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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10화 (211/266)

〈 210화 〉 209. 43%

* * *

태양이 나를 덮쳤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부터 수 초, 혹은 수십 초 후. 나의 몸은 반쯤 무너진 주차장 기둥에 기대인 채 쓰러져 있었다.

사방은 불꽃으로 가득했고 그건 내 몸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공격도 막아내던 털가죽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그 열기는 근육을 넘어 내장과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곧바로 쓰러졌다. 내려다보니 오른쪽 앞다리가 숯검댕이로 변해 있었다. 불꽃이 들이닥친 방향이다. 그 다리뿐 아니라 우반신은 전부 그 꼴이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걸 보면 내장까지 타버린 듯, 목구멍에서 매캐한 탄내가 진동했다. 기침과 함께 목에 걸려있던 걸 뱉으니 바싹 익은 놈의 오른팔이었다.

그걸 보니 놈 또한 멀쩡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 정신을 차렸을 땐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이끌고, 불꽃과 연기에 몸을 숨긴 채 도망치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몸의 부담을 덜기 위해 변신을 풀고.

헐벗은 몸에 미리 벗어둔 코트만 걸친 채.

비상용으로 구비한 포션으로 응급처치만 마치고.

방향조차 모르며 숲속을 헤매길 십여 분.

그쯤 되니 슬슬 고통도 익숙해지고 제정신이 돌아와, 그제가 되어서야 나는 작금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하지만 어째서?

내게는 계획이 있었다. 비단 이번뿐 아니라, 나는 모든 일에 있어 계획을 세웠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하나의 계획이 실패하면 즉각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수많은 계획을. 그리고 그렇게 준비한 철두철미한 계획들은 늘 내게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겨울동맹에서도.

여일에서도.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매번 내 인생에는 성공만이 있었는데.

헌데 어째서 그 놈과.

안수호 그 자식과 엮인 계획은 계속 실패만 하는가.

“빌어먹을…….”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삶이었다. 헌데 그 완벽했던 삶이 안수호 한 명 때문에 도대체 어디까지 굴러 떨어졌는가. 회장님의 신용을 잃고, 다른 이사들에게 업신여겨지며, 그룹의 뜻에 반하면서까지 결행한 강경책마저 실패해 비루하게 도망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스스로 봐도 너무 꼴사나워 서러울 지경이었다.

허나 그 서러움은 곧 분노가 되었다. 부아가 치밀어 올라 어금니를 꽈악 깨물며, 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계획은 실패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실패한 건 아니었다. 아직은 안배해둔 게 남아있었다. 여명단으로 위장한 호송 도중의 습격과, 연구소에 대한 직접 습격. 그 둘로도 모자라 준비한 마지막 보험.

그것은 바로 일전에 두 번이나 납치해 실패했던 강하늘이었다. 조사 결과 안수호의 연인으로 드러난, 그에게 있어 끔찍이도 소중한 아카데미 재학생.

그동안은 안수호의 방해 때문에 번번이 납치에 실패했다. 그러나 안수호는 지금 강하늘의 곁에 없다. 고로 지금이라면 성공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미리 강하늘에게 미행을 붙여두었다.

그리고 그 미행이란 즉, 여차할 때 그녀를 납치하기 위한 청부업자였으며.

그때란, 바로 지금이었다.

­뚜르르르르.

계획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강하늘을 납치한다. 그리고 그녀를 협상 재료 삼아 태초의 은을 얻어낸다. 잘만 하면 태초의 은은 물론이요, 강하늘이라는 귀중한 연구 샘플까지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미 두 번이나 납치당했던 강하늘이 무방비한 상태일 리는 없다. 그러나 지난 두 달 동안의 일로 인해 민채령의 이목은 안수호에게 집중되어 있을 터.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강하늘쪽에는 신경을 못 쓰고 있을 것이다. 고로 충분히 납치할 수 있다.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해야만 한다.

­뚝.

그 순간 마침내 부하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명령한다.

“접니다. 지금 당장 신속하게 플랜 H를 실시…….”

그러나.

­플랜 H? 그게 뭔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부하의 것이 아니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여성의 목소리. 강하늘은 물론이고 민채령도 아니었다. 나는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전화기만 붙잡고 서있었다.

­플랜 H가 뭐냐니까? 좀 알려주면 안 돼? 당신이 미행으로 붙여둔 사람한테 물어보려 해도 이미 기절해버려서.

