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213. 종강 파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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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밤은 짧다. 시간이 오후 8시가 다 되어감에도 하늘은 여전히 밝은 채였다. 그러나 술자리에 참여한 세 사람은 바깥이 밝든 말든 이미 술자리에 한창이었다.
술잔이 채워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비워진다. 그리고 빈 술잔에는 다시금 새로운 술이 채워진다.
그 루틴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투명한, 그러나 결코 물은 아닌 액체가 가득 찬 잔을 내려다보며 지예원이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그러고 보니 그 날도 이런 느낌이었는데.’
자신이 안수호에게 고백한 날. 그리고 그와 첫날밤을 지냈던 날.
그날도 이렇게 셋이서 둘러앉아 술을 잔뜩 마셔댔었다. 초인은 술에 쉽게 취하지 않기에 작정하고 마시면 일반인의 배는 거뜬히 마실 수 있었다. 그날의 세 사람도 그랬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오늘은 그날과 달리 채소연이 없다는 것.
그리고.
“언니? 왜 안 마셔요? 벌써 힘든 거예요?”
“벌써는 무슨. 30분도 안 돼서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웠는데. ……근데 어째 너 저번보다 술이 많이 는 것 같다?”
“히히. 그렇죠? 제가 최근 들어서 술이 많이 늘었거든요.”
저번에는 주량이 달려 헬렐레 하던 강하늘이 오늘따라 유독 잘 버틴다는 것.
지예원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알싸한 알콜 향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초인이 술을 잘 마신다곤 해도 정도라는 게 있는데, 지금 그녀는 명백히 그 정도를 넘어서는 페이스로 마셔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1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뻗을 게 분명할 정도로.
헌데 기이한 건 그런 그녀와 페이스를 맞춘 강하늘이 상대적으로 멀쩡하다는 점이었다. 취한 기색이라곤 뺨에 올라온 옅은 홍조가 전부였다.
“주량이란 게 그렇게 갑자기 늘어나는 게 아닐 텐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저 학기 초에 비해서 힘도 세지고 체력도 늘었거든요. 그래서 주량도 자연스레 늘어난 거 아닐까요?”
초인의 신체능력과 알코올 분해능력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비례 관계다. 강하늘이 초인으로서 성장했다면 주량이 늘어나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허나 지금 중요한 건 이유 따위가 아니었다. 강하늘이 자신에게 술을 계속해서 먹이려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느냐가 문제.
‘보아하니 내가 취해서 뻗은 다음 단둘이 남았을 때 거사를 치를 속셈인가 본데…….’
지예원과 강하늘의 성경험은 각자 처음 했을 때의 한 번이 끝이었다. 안수호가 양다리를 걸치기 시작한 이후 서로 눈치를 봐댄 탓에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으니까.
그나마 기회가 있었다면 네버랜드에 놀러갔을 때 정도. 실제로 그때 강하늘은 안수호와 잘 목적으로 서울의 호텔까지 예약해두었다. 문제는 그날 터진 사건으로 인해 호텔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이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지만.
그 이후로 근 2달 동안 안수호는 온갖 세력들에게 시달리며 정신없이 살아왔다. 두 사람만 해도 그 기간 동안 안수호를 직접 본 게 손에 꼽을 정도.
‘아, 그래서 오늘 얘가 작정하고 온 거구나. 그날의 벌충 같은 느낌으로.’
지예원은 강하늘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그날 잔뜩 기대해서 호텔까지 예약했었는데 흐지부지 되어버렸으니 아쉬웠겠지. 육체적 접촉이 연애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때로는 몸을 겹침으로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질 때도 있는 법이니까. 당장 지예원 자신만 해도 첫 경험 당시 그런 기분이었으니.
‘……아무래도 내가 적당히 마시다 빠져줘야겠는걸.’
잠시 고민하던 지예원은 이내 오늘 하루 강하늘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애초에 양다리가 결정났을 때부터 각자의 연애사엔 최대한 간섭치 아니하기로 합의했었으니.
‘안수호한테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내일 말해야겠네.’
그녀가 안수호에게 할 이야기는 꽤나 심각한 이야기였다. 꺼내는 순간 지금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단번에 날아갈 정도로.
