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17화 (218/266)

〈 217화 〉 216. 야밤의 습격자(1)

* * *

아카데미 경비대의 워라밸이나 복지 여건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아카데미의 치안을 담당한다는 그 업무 특성상, 일반적인 업무 시간을 벗어나는 시간 외 근무가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령 지금의 안수호처럼, 토요일 오후 10시라는 시간에 근무가 잡혀 외벽 순찰 따위에 투입되는 일은 경비대에서 왕왕 있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만 놓고 보면 뭐가 워라밸이 좋은 건가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아카데미에선 시간 외 근무에 상응하는 휴식시간과 추가수당을 보장해주기에,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경비대의 워라밸은 가까스로 ‘나쁘지는 않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흐음.”

외벽을 따라 돌던 안수호가 화물차량용 입구 앞에 멈춰 섰다. 그곳이 그의 순찰 범위가 끝나는 지점이었다.

오면서 이상은 보이지 않았으니 이제는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안수호는 채소연에게 전화로 이상 유무를 보고한 뒤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갔다.

­저벅. 저벅.

조용한 도로에 그의 발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린하우스가 위치한 곳은 속초 시내에서도 다소 바깥쪽. 학기 중에는 사람의 왕래가 많은 편이지만 종강 이후에는 그 많던 인파가 다 사라져버린다. 특히 이런 늦은 밤에는 더더욱.

“…….”

덕분에 그는 느긋하게 길을 거닐며 상념에 잠길 수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은 그날 낮에 민채령과 나누었던 큐브에 대한 대화였다.

전날, 안수호와 지예원은 큐브의 생존과 구속을 전제로 여명단의 본거지를 알아낼 계획을 짰으나, 그 계획은 첫걸음을 떼기도 전해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살아있을 거라 생각했던 큐브가 이미 고인이 된 탓이었다.

듣자하니 한씨 자매에게 당한 시점에서 이미 생사를 오가고 있었는데 이후 사태 수습 동안 방치되다시피 해서 결국 죽어버렸다던가.

당시의 혼란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나, 그래도 안수호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보스 직속 암살팀의 생포는 원작에서도 없었던 일. 만약 큐브가 살아있었다면 원작 스토리의 여러 부분을 순식간에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다. 여명단 본부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까지 포함해서.

“……쩝.”

안수호가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지나간 일을 계속 곱씹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김민아를 구하려면 다른 방법으로 본부 위치를 알아내야 해. 문제는 그 다른 방법이란 게 현재로선 전혀 갈피를 못 잡겠다는 거지.’

기껏 생각나는 방법이라고 해봐야 큐브 외의 다른 암살팀을 유인해내서 생포하는 정도.

그마저도 그들을 끌어낼 방법이 안수호에겐 없었다. 뉴스 카메라에 대고 실비를 짠! 하고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겨울 방학쯤 되면 기회가 생기긴 하겠지만 그때까진 아직 너무 많이 남았는…………음?’

그때 안수호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그의 시선이 도로 맞은편의 상가 건물로 향한다.

‘뭐야 저건.’

대학가 주변 가게들은 방학 중에는 문을 일찍 닫는다. 때문에 밤 10시를 넘긴 지금 도로 맞은편 건물 중 불빛이 들어온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 주변은 새까만 어둠에 휩싸여 있었지만, 안수호의 눈은 어렵지 않게 그 어둠 속에 도사린 이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었다.

­스으으으으….

도로 아래에 낮게 깔린 채 흐르는 붉은 안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연한 안개는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채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안수호는 그 흐름을 거스르며 시선을 움직였다. 곧 그의 시선이 건물과 건물 사이, 사람 한둘이 겨우 지나갈 좁은 골목으로 향했다.

­스으으으으….

안개는 명백히 그 골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디 상가에서 가스라도 누출된 건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의 눈이 아무리 좋다 한들 투명한 도시가스를 눈으로 포착할 수 있을 리가.

“…….”

