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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15화 (216/266)

〈 215화 〉 214. 할 이야기

* * *

아침 7시 30분.

안수호는 찝찝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초인은 숙취가 거의 없는 편인데도 그가 찝찝한 기분으로 기상한 건, 결국 그가 두 사람에게 설아현에 대해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차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지.’

실비가 나온 이후 급속도로 빨라진 페이스에 당황하던 차,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강하늘이 술에 취해 뻗어버린 뒤였다. 뭐가 그리 원통했는지 억울한 표정으로 연신 술잔을 비워댄 터라 말릴 새도 없었다.

‘두 사람은 일어났으려나.’

벽에 귀를 대보자 옆방에서 부산스러운 기척이 느껴졌다. 안수호는 간단히 세안만 마치고 옆방으로 넘어갔다.

­끼익.

마치 제 집인냥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안수호.

“왔어?”

그런 안수호를 지예원 또한 자연스럽게 맞이했다. 방 안에 피어오르는 고소한 냄새. 그가 부엌을 살피자 지예원이 한창 맑은 국을 끓이는 중이었다.

“뭐야?”

“콩나물국. 너 슬슬 출근 때문에 일어날 시간인 거 같아서 끓이고 있었어.”

“번번이 고맙네.”

“거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아, 하늘이 깨지 않게 조심하고.”

지예원의 말에 안수호가 안쪽으로 향했다. 방 한쪽에는 강하늘이 침대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코 자고 있었다. 시간이 이르긴 해도 방에서 요리 중인데 깨지 않는 걸 보니 어제 술자리에서 상당히 무리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냥 깨우는 게 낫지 않나?”

“어제 종강했는데 내버려 둬. 하루 정돈 마음 편히 늦잠도 자보고 그래야지.”

“하긴. 그것도 그래.”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안수호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런 줄도 모르고 강하늘은 베개에 뺨을 부비며 고양이처럼 쿨쿨 자고 있었다.

곧 지예원이 간단한 아침상을 준비해왔다. 쌀밥에 국, 밑반찬 조금 있는 단출한 식사였지만 술을 마신 바로 다음날이라 오히려 이 정도가 딱 적당했다.

“어때? 맛은 괜찮아?”

“응. 시원하니 해장에 딱이네. 장사해도 되겠다 야.”

“장사는 무슨. 내가 어디 평화롭게 자리 깔고 살 팔자인가…….”

“여명단만 없어지면 상관없잖아. 내가 보증하는데 너 진짜 요리에 재능 있어. 진지하게 생각해봐.”

“칭찬은 고마워. 근데 그놈들이 없어지는 날이 과연 올까?”

“반드시 와. 내가 보증할게.”

안수호의 확언에 지예원이 살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결코 허황된 말이 아니었다.

여명단은 의 메인 빌런 세력.

쾌락천마의 비뚤어진 감성과는 별개로 본작이 정통 아카데미물을 표방하고 있었던 이상, 놈들은 결국 류태현의 손에 의해 파멸을 맞이하게 될 운명일 터였다. 실제로 그가 읽었던 최신화 기준으로 여명단의 세력이 상당히 꺾이기도 했고.

“보증이라. 네가 직접 없애주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러나 지예원이 듣기에는 그의 말이 꼭 그렇게 들렸다. 그녀의 안온한 미래를 위해서 여명단마저 없애주겠노라고. 안수호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아 지예원의 입가에 살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가 류태현의 주변을 계속 맴돌 수밖에 없는 이상, 결국 류태현과 함께 안수호도 자연스레 여명단과의 싸움에 엮이게 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금 시점만 놓고 보면 류태현보다도 더욱 여명단과 대립하고 있는 게 그 자신이었으니.

“그래. 여명단은 내가 없애줄 테니까 넌 마음 편히 기다리면 돼. 무슨 메뉴로 가게 차릴지나 생각하든가.”

“꼭 내가 무조건 요식업으로 나갈 것처럼 생각하네.”

“그만큼 우리 예원이 요리가 맛있다는 거지.”

“칭찬해도 뭐 안 나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예원의 입가에는 기쁨에 찬 미소가 번듯하게 걸려있었다. 자신이 해준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안수호를 보며, 지예원은 그의 말마따나 정말 가게를 차려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구나 싶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안수호가 말한, 여명단이 사라진다는 미래가 정말 온다는 전제 하의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부드러웠던 지예원의 표정이 일순 딱딱하게 굳는다.

“……저기 안수호.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할 말? 뭔데? 말해봐.”

