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 220. 집체 훈련(1)
* * *
월요일.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상황실.
그곳에서는 민채령과 안수호,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민채령은 전날 당직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기 직전이었으며, 안수호는 집체 교육에 들어가기 앞서 그녀에게 토요일 슬럼가에서 있었던 일의 보고를 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사실 일요일에 곧바로 보고할 수도 있었지만 안수호는 일부러 하루의 시간차를 두었다. 그 나름대로 민채령에게 어떤 것을 말하고 어떤 것을 말하지 않을지 정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안수호는 민채령에게 토요일에 있었던 일의 대부분을 이야기했다. 박지현의 갑작스런 습격, 협박을 통한 정보 획득, 그리고 입막음을 위한 사살까지.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 슬럼가를 나오기 직전 목격자가 한 명 생겼다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사실대로 말할까 싶었지만 어차피 얼굴도 가렸겠다, 괜히 말해봤자 민채령이 신경 쓸 일이 많아지기만 할 뿐이니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흐음. 여명단 단장 직속으로 있는 암살팀의 소재 정보라. 네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엄청난 정보네.”
안수호의 보고가 끝났을 때, 민채령은 딱히 박지현의 사살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안수호의 약점을 쥐어보려고 박지현을 살려두긴 했었지만, 그건 두 사람의 관계가 이처럼 발전하기 전에 일어난 일.
위태롭긴 해도 보다 관계가 긴밀해진 지금에 와서 굳이 안수호의 비밀을 캐내겠다는 건 긁어 부스럼을 만들 뿐이었다. 오히려 민채령으로선 줄곧 신경 쓰이던 박지현이 그의 손에 죽었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졌다.
“좋아. 일단 내 개인적으로 네가 말한 장소에 감시를 붙여서 ‘아이기스’로 여겨지는 사람이 출입하나 확인해볼게.”
“확인이 되면 어떡하실 겁니까?”
“믿을만한 경찰 쪽 인사에게 정보를 팔아야지. 여명단 핵심 전력인 암살팀의 소재, 게다가 본부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가능성까지 존재한다면 정보로써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니까.”
며칠 전 안수호와 지예원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경찰이나 정부에 있어 여명단 본부의 위치란 정보는 천금과도 같은 정보다. 온갖 범죄와 테러를 저지르며 뒷세계에서 암약하는, 나라를 좀먹는 반정부단체를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게 되는 셈이니까.
물론 경찰이나 정부조직 안에도 여명단의 스파이는 존재한다. 섣불리 소탕 작전을 입안했다간 쉽사리 정보가 새어나갈 터.
고로 작전의 입안과 실행은 믿을 수 있는 소수의 인원만으로 극비리에, 그리고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거기서부터는 민채령이 신경 쓸 영역이 아니었다. 그녀가 관심이 있는 건 어디까지나 정보의 제공을 통한 대가, 이권의 확보였으니까.
“요 근래 계속 귀찮은 일만 떠넘기더니. 오랜만에 꽤 기특한 일을 했네? 고생했어 안수호.”
“고생은요. 그쪽에서 제 발로 걸어와준 걸 덥썩 물었을 뿐인데. 아, 만약 습격 작전이 결정된다거나 하면 팀장님한테도 소식이 전해지긴 하는 거죠?”
“알아보려면 알아볼 수 있지. 김민아 때문에 그러지?”
그 말에 안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민채령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너도 참 지극정성이야. 여자친구 본인도 아니고 그 친구를 구하겠다고 이렇게 열심이라니.”
“김민아는 예원이 인생에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니까요. 가능하면 구해주고 싶습니다. 예원이도 그러길 원할 테고요.”
“그래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만약 정부 주도로 습격 작전이 결행되거나 하면 김민아의 신병은 따로 확보할 수 있도록 수를 써둘게. 별로 어렵진 않을 거야. 지금 경찰은 김민아를 전향 예정자이자 억류된 인질 정도로 파악하고 있으니…….”
민채령이 말끝을 흐리며 시계를 흘긋 보았다.
“더 이야기할 건 없지? 슬슬 사람들 출근할 시간이니까 이만 가봐. 밖에 당직부관도 다시 들어오라 하고.”
“예. 팀장님도 근무 고생하셨습니다.”
“너도 고생하렴. 오늘부터 집체 교육이었지? 9시까지 제13훈련장으로 가면 돼. 북문 바로 옆에 있는 건물. 어디인지는 알지?”
“당연히 알고 있죠. 근데 꽤 외진 곳에서 하네요. 어차피 방학이라 학생들도 없어서 어느 훈련장이든 널널할 텐데.”
