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03화 (204/266)

〈 203화 〉 202. 비상사태(1)

* * *

연구소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기 아주 약간 전.

연구소 경비책임자 박승윤은 보안실에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직원은 보이지 않았으며, 홀로 선 그의 손에는 USB 하나가 꽈악 쥐어져 있었다.

이곳은 보안 시설인 연구소. 당연하게도 허가받지 않은 저장장치는 연구소 내에 반입이 일체 금지되어 있다. 물론 경비책임자인 그에게 그 작은 USB 하나 반입하는 거야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허나 박승윤은 그 USB 때문에 극도의 긴장감과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고작해야 USB 반입이라는 자잘한 범법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부터 저지르고자 하는, 보다 크고 충격적이며 광범위한 범죄 때문에 그는 고뇌하고 또 고뇌하고 있었다.

박승윤이 바라보는 모니터에는 연구소의 CCTV 화면부터 시작해 온갖 보안 관련 사항들이 빼곡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체계적이고 완벽하게 돌아가는 그 보안 프로그램이야말로 연구소에 격리되어 있는 흉악한 괴수들이 풀려나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지금, 그 안전장치를 단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가 쥐어져 있었다.

이 USB를 꽂기만 한다면 그 순간 연구소 내에 모든 격벽이 열림과 동시에, CCTV를 위시한 모든 보안 프로그램이 일시에 정지된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수많은 괴수들이 일제히 풀려날 터.

박승윤에게는 경비책임자로서 그 상황을 어떻게든 막아야 할 의무가 있으나, 그는 지금 오히려 그 상황을 그 스스로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긴장감과 초조함, 그리고 죄책감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초래할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연구소의 보안 프로그램을 날려버리려는 건 그가 이른바 협박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이혼한 뒤 유일하게 남은 그의 아들을 납치한 의문의 괴한은 그에게 돈도 무엇도 아닌 오직 단 한 번의 배신을 요구했다. 자신이 연락했을 때, 그 USB를 꽂아 연구소의 보안 프로그램을 마비시키라고.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때였다.

‘……괜찮아. 보안 시스템이 해제 되어도 가장 위험한 5구역은 별도 시스템으로 돌아가니까. 4구역 이하 괴수들이라면 경비대가 충분히 초동 대처할 수 있을 거야.’

박승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독인 끝에 마침내 결정했다. 그의 손이 천천히 기판으로 향한다.

고민은 아주 길었지만 실행은 무척 간단했다.

박승윤이 해킹 프로그램이 담긴 USB를 포트에 꽂은 순간, 허가되지 않은 저장장치 연결에 곧바로 경보가 울렸다. 그러나 직후 그 경보를 포함한 모든 보안 프로그램이 차례차례 마비되기 시작했다. 눈앞을 가득 메운 수많은 모니터들이 하나 둘 시퍼런 오류 창을 띄워가기 시작한다.

“…….”

박승윤은 그 모든 과정을 침울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자신이 저지른 죄업을, 협박을 받았다 해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그 배신의 결과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마지막 양심의 발로라는 듯 기판 중앙에 달린 붉은 버튼을 눌렀다.

­애애애애애애애앵!!!!

직후 울리기 시작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박승윤이 보안실을 나섰다.

***

===

[ 긴급 퀘스트 발생! ]

[ 보안 시스템 해킹으로 인해 연구소에 격리되어 있던 괴수들이 일제히 풀려났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의 격리와 실험으로 그들은 분노에 미쳐 있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이빨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 위험한 괴수들로부터 아카데미 학생들을 지켜내세요! ]

[ 현재 연구소 내에 존재하는 아카데미 재학생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한여름, 한겨울 ]

1. 경비율 증가 10% ( 현재 경비율 28% )

===

“이런 씨발.”

오랜만에 보는 퀘스트 알림에 안수호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그런 그의 앞에선 연구소장이 급하게 전화로 상황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가 전화를 끊자 안수호가 곧바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누군가의 소행으로 보안 시스템이 무력화되었습니다. 괴수 격리실의 격벽을 포함해서요. 때문에 1구역에서 4구역까지의 모든 괴수가 지금 일제히 풀려난 상태입니다.”

“보안 시스템이란 게 그렇게 쉽게 무력화되는 겁니까?”

“원래는 안 그렇죠. 이곳 시스템은 외부로부터 완전 단절되어 있습니다. 애초에 해킹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건……. 내부자의 소행이라는 소리일 겁니다.”

“내부자의 소행이라니…….”

국가 연구 기관의 내부에도 여명단의 마수가 뻗친 것인가. 아니면 성유진이 관계자를 매수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안수호는 나름대로 원인을 유추해보았지만 당장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게다가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으니.

“소장님. 혹시 한여름 학생 번호 가지고 계십니까?”

