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08화 (209/266)

〈 208화 〉 207. 죽음의 문턱에서

* * *

­투타타타타타타.

연구소 상공에 체공하고 있는 두 대의 헬리콥터.

곧 두 헬리콥터의 문이 동시에 열리더니 13명의 초인들이 헬리콥터에서 연구소 옥상으로 뛰어내렸다. 옥상에서 헬리콥터까지는 거의 20미터 가까이 되었으나 그들의 움직임에는 한 점 망설임조차 없었다.

“연구소 안의 상황은 어떤가요?”

선두에 선 설아현의 물음에 부하 헌터가 대답했다.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아 파악 불가능입니다. 일단 겉모습을 봐선 괴수가 연구소 바깥으로 탈출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그럼 서둘러서 안쪽 상황을 확인해보죠. 저희는 지금부터 연구소 안으로 돌입, 풀려난 괴수들을 저지하는 한편 생존자의 안전을 확보하겠습니다. 4팀은 대피소로. 5팀은 격리구역으로 출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주님께선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는…….”

그 말에 설아현이 입술을 잘근 씹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저는 잠시 바깥 상황을 살핀 뒤, 곧바로 5팀과 합류하겠습니다. 전 신경 쓰지 말고 먼저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다들 들었지? 각자 위치로!”

“위치로!”

일사불란하게 명령받은 위치로 향하는 헌터들.

설아현은 그들이 옥상에서 다 내려가기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단축키 0번으로 지정된 안수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르르.

그러나 돌아오는 건 무미건조하게 길게 이어지는 신호음뿐.

호송 차량에 오른 안수호가 핸드폰을 들고 탔을 리가 없다. 그 사실은 설아현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전화를 건 것은 순전히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수호 씨. 제발 무사히 있어줘요…….’

그녀가 이곳에 온 건 연구소 내 연구원들의 안전 확보와 괴수 저지를 위함.

그러나 설아현의 머릿속에는 출발 순간부터 지금까지 안수호의 안위밖에 없었다. 그녀는 본래 공과 사가 확실한 성격이었으나, 어째서인지 안수호와 관련된 일에 대해선 유독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다.

‘우선 연구소 외부에 습격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어. 수호 씨는 아마 격리구역에 이송됐을 테니까. 그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 설아현이 5팀과 합류하려던 순간이었다.

­콰과과아아아아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설아현의 뒤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연구소 외벽 근처의 지면이 통째로 뒤집힌 채 거대한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

­타앗!

그 순간 설아현은 곧바로 폭발 현장으로 향했다. 그녀의 본능이 안수호가 저곳에 있을 거라고 끊임없이 충동질했다.

­키이잉.

달려가던 도중 그녀의 눈이 붉게 물들며 미래를 엿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건 오직 화염, 화염, 그리고 또 화염뿐. 이에 초조해진 설아현이 달려 나가는 발걸음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화르르르륵.

그런 그녀의 앞에 이윽고 펼쳐진 건 미래시로 엿본 것과 동일한 풍경이었다.

작열하는 화염에 휩싸인 지하주차장.

폭발로 인해 천장이 통째로 날아가 훤히 드러난 그 풍경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문자 그대로 미사일이라도 얻어맞은 듯한 그 모습에 설아현이 다급히 아래로 내려갔다.

“수호 씨! 수호 씨이이!!”

절박한 표정으로 외치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녀의 한쪽 눈은 끊임없이 미래를 엿보았다.

그녀의 능력은 자신이 볼 미래의 풍경을 앞당겨 보는 미래시. 심지어 그 범위는 1분 정도에 불과하다. 즉 1분 뒤의 그녀가 안수호를 찾지 못한다면 미래시로도 그를 찾아낼 수 없었다. 설아현은 오늘따라 유독 자신의 초능력이 야속했다.

“콜록. 다들, 다들 괜찮으십니까?”

그때 불꽃 저편에서 들려온 남성의 목소리.

설아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염으로 달려들었다.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살갗을 할퀴었지만 아랑곳 않고, 마침내 불꽃의 벽을 넘어선 그녀의 눈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얼음.