엄밀히 말해서 그의 순찰 범위는 외벽과 인접한 인도까지. 도로 맞은편의 상가는 그 범위 바깥이었으나, 저런 수상한 정황을 보았음에도 그냥 가기에는 뒤가 찝찝했다.

결국 안수호는 고민을 마치고 도로를 횡단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바닥에 깔린 안개의 흐름이 바뀌더니 순식간에 골목 안쪽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그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말하듯이.

“뭔데 도대체.”

그쯤 되자 안수호도 이게 예삿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허리에 찼던 삼단봉을 펼친 그가 천천히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저벅. 저벅. 저벅.

골목이라기보다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좁은 틈새. 그 틈새를 안수호가 긴장된 얼굴로 나아간다. 당연히 그런 틈새에 가로등이 있을 리가 만무하니, 그의 시야는 죄 암흑천지였다.

문득, 그의 뇌리에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나, 너무 섣불리 머리를 들이민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경험상 뒤늦게 그런 판단을 했을 때는 이미, 문자 그대로 뒤늦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스윽.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파앗!!

골목의 살짝 꺾어진 지점. 시야가 닿지 않던 그늘에서 갑작스레 비수가 날아들었다. 날카로운 그 칼끝은 정확히 안수호의 가슴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터억!

무심하게 휘두른 손이 그 칼날을 어렵지 않게 붙잡는다. 칼을 휘두른 손도 아니고 칼날 그 자체를.

“어?”

그 기예에 칼을 휘두른 적이 당황한 음색을 흘렸다. 놀란 것을 감안해도 유독 높고 얇은 음색.

안수호는 그제야 적의 모습을 확인했다. 푹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적의 성별이 여자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꾸욱.

여성이 그에게 붙잡힌 나이프를 빼내려 했으나 날 끝부분을 꽉 잡은 안수호의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마치 나이프를 그 좌표에 그대로 고정이라도 해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에 여자의 눈동자에 더욱 당황이 번진다.

“넌 누구­”

­파앗!!

그러나 적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휘둘러진 주먹. 안수호는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이를 잡아채려했다.

그러나.

­촤악!!

그 직전 안수호가 다급히 손을 거뒀다. 동시에 그의 손바닥에서 튄 한 줄기 핏물.

‘손톱?’

안수호의 눈에 마치 짐승처럼 길게 자라난 여자의 손톱이 보였다. 길이로 치면 한 5cm 정도. 나이프보다 길지는 않았지만, 그 예리함은 결코 뒤지지 않거나, 오히려 더한 것처럼 보였다.

­파앗!!

직후 여자가 상하좌우 종횡무진 두 팔을 휘둘렀다. 좁아터진 골목 특성상 안수호는 물러서지 않고서야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파밧!!

안수호는 후퇴 따위 하지 않았다. 후퇴할 필요가 없었다. 여자의 공격은 안수호가 보기에 너무 느려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하거나 잡아챌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무슨 사람 손톱이 이렇게 길어? 손톱 좀 깎아야겠다 너.”

“어,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경비원을 얕보면 안 되지.”

거드름 피우듯 말한 그가 살며시 웃었다. 적의 당황은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었다. 종횡무진 휘둘러진 그 손톱의 속도는 분명, 어지간한 초인의 반사신경을 뛰어넘었으니까.

그렇지만.

‘확실히 민첩이 A랭크쯤 되니 공격이 더 눈에 잘 보이네.’

안수호는 그 ‘어지간한’ 초인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태초의 은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말이다.

그의 민첩 능력치는 A랭크. 상태창의 능력치 랭크와 초인 등급이 1대1로 대응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민첩성이나 반사신경은 A급 초인 중에서도 상위에 해당했다. 그간 상대해온 적들이 워낙 흉악했던지라 반 강제적으로 단련된 부분이었다.

‘뭐, 혹시 몰라서 태초의 은을 옷 안쪽에 두르긴 했지만….’