“예. 일단 저장은 되어 있습니다만…….”

“그럼 잠시 전화 좀 빌려주시죠.”

안수호가 전화를 걸자 신호음이 채 3번도 울리기 전에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한여름 학생? 지금 어디 있죠?”

­1층에서 지하 대피소 쪽으로 가는 중이에요. 당신은요?

“4구역에 있는 격리실 중 하나입니다.”

­세상에. 그럼 거기 지금 바깥에 괴수들 돌아다니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 말에 안수호는 격리실 문을 바라보았다. 그가 있는 격리실 또한 보안 시스템 해제로 인해 문이 열린 채였지만, 그 너머는 중앙 통로로 향하는 좁고 굽이진 복도였다. 때문에 당장 괴수가 보이진 않았지만, 복도 너머의 중앙 통로는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렇지만.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여기 괴수들은 기껏해야 A급. 기사의 무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니 한여름 학생은 얼른 대피소로 가주세요.”

­미안하지만 전 얌전히 대피소 안에 박혀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연구소 직원들이 전부 대피할 때까지 경비대원분들과 아래로 내려가서 괴수들 재격리를 도우려고요.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잊고 계신가 본데 저도 기사의 무덤 공략 참여자거든요? 당신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면 저도 걱정하지 마셔야죠.

그 말에서 뚝뚝 묻어나오는 자신감에 안수호는 입을 꽉 다물었다. 한여름의 말은 백 번 옳은 말이었으나 퀘스트가 떴다는 건 즉 그녀에게 무언가 위험이 닥친다는 뜻.

분명 자신들이 상정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질 터였다. 적어도 여태까지의 퀘스트는 매번 그래왔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외부인일 뿐인 당신이 연구소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쳐요. 아시겠습니까?”

­네네 그럴게요. 걱정하지 않아도 이 연구소에 저의 창창한 미래를 희생할 생각은 없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런데 혹시 지금 한겨울 학생도 곁에 있습니까?”

­아뇨? 옆에 없는데요?

“……예?”

그 말에 안수호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옆에 없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괴수들이 있는 곳에 혼자 따로 떨어진 건­”

­워워 진정해요. 그 애가 격리 구역에 혼자 있을 리가 없잖아요? 겨울이라면 바람 좀 쐰다고 테라스 쪽으로 갔어요. 괴수들은 죄다 아래에서만 올라오니까, 저랑 경비대가 여길 잘 틀어막으면 겨울이가 괴수랑 마주칠 일은 없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한여름의 말에 안수호가 안도와 걱정이 반씩 섞인 한숨을 뱉었다. 한겨울이 혼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불안했지만, 그 말마따나 당장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그래도 대피소가 더 안전할 테니 한겨울 학생한테 얼른 대피소로 가라 전해주세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도록 하죠. 뭐, 그 애도 여기 있는 괴수들 상대로는 절대 당할 리가 없을 정도로 강하지만……. 근데 당신은 이제 어떡할 거예요? 거기서 지금 바로 올라올 건가요?

“그래야죠. 여기 남았다가 며칠을 여기서 지내게 될지 어떻게 압니까. 소장님 데리고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가는 김에 4구역 괴수들도 정리하고요.”

­아, 그거 말인데…….

한여름이 말끝을 흐리다 이내 떨떠름하게 덧붙였다.

­아까 경비대원 분이 말씀하셨는데 괴수는 되도록이면 죽이지 말래요. 이것들이 다 연구자산이라 생포가 원칙이라나.

“……이게 사실입니까?”

안수호의 물음에 연구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연구소에 있는 건 전부 일부러 생포할만한 가치가 있는 괴수들뿐입니다. 물론 지금은 전례 없는 비상사태니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뭐 노력은 해보죠. 근데 장담은 못 합니다.”

한여름에게 조만간 뵙겠다 말한 안수호가 전화를 끊었다.

“위로 올라가는 길은 내려올 때 썼던 엘리베이터뿐입니까?”

“그거 말고도 대형 화물용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이 하나씩 있습니다. 다만 엘리베이터 쪽은 아마 사용하지 못할 겁니다. 격리실이 개방된 상태에선 자동으로 멈추는 구조라서…….”

“그럼 비상계단으로 가면 되겠군요. 안내해주시죠.”

퀘스트가 뜬 이상 안수호는 한시라도 빨리 두 자매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의욕이 앞서는 안수호와 달리 연구소장은 우물쭈물 거리며 걸음을 늦췄다.

“왜 그러십니까?”

“……그, 안수호 씨. 제 생각엔 여기 가만히 있는 게 차라리 낫지 않나 싶습니다. 전화에서도 들으셨 듯 바깥엔 지금 A급 괴수들이 잔뜩 배회하고 있을 겁니다. 게다가 대부분 특수한 능력을 지녀 연구하기 위해 격리된 개체들이고요. 평범한 A급 괴수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어차피 격실 문도 열렸는데 바깥이나 여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이 안에 있다간 도망칠 곳도 없다고요.”