그곳에는 차가운 냉기를 머금은 거대한 빙벽이 성벽처럼 우뚝 서있었다. 주변에 몰아치는 불꽃으로부터 무언가를 지켜내겠다는 듯이.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빙벽의 뒤에는 두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이 있었으나.

“네. 저는 괜찮아요. 소장님은요?”

“콜록. 열기랑 연기 때문에 힘들긴 해도 멀쩡합니다. 다 한여름 아가씨 덕분입니……콜록!”

그 남성은 설아현이 찾던 이가 아니었다. 연구소장의 말에 한겨울에게 기대어 주저앉아있던 한여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알면 됐어요. 제가 지금 소장님까지 지키려고 무리해서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그러게 눈치껏 바로 옆으로 붙으셔야지, 왜 그렇게 떨어져 계셔선…….”

“죄, 죄송합니다. 워낙 전투가 살벌해서 그만 발이 굳었지 뭡니까.”

“저기요!”

그런 세 사람을 향해 설아현이 다급히 외치며 뛰어갔다. 갑작스런 그녀의 등장에 그들이 놀란 것도 잠시, 이내 한여름이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괴수 격리 지원으로 오셨나 보네요. 서울에서 여기까진 꽤 거리가 있을 텐데. 참 빨리도 오셨­”

“수호 씨는요? 수호 씨는 어디 있어요?”

“그 사람이라면 저 불꽃 속에 있을 거예요. 동생의 공격에 정통으로 휩싸였으니까. 뭐, 직전에 자기 초능력이랑 아티펙트로 방어했으니 살아는 있겠죠.”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여름 씨 동생분이 수호 씨를 공격했는데요? 도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그게?”

당황해서 말을 떠는 설아현에게 한여름이 상황을 설명했다. 성유진이 연구소를 습격한 것. 괴수를 풀어준 것도, 직원들을 죽인 것도 다 그의 짓이라는 것. 그리고 성유진과 방금까지 여기서 싸우다,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안수호가 미끼 역할을 자처한 것까지.

“아, 안 돼…….”

설아현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저앉은 건 한여름으로부터 안수호가 성유진을 붙잡아두기 위해 오른팔을 희생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녀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던 그 미래의 장면이 또다시 떠올랐다.

어두운 주차장. 오른팔을 잃은 채 벽에 기대어 쓰러져 있는 안수호. 그리고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자신과 한씨 자매.

설아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이 활활 타올라 밝기는 했지만 이곳은 지하주차장. 게다가 인원 구성까지 정확히 일치했다.

“……그 사람이 어지간히도 걱정되나 보네요.”

그때 한여름이 한겨울의 부축을 받아 일어서며 물었다. 그녀가 주변 풍경을 한 번 쭈욱 훑어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래서야 그 사람을 찾고 싶어도 못 찾겠어요. 참나, 언니가 돼서 동생이 저지른 일 뒤처리나 하는 신세라니…….”

­까드드드드등!!

다음 순간, 한여름을 중심으로 지면이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얼음이 타오르던 불꽃들을 집어삼키고 이내 꺼드렸다.

“으으…….”

임시방편식의 진화작업을 마친 한여름이 다시금 털썩 주저앉으려던 걸 한겨울이 가까스로 부축했다. 그녀가 여동생의 가슴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자, 불꽃은 대충 치웠으니까 얼른 찾아봐요. 좀 전까지 저 앞에 있었으니까 아마 근처 어딘가에 있을 텐­”

­타앗!

한여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아현이 맹렬한 기세로 뛰쳐나갔다.

그녀가 향한 곳은 주차장 반대편 끄트머리의 벽면. 아직 천장이 약간 남아있어 그늘진 구석이었다. 안수호는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거기까지 날아가 박힌 것이었다.

“수호 씨!”

급하게 외친 설아현의 표정이 이내 와락 일그러졌다. 곧 한겨울이 언니를 부축한 채 그녀의 뒤로 따라붙은 순간, 설아현은 강렬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결국 이렇게…….’

