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04화 (205/266)

〈 204화 〉 203. 비상사태(2)

* * *

제3 격리연구소 비상사태 발령으로부터 25분.

“2구역 전체 클리어. 3구역으로 진입합니다.”

­확인했다. 대피소는 현재 이상 무. 지원이 필요하면 무전하도록.

일련의 무전이 오고간 뒤 경비대 진압팀은 재차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그들은 현재 1구역부터 순서대로 탈출한 괴수들을 재격리하는 중이었다. 헌데 아직 작전 개시로부터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벌써 4개 구역 중 2개 구역의 재격리를 마쳤다.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한여름 씨. 한여름 씨 능력 덕분에 괴수들 생포가 한결 수월해졌네요.”

그것이 가능했던 건 전적으로 진압팀에 합류한 S급 초인, 한여름 덕분이었다. 투명한 얼음조각과 허연 서리가 가득한 복도를 지나며, 한여름이 겸손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별 거 아니에요. 여기는 우리나라 괴수 연구의 최전선인데 도울 수 있다면 당연히 도와야죠.”

한여름의 능력은 동생 한겨울과 달리 이번 작전에서 그야말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괴수의 등급이 C급 이하라 해도 괴수의 생포는 단순 사살과 차원이 다른 난이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한여름의 빙결능력은 날뛰는 괴수들을 순식간에 얼려 격리실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일단 격리해두기만 하면 얼음은 시간이 지나서 알아서 녹으니 따로 후처리할 필요도 없었으니, 진압팀 입장에선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능력이었으리라.

“이 아래 3구역부터는 A급 괴수들도 나온다고 그랬죠?”

“예. 3구역에 격리된 괴수는 B급 괴수가 9종류 25개체, A급 괴수가 4종류 4개체입니다.”

“그중 특히 까다로운 놈은 3­00858, ‘라이덴자루’라는 괴수입니다. 일본에서 넘어온 원숭이처럼 생긴 괴수인데 꼬리에 두른 2억 볼트의 번개를 사방으로 뿜어대는 흉악한 놈이죠. 아마 발전용도로 써먹을 수 없나 연구하던 놈일 겁니다.”

“놈이 격리되어 있던 곳은 비상계단 바로 옆이라, 어쩌면 계단에서 마주치거나 아래로 내려갔을지도 모르겠군요.”

다음 구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진압팀은 비상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비상계단이라곤 해도 격리구역 하나가 최소 건물 15층 높이는 되는지라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유사시에 죄다 터뜨려 묻어버리기 위함, 이라고는 해도 정말 무지막지하게 깊네요.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이 거의 지하 100미터가 넘는다는 거죠?”

“얼추 그 정도 될 겁니다. 4구역의 최저 심도가 지하 220미터니까요.”

“이렇게 깊어서야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들 바깥으론 하나도 새어나가지 않겠네요.”

한여름의 말에 진압팀 대원들이 저마다 불편한 웃음을 지었다. 제3 격리연구소에 관한 음모론은 세간에 알음알음 퍼져있었으며, 그 음모론들이 전부 음모론에 불과한 건 아니었으니까.

하다못해 평범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곧바로 부정했겠지만 상대는 그 한여름. 연구소장과도 직통으로 라인이 연결되어 있는 그녀의 능청에 진압팀은 웃음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바로 그때.

­치지직. 치직. 여기, 는 호위팀! 여기는 호위팀! 비식별 괴수 출현! 지금 대피소가 공격당하고 있다!

다급하게 울린 무전에 아래로 향하던 진압팀이 정지했다.

“괴수라고? 우리가 위에서 빼먹은 게 있었나?”

“그럴 리가. 구역 별로 재격리를 마친 뒤 최소 두 번씩은 확인했어. 빼먹은 놈이 있을 리가 없는데.”

“설령 빼먹었다 해도 1, 2구역에 있던 놈들이면 기껏해야 B급. 호위팀 쪽에서 잘 막아주겠지.”

“그렇지만 비식별 괴수라면서요? 저희 중에 여기 격리된 괴수 못 외운 사람 한 명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비식별이라 하는 걸 보면…….”

