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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00화 (201/266)

〈 200화 〉 199. 질주

* * *

“……그게 뭔 개소립니까 도대체.”

무심코 그렇게 되물은 안수호는 순간 너무 무례하게 말했나 싶었다. 허나 무심코 나온 그 말투야말로 그가 지금 신재호의 요구를 얼마나 황당하게 느끼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싸우던 적을 놔두고.

조금 전까지 함께하던 아군을 놔둔 채.

오직 그 혼자 연구소로 도망치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도대체 왜 그딴 소리를 하는가. 안수호의 뇌리에 끊임없이 의문이 차올랐다.

“……저놈들 앞에 두고 너 설득할 시간 없어! 이유는 거기 경찰 누님이 설명해줄 거다. 그러니까 얼른 가!”

허나 안수호를 납득시키는 건 신재호의 몫이 아니었다.

“안수호 씨.”

정지민이 안수호의 팔을 꽈악 붙잡았다. 신재호와 정지민, 안수호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결심한 듯 신재호 쪽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다. 그러나 정지민은 마치 그래선 안 된다는 듯 그의 팔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안수호 씨. 그만 고집 부리고 이쪽으로 오세요. 이 이상 버티시면 담당관의 지시에 불응한 것으로 간주, 이후 상응하는 불이익을 받으실 겁니다.”

그 말에 안수호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단순히 정지민이 말한 불이익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그 말에서 신재호와 정지민이 결코 뜻을 굽히지 않을 것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저희라고 무작정 안수호 씨를 못 싸우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다 이유가 있으니까, 제발 이번 한 번만 저희 지시를 따라주세요.”

“…….”

결국 안수호는 빳빳하게 세웠던 고개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정지민의 손길에 이끌려 전장을 이탈했다.

“어딜!”

그 움직임에 큐브가 양손에 에너지 탄환을 생성해냈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쏘아내기도 전에 멀리서 뻗어온 노란 번개가 에너지 탄환을 유폭시켰다.

­콰아아앙!!

“크윽?!”

“한눈 팔지 마라. 니들 상대는 우리다.”

신재호를 위시한 특임대원들은 이탈하는 안수호와 정지민을 지키듯 암살팀 앞을 가로막았다. 그 곁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던 허성찬에게 신재호가 말했다.

“이봐. 스프링 인간.”

“허성찬!”

당당하게 제 이름을 밝힌 허성찬을 보며 신재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범죄자가 그렇게 이름을 밝혀도 되나?”

“괜찮아! 어차피 무호적자거든!”

“……그래, 알겠다. 여하튼 하나만 묻지. 딱 보니 네놈은 우리 호송대상이랑 안면이 있어서 이쪽 편을 든 것 같은데, 그건 놈이 이탈한 지금도 유효한 건가?”

“안 그래도 고민이었어! 내가 그녀석 편을 든 건 다른 놈들이 그녀석을 죽이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뿐이거든! 근데 혼자 도망치게 놔두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잖아! 저 세 명 죽인 다음에 그녀석도 죽이려 했는데!”

“그게 뭐 잘한 짓이라고 당당하게도 말하는군.”

볼멘소리를 툭 뱉은 신재호가 생각했다. 3대4라고는 해도 개개인의 능력은 적들이 더 강한 상황, 어떻게 하면 이 멍청하지만 강력한 범죄자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만약 우리가 저놈들한테 지면 놈들은 곧바로 안수호를 쫓을 거다. 그리고 죽이겠지. 설령 네가 먼저 가서 안수호와 싸운다 해도 뒤늦게 쫓아온 저놈들이 분명 널 방해할 테고.”

“그건 그렇네! 그래서?”

“그러니 여기선 일단 우리와 협력해서 저놈들을 잡자. 그래주면 네가 안수호와 싸우든 놈을 죽이든 상관하지 않겠다.”

“그거 정말이야?!”

“암. 정말이고말고.”

유진수가 옆에서 듣고 있었다면 ‘정답은 무슨 정답입니까?!’ 하고 따졌겠지만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유진수가 없는 허성찬은 빈말이든 거짓말이든 간에 상대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성격이었다.

“좋아! 그럼 특별히 도와줄게! 대신 좀 전에 너 때렸던 건 이걸로 없던 셈 치자고!”

“……그래. 마음대로 해라.”