안수호는 그늘진 벽에 기댄 채 쓰러져 있었다. 오른팔은 어깻죽지에서 떨어져나가 어디에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전신의 피부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으며 쓰러진 그의 주변에는 은색 액체덩어리들이 맥없이 흩어져 있었다.

‘결국 이렇게 돼버렸어…….’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모습은 설아현이 미래시로 엿본 풍경과 일치했다. 순간 무릎의 힘이 빠진 설아현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덜그럭.

그 순간 외투 주머니에서 느껴진 이물감.

­타앗!

다음 순간 설아현이 헐레벌떡 일어서 안수호에게 다가갔다.

‘정신 차려! 이렇게 될 걸 대비해서 미리 준비해뒀잖아!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설아현의 코트에서 흰색 액체가 담긴 병을 꺼냈다. 그걸 본 연구소장이 경악에 찬 눈으로 외친다.

“에, 엘릭서?”

그 병의 정체는 포션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통하는, 이른바 ‘엘릭서’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기초적인 양산 단계에 접어든 다른 포션들과 달리, 오직 던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이 엘릭서는 대상이 죽지만 않았다면 어떠한 상처도 말끔하게 치료해낸다. 때문에 이름난 S급 길드인 흑룡회조차 엘릭서는 단 하나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설아현은 바로 그 엘릭서를 길드 사람도 아닌 외부인에 불과한 안수호를 위해 쓰려 하고 있었다.

‘일단 살아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해. 맥박, 호흡, 그리고, 그리고 또…….’

급한 마음에 우왕좌왕하던 설아현은 이내 안수호가 아직 아슬아슬하게 살아있음을 알아차렸다. 호흡은 당장이라도 꺼질듯 얕고 맥박은 한없이 미약했지만, 살아만 있다면 엘릭서로 얼마든지 살려낼 수 있었다.

“잠깐만요. 그 사람. 그대로 살렸다간 평생 외팔이에요. 일단 떨어져나간 팔부터 찾아야­”

“그럴 시간 없어요!”

설아현이 보기에 안수호의 상태는 1초를 다투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느긋하게 어디 있을지도 모를 팔을 찾을 시간은 없었다. 헌터들 중에 외팔이 드문 것도 아니고, 분명 안수호도 자신의 결정을 이해해주리라.

­찰팍.

그러나 그 순간 그들의 뒤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인가 싶어 황급히 돌아본 그들은 곧 자그마한 은빛 여자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찰팍. 찰팍.

­파, 팔. 여기, 여기 있어요…….

한여름과 설아현은 그 여자아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실비. 안수호의 오른팔에 깃들어있던 그 여자아이가 지금, 다 타들어가 숯검댕이처럼 변한 오른팔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무언가 문제가 생겼는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몸이 무너져내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몸 따위 아랑곳 않은 채, 마치 그것이 귀중한 보물이라도 된다는 듯 소중히 끌어안고서.

­팔. 여기. 주인님. 죽으면 안, 안 돼요. 나도. 나도 죽고 싶지. 않아요. 그치만. 주인님이 다른. 다른 사람한테 기생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아…….

안수호를 불꽃의 열기로부터 보호하는 데에 품고 있던 모든 마력을 쏟아붓고, 심지어 그와의 연결마저 끊어진 실비는 금방이라도 활동이 정지할 위기였다. 눈앞에 있는 다른 초인에게 달려들면 연명하는 거야 어렵지 않으나, 실비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떨고 있는 와중에도 안수호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런 실비의 충성심은 더 이상 이전처럼 공포에 기반한 굴종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만일 안수호가 깨어있었다면 그 변화를 단번에 알아차렸겠지만, 아쉽게도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초인들은 실비와 안수호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은 주인을 극진히 생각하는 아티펙트가 주인을 위해 행동했구나, 정도로 짐작할 뿐.

“겨울 씨! 팔을!”

한겨울에게서 팔을 건네받은 설아현이 절단면을 중심으로 엘릭서를 부었다. 그리고 절반 쯤 붓다가 나머지는 천천히 그의 입에 흘려넣었다. 입술 사이로 귀한 엘릭서가 새지 않도록, 아주 세심하게.

