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22화 (223/266)

〈 222화 〉 221. 집체 훈련(2)

* * *

본래라면 사람 하나 없이 고요해야 할 제13훈련장 지하 스파링장.

­퍼억! 퍽! 퍼억! 퍼어엉!!!

그곳에선 현재 때 아닌 타격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 댓바람부터 격렬한 스파링을 나누는 두 사람을 혹 누군가 봤다면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와.

저 남자 진짜 불쌍하다.

라고.

“하단!!”

­퍼억!!

“크흡?!”

“상단!!”

­퍼억!!

“큿…!”

“이 새끼 이거 순 템빨이었네! 성유진도 이겼다는 놈이 고작 나한테 빌빌대면 쓰나!”

마르코의 이죽거림에 안수호는 어금니를 깨질듯이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 억울함이 복받쳐오른다.

“다시 상단!!”

그 외침과 함께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지는 러시안 훅. 안수호가 반사적으로 가드하려 팔을 들었다.

그러나.

­휘리릭! 퍼억!!

다음 순간 그의 몸에 작렬한 건 왼발 로우킥이었다. 앞선 예고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날아든 공격. 벌써 몇 번이고 계속된 그 속임수 같은 공격에 안수호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난 지금 네 적이다! 적의 말을 믿지 마! 머리를 비우고 눈으로 보고 피하는 거다!”

“알고 있다고요 망할!!”

안수호라고 해서 순진하게 마르코의 공격 예고를 곧이곧대로 믿은 건 아니다. 실제로 그는 마르코의 말처럼, 조금 전부터 줄곧 귀를 닫은 채 그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번번이 유효타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이번엔 하단이다!!”

마르코의 몸이 크게 숙여지며,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어퍼컷이 솟구쳤다. 그 노도와 같은 기세에 안수호는 ‘이번에야말로’라 생각하며 물러서 회피한다.

그러나.

­우뚝.

분명 전력을 다해 휘둘러지던 어퍼컷이 일순 정지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마르코의 몸이 휘리릭 돌더니, 좌상단에서 내려찍히는 브라질리언 킥이 안수호의 어깨를 강타했다.

“크읍?!”

가까스로 팔을 올려 방어하지만 충격은 고스란히 근육을 뚫고 뼈까지 전해졌다. 그 고통에 안수호가 진절머리 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또다. 또 이런 공격이야. 물리법칙을 씹어먹은 듯한 자유로운 궤도 변경. 이쯤 되니 경이로울 지경이군.’

조금 전 마르코의 어퍼는 분명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다. 체중만 해도 140kg에 육박하는 그가 내지른 공격이니 당연히 막강한 위력이 실려있을 터.

그 말은 즉 공격을 중간에 멈추려고 해도 관성 때문에 여의치 않다는 뜻이었다. 헌데 마르코는 아무렇지도 않게 공격을 멈추더니, 다음 순간에는 직전의 동작과 전혀 이어지지 않는 브라질리언 킥을 자연스레 내지르고 있지 않은가.

그 일련의 동작은 격투기에서 흔히 쓰이는 페인트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진짜 공격을 먹이기 위해 미끼로 던지는 페인트와 달리, 마르코의 공격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진심이고 전력이었다.

전력을 다한 페인트라니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었다. 사람의 몸이 무슨 게임 캐릭터도 아니고. 이미 휘둘러진 기술을 캔슬하고 곧바로 다음 기술을 꺼내든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코가 그런 게임 캐릭터 같은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건.

‘질량변화. 그 초능력 덕분이겠지.’

특수대책과 9팀 팀장. 마르코 잭슨의 초능력은 ‘질량변화’.

그는 자신의 몸무게를 최소 1kg부터 최대 7,842kg까지 임의로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각 신체부위별 질량 분배 또한 자유자재.

안수호는 마르코가 그 능력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움직임을 가능케 했으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 짐작은 정확했다.

바위처럼 굳세던 주먹이 다음순간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날쌔게 스텝을 밟던 발이 태산처럼 지면을 짓누른다. 그 변칙적인 무게 이동이야말로 마르코가 특수대책과 제일의 근접전 스페셜리스트로 불리게 된 이유였다.

‘관성을 무시한 변칙적인 움직임. 지금까지의 상식으로 공격을 예측했다간 대응할 수 없다.’

마르코는 말했다. 머리를 비우고 눈으로 보고 피하라고.

역설적이게도 그 단순명쾌한 방법이야말로 마르코에게 맞설 수 있는 가장 명확한 해답이었다. 무게 중심이 변하고 관성을 거스르기 시작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그 사이에 숨겨진 실처럼 얇은 빈틈을 찾아내 공략하는 것.

‘보였다!’

두 번의 주먹질과 세 번의 발차기를 피한 끝에 보인 찰나의 빈틈.

­투화악!!