신재호는 마음속으로 눈앞의 여명단원을 제압하면 다음은 허성찬이라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물론 허성찬에게 그걸 눈치 챌만한 눈치는 없었다.

“좋아! 과거의 앙금은 털어버리고 일단 저놈들부터 쓰러뜨리자고! 이른바 임시동맹이라는 거지!”

꾸밈없는 외침과 함께 허성찬이 두 주먹을 쾅 부딪쳤다. 그를 제외한 그 자리의 전원이 그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으나 그건 전혀 알 바가 아니라는 듯.

“어쩔 거야 아이기스? 누구 한 명이 안수호를 잡으러 빠질까? 아니면 셋이서 이 자식들을 빠르게 조지고 따라붙어?”

“…….”

눈앞에서 펼쳐진 웃기지도 않는 의기투합에 콧방귀를 뀌며 큐브가 그에게 물었다. 이에 아이기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눈앞의 특임대부터 먼저 정리한다. 목표를 쫓는 건 그 다음에.”

“그랬다가 놈이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도망치면?”

“그럴 일은 없다. 놈이 갈 곳은 뻔히 정해져 있으니까. 이놈들을 정리하고 바이크로 따라붙으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어. 괜히 인원을 나눴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될 거다.”

“그래! 그러지 뭐! 어차피 주변 자동차들은 죄다 터뜨려 놨으니 도망쳐봤자 멀리는 못 가겠지!”

아이기스가 결론을 내리자 다른 두 사람은 곧바로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했다.

암살팀 세 명과 특임대원 넷. 그리고 조금 얼빠진 청부업자 한 명.

잠시 대치하던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었고, 직후 거센 굉음과 폭음이 고속도로 위에 성대하게 울려 퍼졌다.

한편 안수호는 정지민에게 이끌려 고속도로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갔다. 터진 차량과 온갖 잔해가 널린 전장과 달리 그곳은 자잘한 콘크리트 파편을 제외하면 차량 한 대 없이 깨끗했다.

두 사람은 그 반대편 차선에서도 가장 외곽까지 뛰어갔다.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갓길에 멈춰선 정지민이 품에서 자그마한 주머니를 꺼냈다.

“그건?”

정지민은 안수호에게 답하지 않은 채 주머니 끈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순식간에 입구아 부풀어오른 주머니 안에서 교통경찰용 오토바이 한 대가 툭 튀어나왔다.

“서장님께서 개인적으로 챙겨주신 아티펙트예요. 이동수단이 전부 파괴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바이크를 한 대 넣어왔죠. 자, 얼른 타요! 헬멧 없이 뒤에 타는 거 특별히 봐줄 테니까!”

생각지도 않은 배려에 안수호가 떨떠름하게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가 뒷좌석을 잡은 채 망설이고 있자 정지민이 신경질적으로 묻는다.

“뭘 망설이는 거예요?”

“……정말 이게 맞나 싶어서요. 방금 제가 싸우던 놈들은 셋 다 여명단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들입니다. 아무리 특임대라고 해도 고작 네 명으로 저들을 이기는 건­”

“그렇다 해서 당신을 그 자리에서 함께 싸우게 놔둘 순 없었어요. 안수호 씨는 애초에 전투원도 아니고, 전투 상황에서 오른손에 그 기생괴수가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거잖아요.”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이 녀석은 제 통제 하에 있다고­”

“100%, 완벽하게, 그 괴물이 폭주할 상황이 절대 발생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어요?”

“그거야…….”

장담할 수 있다. 그렇게 외치려던 안수호는 이내 냉정을 되찾고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실비가 폭주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지.’

현재 실비의 복종은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 한들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것. 그 주종 관계에 금이 갈 가능성은 결코 0이 아니었다. 게다가 설령 실비가 그를 배신하지 않더라도 행여나 안수호가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죽음에 이르기라도 하면 그땐 어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거봐요. 안수호 씨도 대답 못 하잖아요. 게다가 그 이유가 아니라도 안수호 씨를 거기 계속 방치해둘 수는 없었어요. 여명단이 이만큼이나 대대적으로 일을 벌였다는 건 즉 그 기생괴수로 뭔가 엄청나게 끔찍한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일 테죠. 그러니 저희로서는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안수호 씨를 이렇게 빼돌릴 수밖에 없었어요.”

“…….”

