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219. 귀환
* * *
타다다다닥.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체를 옆에 두고. 안수호는 박지현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혹시나 무언가 도움이 될만한 자료가 있을까 싶어서.
‘딱히 건질만한 건 없군.’
그러나 결과적으로 수확은 없었다. 그녀가 사용하던 컴퓨터는 그녀의 공허한 마음을 대변하듯 기본적인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텅 비어있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 접속 기록까지 살펴봤지만, 그쪽은 이미 깨끗하게 지워진 뒤였다.
“흐음.”
안수호가 자리에서 일어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벌써 10분째 미동도 하지 않는 박지현의 시체가 있었다. 도대체 단검을 얼마나 찔러댔는지 그녀의 가슴은 거의 다진 고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안수호는 혹시 되살아날까 싶어 그녀를 지켜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박지현은 완전히 죽었다고. 안수호는 그 사실을 마침내 확인했다.
문득, 싸늘하게 식은 시체를 내려다보다 안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구역질이 올라왔다.
죽은 박지현의 표정이. 두려움과 절망에 차 일그러진 그 표정이 그의 가슴을 꽈악 옥죄었다. 그러나 애써 그 감각을 외면하며 주먹을 꽉 쥐자, 어느새 답답함도 구역질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후우우우우.”
스윽.
그가 깊은 숨을 뱉으며 한쪽 무릎을 꿇곤 박지현의 몸에 손을 얹었다.
“……?”
허나 다음 순간, 안수호가 의문에 찬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서리정령의 증표로 향한다.
“뭐야. 왜 안 돼?”
그는 박지현의 시체를 얼린 뒤 부숴버리려 했다. 나름대로의 증거인멸인 셈이다. 헌데 어째서인지 서리마법이 발동되지를 않았다. 분명 서리정령의 증표를 제대로 목에 착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가. 내가 지금 한 짓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드나보지?”
곧 그는 그것이 정령의 기분 탓일 거라고 짐작했다. 목걸이 안의 서리정령, 카멜리아가 그에게 까탈스럽게 구는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이처럼 아티펙트의 발동 자체를 완강히 거부한 적은 처음이었다.
‘뭐, 시체는 이대로 두고 가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여긴 슬럼가니까. 시체 한둘 정도 나와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혹시나 싶어 안수호는 자신의 손이 닿았던 곳들의 지문을 옷깃으로 슥슥 닦았다. 그래봐야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책상 정도가 전부였기에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때.
우우웅.
그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이 작게 진동했다. 지예원으로부터의 전화. 그는 지체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지금 어디야? 12시쯤 근무 끝나서 퇴근한다 그랬는데, 1시가 넘도록 안 돌아오니까 걱정돼서.
“미안. 볼일이 좀 있어서 지금 잠깐 의정부에 와있어.”
의정부? 거기는 왜?
“그게…….”
안수호는 박지현을 만나게 된 경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을 지예원에게 설명했다.
“……해서 아이기스의 신병만 확보한다면 본부의 위치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일단은 민채령한테 부탁해서 그 ‘별장’ 주변에 감시를 붙여두고 상황을 지켜보면 되겠지. 박지현의 말대로라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으니까.”
……그 부분은 알겠어. 그런데 안수호. 혹시 그 박지현이라는 여명단 간부는 어떻게 됐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좀 전에 확실하게 죽은 걸 확인했으니까.”
그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작게 새어나왔다.
지예원은 안수호의 처사가 결코 가혹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수호답지 않다고는 생각했다.
그의 평소 성격이라면, 설령 여명단이라 해도 자신과 정당한 거래를 한 상대를 문답무용으로 죽여버리거나 하진 않았을 테니까.
물론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게 후환을 남겨두지 않는 방법이긴 했지만, 안수호가 그런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는 게 그녀로선 조금 의외였다. 그리고 동시에 약간의 꺼림칙함 또한 느꼈다.
………………그렇구나. 그래, 고생했어 안수호.
허나 지예원은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드러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안수호는 지금 자신의 친구를 구해주기 위해, 그 행방의 단서를 찾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거였으니까. 헌데 그런 그를 앞에 두고 어찌 아쉬운 소리를 하겠는가.
그럼 이제 다시 속초로 올 거지? 아니면 거기서 하룻밤 자고 올 거야?