사방이 괴수들인 지하에 고립된 대원들에게 있어 동요는 가장 큰 적이다. 때문에 그들은 애써 태연한 척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럼에도 그들 사이에는 서서히 불안감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여기는 진압팀. 호위팀은 습격한 괴수의 상세 정보 파악하여 답신해주기 바람. 또한 지원이 필요할 경우 즉각 응답할 것. 이상.”

불안한 마음에 무전을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초조해진 대원이 무전기를 붙들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여기는 진압팀. 호위팀은 무전 듣는 즉시 응답 바란다. 이상.”

짧은 무전 후 한참동안 이어지는 침묵. 이번에도 답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쯤 되자 진압팀 대원들도 슬슬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다.

“……과장님. 어떡하실 겁니까? 이건 아무래도 일단 올라가보는 편이 맞는 것 같은데요.”

대원의 질문에 진압팀의 리더를 맡고 있던 과장이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에서 설치고 있을 괴수들을 격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이 먼저였으니까.

“전원 주목. 우리는 지금부터 계단을 거슬러 올라 대피소로 향한다. 전원 경계 태세 3단계로 유지한 채 이동하도록. 김 대리 자네는 계속 호위팀에게 무전 시도해보고.”

“저 과장님, 그럼 아래 계신 소장님은 어떻게……. 차라리 인원을 나누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과장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인원은 나누지 않는다. 위쪽의 상황이 불명인 이상 불필요하게 전력을 나눠선 안 돼. 소장님께서 아무리 상급자시라 한들, 대피소에 있을 수많은 사람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설령 인원을 나눈다 해도 이 아래부터는 3구역. 적은 인원으로 재격리를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소장님 구출울 우선시한다 해도 퇴각로의 괴수들을 재격리하지 않은 채 내려갔다가 앞뒤로 갇힐 수도 있지.”

고로 위쪽 상황부터 정리하고 다시 내려오는 게 최선이라고.

과장은 평소부터 철저하게 원리원칙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연구소에서 가장 높은 자라 할 수 있는 연구소장이 걸린 지금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진압팀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지상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들 중 몇몇은 아래에 고립되어 있을 소장이 걱정인 듯 싶었지만, 한여름은 그들의 걱정이 기우로 끝날 거란 확신이 있었다.

‘아래에는 그 사람이 있으니까. 소장 한 명 정도야 잘 지켜내면서 알아서 올라오겠지. 문제는 위쪽의 상황인데…….’

갑작스레 등장한 비식별 괴수. 한여름 본인조차 그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란 건 잘 알고 있었다.

풀려난 괴수는 죄다 격리했고 주변에서 게이트가 넘친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어디서 괴수가 나온단 말인가?

‘뭐가 됐든 지상에 올라가면 답을 알 수 있겠지.’

한여름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녀는, 그리고 진압팀은 보다 빨리 그 답과 마주하게 되었다.

­쿵. 쿵. 쿵. 쿵. 쿵.

계단 위쪽에서 울려퍼지는 빠른 발소리에 진압팀 전원이 정지했다. 장소는 1구역과 2구역 사이. 깊이로 대략 60미터 지점.

­쿵. 쿵. 쿵. 쿵! 쿵!!

발소리는 점차 빨라지며 가까워졌다. 육중한 울림은 도저히 인간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과장은 대원들에게 계단 모퉁이에 총구를 겨눈 채, 언제든지 사격할 수 있도록 대기하라 명령했다.

그리고 그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팟!

모퉁이에서 검은색 형체 하나가 튀어나왔다. 척 봐도 3미터는 넘어 보이는 그 모습에 과장은 지체하지 않고 외쳤다.

“쏴라!!!”

­타다다다다다당!!

어두운 계단에 선홍빛 화염이 빗발쳤다. 그러나 날아간 총알은 한발 늦게 애먼 벽과 계단에만 박힐 뿐이었다. 튀어나온 형체는 중력을 무시한 채 벽을 바닥삼아 밟고 달리며 순식간에 경비대에게 달려들었다.

“저건…!”