안수호는 그 빈틈을 찌르고 들어감과 동시에 연막으로 마르코의 시야를 가렸다. 안수호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었기에, 갑작스런 시야 차단에 마르코가 아주 잠깐 당황했고.

­퍼억!!

다음 순간 마르코의 턱이 휘리릭 돌아가며 그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격돌 직전에 물러서며 충격을 죽이긴 했으나, 그럼에도 변명할 수 없을 정도의 명백한 유효타.

“……3분 1라운드로 6라운드 만에 겨우 유효타 한 번이라………….”

얼얼하게 아파오는 턱을 매만지던 마르코가 이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불합격입니까?”

“그게 애매하단 말이지. 이걸 합격이라 해야 할지 불합격이라 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마르코가 잠시 할 말을 정리하더니, 이내 그간의 대련에서 느낀 안수호의 장단점을 명료하게 설명했다.

“일단 신체능력에 비해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많다. 아마 전문적으로 격투기를 배우거나 해본 적은 없나 보군. 그렇지?”

“예. 취미로 복싱 3개월 한 거 말고는 뭐…….”

“그럼 그렇지. 딱 보니까 견적 나오네. 지금껏 제대로 된 기술조차 모른 채 준수한 신체능력과 아티펙트빨을 앞세워서 싸워왔겠지. 그렇게 싸워대서야 진짜 강한 적을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로프에 걸린 수건으로 마르코가 제 몸에 홍수같이 흐르던 땀을 닦았다. 그 모습에 안수호는 이제야 좀 쉴 수 있겠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것치고는 그 ‘진짜 강한 적’ 중에서도 제일 강할 성유진을 쓰러뜨렸단 말이지. 다른 초인의 협력이 있었다곤 해도 근접전은 1대1이었다는 모양이고. 그걸 보면 기술의 부재와는 별개로 재능이나 센스는 나쁘지 않아 보여. 아니, 오히려 뛰어나다 할 수 있겠지. 실전을 통해 길러진 감각, 뭐 그런 건가? 아무튼.”

마르코가 여분의 수건을 안수호에게 휙 던졌다. 안수호가 땀을 닦는 사이 마르코가 이어서 말했다.

“보통 너 같은 신입이 들어오면 곧바로 기술부터 가르친다. 센스 있는 놈들은 기술도 금방금방 배워서 자기 걸로 만들거든. 근데 너는…….”

“저한테 혹시 문제라도 있습니까?”

“있지. 제대로 싸우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실전을 너무 겪어서 그런가. 이미 움직임에 버릇이 잔뜩 들어 있어. 이걸 교정하고 기술을 배우려면 고작 일주일 정도론 안 될 거다. 그러니 난 이번 집체에서 너한테 기술은 하나도 가르치지 않을 생각이다.”

“기술이 아니면 그럼 제게 뭘 가르쳐주실 생각이십니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콰앙!

그 말과 함께 마르코가 바닥을 쾅 밟았다. 육중한 발걸음에 링은 물론이고 지하 전체가 진동했다.

“시간이 고작 일주일이라면 기술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것보다 실전 경험을 통해 알아서 체득하게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겠지.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나와 대련만 할 거다. 완전 주먹구구식인 방법이긴 하다만, 네 경우에는…….”

말끝을 흐린 마르코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다행히 꽤 괜찮은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평범한 놈은 주먹구구식 대련으로 10을 던져주면 1이나 건질까 싶지만, 적어도 너는 3이나 4 정도는 습득하겠지. 실제로 그 군더더기 많은 움직임으로 내게 하루 만에 유효타를 냈으니까.”

그것은 마르코 나름대로 안수호를 인정하는 말이었다. 지금껏 수많은 집체 교육을 담당해오며 수많은 신입들과 대련을 했지만, 그에게 유효타를 먹이는 데에 성공한 신입은 손에 꼽았으니까.

더군다나 그것이 집체 첫날이라면 더더욱.

“우선 이번 일주일 안에 날 한 번이라도 다운시키는 걸 목표로 해봐라. 성유진을 쓰러뜨린 초인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물론 아티펙트 일절 없이.”

“팀장님을 상대로 다운이라니. 어려운 과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주시는군요. 다른 신입들 집체 때도 이러십니까?”

“다른 신입들한테는 안 그러지. 하지만 넌 다른 신입들과 달리 강한 놈이잖냐.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다. 알겠냐?”

“그만큼 절 인정해주신다는 거니 감사해야죠. 알겠습니다.”

“그래. 20분 뒤에 다시 대련에 들어가도록 하지. 그때까지 편히 쉬어라.”

그 말에 안수호는 그대로 링 위에 털썩 드러누웠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심호흡하는 안수호를 마르코가 기특하다는 듯 내려다봤다.

­저벅. 저벅.

그때 입구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곧 훤칠한 인상의 미남이 스포츠백을 든 채 스파링장으로 들어섰다.

