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01화 (202/266)

〈 201화 〉 200. 얼음과 불의 자매

* * *

­콰아아아아…….

작열하는 화염과 싸늘한 빙벽. 서로 대비되는 두 원소가 한데 어우러져 휘몰아치는 그 광경에 안수호와 정지민은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투박한 불꽃이네. 화력을 집중하질 못하니 저렇게 사방으로 번지기만 하고 정작 실속은 없잖아.”

허나 모든 것에 있어 완벽을 추구하는 언니는 여전히 동생이 못마땅한 눈치였다. 여름이란 이름을 가진 주제에 어울리지도 않는 빙결 능력을 지니게 된 언니는, 마찬가지로 겨울이란 이름을 받았음에도 발화 능력을 가지게 된 동생에게 퉁명스러운 핀잔을 던져댔다.

­투화아악!!

그 순간 타오르던 불꽃을 가르며 희뿌연 형체가 튀어나왔다.

“크허어억!!”

그것은 조금 전 불꽃과 얼음의 파도에 휘말린 큐브였다. 그의 전신에는 설원처럼 새하얀 서리가 군데군데 끼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한여름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거 봐. 적을 쓰러뜨리기는커녕 저 얇은 서리조차 다 녹이지 못했잖아.

그 핀잔에 한겨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대신 두 손을 모아 권총 모양으로 만들어 그 끝을 큐브를 향해 조준했다.

­스파아앙!!

직후 허공에 그어진 백색의 직선.

극한으로 압축한 불꽃은 그야말로 빛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어 보였고, 그 겉모습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 큐브의 어깨에 적중하여

­퍼석!

마치 무형의 불꽃이 아닌 물리적 실체를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대로 그의 어깨를 관통해 저 멀리 뻗어나갔다. 타오르다 못해 증발해버린 살점의 끈적한 냄새가 큐브의 코끝을 자극한다.

“끄, 끄아아아아아악!!!”

어깨에 뚫린 10원 동전만한 구멍에선 피 한 방울조차 흐르지 않았다. 피를 흘려야 할 혈관째로 녹아내려 굳어버렸으니까.

그러나 그 격통만은 확실하게 큐브의 신경을 따라 질주한 끝에 그의 뇌간을 뒤흔들었다. 고통에 찬 표정으로 자신의 적을, 붉은 머리카락의 두 자매를 확인한 그가 양손에 에너지탄환을 생성했다.

­키이이잉!! 파바바바바방!!!

정육면체 모양의 에너지체가 격자형으로 쪼개지며, 수백발의 자그마한 큐브 모양 탄환이 되어 날아갔다.

그 탄환들의 폭격을 앞에 둔 채 한겨울이 꽉 쥐고 있던 두 손을 떨어뜨리고는,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곧게, 짓쳐드는 탄환들을 향해 뻗었다.

­파바바바바방!!!

직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불꽃 덩이가 그녀의 손가락들을 따라 사출되었다.

­퍼엉! 펑! 퍼벙! 퍼버버벙!! 펑! 퍼퍼벙!!

에너지탄과 불꽃탄. 서로의 중간지점에서 만난 두 종류의 탄환이 공중에서 격돌하며 연속적인 폭발을 일으켰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소음이 온 사방에 울려퍼진다.

이에 큐브는 전력을 다해 에너지탄을 쏘아댔으나, 그것들은 한겨울의 불꽃을 조금도 밀어내지 못했다. 큐브가 앞으로 뻗은 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

반면 한겨울은 큐브라는 걸출한 초인과 힘겨루기 중임에도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녀가 두 눈에 힘을 부릅! 주자 그녀의 발끝에서 화염이 피어올랐다.

직후 뱀처럼 지면을 기어가듯 뻗어진 화염의 길이 순식간에 큐브의 발치까지 다다르고.

“이런 젠자­”

­콰아아아아아앙!!

곧바로 화산이 터지듯 지면에서 수직방향으로 거대한 불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그 부지불식의 일격에 큐브는 노도처럼 쏘아대던 에너지탄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한겨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콰아앙!!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시뻘건 불꽃이 쉴 새 없이 터지고 또 터졌다. 팔을 휘두르면 화염의 파도가 몰아쳤고 지면을 밟으면 승천하는 용처럼 불길이 솟구쳤다. 한겨울은 큐브가 반응할 새도 주지 않은 채 불꽃을 흩뿌렸으며, 그러면서도 오른팔만은 등 뒤로 감춘 채 불꽃을 압축하고 또 압축했다.