“지금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고. 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거든. 그래서 그런데 오늘 밤에 시간 좀 내줄래?”

“그거야 어렵지 않지. 어차피 옆집이고.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지예원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반응에 안수호는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짐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입을 열었을 때. 안수호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민아. 내 친구 민아에 대한 이야기야.”

김민아. 지예원이 여명단에 쫓기면서도 줄곧 행방을 찾아왔던 그녀의 유일한 친구.

안수호는 그 이름을 실로 오래간만에 들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예원 본인이 그 이름을 언급하기를 꺼려했으니까. 소중한 친구를 적진에 남겨두고 자기 혼자 도망쳐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녀에게 지대한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예원이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는 건.

“……찾은 거야?”

“설명하자면 길어져. 그렇지만 거의 다 찾은 거나 다름없어.”

그야말로 한 발자국.

자신의 친구를 구하는 데까지 딱 한 발자국 남았다고.

“……알겠어. 오늘 밤에 시간 비워둘게. 퇴근하고 보자.”

그렇게 덧붙인 지예원을 향해 안수호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

“좋은 아침입니다.”

집을 나선 안수호는 곧장 경비대로 출근했다. 전날 상당한 양의 술을 마시긴 했지만 그 얼굴에는 숙취의 기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강하늘이 그러했듯 안수호 또한 초인으로서 성장하면서 신체의 전반적인 능력이 강해진 덕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조금 그늘이 져있었다. 출근 전에 들었던 김민아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분명 김민아에 대해선 예원이랑 민채령이 같이 조사했다 그랬지. 두 사람의 배신으로부터 거의 4, 5달……. 이만큼이나 오래 걸렸다는 건 김민아의 소재가 어지간히도 꽁꽁 숨겨져 있었다는 뜻이겠지.’

짐작 가는 장소는 몇 군데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추측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차피 밤이 되면 지예원에게 들을 테고, 그 전에라도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으니.

‘민채령한테 물어볼까.’

그의 시선이 팀장실로 향했다. 민채령은 이미 출근했을 테고 그녀에게 김민아에 대해 묻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안수호. 좀 전에 팀장님께서 널 찾으셨다. 지금 바로 팀장실로 가봐라.”

그때 이태호가 막 출근한 안수호를 보며 소식을 전했다. 안수호는 마침 잘 됐다 싶어 곧바로 팀장실로 향했다.

­똑똑.

“안수호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대답이 들리자마자 안수호는 지체하지 않고 팀장실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여전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러나 그나마 안색이 호전된 기미가 보이는 민채령이 있었다.

“잘 왔­”

“예원이한테서 김민아를 드디어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서 발견한 겁니까?”

들어오자마자 제 질문부터 꺼내는 안수호의 행태에 민채령이 미간을 짚은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수호는 어째서인지 그녀의 눈가에 드리운 다크서클이 그 찰나에 좀 더 진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상사한테 호출 받았는데 상사 말을 끊고 제 용건부터 말하다니. 두 달 일 쉬니까 사회생활 감각 다 잃어버린 거니?”

“앗. 죄송합니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안수호가 멋쩍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 아침에 예원이한테 들었는데, 자세한 건 밤에 이야기해준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출근하는 내내 궁금해 미칠 것 같았어가지고 그만, 그, 예의 없이 다짜고짜 여쭤봤네요. 죄송합니다.”

“그럼 그냥 밤에 듣지 그래? 시급을 다투는 일도 아닌데 뭐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그래도 미리 어느 정도 알아두고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요? 어디서 찾은 겁니까?”

사과를 했음에도 제 호기심만 앞서는 안수호를 보며 민채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찾은 건 아니야. 어디 있는지는 알아냈지만 정작 그 장소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거든. 안 그래도 그래서 지금 그 장소의 위치를 파악할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야.”

“그렇군요. 그래서 그 장소가 어디죠?”

“그건………….”

잠시 말끝을 흐린 민채령이 안수호를 가만히 노려봤다. 그러더니 이내 심술궂은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네 불손한 태도를 보니까 도저히 말해주고 싶지가 않네. 그건 밤에 지예원한테서 직접 들으렴. 그동안 궁금해서 미쳐 뒤지든 말든 그건 알아서 하고.”

그렇게 말한 민채령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좀 전의 실수 때문에 그런가, 민채령은 오늘따라 안수호가 야속하게 보였다. 자신에게 온갖 귀찮은 일거리들을 떠넘겼음에도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사과 한 마디 없이, 제 궁금증만 풀려고 하는 부하의 행태에 심술이 난 것이다.