본래는 술자리라 해도 반주 정도만 걸칠 줄 알았기에 오늘 말하려 했으나, 잔뜩 기합 넣은 강하늘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시급을 다투는 급한 일인 것도 아니니, 오늘 하루 정도는 자신이 양보해야겠다 싶었다.
“으음. 어째 오늘따라 술이 잘 안 받네.”
“괜찮아? 무리해서 안 마셔도 돼.”
“고마워. 근데 이미 살짝 무리해버린 것 같아서. 좀 버텨보다 안 되겠다 싶으면 난 먼저 옆방으로 넘어가서 잘게.”
거기까지 생각한 지예원이 슬슬 떡밥을 깔기 시작했다. 순순히 물러나는 그녀의 모습에 놀란 강하늘이 눈을 크게 뜨자, 지예원이 그녀를 보며 살짝 윙크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강하늘의 놀란 눈동자에 안도와 감사의 빛이 서린다.
‘고마워요 언니. 다음번엔 제가 언니 도와줄게요.’
그 순간을 기점으로 강하늘의 술 권하기가 귀신 같이 멈췄다. 견제할 대상이 사라진 그녀가 안수호를 바라보며 행복한 상상에 젖는다.
‘히히. 오빠랑 둘이 남으면 어리광도 잔뜩 부리고, 또 잔뜩 앵기고, 달라붙고, 그리고, 그리고 또…….’
두 달 만에 함께하는 연인과의 시간에 강하늘의 기분은 한껏 들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티가 나는지, 지예원은 그런 강하늘의 모습을 천진한 어린 동생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그녀가 하고 있는 생각은 조금도 천진난만하지 않았지만.
“음?”
그렇게 두 여성이 소리 없이 동맹을 체결한 가운데, 안수호가 돌연 음식을 먹다 말고 미간을 찌푸렸다. 무어라 말하려던 그가 입을 다물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킨다.
“왜 그래? 혹시 음식 맛 이상해?”
“아니, 그게 아니라…….”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이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주르륵.
그의 오른팔에서 많은 양의 은빛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바닥에 고인 액체가 솟구치더니 귀엽게 생긴 열 살 여아의 모습으로 변한다.
“뭐야. 실비는 갑자기 왜?”
“우리 음식 먹는 거 보더니 자기도 먹어보고 싶다 그래서. 조금 정돈 괜찮지?”
“괜찮기야 한데……. 걔가 음식도 먹을 수 있어?”
먹을 수 있어요.
실비가 탁자 앞에 앉자 지예원이 식기를 꺼내주러 일어섰다. 그러나 실비는 곧바로 자기 손을 포크 모양으로 바꿔 파스타를 한 입 야무지게 물었다. 그 모습에 지예원과 안수호가 동시에 난처한 웃음을 터뜨린다.
“어허. 손으로 먹으면 지지야. 못 써.”
손 아니고 포크예요. 그리고 제 몸은 언제나 깨끗하니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은에는 항균 작용이 있나 그랬지. 그래서? 처음 먹어 본 음식은 어때? 맛있어?”
……주인님이 음식을 드실 때 전해져오던 만큼의 정신적 만족감은 생겨나지 않네요. 그 이전에, 생각해보니 저는 미각을 느끼는 기능 자체가 없네요.
“그거 참 아쉽네. 예원이 요리 진짜 맛있는데.”
저도 아쉽다고 생각해요.
한 입 먹은 것만으로 음식에 대한 흥미를 잃은 실비가 또르르 안수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정좌한 그의 무릎 위에 앉은 실비가 탁자 위의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인님. 저 알코올도 한 번 섭취해보고 싶….
“술은 어른들이 마시는 거야. 넌 아직 애니까 마시면 안 돼.”
겉모습 때문에 그러세요? 주인님께서 불편하시다면 지금이라도 인간 성인에 해당하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어요.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술 마시고 싶으면 어른이 된 다음에 마셔.”
그게 언제인데요?
“한 20년 뒤?”
안수호의 대답에 실비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코올에 대한 흥미라고 해봐야 별 거 아니었고, 애초에 실비에게 있어선 그 무엇도 안수호의 명령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다. 그것이 실비의 가치관이었다.