“…………당신은 누구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를 유추하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했다.

­미안. 사정상 이쪽 신분을 밝힐 수는 없어서. 그건 못 말해주겠네. 그냥 하늘이 아는 언니라고만 알아둬.

그러나 수화기 너머의 여성은 영화 속 악당처럼 자기 정보를 술술 불어주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상대에게서 정보를 얻어낼 수 없으리라 생각한 나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려는 욕지거리를 가까스로 삼킨다.

강하늘 납치는 내가 준비해둔 마지막 안배였다. 더 이상의 계획은 없었으며, 즉 이제부터는 즉흥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다만 즉흥적이되 주도면밀해야한다. 안 그래도 앞선 계획들의 잇따른 실패로 손실이 막심한데 이 이상 실패를 거듭할 순 없으니까.

“후우우우우…….”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심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강하늘의 납치는 불발로 돌아갔다. 납치 실행도 전에 미행을 알아챈 걸 보면 채령 선배가 개입했음이 분명했다. 고로 이 이상 더 시도해봤자, 설령 내가 직접 가서 강하늘을 납치하려 한들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로 납치는 포기한다.

그렇다면 이젠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무엇을?

차분히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의 실패는 정말 돌이킬 수 없어진다. 안 그래도 이사회는 날 주시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실패만으로도 엄청난 문책을 당하게 되겠지. 그렇기에 어떻게든, 그들이 날 문책하기 전에 확실한 성과를 가져가야 한다. 비록 많은 손실이 있었지만, 적어도 태초의 은만은 확보했노라고.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나는 고속도로 습격에 기용할 수 있는 인원의 대부분을 투입했다. 직접 연구소를 습격하는 건 스페어 플랜, 강하늘의 납치는 스페어의 스페어 플랜이었다. 헌데 그것마저 실패한 와중에,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꼴사납게 도망치는 신세로, 지금 당장 이 이상 무언가 계책을 짜내고 실행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아니, 불가능하다.

계책이란, 계획이란 반드시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즉흥에서 짜낸 계획은 궁여지책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지금은 그 궁여지책마저 생각나지 않는다.

전투의 부상 때문인가, 정신적 피로 때문인가, 혹은 정말 아무런 수가 없는 것인가. 평소에는 잘만 돌아가던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한 감각에, 나는 애꿎은 머리만 나무에 박아댔다. 고통 축에도 끼지 못하는 둔중한 감각이 퍼지고, 그 감각 덕에 조금이나마 혼탁했던 정신이 맑게 개어졌다.

그래.

당장 짜낼 수 있는 계책이 없다면 우선은 후퇴다. 멋대로 벌인 습격으로 이사회가 날 문책할 테고, 그 뒷수습에 꽤나 고생 좀 하겠지만, 지금으로선 그 수밖에 없다. 우선 무사히 후퇴한 뒤 후일을 도모하자. 내게는 아직 겨울동맹의 서브마스터, 여일의 비등기이사, 그리고 온갖 종류의 커넥션이라는 배경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을 거다.

라고.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저벅.

등 뒤에서 들려온 발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버렸다.

“찾았다.”

익숙한 목소리다. 기실 실제로 들어본 적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잊겠는가. 지금껏 내 계획을 번번이 방해해온 바로 그놈의 목소리인데.

“몸도 성치 않은데 도망은 그쯤 하지 그래.”

그 허세에 찬 목소리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건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그 불꽃을 뒤집어쓴 건 놈도 마찬가지. 갑옷과 연막으로 방어했다 한들 멀쩡한 상태는 아닐 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레 주먹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그래. 어디 한 번 여기서 끝을 봐보자.

한여름은 부상으로 인해 사실상 전투불능. 고로 날 쫓아온 건 기껏해야 가증스러운 놈과 한여름의 동생 한겨울뿐일 터.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 도망치긴 했지만, 그 둘이라면 지금의 몸 상태로도 승산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에 나는 기세 좋게 몸을 돌려 놈을 바라보았고.

“…………하.”

놈의 곁에 나란히 선, 도대체 왜 이 자리에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흑룡회주의 얼굴을 보았을 때.

“씨발…….”

나는 가까스로 삼켰던 욕지거리를 입 밖으로 뱉을 수밖에 없었다.

