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09화 (210/266)

〈 209화 〉 208. 추격 개시

* * *

“시체가, 시체가 안 보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 성유진이라는 사람의 시체가 도통 보이질 않아요.”

연구소장의 말에 네 사람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었다. 그전까지 흐르던 감동적인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들의 얼굴에 진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재수 없는 소리 마세요. 폭발 때문에 어디 구석으로 날아갔겠죠. 아니면 잔해에 깔렸거나. 그만한 불꽃을 정통으로 맞았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요.”

한여름은 그 말과 함께 성유진의 시체를 찾았다. 그러나 연구소장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시야가 닿는 곳에는 그저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뿐. 늑대의 시체도 사람의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자, 잘 찾아보면 어디 있겠죠. 다 같이 찾아봐요.”

“아니면 혹시……. 폭발 때문에 아예 가루가 됐다든가?”

“그랬다면 다행이겠지만…….”

각자 한 마디씩 던지는 여성들 사이에서 안수호가 생각에 잠겼다. 그의 왼손은 은색으로 물든 자신의 오른손등을 슥슥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망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내 안수호가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의 이목이 단숨에 그에게 쏠린다.

“실비……. 제 오른손에 깃든 태초의 은이 가진 인격입니다만. 이 아이가 말하길 자기 몸의 작은 조각 몇 개가 이 자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게 성유진이 도망친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저는 놈을 붙잡아두기 위해 놈에게 일부러 오른팔을 물렸습니다. 그때 놈의 체내에 태초의 은의 일부가 남았을지도 몰라요. 아니, 분명 남았을 겁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되니까요.”

“그럴 수가…….”

한여름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이 얼마나 끈질긴 적이란 말인가.

안수호와 함께 거의 한 달 넘게 성유진과 적대해왔던 그녀는, 동생의 불꽃이 그를 덮쳤을 때 드디어 끝났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보다도 성유진이라는 적은 훨씬 명이 질겼던 모양이다.

허탈하다 못해 짜증이 밀려올 지경. 그건 비단 한여름만이 아니었다. 소장을 제외하곤 다들 예저녁부터 성유진의 진상을 알고 있었기에, 승리의 기쁨과 안도에 젖어있던 그들의 표정은 누구 하나 밝지 못했다.

“수호 씨. 혹시 현재 그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있나요?”

설아현의 질문에 안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어디다, 하고 콕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대략적인 방향이랑 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놈을 쫓는 데엔 무리가 없을 겁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죠. 놈이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잖아요.”

그렇게 말한 건 한겨울이었다. 그녀에게 부축받고 있던 한여름 또한 말하지만 않았다 뿐이지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뇨.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놈을 쫓는 건 저 혼자 하겠습니다.”

“네?”

“뭐라고요?”

“수호 씨?”

방금 전까지 함께 싸웠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말인가. 두 자매는 안수호의 결정이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방금 막 합류한 설아현도 마찬가지.

“수호 씨. 그를 혼자 쫓겠다니, 너무 무모한 생각 아닌가요?”

“그렇긴 하죠. 그래도 놈도 멀쩡한 상태는 아닐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다 죽어가던 우리를 마무리 짓지 않고 도망칠 리가 없으니까요.”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였다. 당시 한여름은 부상이 심각해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던 상태였으며 안수호 쪽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

고로 성유진으로선 한겨울 한 명만 쓰러뜨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도주를 선택했다는 건, 그조자 여의치 않을 정도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그,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여기선 일단 다같이 가는 게­”

“겨울 학생. 만약 이대로 성유진을 쫓아서 잡았다 칩시다. 그럼 그 다음엔 어떡할 겁니까?”

“네? 그거야 당연히…….”

안수호의 갑작스런 질문에 한겨울이 망설이자, 곁에 있던 한여름이 그 질문을 대신 받았다.

“당연히 죽여야죠. 경찰에 넘긴다 한들 놈이 얌전히 죄를 인정하고 교도소에 갇혀줄 리는 없으니까.”

아무리 성유진이 이번 일을 독단으로 벌인 것이라 해도 그는 여일의 일원. 본격적으로 수사가 진행되면 여일이 그를 감싸고 돌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심지어 보안 프로그램 무력화로 인해 CCTV 영상조차 남지 않았으니, 재력과 권력을 동원해 빠져나가려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을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유진이 다시는 자신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평생 사회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 있을까?