과장은 실시간으로 가까워지는 형체를 그제야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의 정체는 늑대였다. 일반적인 늑대보다 훨씬 큰, 전신이 칠흑빛 털로 뒤덮인 거대한 늑대. 붉게 타오르는 안광은 꼭 피웅덩이를 보는 것 같았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는 진짜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물론 그 늑대의 피는 아니었다.

­타다다다다당!! 타당! 타다당!

날아간 총알들은 전부 늑대의 털가죽을 뚫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몇몇 대원들이 뒤늦게 초능력을 쓰려 했으나 늑대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것은 이미 가장 선두에 있던 과장에게 달려들어, 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까드드드드등!!!!

허나 직후 피어오르는 순백의 꽃.

지면에서 피어오른 날카로운 얼음송곳 다발에 달려들던 늑대가 주춤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벽과 바닥을 박차며 방향을 꺾은 늑대가 과장의 옆에 있던 대원의 목을 문 채 계단 저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콰득!

늑대가 거대한 턱을 다물자 대원의 몸이 반으로 으깨져 바닥에 떨어졌다.

“김 대리!”

과장의 외침이 허망하게 계단에 울려 퍼졌다. 늑대는 그런 그에게 보란 듯이 죽은 대원의 상반신을 밟아 짓이겼다. 그 주둥이에서 비웃는듯한 울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저 개자식이!!”

“진정해요 과장님. 무턱대고 달려들면 안 될 상대니까.”

부하의 죽음에 눈이 돌아간 과장을 한여름이 만류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도 냉철함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기실 그 침착한 얼굴 뒤에선 그녀 또한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내 얼음이 통하지 않았어.’

방금 전, 한여름은 자신의 공격이 늑대의 목과 가슴에 적중한 걸 분명 두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날카롭게 벼려낸 얼음송곳은 대원들이 쏘아낸 총알과 마찬가지로 늑대의 털가죽을 뚫지 못했다. 기껏해야 그 돌진의 기세를 죽이고 잠시 주춤하게만 했을 뿐.

‘1구역이니 2구역이니 하는 수준이 아니야. 저건 최소 S급 괴수. 장담하는데 지금 풀려난 그 어떤 괴수들보다도 강한 놈이겠지.’

그렇지만 그런 괴수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한여름은 머릿속에 의문을 가득 띄운 채 칠흑의 늑대를 노려보았다. 때마침 늑대 또한 자신에게 비수를 들이댄 한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그리고 다음 순간, 한여름의 의문은 당황으로 바뀌었다.

늑대와 자신의 눈이 마주친 순간, 어째서인지 늑대가 자신의 눈을 피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서.

‘잠깐, 그러고 보니 늑대라면………………설마?’

이윽고 그녀가 마침내 하나의 답을 도출해내려 하려던 순간, 칠흑의 늑대가 계단을 박차 뛰어올라왔고.

다음 순간, 비상계단에 피바람이 휘몰아쳤다.

***

한편 그 시각. 4구역 비상계단 근처에 있던 한 격리실.

­호으에으에에에에…….

“으그그그그극…….”

안수호는 격리실 벽에 기댄 채 덜덜 떨리는 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 옆에선 실비가 거의 액체 상태로 풀어진 채 골골대며 신음했다.

“이봐요 소장님. 전기 공격하는 괴수 이 구역엔 없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방금 그 원숭이 자식은 뭡니까?”

“……3구역에 격리되어 있던 ‘라이덴자루’라는 괴수입니다. 설마 그놈이 여기로 내려왔을 줄은…….”

“우리 애는 다른 건 몰라도 전기에는 완전 쥐약이라고요. 미리 말씀 좀 해주셨으면 대비라도 했을 텐데……”

입으로는 우리 애니 뭐니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지만, 기실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제3 격리연구소의 격리구역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중앙통로와 그로부터 뻗어나간 수많은 격리실로 이루어져 있다. 유사시를 대비해 통로에서 각 격리실까지는 최소 3개의 모퉁이를 돌아야 하며, 중앙통로 또한 일직선은 아니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아티펙트가 보관된 격리실들을 징검다리 삼아 생각보다 쉽게 비상계단 쪽으로 향할 수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실비의 유일한 약점이다시피 한 전기를 다루는 괴수를 만난 게 문제였지.