“그건 마르코 팀장에게 직접 물어보렴. 잘 다녀와~.”
민채령이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미소는 꼭 학교에 가는 자식을 보내는 어머니처럼 포근했지만, 안수호는 어째 지옥으로 향하는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9시까지면 조금 여유가 있긴 한데……. 미리 가서 시설이나 살펴볼까.’
안수호는 그 길로 곧장 제13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린하우스의 훈련장은 총 15개. 그리고 그것들은 정문인 남문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앞에 붙은 ‘제1’이니 ‘제2’니 하는 번호가 커진다. 고로 제13훈련장은 상당히 북쪽의, 그리고 외진 곳에 위치한 건물이란 뜻.
그곳은 안수호에게 있어서도 미지의 영역이었다. 원작에도 한 번 나온 적이 없었으며, 담당구역이 달라 근무로도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여긴가.”
하여 마침내 안수호가 제13훈련장 앞에 도착했을 때, 그가 처음으로 느낀 감상은 을씨년스러움이었다.
건물이 낡은 것은 아니다. 그린하우스의 시설은 전부 최신식. 제아무리 외진 곳의 훈련장이라 해도 이는 동일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알 수 없는 스산함이라고 해야 하나, 꼭 숲속에 방치된 폐가처럼 묘한 을씨년스러움이 감돌고 있었다. 실제로 바로 뒤에 수풀이 우거진 산이 있긴 하나, 비단 그것 때문만은 아닐 터.
“흐음…….”
묘하게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안수호가 훈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불길했던 첫인상과 달리 안쪽의 모습은 여타 훈련장과 다르지 않았다.
한쪽에는 매점과 자판기가, 반대쪽에는 휴게실을 겸하는 로비.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어째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으나, 그건 이 시기의 다른 훈련장들도 마찬가지였다. 방학 중에도 아카데미에 남아 훈련장을 이용하는 학생은 적지 않지만, 그들 대부분은 기숙사와 인접한 훈련장을 이용하지 이런 외진 곳까지 오지 않으니까.
‘1일차 집체교육은 지하 스파링장이라고 했지.’
초인끼리의 대련은 필연적으로 주변에 피해를 주게 된다. 진심을 다한 초인이 내지르는 주먹이나 발차기의 위력은 수십 톤 단위를 가볍게 넘어서니까.
따라서 대련을 전제로 한 스파링장은 가장 시설이 견고하고 건물에 부하를 덜 주는 지하에 위치해있다. 이는 모든 훈련장의 공통사항이었다.
……팡! ……파앙! ……팡!
“음?”
안수호가 지하로 내려가자 멀리서 희미하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방학 중에 이 외진 곳에 누가 훈련이라도 하러 온 건가. 일순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이내 설마하는 표정으로 스파링장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팡! 파앙! 팡! 파앙! 파바방!
인적이라곤 하나 없는 스파링장의 한복판. 가장 크고 견고하게 만들어진 링 위에 거구의 흑인이 맹렬한 기세로 섀도 복싱을 하고 있었다.
파앙! 파방! 파바바방!!
그가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날카로운 파공성이 지하 전체에 울려 퍼졌다. 진한 구리빛으로 물든 피부 위로는 비처럼 쏟아진 땀방울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입구로부터 꽤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수호는 그에게서 뿜어져나오는 후끈한 열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으음? 음? 오! 왔구만 왔어! 아직 시간이 꽤 남았는데 부지런한 친구로구만!”
안수호의 기척을 느낀 그의 입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터져나왔다. 상의를 벗은 채 터질 것 같은 트레이닝복 바지만 걸치고 있던 그가 가볍게 로프를 뛰어넘어 착지했다.
“그때 던전 경비 이후로 처음인가? 오랜만이구만!”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팀장님. 오늘부터 일주일 간 제 집체 교육을 담당해주신다 들었습니다.”
“그럼! 내가 눈독들이던 신입 교육을 다른 놈한테 빼앗길 순 없으니까.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네가 사건에 휘말려서 못 나오게 됐을 땐 진짜 아차 싶었지. 자, 일단 이것부터 받아라.”
마르코가 링 아래 놓여있던 봉투를 휙 던졌다. 안수호가 안을 보자 까만색 트레이닝복 상하의가 들어있었다.
“사이즈는 근무복에 맞췄으니 아마 맞을 거다. 당장 그걸로 갈아입고 와라. 곧바로 집체 교육을 시작할 테니.”
“예? 벌써 말입니까?”