“격리실 문은 안쪽에서도 인터페이스를 통해 수동 개폐가 가능합니다. 게다가 각 격리실마마다 독립된 시스템이라 중앙 보안 시스템과는 별개로 잘 작동할 거고요.”

“여기 남았다간 얼마나 갇혀있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여기엔 물도 음식도 없는데.”

“인근 헌터 길드에서 지원을 올 테니 길어봐야 하루일 겁니다.”

안수호의 말에 따박따박 근거를 들이미는 연구소장. 안수호가 피곤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에 피어오른 불안감을 보곤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하긴 무섭겠지. 연구소장은 일반인이고. 바깥은 괴수가 득실대고 있으니.’

괴수를 다루는 연구를 한다 해서 괴수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흉악함을 잘 알고 두려워하기에 비로소 연구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수호로선 바깥에 나가길 거부하는 연구소장을 무어라 탓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좀 전에도 들으셨겠지만 저는 오버랭크 던전 공략 경험도 있습니다. A급 괴수 정도라면 허용 범위 내예요.”

“……안수호 씨는 E급 초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요. 게다가 지금은 얘도 있잖습니까.”

안수호가 오른손을 들자 그의 피부에서 은색 점액이 주르륵 새어나왔다. 그 모습을 본 연구소장이 잠시 굳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었죠. 특임대를 반파시킨 은색 기생괴수. 흉악성만이라면 5구역에 격리된 괴수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녀석이 아군이니 걱정할 게 없긴 하겠군요.”

그렇게 말하던 소장이 ‘실례, 괴수가 아니고 아티펙트였죠.’ 하고 덧붙였다. 그러곤 성큼 발을 옮겨 안수호의 뒤로 따라붙었다.

“저는 일반인이라 발도 느리고 몸도 약합니다. 그러니 잘 지켜주셔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절 믿으세요.”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이 마침내 격리실을 나섰다. 어두운 복도를 나아가던 안수호의 오른손에서 푸른빛이 번쩍인 순간, 그의 전신을 은색 갑주가 뒤덮기 시작했다.

***

한편 그 시각.

“……응. 알겠어. 나는 일단 대피소 쪽으로 갈게. 언니도 조심하고.”

한겨울은 옥상에서 한여름과 전화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윽고 전화가 끊어지자, 그녀가 옥상 울타리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사람이 날 걱정했다고…….’

한겨울은 언니로부터 조금 전 안수호와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전해 들었다. 한여름은 그중에서도 특히 한겨울이 자기 곁에 없으니 안수호가 사색이 되어 물어봤었다는 부분을 강조해서 전했다. 한겨울이 그녀를 의식하고 있는 걸 알기에 건, 일종의 자매간의 장난 같은 거였다.

그리고.

‘원래 같으면 주제도 모르고 남 걱정이냐는 생각만 들었을 텐데. 썩 나쁘지 않네.’

그 장난은 한겨울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당장 아래에선 비상이 걸려서 사람들이 혼비백산 대피하고 있는데도, 한겨울은 한가롭게 옥상에서 바람을 맞으며 말랑말랑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한겨울은 스스로의 성격이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그녀가 그나마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는 건 어디까지나 안수호뿐,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녀는 여전히 고압적이고 자존심 센 우등생이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혼잣말과 함께 한겨울이 손바닥에 불꽃을 살짝 피웠다 이내 꺼뜨렸다. 한겨울은 본래부터 S급에 오를 인재로 여겨지고 있었고, 지난 한 달 동안의 수련 끝에 그 문턱에 발끝이나마 닿을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잠시 정체기가 와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긴 하지만, 이전 같은 막막함 따윈 더 이상 없었다. 시간만 들인다면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다고. 그러한 확신이 지금의 그녀에겐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차라리 나도 언니랑 같이 내려가서 싸운다면…….’

잠시 고민하던 한겨울이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단념했다. 인턴 생활 중인 한여름과 달리 그녀는 긴급 무력 사용 면허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초능력은 실내에서의 사용이 크게 제한되기도 했으니.

‘얌전히 대피소로 가있자. 어차피 언니랑 그 사람만 있으면 괴수는 반나절이면 정리되겠지.’

고민을 마친 한겨울이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응?”

그녀가 무언가 발견한 듯 울타리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 시선이 이내 외벽 가운데 뚫린 입구로 향했다.

보안 시스템 해제로 인해 활짝 열린 채인 입구.

‘방금……. 누가 들어오지 않았나?’

그 입구를 보며 한겨울이 의문에 빠졌으나, 주변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내 한겨울은 자신의 착각이겠거니 하며 다시금 발걸음을 돌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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