“……팀장님. 제가 살짝 실수하긴 했는데 그거 가지고 그렇게 쪼잔하게 구시는 건­”

“지금은 업무 시간이야. 업무 외적인 일은 퇴근한 다음에 생각하고. 지금 넌 업무와 관련된 일로 상사에게 호출됐으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겠지? 안 그래? 안수호?”

“…………쩝. 뭐, 알겠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결국 안수호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실수 한 번 가지고 심술쟁이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민채령이 조금 이해가 안 되긴 하였으나, 그저 요즘 일이 바빠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구나 하고 납득하기로 했다.

“자, 이거 받아.”

그때 민채령이 테이블에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던 서류 중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걸 받아든 안수호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특책과 집체 교육?”

“매 반기마다 특수대책과에 새로 입사한 대원을 대상으로 열리는 교육이야. 올해는 당연히 너도 대상이었고. 근데 네가 두 달 동안 바깥에 싸돌아다니느라 교육을 이수하지 못했잖니? 그래서 원래는 올해 하반기로 집체 일정을 넘기려고 했는데…….”

민채령의 말을 들으며 안수호가 서류를 넘겼다. 두 장밖에 없는 서류 뒤 페이지에 적힌 ‘추가 교육 대상자’에는 안수호 본인의 이름밖에 없었다.

“이번 집체를 담당한 사람이 너 한 명만 따로 교육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좀 갑작스럽지만 월요일부터 일주일간 집체가 예정됐어. 오늘까지만 정상 근무고 다음 주부터는 담당 대원한테서 충실하게 교육받으면 돼.”

“담당 대원이 도대체 누구…….”

서류를 뒤적이던 안수호의 눈에 일순 이채가 돌았다.

“마르코 잭슨? 이 사람은 분명…….”

“특수대책과 9팀 팀장. 너도 한 번 같이 일해봤잖아? 이중던전 사태 때 던전 경비 담당이 그 사람이었으니까.”

그 말대로 안수호와 마르코 잭슨은 구면이었다. 구면이라고 해봐야 한 번 같이 일하고 몇 번 마주친 사이에 불과했지만, 2미터를 넘기는 근육질 거구 흑인이라는 특징이 너무 강렬했던 덕에 안수호는 그의 얼굴을 곧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근데 그분은 왜 저만 따로 교육하기를 강력히 주장하신 거죠?”

“너라는 초인한테 흥미가 돋았나 보지. 그 사람은 원래부터 그랬거든. 천성이 타고난 교관이라고 해야 하나. 키울 보람이 보이는 대원이 있으면 팀이고 부서고 가리지 않고 데려가서 훈련시키는……. 무슨 느낌인지 감이 와?”

“예. 대충은요. 어째 이번 집체가 상당히 고달파질 것 같군요.”

“고달프다라……. 고작 그 정도 단어로 표현할 수 있으면 양반이지. 마르코 팀장이 지금껏 맡은 특책과 집체가 총 9번인데, 그때마다 신입들 죽어나는 소리로 경비대가 시끄러웠거든. 미군 출신이라 그런가 훈련 방식이 꽤 거친 편이어서…….”

잠시 말끝을 흐린 민채령이 이내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궁금하면 소연이한테 가서 물어보지 그래? 걔도 작년 집체 때 마르코 팀장 밑에서 교육 받았었으니까.”

“채소연이요? 예, 그렇게 하죠 그럼.”

“그래. 내 용건은 여기서 끝이야. 오늘 하루 일 열심히 하고, 다음주부턴 훈련 힘내렴. 이제 나가봐.”

그렇게 말하는 민채령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치 그에게 예정된 고난을 즐거워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안수호는 그 미소가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슬슬 채소연도 출근했을 시간이니 한 번 물어나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팀장실을 나서자, 아니나 다를까 채소연이 막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키고 있었다. 그가 곧바로 채소연에게 다가간다.

“어? 안수호 좋은 아침! 어제 여친들이랑 술은 잘 마셨­”

“야 채소연. 너 작년에 마르코 팀장님한테 집체 교육 받았다며. 그때 어땠냐?”

“히끅!?”

그 순간 채소연의 입에서 새어나온 딸국질 소리.

직후 채소연의 동공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천진난만하던 웃음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녀가 마치 들어선 안 될 이름을 들었다는 듯 덜덜 떨기 시작한다.

“……아.”

그 모습을 보며 안수호가 직감했다.

아무래도 좆된 것 같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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