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16화 (217/266)

〈 216화 〉 215. 김민아를 구하려면

* * *

안수호는 채소연으로부터 집체 교육에 대해, 그리고 마르코 잭슨에 대해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녀가 그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며 자리를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허나 평소 병적일 정도로 낙천적이던 채소연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말을 다 한 셈이었다. 안수호는 당장 다음주부터 시작될 집체 교육이 벌써부터 걱정되었으나…….

‘그래봐야 집체 훈련인데 뭐 설마 죽기야 하겠어? 게다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 외 다른 일들은 미뤄놔야 하는 법. 안수호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김민아에 관한 일이었다. 오늘 밤 지예원이 꺼낼 이야기 내용에 따라, 짧은 시간 동안 지속되었던 그의 평화가 오늘부로 끝날 수도 있었으니까.

물론 안수호는 그 점에 대해 조금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지예원은 그의 소중한 연인이었고 김민아는 그런 그녀의 둘도 없는 친구. 김민아를 구하는 게 지예원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면, 그는 최선을 다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날 밤.

안수호는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지예원의 방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공복이었으나 둘 다 한가롭게 식사나 할 기분이 아니었다. 안수호나 지예원이나 그 얼굴에는 진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일단 앉을까.”

지예원이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안수호는 그 앞 바닥에. 둘 사이에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이내 지예원이 곤란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이걸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될지…….”

복잡하게 얽힌 인과관계를 하나하나 풀어 정리해가며 지예원이 덧붙였다.

“일단 그동안 민아의 행방을 어떻게 쫓고 있었는지부터 알려줘야겠지.”

지예원의 생각은 정확했다. 안수호는 당장 자신에게 닥친 일들이 바빠 김민아 수색에 관한 일은 거의 알지 못했으니까.

“어떻게 찾고 있었는데?”

“간단해. 민채령의 연줄로 경찰에 ‘김민아는 여명단의 배신자이며, 경찰에게 자수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고 싶어 한다.’라고 알려놨어. 민아는 서울지부에서도 준 간부급이었으니 경찰도 눈독을 들일 테고, 체포되더라도 고아 출신으로 억지로 여명단에 속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 참작이 가능할 테니까. 이 부분은 나도 동의했어.”

그 방침은 철저하게 김민아의 생존만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안수호도 그 부분은 이해가 되었다. 김민아의 현 상태는 배신자라는 낙인을 뒤집어쓴 채, 쓸모 있는 초능력 덕분에 겨우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상태일 것이므로.

“아무튼 그래서 민채령의 연줄이 닿은 경찰이 여명단 관련인을 체포할 때마다 김민아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줄곧 수확이 없다가 두 달 정도 전에 드디어 실마리가 보였어.”

“두 달 전이라면…….”

“내가 초인재활연구소 감시로 잠깐 용인 갔을 때. 그때 민채령이 교환 조건으로 민아에 대한 정보를 교환 조건으로 제시했잖아? 그때 찾아낸 단서로 계속 추적한 끝에 며칠 전에 드디어 어디 있는지 알아냈어. 문제는…….”

말끝을 흐리는 지예원의 모습에 안수호는 그날 낮에 민채령에게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아직 찾은 건 아니야. 어디 있는지는 알아냈지만 정작 그 장소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거든. 안 그래도 그래서 지금 그 장소의 위치를 파악할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야.’

“‘어디’에 잡혀있는지는 알지만 그 장소가 정확히 어디인지를 모른다는 거지. 민아가 잡혀있는 건 여명단 본부거든.”

“역시….”

그 말에 안수호는 그럴 것 같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채령의 말을 들은 뒤로, 여명단과 관련된 비밀스런 장소들 중 몇몇을 머릿속으로 후보에 올리고 있었고. 그중에는 여명단의 본부도 있었다.

여명단 본부.

그것은 말 그대로 동아시아 각지에 지부를 둔 다국적 테러단체 여명단의 본거지였다. 리더인 단장은 물론이고 그 휘하 최고 간부들만이 머무르는, 여명단 내에서도 아는 이가 손에 꼽히는 베일에 싸인 장소.

“다른 대규모 범죄조직들도 비슷하지만, 여명단 역시 자기네들 사이에서의 정보 통제에 열심이야. 윗사람들은 휘하 인원들이나 지부의 위치를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아. 본부는 그중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곳이고. 그 본부의 위치를 알아내려면 최소한 지부장급 인원한테서 정보를 얻어내야 해.”