“엉?”

직후 안수호의 얼굴에 의외라는 감정이 떠오른다.

“류태현?”

“수호 형? 형이 여기 왜 있어?”

스파링장으로 들어선 건 이 세계의 주인공, 류태현이었다. 몸에 쫙 달라붙는 테크웨어 상의에 펑퍼짐한 반바지는 누가 보아도 훈련을 위해 이곳을 찾아온 복장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안수호가 의외라 생각한 것은.

“나는 집체 교육 때문에. 근데 넌 왜 여기까지 왔어? 훈련장은 기숙사 근처에도 많잖아.”

“여기가 사람도 없고 집중해서 운동하기 좋다고 들어서. 근데 아침부터 지하에서 스파링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내려와 봤는데. 설마 그게 형이었을 줄이야…….”

“뭐냐 신입. 아는 학생인가?”

“류태현이라고 1학년 헌터과 학생입니다. 그 왜, 저랑 같이 파견 나가셨던 이중던전 사태 때 실습 중이던 1분반­”

“아아! 그 학년 1위! 그 친구로구만? 어쩐지 이름이 익숙하다 싶더니만.”

“저, 실례지만 직원분께선…….”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9팀 팀장 마르코 잭슨이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이 신입 녀석 집체 교육을 담당하게 됐지.”

집체 교육이란 말에 류태현이 ‘호오’하고 흥미롭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특히 그중에서도 마르코의 몸을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범상치 않은 강함을 지닌 그의 실력을 본능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호오.”

그리고 그건 마르코 또한 마찬가지었다. 학년 1위라는 칭호도 칭호지만, 마르코 또한 본능적으로 류태현이란 초인에게 내재된 강함을 알아챌 수 있었다.

‘몸의 중심이 제대로 잡혀있군. 서있는 모습만 봐도 알겠어. 게다가 상체 근육의 모양도 군더더기 없이 딱 타격만을 위한 형태로 자리잡아 있다.’

그린하우스는 국내 최고 수준의 헌터 아카데미. 그곳의 학년 1위 자리에 오른 학생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초인 업계에 한 획을 그은 실력자들이었다. 이는 류태현 또한 마찬가지일 터.

“이봐, 학생. 류태현이라고 했나? 학년 1위라는 학생의 실력을 좀 보고 싶은데, 혹시 1라운드만 링에서 뛰어보지 않겠나?”

“저야 좋죠. 실력 있기로 정평이 난 특수대책과 팀장님을 상대해볼 수 있다면 분명 좋은 경험이 될­”

“아니아니. 학생 상대는 내가 아니라 여기 이 친구야.”

“네?”

“저 말입니까 팀장님?”

마르코의 지목에 안수호가 반사적으로 놀라 대답했다. 그러자 마르코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문득 궁금해졌거든. 국내 최강의 S급 초인을 쓰러뜨린 우리 신입이랑, 학년 1위에 빛나는 파릇파릇한 1학년. 누가 더 셀지 말이야.”

마르코의 태도는 가볍기 그지없었다. 마치 초등학생이 사자가 세냐 호랑이가 세냐 비교하는 것처럼. 그의 발언은 순전히 흥미본위에 따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좋습니다.”

두 사람 간의 우열에 흥미가 있던 건 마르코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런 제안에도 불구하고 류태현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런 기회를 줄곧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이것도 수호 형 교육의 일환인 거죠? 그렇다면 기꺼이 협력해드려야죠. 마침 오늘은 시간도 많이 남거든요.”

“크핫! 말이 통하는 친구구만 그래. 그래도 조금은 망설일까 싶었는데, 괜히 학년 1위가 아닌가보군.”

“지금 휴식 중이셨죠? 그럼 저도 잠깐 몸 좀 풀고 있을게요.”

“그래. 마음껏 풀고 있으라고.”

무어라 반박할 새도 없이 성사된 대련에 안수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링을 내려가 류태현에게 다가갔다.

“태현아. 괜찮겠어? 괜히 부담 되는데 억지로 하는 거면­”

“아냐 형. 내가 하고 싶어서 수락한 거야. 언젠가 형이랑 한 번 붙어보고 싶었거든. 우리 알고 지낸 지는 오래됐는데 어째 제대로 붙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잖아?”

알고 지낸 기간과 제대로 붙어보는 것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안수호는 류태현의 사고 흐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새삼스레 떠올릴 수는 있었다.

보다 강해지기 위해 늘 노력하며, 다가오는 싸움은 마다하지 않고, 강한 자와의 전투에서 희열을 느끼는 중증의 전투광.

류태현이란 본래 그런 캐릭터였노라고. 그 사실을 떠올린 안수호의 입가에 멋쩍은 웃음이 떠오르고.

“잘 부탁해 형. 서로 봐주는 거 없기다?”

그런 안수호의 웃음에 류태현은 화사한 미소로 대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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