그리고 마침내, 압축에 압축을 거듭한 불꽃의 온도가 임계점에 이른 순간.

­파아아아아앗!!!

그야말로 순백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섬광의 파도가 그녀의 오른팔에서 뿜어져 나왔다.

“흐음.”

동시에 곁에서 지켜보던 한여름이 지면을 밟았다. 그러자 섬광보다 먼저 뻗어나간 얼음이 큐브를 중심으로 원형의 거대한 벽을 형성했다. 그리고 한겨울이 쏘아낸 섬광은 정확히 그 원통의 한가운데로 빨려들어갔고.

­콰가가가가가가강!!!!!!

이내 지천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규모의 불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참나…….”

한여름은 그 광경을 기껍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녀의 빙벽이 없었다면 필시 저 불꽃은 사방으로 퍼지며 주변의 숲과 땅을 불태웠을 터. 그런데도 거리낌 없이 저런 불꽃을 쏘아냈다는 건 즉, 한겨울이 한여름이 이렇게 나올 걸 예상하고 저질렀다는 뜻이었다.

한여름으로선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

“뭐, 그래도 조금은 강해졌네.”

“……흥.”

그러나 한여름은 깎여나간 자존심보다도 동생의 괄목할만한 성장에 집중했다. 한겨울은 언니가 건넨 작은 칭찬이 겸연쩍어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화르르륵. 타닥. 타다닥.

그러던 사이 세상을 불살라버릴 듯 솟구치던 불기둥이 잠잠해지고, 이내 까맣게 그을린 땅 한복판에 큐브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꺼져가는 잔불 속의 큐브는 용케도 서있었으나 그뿐. 전신에 가해진 작열의 열기는 확실하게 큐브라는 초인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었다.

­털썩.

간신히 서있던 큐브의 무릎이 꺾이고 곧 그의 몸이 지면에 고꾸라졌다.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옅은 신음과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그 등만이 그가 죽음에 이르지 않았음을 소박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이런 미친.’

그리고 안수호는 그 결과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수호가 큐브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가 암살팀이라는 것뿐.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도 안수호는 그가 결코 녹록치 않은 강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당장 류태현만 해도 네버랜드에서 큐브와 싸울 때 쉽사리 이기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전투를 끌어가지 않았던가.

헌데 한겨울은 바로 그 큐브를 일방적이라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밀어붙였다. 물론 큐브는 만전의 상태가 아니었다. 다급히 안수호를 추격하던 그의 몸에는 분명 고속도로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일방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한 달 사이에 얼마나 강해진 거야?’

문득 안수호의 뇌리에 한여름이 전해주었던 한겨울의 전언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 이번에는 반드시 이긴다고 그랬지.’

한겨울이 허언을 입에 담은 적은 한 번도 없으나, 안수호는 이번에야말로 그 말이 지켜지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의 한겨울이라면, 조금 전 그녀가 보여준 무용이라면 그 재능의 끝이 보이지 않는 류태현이라도 한 수 접어주지 않을까.

­기이이이잉.

그때 연구소 외벽의 문이 열리며 중무장한 대원 수십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정지민이 말했던 이곳 제3 격리연구소의 자체 경비병력들이었다.

그들 중 몇몇이 쓰러진 큐브에게 향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어정쩡하게 서있던 안수호를 반원형으로 포위한 채 흉악하게 생긴 총구를 그에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세 분 모두 그자로부터 떨어져주십시오!”

대원의 외침은 안수호의 곁에 있던 한겨울과 한여름, 그리고 정지민을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물러선 정지민과 달리 한씨 자매는 지면에 발을 딱 붙인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언니? 왜 경비들이 저 사람한테 총부리를 들이밀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분명 알아듣기 쉽게 잘 이야기했다 생각했는데.”

“부탁드립니다! 두 분 모두 그자로부터 떨어져주십시오!”

대원의 거듭된 부탁에도 두 자매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겨울은 순전히 안수호를 적대하는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고, 한여름은 이곳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기에 일부러 가만히 버티고 섰다.