***

짧은 추격 끝에 마침내 성유진을 찾았을 때. 안수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주변은 숲속. 어디 산골짜기 깊이 있는 숲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가지까지 1km는 떨어진 곳이었다. 방향이 반대였다면 진즉에 성남 시내로 들어갔을 텐데 운이 좋았다.

상황 또한 안수호에게 유리했다. 성유진은 척 보기에도 빈사 상태였다. 망토처럼 두른 코트 아래로 온갖 자상과 화상이 가득한 모습. 반면 안수호는 엘릭서 덕에 모든 부상이 사라진 상태였으며, 더불어 설아현이라는 걸출한 전력도 함께하고 있었다. 이 또한 운이 좋았다.

“씨발…….”

그리고 안수호에 대한 행운은 곧 성유진에 대한 불행이란 뜻.

조금 전만 해도 전의를 불태우던 성유진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가 턱짓으로 안수호를 가리키며 묻는다.

“저랑 같이 그 불꽃에 휘말렸으면서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하시군요. 심지어 잘려나갔던 오른팔까지……. 도대체 어떻게?”

“다 여기 계신 흑룡회주님 덕분이지. 엘릭서 효과가 그렇게 좋더라고?”

“엘릭서라니. 하나에 수십 억은 호가하는 물건인데…….”

그런 엘릭서마저 주저 않고 사용할 정도로 흑룡회주와 안수호의 관계가 깊단 말인가. 성유진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생각했으나 그게 지금의 상황을 바꿔주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난 지금 만전의 상태야. 게다가 아현 씨까지 합세했지. 반면 너는 척 봐도 다 죽어가는 상태. 싸우면 누가 이길지는 뻔하잖아? 그러니 순순히 항복하지 그래.”

“항복하든 말든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설마. 나는 너처럼 막나가는 범죄자가 아니거든. 순순히 항복하고 죄를 시인한다면 경찰에 넘기는 정도로 봐줄 생각이야.”

“목숨을 노렸던 적을 상대로 참 자비로우시군요.”

“물론 여일의 힘으로 변호사니 뭐니 써가며 빠져나오면 곤란하니 녹취록 정도는 따놔야겠어. 자신의 죄를 전부 시인하고, 법정에서 내려지는 판결을 달게 받겠다. 뭐 그 정도면 되겠지?”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 말에 안수호가 오른손을 재킷 안에 넣었다. 성유진은 핸드폰이라도 꺼내 녹취록을 딸 생각인가보다 싶었으나.

‘잠깐, 호송 중이던 저 자가 핸드폰 같은 걸 갖고 있을 리가­’

­타앗!

바로 그 순간. 성유진이 느낀 위화감을 덮어씌우듯 안수호가 달려들었다. 품에서 꺼낸 오른손에는 태초의 은으로 만든 길이 40cm 정도의 단검이 들려있었다.

­서걱!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이 좌우로 그어졌다. 성유진은 아슬아슬하게 반응한 덕에 즉사는 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슴팍이 깊게 베이는 부상을 입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생각했다.

성유진은 자신의 반응이 둔해졌다고. 부상의 여파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그리고 안수호는.

‘이길 수 있다!’

­서걱!

다음 순간 내리그어진 단검이 성유진의 팔뚝을 스쳤다. 그가 검붉은 피를 흩뿌리며 다급하게 뒤로 물러선다.

그래봤자 안수호에 비하면 느린 속도였지만.

“빌어먹­”

­터엉!

“커헉!”

안수호의 주먹이 그의 복부에 꽂힌다. 그의 몸이 허공에 부웅 떠오르고, 직후 자비없는 안수호의 연격이 이어서 그를 유린했다. 주먹이, 발길질이, 때로는 칼날이 수십 번씩 교차하며 그를 죽이려 들었다. 성유진에게 가능한 건 목을 비롯한 급소만을 겨우 지켜내다 꼴사납게 넘어지듯 거리를 벌리는 것뿐이었다.

“커허……!”

한 차례의 공방……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던 유린이 끝나고 그가 깊은 숨을 토해냈다.

놈의 공격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안수호 저 작자가 이리도 강했단 말인가.

“…………하.”

그렇게 생각한 성유진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걸렸다.

강해지기는 무슨. 자신이 고작 저 남자 한 명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것에 불과하다고.

“항복하면 살려준다 그러지 않았­”

시간을 벌어볼 요량으로 내뱉은 그 말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안수호가 다시금 그에게 달려들었다.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단검.