‘실비. 상태는 좀 어때.’

­좋지 않아요. 배고프고. 힘들고. 아파요.

‘더 싸울 수 있겠어?’

­힘들고 아프지만 주인님의 명령이라면 힘내서 싸워볼게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솔직히 실비 무리에요. 찌릿찌릿 너무 많이 맞아서, 조금 쉬어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쉰다면 얼마나?’

­30분 정도…?

30분.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안수호에게 있어선 마냥 기다리기 힘든 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야 구석에 떠올라 있는 퀘스트 알림은 그의 초조함을 한없이 배가시키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한여름하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가 벌써 몇 번이고 통화를 걸어보았지만 한여름은 도통 받지를 않았다. 그녀뿐 아니라 소장의 다른 부하들도 마찬가지.

전화가 먹통이 된 건 아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깊이 200미터의 지하긴 하였으나 모든 구역에는 자체 기지국이 설치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들이 괴수에 의해 파괴되었을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안수호의 사고는 계속 최악의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공격 때문에 그 아티펙트의 전투능력에 문제가 생기신 것 같군요.”

낯빛이 어둡던 안수호를 보며 소장이 말했다.

이곳에 오기 전, 소장은 안수호에게 왜 그렇게까지 위로 올라가려 하느냐 물었다. 그에 대해 안수호는 위쪽에 두 학생들이 있으며, 자신은 아카데미 경비대라 그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만 답했다.

일견 빈말로 들릴 수 있는 답이었으나 안수호의 말에선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것이 퀘스트 페널티에 의한 죽음이 두렵기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경비원으로서의 사명감이 피어오른 것인지 소장으로선 구분할 길이 없었다. 때문에 그 질문을 던진 이후 소장은 단 한 번도 안수호에게 그냥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자 건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투철한 직업정신을 보인 그를 보며 속으로 감동까지 했을 정도였다.

“전투기능이 회복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30분…… 정도라고 하는군요.”

“30분이라…….”

그렇기에 소장은 지금 안수호가 얼마나 애가 타고 있을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이에 그가 고민 끝에 안수호에게 말을 건냈다.

“……정 급하시다면 비상계단 말고 길이 하나 더 있긴 합니다. 게다가 괴수 한 마리 없는 안전한 길이죠.”

“뭐라고요?! 그런 길이 있었으면 왜 그걸 이제야 말하는 겁니까!”

“그 길이 평범한 길이 아니니까요. 사실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만…….”

말끝을 흐린 소장이 격리실 구석을 가리켰다.

“저기 제일 구석 천장에 작게 난 구멍 보이십니까?”

소장이 가리킨 건 일자형 슬릿이 길게 뚫린 환풍구였다. 슬릿 하나의 폭이 2cm도 안 되어 도저히 사람이 지나갈 수준이 아니었으나…….

“겉보기엔 저렇지만 앞에 뚜껑만 뜯어내면 사람 하나가 족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나올 겁니다. 괴수들이 격리된 곳은 환풍구까지 철저하게 막아두었지만, 여긴 아티펙트 격리실이니까요. 이동에 무리는 없을 겁니다.”

“환풍구는 지상까지 연결되어 있는 거겠죠? 그럼 얼른 저쪽으로 갑시다!”

“지상까지는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수직 방향으로 200미터 일직선으로 뚫려 있다는 거죠. 당연히 환풍구 안에는 손잡이조차 없습니다. 초인이신 안수호 씨라면 그래도 어렵지 않게 오르실 수 있겠지만, 일반인인 제겐 무리입니다.”

격리구역의 환풍 시스템은 각 구역 별로 독립되어 있으며 5개 구역 전체를 잇는 커다란 수직 통로가 길게 뻗어 있었다. 그것이 소장이 말한, 지상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길이었다.

“아니, 그럼 그쪽으론 갈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왜 굳이 말을 하는­”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불가능하지요. 그렇지만 안수호 씨라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말씀드린 겁니다. 학생들의 안위가 걱정된다면 저를 여기 두고 먼저 올라가시는 방법도 있다는 걸요.”