“곧바로 올라갈게. 슬럼에서 밤을 지새울 순 없고, 그렇다고 멀쩡한 시가지까지 내려가서 숙소를 찾는 것도 번거로우니까.”
그래. 올라올 때 누구한테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그 왜, 이제 태초의 은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용하면 안 되는 거잖아.
“걱정하지 마. 저공비행으로 날면 레이더에도 안 걸리고. 누가 올려다봐도 그냥 커다란 새구나 싶을 테니까. 한 2시간은 걸릴 테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고 있어. 알겠지?”
그래. 조심해서 올라오고. 내일 보자.
뚝.
전화를 끊은 안수호는 곧장 문으로 향했다. 볼일은 다 끝났으니 곧바로 옥상으로 가 집까지 날아갈 셈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저벅. 저벅
문 너머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안수호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저벅. 저벅. 저벅.
낡은 건물에 울리는 무거운 발소리. 복도 저편에서 점차 가까워져오던 발소리에 안수호가 귀를 기울였다. 안수호는 그 발소리가 아마 같은 건물에 머무르는 주민이겠지 싶었다.
그러나.
저벅.
이윽고 발소리가 멈춘 곳은 정확하게 안수호가 바라보고 있던 문 너머였다.
쿵. 쿵.
이봐, 아가씨? 안에 있어? 나 여기 건물 주인인데! 이 늦은 밤에 도대체 웬 소란이야? 아래층까지 건물이 다 울린다고 민원 들어왔어 민원!
걸걸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아무래도 조금 전 안수호와 박지현의 실랑이가 다른 주민들에게까지 들린 모양.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친 그의 발꿈치에 박지현의 시체가 걸렸다. 그가 그쪽으로 잠시 시선을 보낸 순간.
거 아무리 마사장님 소개여도 그렇지 기본 에티켓은 지켜야 할 거 아니야! 엉? 이봐 아가씨, 지금 듣고 있어?
끼이익.
녹슨 문고리가 예고도 없이 돌아가더니, 이내 신경질적인 인상의 중년 남성이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아가씨. 거 안에 있으면 말을”
있는대로 오만상을 찌푸린 남성의 얼굴에 다음 순간 당혹감이 번지기 시작한다.
피. 피. 그리고 또 붉은 피.
그리 넓지 않은 방바닥에 가득 번진 붉은 핏자국. 그가 가장 처음 먼저 본 것은 바로 그 핏자국이었다.
그 다음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발로 짓이겨진 벌레처럼 널브러진 박지현의 시체.
그리고 마침내 그 곁에 서있던 말쑥한 근무복 차림의 한 남자에게로…….
“너, 너는…….”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중년 남성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남자의 얼굴이 이목구비 하나 없이 마네킹처럼 매끈했기 때문이다.
허나 좀 더 자세히 보자 중년 남성은 그것이 금속 재질의 가면 같은 걸 얼굴에 뒤집어쓴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갑작스런 침입에 안수호가 급하게 실비로 가면을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가면은 안수호의 정체를 숨겨주긴 했을지언정, 그가 풍기는 수상쩍음을 더욱 배가시켰다. 애초에 난도질당한 시체를 앞에 두고 태연하게 서있는 시점에서 수상하기 그지없었지만.
“너, 너 뭐야. 너 이새끼, 여기가 지금 누구 구역인 줄 알고”
퍼억!
“커헉!”
중년 남성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안수호가 질풍처럼 달려들어 그의 명치를 때렸다. 몸이 기역자로 꺾인 남자가 침을 흘리며 지면에 쓰러졌고. 안수호는 그 결과를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옥상으로 내달렸다.
파앗!
옥상에 다다르자마자 펼쳐진 한 쌍의 날개.
투화아아악!!
직후 날개의 진동과 연기의 추진력을 이용해 안수호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늦은 밤중의 소란에 주변 건물들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빛 날개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들킬 줄은. 그렇지만 얼굴은 가렸고 지문도 다 지워놨다. 추적당할 염려는 없어.’
돌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안수호는 썩 괜찮게 대응한 편이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건, 지난 다섯 달 동안의 경험을 통해 얻은 여러 경험이 한 몫 했으리라.
다만, 나쁘지 않게 대처했음에도 안수호의 머릿속 한 구석에는 이런 생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일걸 그랬나.