답은 명백했다. 불가능. 그렇기에 한여름은 망설임 없이 그를 죽여야 한다 말했다. 놈은 목적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미친놈이니, 이번 기회에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그러나.

“당신도 참, 애초에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물어요? 조금 전 싸움만 해도 서로 죽고 죽일 기세로 싸워댔는데.”

“그거야 그렇긴 합니다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좀 전에는 성유진이 먼저 덤볐기에 이쪽의 무력 사용은 정당방위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를 쫓아가 죽이면 그건 명백한 살인입니다.”

조금 전까지 성유진은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였으나, 이제는 전투 의지를 잃은 도망자에 불과했다. 설령 그가 훗날 그들에게 다시 이빨을 드러낸다 해도, 지금 시점에서 그를 쫓아 죽였다간 명백한 살인행위가 되어버린다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한여름은 그의 주장에 반박하려 했으나, 안수호의 말은 꾸밈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감정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성유진을 쫓아가서 죽였다가 만약 목격자라도 나왔다간,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원 살인자 신세입니다. 제게는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놈을 죽일 이유가 있지만, 여러분은 아니잖습니까. 저만 아니었어도 놈과 엮일 일조차 없으셨을 테니.”

태초의 은. 주변 사람들의 안위. 미래에 암약할 빌런의 조기 제거.

안수호에게 있어선 성유진을 죽일 이유가 차고 넘쳤다. 본래부터 죽일 수 있다면 죽이려고 했었고, 마침내 그를 죽일 기회가 왔으니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여러분은 저랑 달리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잖습니까. 아현 씨는 명망 높은 길드의 리더고. 한여름 한겨울 학생은 한성그룹의 후계자. 심지어 두 사람은 아직 학생이기도 하고요. 앞날이 창창한 여러분께 제 개인적인 이유로 살인죄라는 짐을 씌울지도 모른다는 상황이 저로서는 많이 염려스럽습니다.”

그 말에 전투의 아드레날린으로 한껏 끓어올랐던 한여름의 정신이 겨우 냉정을 되찾았다.

‘그래. 아무리 내가 이 사람을 갖고 싶다 해도, 그것 때문에 살인죄를 뒤집어쓰는 건 말도 안 되지. 수습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야 있겠지만, 애초에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 자체가 없어.’

안수호와 자신은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 그동안은 안수호가 많든 적든 대가를 제시했기에 도와줬던 거지만, 현재 그는 이 이상의 무언가를 그녀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로 그녀 또한 이 이상 그를 위해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없었다.

허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오직 한여름뿐이었다.

“수호 씨 말씀은 알겠어요. 그렇지만 역시 전 수호 씨랑 함께 갈래요. 같이 가게 해주세요.”

“아현 씨…….”

아직 눈가에 붉은 기가 남은 설아현을 올려다보며 안수호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설아현의 의지는 확고했다.

“수호 씨. 우리 그때 약속했잖아요. 서로가 힘들 때, 상대방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주저 않고 도와주기로. 그때가 지금이에요. 수호 씨는 누가 봐도 도움이 필요해보이고, 전 수호 씨를 도와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전 수호 씨랑 같이 갈래요.”

“아현 씨. 제 말 다 이해하셨잖아요. 잘못 했다가 뉴스에 S급 초인 살인범이라고 대서특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위험을 굳이 감수할 필요가­”

“그런 위험을 굳이 감소할 필요. 당연히 없죠. 그렇지만 제가 그러고 싶은걸요.”

대가를 바라는 비즈니스적 행동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하고 싶어서, 온전히 자신의 의지에 따른 행동이라고.

안수호는 왜 설아현이 그렇게까지 자신을 위해주는지 알지 못했다. 설아현 또한 안수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아직 완벽하게 깨달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알았다. 안수호가 죽으면 무척 슬플 거라는 것. 무척이나 슬퍼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안에서 이미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

“저, 수호 씨를 도와준다 해놓고 정작 필요할 때 곁에 없었잖아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수호 씨를, 혼자 놔두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따라갈게요. 수호 씨가 뭐라 하든 상관없이, 제 의지로.”