성유진이 두 팔로 가까스로 그의 팔을 붙잡아 막아냈다. 그러나 힘이 빠진 두 다리는 속절없이 꺾여, 그의 몸이 수풀 위로 쿵 쓰러졌다.

“끄으으으……! 잠까, 잠깐. 안수호 씨. 이 검 거두고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분명 당신한테도, 좋은, 이야기가……!”

­꾸우우욱.

안수호가 체중을 실어 검을 밀어넣자 성유진의 팔이 천천히 밀리기 시작한다. 목을 노리던 단검의 끝이 조금 비틀려 쇄골 한 가운데 움푹 패인 부분에 걸쳐, 이내 그 끄트머리에서 붉은 핏방울이 송글송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협상! 협상을 하죠! 돈이면 돈, 사람이면 사람, 정보면 정보…!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드리겠습니다. 물론 태초의 은도 포기할 테니까, 그러니 잠시 이야기를, 제발……!”

“너랑 할 이야기 따위 없어.”

성유진은 끊임없이 안수호를 회유하려 했지만 안수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의 회유에 귀를 기울이기에 안수호는 성유진이라는 사람을, 성유진이라는 이름의 원작 악역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할 수는 없지.’

그의 뇌리에 눈물을 흘리며 나은주에게 조종당하던 강하늘의 모습이 스쳤다.

그는 이미 한 번, 다 잡은 적을 상대로 시간을 끌다 된통 피를 본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성유진이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간에 성유진을 죽이는 걸 최우선으로 하자고.

“…….”

그 강렬한 의지는 안수호의 눈동자를 통해 성유진에게도 여실히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도 단검의 날은 천천히 그의 살을 파고들었고.

‘실비.’

­네.

바로 그 순간, 안수호의 탈리스만이 푸른빛을 뿜었다.

­푸욱!!

단검 날이 순식간에 길어지며 성유진의 가슴을 관통했다. 한계에 다다른 실비를 생각해 결정적인 순간까지 아껴둔 비장의 수.

심지어 안수호의 비수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단검 자루를 꽈악 쥐자 실비가 마지막 남은 힘을 발휘해 칼날으로부터 고슴도치처럼 수많은 가시를 생성해 뻗었고.

­퍼어억!!

직후 성유진이 가까스로 안수호의 몸을 걷어차 그를 날려보냈다.

날려보냈으나.

그 판단을 조금만 더 일찍 하지 못한 것이 그의 결말을 확정지었다.

“……케……흐……!”

성유진은 놀란 눈을 한 채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꼴을 보며 언젠가 들었던 ‘피의 독수리’라는 형벌을 떠올렸다. 바이킹들이 죄인에게 행했던 그 형벌은 등 가죽을 가르고 갈비뼈를 끊어내 끄집어내어 독수리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 성유진의 가슴이 딱 그런 꼴이었다.

온갖 곳에 숭숭 뚫린 구멍. 부서져 바깥으로 튀어나온 갈비뼈. 그 사이로 보이는 뻘건 근육과 장기들.

“이럴, 수, 가…….”

가까스로 자아낸 말이 제대로 나온다는 건 다행히도 폐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단 뜻이었다. 그러나 요행은 거기까지였다. 뼈와 근육, 주요 혈관이 망가진 그는 가슴에서 시뻘건 피를 한 바가지 쏟아내며 뒤로 쓰러졌다.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봐야 끝은 가까웠다.

“놈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해서 다행이군요. 어차피 목격자 하나 없는 숲이라곤 해도, 아현 씨가 나서지 않아도 됐으니 말입니다.”

“네? 아, 네에…….”

그 말에 넋을 놓고 있던 설아현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안수호를 바라봤다.

‘수호 씨. 엄청 능숙해보였어.’

회유를 통한 방심 유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찌른 기습. 그리고 이어지는 빈틈없는 공격과 마무리 일격까지.

그 일련의 흐름은 설아현이 보기에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렇기에 설아현은 그로부터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안수호는 분명 강한 사람이었다. 허나 그의 싸움에는 어딘가 ‘어설픈’ 구석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강함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신체의 강함에 비해 기술이나 센스 같은 게 다소 쳐지는 부분이 분명 존재했었다.