적의 수준을 보니 쓸데없는 대비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안수호는 태초의 은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경비복 안쪽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얇게 퍼진 태초의 은은 민첩성보다 쳐질 수밖에 없는 근력이나 내구도 또한 A급 초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주었다.

그 강화 효과는 최대 출력을 100으로 두었을 때 약 20 정도.

그러나 안수호는 그 정도의 강화만으로 이미 A급 상위 수준이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마 태초의 은이 없더라도 아슬아슬하게 A급을 칭할 수준은 되리라.

“현시간부로 당신을 경비원에 대한 폭행 특수폭행 혐의로 긴급 체포하겠습니다. 근데 현행범한테도 혐의라고 하는 게 맞던가? 뭐 아무튼….”

­꾸우욱.

안수호가 여성의 팔을 잡은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러자 마스크 너머에서 얕은 신음이 새어나온다.

“쓸데없는 저항은 삼가고 얌전히 잡혀줬으면 하는데. 경찰한테 인계할 때 상처가 많으면 나도 설명하기 귀찮거든.”

“…….”

그 말에 여성은 말없이 안수호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는 단순히 분노라 치부할 수 없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알겠어. 더 이상 저항하지 않을게. 그러니 이것 좀 놔줘.”

“잘 생각했어. 수갑 채울 테니까 뒤로 돌아서 두 팔을 등 뒤로 뻗어.”

그렇게 말하며 안수호가 여자의 팔을 잡은 손을 놓았다.

그 순간.

­파앗!!

기다렸다는 듯 여자가 다시 한 번 안수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공격이 닿기까지의 짧은 찰나, 안수호의 입에서 얕은 한숨이 푹 새어나왔다.

‘거 그냥 얌전히 잡혀주면 될 걸­’

그가 여자의 목덜미를 움켜쥐려고 팔을 뻗었다.

그러나.

­투화악.

“어?”

그의 팔이 여자의 목에 닿은 순간, 그녀의 신체가 붉은 안개로 변해 흩어졌다. 안수호의 얼굴에 일순 당황한 기색이 스친다.

‘걸렸다!’

그 틈을 노린 여자의 손날이 안수호의 목덜미로 향했다. 제아무리 실력의 차이가 있더라도, 날카롭게 벼려낸 그 손톱은 어렵지 않게 그의 목을 찢어발길 터.

그러나.

“…실비.”

­콰아아앙!!

다음 순간, 안수호의 옷섬에서 튀어나온 은색 촉수가 여자의 몸을 옭아맸다. 조금 전과 달리 실비에게 붙잡힌 여자의 몸은 붉은 안개로 변하지 않았다.

“어, 어째서?”

“…탈리스만의 마력을 두른 공격은 안개로 변한 상태에도 통한다. 그때 태현이한테서 들었던 걸 잊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군.”

그 말과 함께 태초의 은이 그녀의 몸을 더욱 꽈악 옭아맸다. 태초의 은은 탈리스만의 마력으로 움직이는 아티펙트. 그것으로 묶인 이상 여성은 안개화로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고.

“처음엔 전혀 몰랐는데 그 안개화 능력을 보고 바로 떠올랐어. 이렇게 만나는 건 한 3개월만인가?”

그래봤자 서로 마주친 건 한 번뿐이지만.

­촤악!

그렇게 생각하며 안수호가 여자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뜯어내듯 벗겼다.

“…역시.”

그리고 그 너머에 있던 얼굴은 그의 예상대로, 그가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민채령이 내 몰래 살려두고 가둬놨다던 네가 도망쳤다는 걸 들었을 땐 아찔했는데. 설마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아무튼, 다시 만나니까 반갑네. 분명 이름이…….”

“…….”

“이름이…. 이름, 이름이 그러니까…….”

말끝을 흐리며 뜸을 들이던 안수호가 이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까먹어서 진짜 미안한데, 너 이름이 뭐더라?”

“…….”

그 질문에 여명단의 전 간부, 박지현이 분노에 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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