‘십중팔구 별 일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괜히 실비가 술에 취해서 날뛸 수도 있으니 여기선 일단 말려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안수호는 자신의 품에 콕 박힌 실비를 내려다보았다.
실비는 그가 지난 두 달 동안 겪었던 모든 고난의 원인이 된 아티펙트였다. 그러나 단순히 아티펙트로 치부하기에 실비는 그 두 달 사이 상당히 인간적으로 변했다. 일종의 진화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내가 죽을 뻔했을 때도 울면서 날 치료해달라고 했다 그랬지.’
자신은 실비의 무력을 취하고 실비는 자신에게서 마력을 취한다. 시작은 분명 그런 무기질적인 이해관계였으나 두 달이란 시간은 그 관계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실비가 안수호를 진심으로 따르기 시작한 것처럼, 안수호 또한 실비를 아티펙트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보다 소중히 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윽.
안수호가 실비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실비가 고개를 빼꼼 올리며 묻는다.
왜 그러세요?
“그냥. 기특해서.”
안수호의 부드러운 손길에 실비가 고양이처럼 한껏 몸을 늘어뜨린 채 그의 손길을 만끽했다. 실비의 몸은 전부 금속이었지만, 가늘고 곱게 늘어진 머리카락의 감촉은 사람의 것과 차이가 없었다. 계속 쓰다듬고 있자 안수호는 꼭 늦둥이 여동생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묘한 눈길로 지켜보는 강하늘.
조금 전까지만 해도 행복감에 젖어있던 그녀의 얼굴에는 어느새 위기감이라고 불릴법한 긴장감이 떠올라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강하늘이 이내 안수호에게 살며시 묻는다.
“저, 오빠.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응? 어어. 어떤 거?”
“실비 있잖아요. 오빠 오른팔에 기생……했다고 해야 하나. 거기 딱 정착한 상태잖아요? 그럼 24시간 내내 함께 다니는 거죠?”
“그야 그렇지?”
그 대답에 강하늘의 입에서 자그마한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녀의 얼굴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떠오른다.
“근데 그건 갑자기 왜?”
“그냥 궁금해서요. 그, 실비가 오빠한테 계속 붙어있으면 오빠는 사생활이란 게 없어지는 거잖아요? 물론 실비가 강력한 아티펙트이긴 하지만, 그 부분은 좀 불편하겠다 싶어서…….”
“글쎄? 딱히 실비 때문에 사생활에 피해를 본다 느낀 적은 없는걸. 게다가 네 말마따나 실비는 엄청 강한 아티펙트잖아. 이번에만 해도 얘 덕에 몇 번이나 목숨을 부지했는데. 설령 그런 사소한 페널티가 있더라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건 그렇죠. 그렇지만…….”
강하늘이 우물쭈물거리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불편해보이는 두 눈동자가 실비를 가만히 응시한다.
“그렇지만 그……. 사생활이라는 게 오빠한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응?”
사생활이 자기한테만 있는 게 아니라니. 뭔가 지나치게 돌려 말하는 듯한 강하늘의 화법에 안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아……. 예를 들어서 저랑 오빠가 단둘이 뭐를…. 데이트라든가 그런 걸 하면 그걸 실비가 옆에서 다 본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좀 부끄러워서…….”
“아하.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제야 안수호는 강하늘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아니, 적어도 본인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근데 따지고 보면 평소에 데이트 할 때도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한테 다 보이잖아. 하늘이 너, 평소에는 길거리에서 나한테 애교나 앙탈도 마음껏 부리면서. 정작 실비한테는 부끄럽다니 좀 의외네.”
“………………데이트 정도면 저도 보여져도 상관없어요. 그렇지만 그 이상부터는 조금….”
“그 이상이라면…….”
“답답해 미치겠네 진짜. 하늘이 말은 그거잖아. 너랑 물고 빨고 떡칠 때도 실비가 옆에서 보고 있으면 부끄러울 것 같다고.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어, 언니!!! 애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실비 들을까봐 일부러 돌려 말하고 있었는데!”
부끄러움에 귀까지 시뻘개진 강하늘이 소리쳤다. 그러나 지예원은 여전히 별 대수롭지도 않다는 태도였다.