“아현 씨……”

안수호는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 떠오른 확고한 의지를 엿보곤 단념했다. 잠시 고개를 숙인 그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거절할 순 없죠. 염치없지만 그 도움 감사히 받겠습니다.”

“……우리 사이에 염치 같은 거 안 챙겨도 돼요.”

우리 사이.

그 말에 안수호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별다른 뜻 없이 쓴 말일 수도 있지만, 그간의 정황에 방금 전의 대화가 더해지자 마침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역시 아현 씨는 나를…….’

그러나 여유롭게 진실을 검증하기에는 상황이 촉박했다. 안수호는 실비에게 성유진의 위치를 물어보는 한편, 자신의 현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샛별의 숨소리 스택은 전부 소진. 실비랑 탈리스만은 둘 다 한계에 가까워. 아마 위급한 상황에 잠깐 쓰는 것 정도가 한계겠지. 그렇지만 하늘이의 스킬이 있으니까……. 현재 능력치는 대략 A급 초인 정도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안수호가 문득 퀘스트 보상을 떠올렸다.

‘분명 경비율 15%라 그랬지?’

15%가 추가될 경우 총 경비율은 43%. 경비원 스킬에 의한 능력치 포인트를 두 개나 받을 수 있게 된다. 싸움을 앞둔 지금 망설일 이유도 없어, 안수호는 곧바로 보상을 수령했다.

‘능력치는 근력이랑 민첩을 올리면 되겠지.’

망설임 없이 능력치 포인트를 투자한 안수호는 자신의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

[ '안수호‘의 상태창 ]

이름 : 안수호

성별 : 남성

신장/체중/나이 : 182.3cm/74.7kg/24세

직업 : 아카데미 경비원

소속 :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보유 초능력 : 검은 연기(D), 마력 흡수(A), 아바타(D)

[ 능력치 ]

근력 A+*

민첩 S+*

내구 A

마력 A

기교 A

의지 C

행운 A

1. <샛별의 숨소리="">의 착용 효과에 의해 근력과 민첩에 플러스 보정이 붙습니다.

2. <스킬 :="" 연심의="" 벚꽃="">의 두 번째 효과에 의해 모든 능력치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 보유 스킬 ]

1. 아카데미의 경비원(유니크. C)

2. 서리정령의 계약(유니크. E)

===

능력치 전체가 E로 도배가 되어있던 게 고작 몇 달 전인데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럼 슬슬 출발하도록 하죠. 방향은 여기서 북동쪽. 거리는 대략 3km 정도입니다.”

“그 사이 그것밖에 못 도망친 걸 보면 확실히 몸 상태가 말이 아닌가 보네요. 빨리 가요.”

“알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무슨 약속이요?”

“만약 놈을 죽이는 과정에 목격자가 발생할 것 같고, 저 혼자서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놈이 약해진 상태라면. 아현 씨는 뒤로 빠져주세요. 굳이 아현 씨까지 살인죄를 뒤집어쓸 이유는 없으니까.”

“……상황 봐서요.”

안수호는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말 출발해야 할 때였다. 그가 한겨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겨울 학생. 탈출한 괴수들이 이쪽으로 올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다른 적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한겨울 학생은 다른 두 사람을 곁에서 지켜주세요. 부탁하겠습니다.”

안수호가 한겨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설아현과 함께 떠나려 했다.

“아……. 저기…….”

허나 그때 한겨울이 안수호를 붙잡았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안수호는 친절하게 되물었다.

“왜 그러죠?”

“그게, 저도…….”

자신도 함께 가면 안 되겠느냐고.

한겨울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말을 도로 삼키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안수호와 함께 가고 싶다. 자신도 그의 힘이 되어주고 싶다.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에 그래야 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그럴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한겨울은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결국 그녀는 안수호를 잡았던 손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하던 안수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돌렸다.

“예. 조심히 다녀오겠습니다.”

­타앗!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무너진 주차장 위로 뛰어올랐다. 한겨울은 그런 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정쩡하게 뻗은 손을 꼼지락거리다 이내 고개를 떨궜다.

“…….”

그리고 한여름은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