“모처럼 일찍 왔으니 집체도 일찍 시작하면 서로 좋잖아. 안 그래?”
그 말에 안수호가 군말 없이 탈의실로 향했다. 마르코가 건넨 트레이닝복은 통기성이 좋은 반바지와 민소매 런닝, 그리고 저지였다. 안수호는 위에는 런닝만 입고 저지는 한 손에 든 채 탈의실을 나섰다.
“호오. 몸은 꽤 괜찮군. 근육이 이쁘게 자리잡았어.”
“하하하. 팀장님만 하겠습니까.”
민소매 옆으로 드러난 보기 좋은 근육에 마르코가 피식 웃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말한 그 자신은 헤비급 보디빌더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근육의 소유자였다.
초인의 근력은 근육량에 비례하긴 하나 이는 절대적인 게 아니다. 당장 S급 초인인 설아현만 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근육량은 평범한 수준이지만 근력은 안수호를 가볍게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작품 내 설정으로는 초인마다 근조직의 효율이 다르다 설명하고 있었으나, 실상은 여리여리한 히로인의 몸매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소설적 허용이었다.
다만 근력운동을 통해 근육량이 증가하면 근력 또한 증가하는 건 사실인지라. 전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초인들 상당수는 근육량을 늘리기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결코 경시하지 않았다.
‘마르코 팀장은 A급 초인이라 그랬으니까. A급 초인에 저 정도 근육량이면 데드리프트만 해도 한 10톤은 들겠지?’
그런 그에 비하면 자신의 몸은 말라깽이 멸치에 불과하다고. 안수호는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들고 있던 저지를 몸에 걸쳤다. 그러자 마르코가 손사래를 치며 제지했다.
“상의는 도로 벗어라. 준비운동 하다보면 금방 땀범벅이 될 테니까. 그래서야 움직이는 데 방해되거든.”
그 말에 안수호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고작 준비운동으로 땀범벅이라니.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을 준비한 걸까 하고.
“저, 팀장님. 혹시 오늘 교육 내용이 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음? 훈련 프로그램이라면 내가 민팀장한테 미리 말해줬는데. 전해 듣지 못한 건가?”
“아뇨. 전해들었습니다. 다만 그, 월화수목금 오전오후 싹 다 ‘대인격투훈련’ 여섯 글자만 있더라고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슨 훈련을 하는지는 잘…….”
“대인격투훈련이 대인격투훈련이지 뭐 별 거인가. 내가 왜 너를 여기로 불렀을지 생각 안 해봤나 보지?”
그 말에 안수호의 뺨이 움찔 떨렸다. 새삼스럽게 그가 주위를 둘러보자, 눈에 보이는 건 죄다 대련용으로 마련된 각양각생의 링뿐.
‘어째 첫날 교육부터 스파링장으로 오라길래 무슨 일인가 했는데 설마…….’
“내 집체 교육은 늘 교육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춰진 맞춤형 훈련! 따라서 훈련 내용을 짜기 위해선 우선 그 사람이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를 파악해야 된다 이 말이지.”
그렇게 말한 마르코가 훌쩍 점프해서 링 위로 올랐다.
“고로 오늘은 하루종일 스파링, 그리고 또 스파링이다. 준비운동은 링 위에서 내 공격을 피하는 걸로 대체하지. 아, 미리 말하는데 아티펙트의 사용은 금지다. 실전에서야 상관없지만 지금 이건 어디까지나 네 능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이니까.”
마르코가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얼른 올라오라고 재촉했다. 반론 따위 받지 않겠다는 듯한 그 모습에, 안수호는 결국 반쯤 걸쳤던 저지를 다시 바닥에 벗어던질 수밖에 없었다.
‘마르코 팀장의 교육이 어떤 느낌인지 대충 감이 오는군. 민채령이 그렇게 좋아라 했던 거나 채소연이 마르코 팀장 이름만 들어도 덜덜 떨었던 것도 이제 이해가 가.’
마르코 팀장의 교육 스타일은 이른바 주먹구구식 스파르타 교육이었다. 어째 자신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며. 안수호는 그렇게 속으로 불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아티펙트의 사용을 제한 마르코와의 대련은 현재 그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까.
타앗!
다음 순간 안수호가 훌쩍 점프해 링 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키가 2미터에 육박하는 거구의 흑인이 그를 맞이해주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팀장님.”
“오냐. 처음에는 살살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일순 마르코의 입가에 진한 웃음이 떠오르고.
파앙!!
다음 순간, 허공을 가르는 파공성이 지하 가득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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