“지부장이라니. 말만 들어도 힘들 것 같은데.”

지부장은 여명단의 수직 서열 체계에서 단장과 최고 간부 바로 다음가는 권력자들이었다. 그들은 본부와 지부간의 연결고리였으며, 당연히 그들은 섣불리 바깥에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문에 세간에 알려진 여명단의 고위 단원은 기껏 해봐야, 박지현이나 유현호 같은 지부장 휘하 간부급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들마저도 본부의 위치는 알지 못한다.

“이거 일이 골치 아프게 됐네.”

그리고 안수호 또한 본부의 위치만은 알지 못했다. 여명단 본부는 최신화까지도 단편적인 장면만 나왔을 뿐,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존재한다고 명확한 언급이 나오질 않았기에.

“그래. 네 말대로 골치 아프게 됐지. 어디 지부 정도면 몰라 하필이면 본부라니. 위치만 알아내면 경찰을 움직여서라도 급습하면 민아를 구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한 지예원이 안수호의 눈치를 봤다. 그녀의 입술이 몇 번씩 떨어지면서도 말을 자아내지 못하다가, 이내 망설이는 목소리로 그에게 묻는다.

“안수호. 넌 여명단에 꽤 실력 있는 정보원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 혹시 본부 위치를 알아내는 건 어렵겠지?”

“그건…….”

안수호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퍼진다. 그에게 여명단의 정보원 따위 없다. 지예원이 그런 오해를 한 건 그가 지예원의 배신 소식 등 여명단 내부 정보에 빠삭해서 그랬던 거지만, 그건 그저 원작에 나왔던 내용을 활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안. 내 능력으로도 본부의 위치는 알아낼 수 없을 것 같아. 진짜 미안해.”

“아니야. 네가 뭘 미안해. 신경쓰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예원의 표정은 눈에 띄게 침울해졌다. 민채령조차 본부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한 와중, 그녀에 비견되는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 안수호야말로 마지막 희망이었으니까.

그 희망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지예원은 진한 한숨을 푸욱 내뱉었다.

“……그래도 포기하진 않을 거야. 본부가 아무리 꽁꽁 숨겨져 있다 해도 조직원의 왕래가 있는 이상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구멍은 반드시 있을 테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지예원이 결연한 눈빛으로 다시금 의지를 다잡았다. 그녀는 애초에 난관에 부딪혔다 해서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바로 말해. 무슨 일이든 도와줄 테니까.”

“고마워. 그렇지만 본부 위치를 모르는 이상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겠지.”

“일단 내 쪽에서도 한 번 본부의 위치를 찾아볼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안수호는 여명단 안에는 연줄이 없었지만, 이럴 때 활용할 연줄은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다.

일리아나 파우스트에게 조사 의뢰를 하거나, 혹은 한여름의 도움을 구해본다든가.

정 안 되면 그가 원작을 통해 파악해둔 사회 곳곳의 여명단 스파이들을 일일이 잡아 심문해보는 수도 있다. 그동안은 스토리에 대한 영향이나 이런저런 여건 문제 때문에 방치해뒀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그들을 잡아낼 시간도, 능력도 충분히 있었으니까.

“잠깐, 그러고 보니…….”

그때 문득 그의 뇌리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연구소까지 날 쫓아왔던 그 암살팀 멤버. 분명 큐브라고 했었지. 아무튼, 그 녀석은 어떻게 됐지? 한씨 자매가 쓰러뜨리긴 했지만 그때 죽은 건가? 아니면 살아서 신경 쓰지 못한 사이에 도망쳤거나, 혹은 체포된 건가?’

그날 큐브는 한여름, 한겨울 자매의 공격에 의해 빈사상태에 빠졌다. 그 후 경찰에 인계하기 위해 연구소 보안요원들이 데리고 갔지만, 문제는 직후 성유진의 습격에 의해 그 보안요원들이 다 죽었다는 것.

만약 큐브가 살아있었다면 그 틈을 타 도망쳤을 수도, 혹은 빌빌대고 있다가 이후 도착한 경찰들에게 인계되었을 가능성 둘 다 존재했다. 안수호는 자신의 일이 바빠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그의 존재가 어쩌면 이번 사태의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큐브는 아이기스와 마찬가지로 암살팀 멤버. 보스 직속의 암살팀인 그라면 베일에 싸인 여명단 본부의 위치도 알고 있을지 모르니까.