그 말에 안수호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소장님을 여기 두고……말입니까?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그랬다가 소장님께서 잘못되시기라도 하면……!”

“말씀드렸잖습니까. 격리실 문은 인터페이스로 자체 개폐가 가능하다고. 안수호 씨께서 먼저 올라가신다면 저는 여기서 문을 닫고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됩니다. 다행히 여기 있는 아티펙트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종류라서요.”

소장이 격리실 중앙에 있는 강화아크릴 케이스를 가리켰다. 그 안에는 특이한 디자인의 유리병에 담긴 녹색 액체가 있었다.

“격리 번호 4­00399. 남성 초인이 마시면 단번에 A급 초인 수준으로 강해지는 대신 평생 대머리에 성불구자가 되는 비약입니다. 어떻게든 부작용 없이 강화 효과만 빼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고 있었죠. 정 위험해지면 저거라도 꺼내 마시면 되니, 안수호 씨께선 제 걱정 마시고 올라가보셔도 됩니다.”

아티펙트의 성능에 대해선 일단 차치하고, 안수호는 소장의 제안에 깊게 고민했다. 그의 말마따나 소장을 여기 두고 간다 해서 그가 죽게 될 가능성은 낮았다. 반면 환풍구를 이용한다면 안수호는 훨씬 빠르게 지상에 도착해 한겨울과 한여름의 안위를 확인할 수 있다.

“…………소장님, 저는…….”

“망설이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제 어디서든 학생들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 그게 당신께서 말씀하신 경비원의 역할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올라가보시죠. 저는 여기서 부하 경비대원들이 절 구하러 오는 걸 기다리겠습니다. 부하의 능력을 믿고 기다려줄 수 있는 것 또한 연구소장의 덕목이니까요.”

일견 부드럽게 말하곤 있지만 안수호는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흉악한 괴수들 틈바구니에 혼자 남겨진다는데 왜 두렵지 않겠는가. 심지어 소장은 일반인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장이 환풍구의 존재를 알려주며 얼른 올라가보라 독려하는 건, 학생들을 걱정하는 안수호의 모습에 소장이 나름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은연중에 짐작한 안수호는 밀려오는 죄책감에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한겨울과 한여름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 물론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그렇지만 그가 이토록 초조해하는 것의 상당부분은 두 학생에 대한 걱정보다도, 페널티에 의한 죽음 때문임이 컸다. 때문에 안수호는 자신을 치켜세우는 소장을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소장이 여기 남는다 해서 안전하리란 보장은 없어. 위쪽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이상 구조를 장담할 수도 없고, 격리에서 풀려난 괴수들이 문을 파괴하고 들이닥칠 지도 몰라. 아티펙트 보관용 격리실은 괴수용 격리실보다 강도도 약할 테니…….’

격리실의 강도는 심증에 불과했지만 안수호는 이대로 소장을 두고 갈 순 없다 생각했다. 허나 1분 1초가 급한 그에게는 환풍구 또한 포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에 안수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잠깐, 200미터짜리 일직선 통로라고?’

안수호의 뇌리에 불현듯 기막힌 아이디어가 찾아왔다.

“결정했습니다. 소장님. 저와 함께 환풍구로 가시죠.”

“안수호 씨. 저는 초인이 아닙니다. 200미터짜리 수직통로를 오를 수 있는 신체능력이 제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아뇨. 괜찮습니다. 소장님은 제가 모실 테니까요. 저한테 업히시면 제가 소장님을 잡은 채 통로를 오르겠습니다.”

“아무리 안수호 씨라도 저를 업은 채 200미터짜리 절벽을 오르는 건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거기는 잡을 곳조차 마땅치 않은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전 손과 발로 통로를 기어 올라갈 생각이 아니니까.”

“예?”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벙찐 소장에게 안수호가 왼손을 들어보였다. 그의 손아귀 안에서 시꺼먼 연기가 작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수직으로 뻥 뚫린 200미터짜리 통로라면서요. 그럼 기어오를 필요 없이, 날아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소장은 더더욱 무슨 말이냐는 듯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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