그러나 다음 순간 안수호는 곧바로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명백한 빌런이나 적도 아닌, 그저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한 이를 상대로 죽이니 마니 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며.
물론 냉정하게 말해서 목격자를 남기지 않는다는 차원에선 그 남성을 죽이는 게 맞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그렇게 막무가내로 사람을 죽이는 미친놈이 아니라고. 안수호는 애써 머릿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밤하늘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
안수호가 슬럼가를 떠난 시점으로부터 역 20분 뒤.
“흐음…….”
이제는 완전하게 식어버린 박지현의 시체 앞. 한 남성이 그 시체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남성의 키는 가까스로 160을 넘길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작은 것은 어디까지나 신장뿐. 떡 벌어진 어깨와 온몸에 두텁게 자리한 근육은 그의 덩치를 두 배, 세 배는 커보이게 만들었다.
그런 근육 위로 말쑥한 정장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으나, 근육이 워낙 두꺼워 당장이라도 바느질이 터질 것 같았다. 인상 또한 험상궂기 그지없어서, 모르는 이가 그를 보면 범죄영화에 자주 나오는 조직폭력배 보스 따위로 오해하기 딱 좋았다.
그리고 실제로, 남자가 하는 일은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씨부럴. 거 참 끔찍하게도 죽여놨구마잉. 이래서야 치우는 것만 해도 일이겠어. 쯧쯧.”
아그작!
남자가 담배 대신이라는 듯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어금니로 씹어 먹었다. 그런 그의 곁으로 젠틀한 인상의 양복신사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시체 처리반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곧바로 옮겨서 흔적도 없이 태워버려라. 이 여자 출신이 출신이니 말이다. 괜한 트집 잡혔다가 좋을 거 없는 거 알지?”
“예. 알겠습니다. 헌데 사장님. 사장님께선 이번 성철파와의 회담에서 이 여자를 이용해 사업권을 받아오실 생각이셨잖습니까. 헌데 여자가 죽어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하실 건지…….”
“뭘 어떡하긴 어떡해. 편법을 못 쓰게 됐으니 정공법으로 사업권을 뜯어와야지. 씨부럴, 성철이 그놈한테 돈 안 맥여줘도 되겠구나 싶어서 좋았는데 좋다가 말았네.”
사장이 사탕 때문에 입 안에 고인 침을 가래처럼 카악 하고 뱉곤 발걸음을 돌렸다. 곧 그의 발걸음이 여러 장정들에게 둘러싸인 채 복도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건물 주인에게로 향했다.
“이보쇼. 내 부하들 말로는 댁이 이 여자를 죽인 남자를 목격했다 그러던데.”
“예, 예! 제, 제가 봤습니다! 보, 보긴 했습니다만은, 그, 얼굴을 가면……같은 걸로 가리고 있어서 인상착의는 잘…….”
“가면? 가면이면 어떤 가면인데? 막 그 무슨, 영화 같은 데 나오는 콧수염 신사 가면이나 삐에로 가면 뭐 그런 건가?”
“아뇨! 그냥 민짜. 통으로 된 은색 마네킹 같은 느낌의 가면이었습니다. 정말 아무런 특징도 없었습니다!”
“쯧. 뭐 아무런 특징도 없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겠지만은. 그래서야 그놈을 잡아 족치는 건 하늘에 별따기겠구만.”
“사장님. 용역을 풀어서 슬럼가 전체에 수배령을 내릴까요?”
그 말에 사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다. 천하의 마사장이 고작 여자 하나 죽은 걸로 수배령을 내리면 체면이 안 살지. 꼭 여자한테 홀딱 빠져있던 놈처럼 보일 거 아냐.”
“예. 알겠습니다. 그럼 수배령은 없는 걸로”
“다만, 이 여자가 죽은 걸로 내가 입은 손해가 막심하긴 해. 원래라면 성철이놈한테 지불하지 않아도 될 돈을 눈 뻔히 뜨고 지불하게 생겼으니까. 그렇지?”
“예에. 물론 그렇지요. 그렇담 어떻게…….”
부하의 질문에 마사장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그 험상궂은 인상과 더불어, 그야말로 악당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 사악한 웃음.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놈을 찾아서 데려와. 감히 내 나와바리에서 사람을 죽였다니, 어디 얼마나 배짱 큰 놈인지 한 번 보자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