“예원아, 방금 생각난 건데 말이야. 어쩌면…….”

이에 안수호가 큐브에 대해 지예원에게 설명했다. 곧 지예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큐브라는 사람이 만약 살아있고 지금 경찰에 체포되어 갇혀있는 상태라면….”

“경찰은 놈이 암살팀 멤버라는 걸 모를 거야. 놈이 그걸 순순히 말해줄 리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알지. 놈이 암살팀 멤버라는 것도. 그리고 놈이 본부 위치를 알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잠깐. 그렇지만 놈이 상대가 우리라고 해서 본부 위치를 말해줄까? 게다가 체포됐다 한들 어디 갇혀있는지도 모르고, 안다 해도 일반인인 우리가 그 녀석을 만날 수 있는 방법도 없잖아.”

“놈의 위치나 면회……같은 건 민채령이나 한여름에게 힘을 써달라 부탁해보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놈의 입을 열 방법인가…….”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안수호는 곧바로 현 상황에서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해답을 찾아냈다.

“경찰에 알리자. 놈이 암살팀 멤버고 여명단 본부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그럼 경찰 쪽에서 알아서 독심능력자를 섭외하든, 아니면 불법 약물이나 세뇌 아티펙트 같은 걸 쓰든 해서 정보를 끄집어내겠지.”

그 뒤의 흐름은 뻔하다. 만약 큐브가 본부의 위치를 안다면 정부는 곧바로 습격 작전을 계획할 것이다. 극악무도한 테러단체의 본부 위치를 알아냈는데 짓밟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우리는 그때 옆에서 기회를 엿보다 김민아를 빼돌리면 돼. 그게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야.”

“네 말은 이해했어. 근데 그게 말처럼 잘 될까? 민아를 빼돌리는 거야 그렇다 쳐도, 수십 년 동안 나라를 상대로 도망쳐다닌 여명단이 그렇게 허술할 것 같진 않은데…….”

“확실히. 여명단의 조직 규모나 정보력을 생각하면 습격 작전을 조기에 눈치 채고 내뺄 가능성도 있어. 아니면 큐브가 알고 있는 본부 위치가 잘못됐거나. 어쩌면 습격 병력을 상대로 대놓고 맞붙어서 이겨버릴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그런 가능성을 전부 고려하면서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짜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안수호의 모습을 지예원이 오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고는 있으나, 안수호가 말한 작전은 자칫 잘못하면 여명단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될지도 모를 위험이 뒤따르고 있었다.

무슨 연유로든 간에 정부의 습격이 실패한다면 여명단은 어떻게 이번 습격이 계획되었는지를 파헤칠 테고, 어쩌면 최초의 밀고를 한 안수호에게까지 도달할 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헌데 안수호는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지예원을 도와주고자 하고 있었다. 앞서 말한 리스크에 대해선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채.

“저기, 안수호. 아니, 수호야.”

지예원은 왜 그렇게까지 물심양면 자신을 도와주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안수호는 뭐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야 네가 내 연인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곤란해 하는데 당연히 도와줘야지. 안 그래?”

평소에는 낯간지러운 말을 잘 못하면서 정작 중요할 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을 운운하는 게 그의 성격이었다. 지예원은 그 대답에 피식 웃었다.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음에도 무심코 새어나온, 기쁨에 찬 웃음.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이었던 그녀가 웃자 안수호 또한 마주 웃었다. 말 한 마디 따르지 않은 미소에 불과했지만 서로의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적지 않은 위안을 느꼈다.

“일단 내가 내일 민채령을 통해서 큐브가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체포됐는지 확인해볼게. 이야기는 그 다음에 이어서 하자.”

“그래.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웠어. 저녁 아직 안 먹은 것 같은데 같이 밥이나 먹을래? 아침에 만든 국에 반찬 몇 개 곁들여서.”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곧 방 안에 덜그럭 덜그럭 부산스러운 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진 가운데 두 사람은 마치 가족이라도 된 것처럼 단란하게 저녁 식사를 준비했고.

­…….

그렇기에 두 사람은, 창문 틈새로 살며시 그 둘을 살피던 시선의 존재를 끝내 눈치 채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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