“어, 어어?”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엘릭서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떨어져나간 오른팔도, 전신에 가득한 상처도, 화상자국도 그대로. 물론 안수호의 감긴 눈 또한 전혀 뜨여지지 않았다.

“어째서? 에, 엘릭서를 쓰면, 죽지 않은 이상 무조건 살릴 수 있을 텐…….”

그 순간 뇌리를 강타하는 불길한 예감에 설아현이 곧바로 그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댔다. 곧 그녀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진다.

“이, 이럴 수가…….”

심장박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호흡 또한 멈춰있다.

설아현은 떨리는 손으로 안수호의 몸을 만졌다. 분명 따듯한 온기가 아직도 남아있었건만, 안수호의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약한 생명의 불씨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불씨마저 다 꺼져버린 것 같았다.

“아니야. 이럴 리가. 이럴,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없는데. 결국, 결국 막지 못했어. 내가, 곁에 없었기 때문에. 다 나 때문에…….”

그 절망적인 현실에 설아현의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떨어지는 눈물과는 반대로, 가슴에선 찐득한 자책과 회한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은 분명 미래를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될 줄을 알고 있었는데.

안수호가 여일과 협상에 성공했다는 소식만으로 안일하게 안심해버려선, 결국 이렇게 안수호가 죽어버리는 결말을 막지 못했다고.

그럼에도 안일하게 대처해서. 결국 안수호가 죽는 미래를 막지 못하게 되었다고.

“그런……. 거짓말, 이죠? 수호 씨? 일어나 봐요. 장난치지 말고요. 네? 제발요…….”

잠든 사람을 흔들어 깨우듯 설아현이 안수호의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맥없이 흔들리기만 할뿐, 그녀의 손에는 어떠한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죽었, 어? 죽었다고? 정말 죽은 거라고……?”

한편 한여름은 그런 설아현의 모습을 보며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안수호가 죽을 리가 없다. 그녀는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껏 만났던 안수호라는 남자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성격에, 사소한 것 하나에도 칼같은 잣대를 들이밀며 자신의 손해를 피하려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두고 미끼 역할을 자처할 리가 없다. 그러니 동생의 공격에 휘말리더라도 좀 다치고 알아서 잘 살아남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으나 눈앞의 결과는 그녀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목석처럼 축 늘어진 안수호의 모습에 한여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죽였어.’

그리고 그녀를 부축하고 있던 동생, 한겨울은.

‘죽였어. 죽여버렸어. 내가, 내가 그를 죽인 거야.’

한겨울은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에서 쏘아낸 불꽃이 안수호를 죽였다.

안수호가 그녀에게 쏘라고 명령했던 건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불꽃에 의해 사람이 죽었다. 오직 그 사실 하나만이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 차 그녀의 양심과 정신을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분명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어째서­’

아니, 안수호는 단 한 번도 괜찮을 거라 말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저 한겨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을 뿐. 자신이 불꽃을 버텨낼 수 있으리라 공언한 적은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한겨울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했다.

“안 돼. 안 돼……. 안, 돼…….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죽으면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던 한겨울은 자신에게 기대고 있던 언니를 생각해 가까스로 버텨냈다. 그러나 몸이 서있다 한들 마음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뒤였다.

그런 무녀저가는 마음의 한 켠에서 피어오른 생각.

아, 이제 그에게 랭킹전 결과를 알려줄 수도 없겠구나.

안수호가 죽었다, 라는 사실에 비해 아무래도 좋을 법한 사소한 일. 그러나 한겨울은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가슴이 찢어지고 미어지는 것 같았다. 스스로도 왜 그렇게까지 랭킹전에 의미를 두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사실이 사무칠 정도로 아쉽고, 애틋할 정도로 슬플 뿐이었다.

­주륵.

이내 한겨울의 눈가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열하는 설아현과는 달리 흐느낌 하나 없이, 고요하게 흘러내리는 눈물.

그 눈물은 그녀의 불꽃처럼 따스함을 품고 있었다.