“자, 이제 좀 납득이 되시나요? 납득이 됐다면 이제 좀 뒷자리에 타줄래요?”

정지민의 말에 안수호는 순순히 뒷좌석에 올랐다. 올라타면서 그녀가 했던 말을 찬찬히 곱씹는다.

‘생각해보니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어. 성유진이야 그렇다 쳐도 여명단은 도대체 왜 태초의 은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거지? 암살팀을 셋이나 보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데. 도대체 왜?’

설마 여명단도 태초의 은으로 다중능력 연구라도 한다는 걸까.

안수호가 고민에 빠진 사이 정지민이 스로틀을 있는 힘껏 당겼다. 그러자 바이크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바람을 가르기 시작했다.

“……잠깐 근데 이거 지금 역주행 아닙니까?”

“양방향 도로 다 통제했으니 괜찮아요!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고속도로에 바이크가 올라오는 것부터가 불법이에요!”

혹시 몰라 갓길을 달리고는 있으나 정지민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듯 고속도로는 차 한 대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이윽고 국도로 내려간 두 사람은 그 길로 연구소가 위치한 성남시 서쪽 외곽의 청계산으로 향했다.

“…….”

안수호는 뒷좌석에 매달린 채 온갖 상념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남겨두고 온 특임대나 허성찬이 암살팀을 상대로 잘 버틸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 성유진은 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수를 선택했으며, 여명단의 목적은 또 무엇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에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경찰의 특권을 앞세워 속도제한 따위 사뿐히 무시해준 정지민 덕에 두 사람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고 연구소에 거의 다다를 수 있었다.

“이 도로를 쭉 따라가면 도착이에요!”

“근데 연구소는 괜찮을까요? 혹시 놈들이 이쪽에도 먼저 손을 썼다면…….”

“연구소에는 자체 경비 인력이 늘 상주하고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두 사람이 향하는 제3 격리연구소는 생포한 괴수나 위험한 아티펙트 따위를 모아두고 연구하는 곳이었다. 연구소가 내포한 위험에 상응하는 경비 병력이 머물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말끝을 흐리며 고민하던 안수호가 정지민에게 물었다.

“……경위님. 혹시 호송대 쪽에서 연락은 아직 없습니까?”

“저도 몰라요. 스마트폰은 좀 전 싸움에서 박살났고 무전기는 범위 바깥이니까요. 그렇지만 아마 괜찮을 거예요. 습격당한 직후에 곧바로 지원 요청을 했으니까. 지금쯤이면 특임대 추가 병력이 도착했을 거예요.”

다른 이들을 내버려두고 도망쳐 나온 꼴인 안수호로선 줄곧 고속도로 위의 상황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기에 안수호는 정지민의 말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쐐애애애액!!

등 뒤에서 들리는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

그 소리에 슬쩍 뒤를 돌아본 안수호의 얼굴이 이내 경악으로 물들었다.

­콰아아아아앙!!!!

직후 커다란 폭음이 두 사람의 고막을 두들겼다. 갑작스런 폭음와 충격에 깜짝 놀란 정지민이 고개를 돌리자, 안수호가 질린 얼굴로 뒤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수호 씨?!”

“……적습입니다. 좀 전에 싸웠던 암살팀 중 한 명이 기어코 여기까지 쫓아왔군요.”

안수호의 시선 끝에는 바이크를 탄 채 두 사람을 맹렬히 쫓고 있는 큐브가 있었다. 한 손은 핸들을 쥔 채 다른 손으로 에너지 탄환을 만들어낸 그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그 팔을 휘둘렀다.

직후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드는 수십 다발의 에너지 탄환들.

“충격에 대비해요!”

놈이 어떻게 자신들을 쫓아왔는지부터 시작해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복잡하게 휘몰아쳤지만, 안수호는 그 모든 상념을 한구석으로 밀어버린 채 우선 눈앞의 공격에 집중했다. 짓쳐드는 에너지 탄환에 맞춰 안수호가 태초의 은으로 만든 방패를 꺼내들었다.

­콰앙! 콰가가가강!!

폭발의 충격이 안수호의 팔과 어깨를 사정없이 두드렸다. 당연히 그 여파는 정지민이 운전하던 바이크에까지 미쳤다. 순간 비틀거리며 넘어질뻔한 바이크를 안수호가 태초의 은을 뻗어 간신히 바로세웠다.