“애는 무슨. 어린애 모습이긴 해도 쟨 결국 아티펙트야. 게다가 안수호랑 정신적으로 연결도 되어 있다며? 그럼 알 거 다 알겠지. 안 그래?”
그 질문에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실비에게 향했다. 그 시선에 실비가 눈치를 보다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는 주인님과의 정신적 연결로 주인님과 기억과 지식을 공유하고 있어요. 물론 성지식도요. 주인님이 아는 건 저도 다 알아요.
“거봐. 조심하고 자시고 이미 다 알고 있……. 잠깐.”
지예원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살살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린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방금 뭐라고? 수호랑 뭐를 공유해?”
기억과 지식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성과 관련된 지식은 물론이고 두 분께서 주인님이랑 몸을 겹쳤던 기억도 다 봤어요. 그러니 저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
“그, 그걸 네가 왜 보는데?!”
다음 순간 지예원이 부끄러움에 겨워 소리쳤다. 실비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두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창백하게 물들었던 두 뺨이 순식간에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지예원의 첫 경험은 그녀에게 있어서 부끄럽기 그지없는 기억이었다. 순간의 감정에 복받쳐서 안수호에게 부렸던 어리광은 물론이요, 관계 과정에서 보였던 여러 추태까지. 그것들은 지예원에게 있어서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되도록이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치부이기도 했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 치부를. 눈앞의 여자아이가 알고 있다니.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엿본 주인님의 기억에서 주인님은 예원 님의 모든 면을 사랑하셨어요. 특히 예원 님이 주인님의 품에 안기면서 ‘오늘 하루만 너한테 어리광부려도 될까?’라고 물어봤을 때의 감정은 정말이지….
“그마아아아안!! 그만! 그, 그 이상 말하지 마!”
지예원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침대에 놓인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몸부림치는 그녀의 모습을 다른 두 사람이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특히 강하늘은 안도와 소름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만약 실비가 지예원이 아니라 강하늘과의 기억을 말했다면, 지금쯤 저 자리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건 자신이었을 테니까.
주인님. 제가 혹시 실수한 건가요…?
“……앞으로는 절대 나나 주변 사람의 사적인 기억에 대해 말하고 다니지 마.”
네…….
실비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다 강하늘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수하면서도 자비 없는 눈빛에 강하늘이 흠칫 놀라며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린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로는 실비의 순수한 마수를 피할 수 없었다.
하늘이 언니. 저 때문에 불편하시다면 언니께서 주인님이랑 관계를 가지실 때 잠시 주인님한테서 떨어져서 옆방에 가있을게요. 주인님하고 다시 연결되면 기억은 전해지겠지만, 적어도 행위 당시만은 단 둘이 계실 수 있으실 테니까…….
그것은 실비 나름대로의 배려이자 사죄였다. 그리고 그 제안은 강하늘 입장에서도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실비의 말마따나, 적어도 몸을 겹치는 모습을 다른 이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지는 건 피할 수 있으니.
“아니, 아무래도 그건 좀…….”
허나 그 배려를 덥썩 물기에는 모양새가 영 아니었다. 야한 짓을 핑계로 어린아이보고 잠시 옆방으로 가있으라고 한다니. 무슨 드라마 속 막장 불륜 커플이나 할법한 짓이지 않은가.
게다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수호와 함께 잘 생각에 두근거렸던 그녀의 가슴은, 부끄러움에 미쳐 발광하는 지예원의 모습을 보고 미지근하게 식어버렸다.
‘……텄네. 텄어.’
결국 강하늘은 깔끔하게 단념했다. 이런 상황에 지예원과 실비를 옆방으로 보내고 안수호와 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한숨을 푹 내쉰 그녀가 반 정도 남은 자신의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근데 이렇게 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때까지 오빠랑 계속 못 자는 거 아닌가?’
문득 든 생각에 고민하던 강하늘이 이내 다시 한 번 잔을 들이켰다.
어차피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 거 술이나 잔뜩 마시겠다는 듯이.
세 사람의 술자리는 그로부터 1시간 정도 더 이어졌고.
그날 밤, 강하늘은 지예원과 한 침대에 누워 얌전히 손만 잡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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