“제발, 제발 일어나 봐요 수호 씨. 부탁할게요. 이렇게 부탁할 테니까……. 제발 눈 좀 떠줘요……. 네에……?”

설아현의 부름에도 안수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심장이 멎고 호흡이 멈춘 그의 몸은 오감조차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설아현의 애절한 부름조차 죽어가는 그의 의식이 느끼기엔 깊은 수면 아래서 물 위의 소리가 전해지는 것처럼 먹먹할 뿐이었다. 외부의 자극이란 결국 오감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그 순간.

­띠링!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그 어느 감각과도 상관없는 청명한 알람이 그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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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을 초월한 일련의 텍스트가 그의 뇌리에 직접 때려박혔다. 그 강렬한 자극에 순간 죽음의 늪에 빠져있던 그의 정신이 아주 잠깐 수면 위로 올라섰고.

­우득. 우드득.

직후, 그의 전신에 스며든 엘릭서가 그제야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갑작스레 전신의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하자 설아현이 울다 말고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황한 건 나머지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수호의 신체는 엘릭서의 효과에 의해 빠르게 원형을 되찾아갔다. 잘려나갔던 오른팔을 포함해서.

“……허억!!!”

곧 안수호가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상체를 일으킨다. 흐려졌던 시야가 선명해지고, 이내 그의 시야에 얼굴 꼴이 말이 아닌 세 여인과 한 명의 남성이 잡혔다.

안수호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한여름과 한겨울은 무사하다. 연구소장도 멀쩡히 서있다. 설아현이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일단 자신의 편이다. 그리고 저들이 방금 깨어난 자신을 기다리듯 내려다보고 있다는 건 즉, 성유진이라는 위기 상황이 확실하게 해결되었다는 것이리라.

“……보아하니 제 작전이 성공한 것 같군요.”

이에 안수호가 멋쩍은 웃음과 함께 그렇게 말했고.

“으아아아아앙 수호 씨이이이!!”

다음 순간 설아현이 대성통곡하며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미안하다고, 자신이 곁에 있어줬어야 했는데 안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그렇게 자신을 자책하며 엉겨붙는 설아현의 모습에 안수호가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상황을 짐작하곤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모습에 한여름이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다.

“……어머, 세상에. 설마설마 했는데 당신이랑 흑룡회주가 그런 사이였을 줄은. 어쩐지 제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도 넘어오질 않더니만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한여름의 핀잔에 안수호가 멋쩍은 웃음으로 답했다.

한편 그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보고 있던 한겨울은 복잡한 심정이었다. 안수호가 되살아난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으나,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있는 설아현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선 아직 본인조차 명확한 답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현 씨. 그만 우세요. 제가 뭐 죽다 살아난 것도 아니고. 뭘 그리 호들갑이십니까.”

“죽다! 죽다 살아났, 흐끅! 진짜 죽다 살아났다구요! 그치만, 그치만 정말 다행이에요…! 다시 살아나서 다해, 다행, 으헤에에엥……”

“아주 깨가 떨어지겠네요. 이봐요 흑룡회주. 슬슬 떨어지지 그래요? 그 사람이 아직 완전히 회복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맞아요. 얼른 떨어지세요.”

그 혼란스러우면서도 평화로은 광경을 연구소장은 한 발자국 떨어진 위치에서 관망했다. 일반인의 몸으로 짧은 시간에 워낙 많은 일을 겪어 어지럽긴 하였으나,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찌되었든 일단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러나 다음 순간, 연구소장의 표정에 불길한 감정이 스쳤다. 곧 빠르게 주위를 둘러본 그의 표정이 더더욱 경악에 물든다.

“……여러분. 큰일났습니다.”

그 말에 안수호를 포함한 네 사람이 연구소장을 올려다보았다. 성유진도 쓰러뜨렸고 다 끝났는데 도대체 뭐가 더 남았냐며.

그런 그들에게 연구소장이 조심스런 눈치로 말했다.

“시체가, 시체가 안 보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 성유진이라는 사람의 시체가 도통 보이질 않아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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