두 자매의 날카로운 눈빛에 선두에서 외친 대원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때.

“한여름 씨. 그리고 한겨울 씨. 부디 대원의 말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한 건 조금 전, 한여름과 이야기를 나눴던 연구소장이었다. 그의 등장에 한여름이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따지듯 그를 노려보았다.

“두 분께서 지금 이 상황에 의문을 갖고 계신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메뉴얼대로 했을 뿐입니다. 본래라면 호송차량에 구속구가 채워진 채 운반되었을 대상이 아무런 구속도 없이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서 나타났으니까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않습니까. ……보는 눈도 많으니 부디 협조해주시죠.”

보는 눈이 많다. 그 말에 한여름은 작금의 상황이 일종의 쇼라는 걸 눈치 챘다. 이에 그녀가 순순히 물러서자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한 한겨울도 그녀를 따라 자리를 피했다.

“안수호 씨. 구속구를.”

대원이 들이미는 육중한 수갑을 바라보던 안수호가 별 말 없이 손목을 내밀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안수호가 말했다.

“……근데 두 학생은 무슨 일로 여기 계신 겁니까?”

방금 막 손목에 수갑을 찼음에도 안수호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두 자매에게 물었다. 그 역시 지금의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절차의 일부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평소 알고 지내던 박사님을 만나러 왔죠. 당신하고 마주친 건 순전히 우연이에요 우연. 그렇지 겨울아?”

“…….”

“우연이라,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렇게 알아듣겠습니다. 둘 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습니다.”

대원들이 구속구를 찬 데리고 외벽 왼쪽으로 향했다. 안수호는 이곳에서 반쯤 위험품 취급이기에 사람들이 오가는 정문으로 들어갈 순 없었으니.

“저기…!”

그때 망설이던 한겨울이 뒤늦게 안수호의 뒤를 쫓았다. 주변에 선 대원들이 그녀를 막아서고, 그런 그녀를 안수호가 돌아본다.

“무슨 일입니까? 한겨울 학생.”

“그게, 그, 그러니까. 제가 내일이 이번 학기 마지막 랭킹전이거든요? 상대는 류태현이고. 하, 학기 순위는 이미 결정됐지만 어쨌든 마지막 경기라서, 그, 그러니까아…….”

갑작스레 밀려오는 긴장감에 한겨울이 어리둥절했다. 긴장할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왜 목소리가 떨리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제가 저번에 말, 했잖아요. 이번에야말로 꼭 이길 거라고. 저 당신 말 듣고 진짜 엄청 노력해서, 이, 이번엔 정말 이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원래는 당신보고 겨, 경기장에 와서 직관하라 하려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서 그건 힘들겠지만…….”

멀리서라도 응원해달라고. 당신이 또 나를 격려해준다면, 응원해준다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류태현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한겨울은 그 논리도 근거도 없는 낯간지러운 부탁을 목구멍에 걸쳐둔 채 연신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녀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럽고 뜬금없는 요구였으니까.

“그러니까, 그…….”

긴장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한겨울의 뺨이 점차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할 즈음.

“……랭킹전이라. 일이 잘 풀리면 꼭 보러 가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네요. 직접 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멀리서라도 응원하겠습니다.”

안수호가 마치 그녀의 속내를 꿰뚫어본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때 했던 이야기 기억하죠? 저도 류태현 그 자식이 한 번쯤 지는 꼴을 보고 싶었다고. 조금 전 겨울 학생이 보여준 실력이라면 분명, 이번에야말로 그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그 광경을 직접 못 보는 건 아쉽지만……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겠습니다. 결과는 겨울 학생이 나중에 직접 말해주세요.”

안수호의 격려에 한겨울이 얼음처럼 굳었다. 안수호는 그런 그녀를 뒤로한 채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대원들과 함께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던 한겨울의 입술이 뒤늦게 벌어졌다.

“………………네에.”

대답치고는 늦어도 너무 늦은 대답이었다. 제아무리 안수호가 초인이라 한들, 이만큼 거리가 벌어져서야 듣지 못했겠지.

허나 한겨울에겐 그런 사소한 일을 신경 쓸 정도의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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