“이대로 싸우면 이쪽이 불리합니다! 차라리 멈춘 다음 싸우도록 하죠!”

“저 앞 커브만 돌면 연구소예요! 그쪽엔 경비 병력이 있으니까 거기까지 가는 게 나아요!”

“이 속도에서 바이크 고꾸라졌다간 저는 몰라도 경위님은 무사하지 못합니다!”

“수호 씨만 믿을게요!”

“그걸 말이라고­”

­쐐애애애액!!

다급하게 반박하려던 안수호가 입술을 잘근 씹으며 방어를 굳혔다. 동시에 재차 날아든 수십 발의 에너지탄이 방패를 두드렸고, 이번에도 그는 넘어질 뻔한 바이크를 겨우겨우 일으켜 세웠다.

그가 조금만 실수해도 곧바로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아스팔트에 갈릴 위기였지만, 정지민의 말마따나 기왕 멈춰서 싸운다면 연구소 앞에서 싸우는 게 나았다. 제아무리 큐브라 해도 안수호와 연구소 경비 병력을 상대로 이길 순 없을 테니.

허나 그건 큐브 또한 손쉽게 예상할 수 있는 사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안수호의 머릿속에 불안한 예감이 떠오른다.

‘혹시 날 쫓아온 게 저 놈 혼자가 아니라면?’

당장 보이지만 않다 뿐이지 아이기스나 러스티네일이 쫓아오고 있는 중이라면? 아니면 이미 그들이 먼저 앞서가 연구소에 도착한 상태라면? 혹은 그 둘이 아니더라도 여명단의 또 다른 자객이 이미 연구소를 점거한 상태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부정적인 생각에 안수호가 고개를 있는 힘껏 저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하며 신경을 쏟아봤자 무슨 소용인가. 지금은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할 때였다.

­부아아아앙!!

그러는 사이 바이크가 마침내 마지막 코너를 돌았다. 이제 남은 건 연구소까지 일직선으로 뚫린 50미터 남짓의 도로뿐.

안수호가 불안에 찬 눈으로 그 끝을 바라보았다. 교도소처럼 드높은 담벼락이 세워진 연구소 앞에는 두 개의 그림자가 나란히 서있었다.

‘설마.’

자신의 예상대로 나머지 암살팀 둘이 먼저 앞질러 이곳에 도착해버리고 만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서린 순간.

­화르륵.

연구소 앞에 서있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손에서 시뻘건 불꽃을 피워올렸다.

‘잠깐, 저 둘은…….’

아이기스도 러스티네일도 발화 계열 능력자는 아닐 텐데. 그 생각이 뇌리에 떠오른 순간, 안수호는 그제야 두 사람의 인상착의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두 사람 중 왼쪽. 허리까지 내려오는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성의 얼굴은 그가 익히 알고 있는 자의 것이었다.

오른쪽도 마찬가지. 앞선 여성보다 좀 더 탁한 붉은 머리카락을 어깨에서 자른 여성은 왼쪽 여성과 자매처럼 똑 닮았으나, 그보다는 좀 더 성숙하고 차가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두 여성이 나란히 선 채 각자 왼팔과 오른팔을 안수호에게 뻗었다.

피처럼 붉은 화염과 차갑기 그지없는 냉기를 두른 채.

“?! 저 앞에 둘은 뭐죠?! 설마 적인가요!?”

“아뇨! 적 아니니까 최대한 속도 높여요!”

“네?!”

“당기라고요!”

안수호가 정지민의 손을 잡아 억지로 스로틀을 최대한으로 당겼다. 50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두 사람이 탄 바이크가 나란히 선 한겨울과 한여름 자매의 사이로 빠르게 미끄러져 들어갔고.

마침내 네 사람이 교차하려던 그 순간.

한여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안수호에게 눈을 맞춘 채 작게 물었다.

“……쏠까요?”

교차는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안수호는 대답할 새도 없었다.

다만 한여름에게 자신의 의지가 전해지기를 바라며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일 뿐.

­부아아아앙!!

다음 순간, 뒤따라오던 큐브의 바이크가 마침내 코너를 돌아 모습을 드러냈고.

­투콰아아아아앙!!

­콰가가가가가강!!

직후, 불꽃과 얼음의 해일이 큐브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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