허나 조금 전의 그는 빈사 상태라곤 해도 최강의 초인 중 한 명인 성유진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그것도 단순히 육체적 강함을 앞세운 게 아닌, 능숙한 기술과 기만을 뽐내면서.

그런 안수호의 모습에 설아현은 다소의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다소의 위화감일 뿐이었다. 굳이 문제 삼지 않아도 될 정도의, 아주 약한 위화감.

“그럼 슬슬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설아현을 뒤로한 채 안수호가 성유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두 눈동자가 원통하다는 듯 형형한 살기를 띠며 안수호를 노려봤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그 질문은 승자의 여유였다. 그러나 오만한 방심은 아니었다. 여유롭게 입을 놀리는 와중에도 안수호의 오른손은 단검을 꽉 쥐고 있었다. 조금의 저항이라도 보이는 순간 곧바로 그의 목을 떨굴 수 있도록.

허나 그마저도 의미 없는 짓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성유진은 얼마 못 버티고 죽을 것이며, 본인도 이를 예견하고 저항할 의사 따위 진즉에 버린 뒤였다.

그렇기에 성유진은 안수호의 질문에 착실하게 생각했다. 승자의 여유로부터 비롯된 배려, 혹은 기만에 대하여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겨야 할 말에 대해서.

‘살려달라.’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가장 의미 없는 말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죽는다. 하물며 적은 자신을 살려줄 생각조자 없다. 마지막 순간에 그런 말을 읊조려봤자 비웃음만 살 뿐이다.

‘지옥에서 기다리마.’

자신을 죽인 상대에 대한 고전적인 저주의 말. 허나 성유진은 무신론자였다. 신도 천국도 지옥도 믿지 않으며 평생을 살았는데 마지막에 와서 지옥을 부르짖는 건 조금 아니다 싶었다.

‘나의 의도와 그 배경에 대해서.’

그렇다면 차라리 그에게 고민과 고뇌의 씨앗을 던져주는 건 어떨까. 자신이 왜 태초의 은을 그토록 염원했는지. 왜 그렇게까지 다중능력 연구에 혈안이 되었는지. 안수호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그 사정을 알려주어, 가는 길 마지막 선물로서 그에게 머리 아픈 고민거리나 던져주는 것.

‘아니, 이건 시간이 없군.’

허나 그 장황한 사정을 말하기에 남겨진 시간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나는 여명단의 최종 계획을 알고 있다. 구인류에 대한 대대적인 솎아내기와 초인만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 그 막을 수 없는 계획에 의해 도래할 미래에 다중능력자가 어떤 위치에 오르게 될지 알아서. 머지않아 세상의 패권을 쥐게 될 그들과 협상하기 위해선 다중능력 기술이 꼭 필요했노라고.

어떻게든 간추리고 간추려 보아도 너무 긴 말이었다. 그가 보기에 자신의 남은 수명은 기껏해야 수십 초, 할 수 있는 말은 겨우 한 문장이 고작. 그 모든 진실을 함축한 하나의 문장을 던지고 죽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피와 산소가 모자라 죽어가는 뇌로 그런 멋드러진 문장을 생각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

문득 뇌리에 떠오른 민채령의 존재에 그가 작게 숨을 뱉었다.

아마도 이번 사태 내내 놈의 배후에서 자신과 대적했을, 그리고 지금 자신의 죽음에 적잖이 일조했을 옛 선배에게 마지막 말이나 남겨볼까 하고.

허나 한 마디 말로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나치게 복잡했다. 학창시절의 그리운 선배. 그러나 졸업한 뒤로는 갈라서 결국 대립할 수밖에 없게 된 그 관계에 대해 무슨 말을 남겨야 할지. 성유진은 필사적으로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이번에도 남겨진 시간이 발목을 잡았고.

“…………씨이, 발.”

결국 그가 남길 수 있었던 건, 누구나 입에 달고 사는 그 천박한 욕지거리 한 마디 뿐이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성유진이 마침내 눈을 감았다.

국내 최강의 S급 초인이자S급 길드 겨울동맹의 서브마스터.

여일그룹의 사외이사이자 한때 비밀이사회의 핵심 멤버였으며,정·재계는 물론이고 사회의 어두운 뒷면에 이르기까지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 없던 희대의 야심가.

그런 그의 죽음은 이다지도 초라했고

덧없었으며

그 죽음을 슬퍼해주는 이 하나조차 없는

참으로 쓸쓸하고 덤덤한 죽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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