 돌아보고,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퍼억!!
“커, 흐…!”
묵직한 일격이 안수호의 옆구리에 꽂혔다. 글러브를 끼고 있음에도 뼈가 부러진 것 같은 욱신거림이 엄습해온다.
이번 스파링. 이미 두 사람 다 반쯤 실전이다시피 임하고 있었다. 피부로도 느껴지는 살얼음같은 긴장감이 극한으로 정신을 몰아붙이고, 뇌에서 분비된 아드레날린이 안수호의 사고를 어느 때보다도 날카롭고 예리하게 만들었다.
‘속도는 따라잡았다. 주먹 속도만 보면 내 쪽이 빨라. 그렇지만 그 외엔 다 밀린다. 특히 내구도. 태현이랑 달리 난 한 대만 맞아도 치명적이야. 그 간극, 그 간극을 좁히려면’
투화아악!!
그의 양손을 중심으로 뿜어져나온 연기가 얇게 압축되어 전신을 감쌌다. 마치 태초의 은을 사용한 ‘풀 아머’처럼.
투확!!
그러나 그 성질은 금속질인 태초의 은과 상이했다. 류태현의 주먹이 안수호의 몸에 꽂힌 순간, 그 근처의 연기가 폭발하며 그의 주먹을 밀어냈다.
마치 전차에 장착된 반응장갑처럼.
폭발을 통해 주먹을 온전히 막아낼 순 없었지만 충돌 직전 그 기세를 죽이는 건 가능했다. 주먹에 느껴지는 불쾌한 저항감에 류태현의 미간에 빠직, 하고 주름이 잡힌다.
‘팔꿈치 분사랑 전신 방어. 둘 다 즉석에서 짜낸 궁여지책.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기술을 동시에 쓰는 건 어렵다. 고로 번갈아가면서! 필요한 순간순간에 스위치를 바꾸듯 공격과 방어를 전환하는 거야! 한정된 집중력을 적재적소에 집중해서’
극한까지 몰린 정신이 이제껏 전례가 없을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빌헬름전도, 성유진전도 아닌 고작해야 연습에 불과한 10분짜리 스파링에서.
‘어디까지 통용되나 확인해본다, 같은 미적지근한 생각은 집어치워! 이긴다! 이길 수 있어! 그러니까 이긴다!’
그 극한의 집중은 안수호에게 스스로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을 선사했다. 애초에 그는 이처럼 전투에 열심인 성격이 아니었는데도, 그 순간의 열정만큼은 ‘전투광’이라는 스킬을 달고 있는 류태현에게마저 뒤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지금까지의 안수호와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스팡! 파방! 파바방! 파바바바바방!! 파방!
그러는 사이에도 주먹은 교차한다. 어지럽게 얽히는 공방은 착실하게 서로의 체력을 깎아나갔다.
다만 거기까지. 두 사람 다 아슬아슬하게 승리에는 닿지 못한다. 그 위태로운 길항 속에서 안수호는 어느 때보다도 필사적인 의지를 불태웠고.
‘어째서, 왜 점점 빨라지는데? 왜 점점 단단해지는데?’
류태현은 어느 때보다도 더한 초조함을 느꼈다.
눈에 뻔히 보이던 주먹은 어느새 피하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빨라졌고.
한 대만 맞아도 밀려나기 일쑤였던 연약한 몸은, 마찬가지로 어느새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기 시작한다.
‘무슨 만화도 아니고. 싸우는 도중에 강해진다니 그게 말이나 돼?’
현실은 낭만적인 소년만화가 아니다. 주인공에게 편리한 온갖 편법이 난무하는 웹소설은 더더욱 아니다. 강해지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하며, 그렇기에 초인의 성장은 점진적이다.
그건 축복받은 재능을 지닌 자신조차 예외가 아니었건만.
도대체 눈앞의 이 남자는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이에 생각하기를, 그러고 보니 애초에 C급 언저리였던 그가 요 서너 달 사이에 자신과 엇비슷하게 강해진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고.
‘……형도 참. 도대체 내 몰래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길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류태현의 얼굴에 만연했던 초조함 사이로 초탈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는 건 옛저녁에 깨달은 줄 알았건만, 아무래도 은연중에 자기과신이 남아있던 것 같다며.
스팡!!
그런 초탈한 생각이 그의 긴장을 살짝 늦추었고, 그 틈을 노린 주먹이 그의 턱으로 빨려들어갔다.
막기는 늦었다.
피할 수도 없다.
목을 당겨서 충격을 죽여볼까. 그럼 최소한 다운을 당하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그로 인해 생긴 틈을, 지금의 안수호는 분명히 공략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댐의 자그마한 구멍이 이윽고 그것의 붕괴로 이어지듯, 틈이 틈을 낳고 또 틈을 낳는 것을 반복한 끝에 치명적인 빈틈이 생겨난다면.
어쩌면, 정말 낮은 확률이지만 그 빈틈으로 인해 이번 스파링에서 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또 지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불현듯 그의 뇌리에 한겨울에게 패배했던 날의 기억이 떠오르고.
키잉.
다음 순간, 글러브에 싸인 그의 탈리스만이 아주 짧은 찰나 빛을 발했다.
스팡!!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검은 궤적을 남기며 뻗어진 주먹은 노린 목표에 명중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틈새를 비집고, 류태현의 카운터가 흉포하게 날아든다.
명백하게 빠른 속도.
명백하게 무거운 무게감으로.
콰앙!!
새된 충격음과 함께 안수호의 몸이 옆으로 꺾였다. 대포알처럼 날아간 그의 몸이 특수 소재로 된 로프에 걸려 투웅, 하고 튕겨져 나온다.
“크윽…!”
지금까지완 비교할 수조차 없는 아픔. 그 아픔에 그의 몸이 굳은 순간, 지체하지 않고 류태현이 스텝을 밟았다.
이윽고 그의 주먹이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안수호를 끝장내기 위해 뻗어졌고.
터억!
“그만.”
그 팔이 다 뻗어지기 직전, 마르코의 두꺼운 손이 류태현의 일격을 멈춰세웠다.
“10분 지났다. 스파링은 여기까지. 두 사람 다 수고했다.”
“후아!”
그 말에 안수호가 목 끝까지 차올랐던 숨을 토해냈다. 로프를 붙잡은 채 바닥에 주저앉은 그가 류태현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와,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괜히 학년 1위가 아니구나 진짜. 어줍잖게 비벼보려다가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네.”
키득키득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안수호는 어느덧 평소의 그로 돌아와 있었다. 필사적으로 불타던 호승심도,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던 살벌한 눈빛도 더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암튼 태현이 너도 고생했다. 덕분에 한 수 배워간다 내가.”
“어? 어어, 그래. 형도 고생했어. 형도 잘, 잘 싸우더라…….”
반면 류태현은 스파링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좀 전의 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나, 분명 마지막에 탈리스만을…….’
이윽고 차분해진 머리로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자, 그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왜 자신은 마지막에 그런 반칙을.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던 류태현의 뇌리에 떠오른 건, 1학기의 마지막에 겪었던 쓰라린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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