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98화 (199/266)

〈 198화 〉 197. 삼파전(4)

* * *

안수호와 허성찬 사이에 잠시간의 침묵이 내려 앉았다. 어색한 얼굴로 안수호의 반응을 살피던 허성찬이 연신 초조하게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그래. 맞아.”

정곡을 찔린 허성찬은 더 이상 발뺌하는 걸 관뒀다. 그의 성격이 남을 잘 속일 수 있는 성격도 아니요, 어차피 다 들켰으니까.

“이번에 나한테 일을 의뢰한 건 그 성유진이라는 사람이야. 기업가라 그런가 보수도 엄청 많이 주고 성능 좋은 신체강화제까지 주더라. 그게 아니더라도 이번 의뢰 덕에 널 만나서 싸울 수 있었으니, 그 사람한텐 감사하고 있어.”

성유진이 그에게 준 신체강화제는 불법 약물. 일시적으로 능력을 증강해주긴 하지만 그 대가로 수명을 깎아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몸에 좋지 못했다. 물론 허성찬은 그런 자잘한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되는데.”

다만 그럼에도 안수호의 뇌리에는 한 가지 의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성유진은 한 번 널 토사구팽했던 의뢰주잖아. 그런데 그런 의뢰주 밑에서 다시 한 번 일할 생각이 드나?”

허성찬은 일찍이 성유진의 부하가 의뢰한 강하늘 납치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연구소 근처를 기웃거리다, 결국 성유진의 눈 밖에 나 그가 고용한 다른 청부업자들에 의해 죽임당할 뻔했다. 안수호는 지예원으로부터 그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상했다.

허성찬의 성격이나 행동양식은 그야말로 단순명쾌. 그는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아군이고 해를 끼치는 사람은 적으로 본다. 그런 허성찬이 한 번 자신을 팽했던 성유진 밑에서 다시 일한다니,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

물론 허성찬의 성격이 원작대로일 거란 보장은 없었고, 안수호가 그의 심리를 100% 꿰뚫어본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안수호는 허성찬이 성유진 밑에서 일하는 데에 자신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금초시문인데?”

안수호의 말에 허성찬은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본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 듣는 다니……. 알고 있던 거 아니었나? 처음에 너한테 강하늘 납치를 의뢰했고 이후 실패한 너랑 유진수를 죽여 입막음하려했던 그 연구원. 그 사람 성유진의 부하야. 성유진이 시키는 대로 한 거라고.”

안수호의 말이 이어질수록 허성찬의 표정에는 다채로운 변화가 생겨났다. 놀라움에서 분노에 찬 표정으로, 그러고는 이내 얼굴에서 표정이란 게 사라져 무표정이 되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리부동. 극도의 분노에 표정은 평온할지언정 그 두 눈동자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을 토사구팽했던 자에게 또다시 이용당할 뻔했다는 사실에 허성찬은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부아아아아앙!!

부들부들 떨고 있는 허성찬을 잠시 뒤로한 채, 안수호는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는 배기음에 고개를 들었다. 곁에 있던 정지민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토바이 소리? 고속도로에 오토바이가 어떻게……. 게다가 전투 개시 후 이쪽으로 오는 도로는 바로 통제가 들어갔을 텐데…….”

쭉 뻗은 도로 저편에서 다가오는 바이크는 총 셋.

시속 100km는 거뜬히 넘길 듯한 그 속도 덕에 바이크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이윽고 바이크가 전장 외곽에 멈춰섰을 때, 안수호는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이기스……!”

선두에 선 서양인은 안수호가 익히 알고 있는 여명단 암살팀 6위, 아이기스였다. 그 왼편에는 마찬가지로 네버랜드 사태 때 마주쳤던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 암살팀 9위인 큐브가 있었다.

반면 나머지 한 사람만은 안수호도 알아볼 수 없었다.

샛노란 금발에 까만 마스크를 쓴 여성.

만지면 베일 것처럼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 사이로 탁한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그 시선이 안수호와 마주치자, 여성이 안수호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두 사람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정체는 코드명 ‘러스티네일’.

여명단 암살팀에서 아이기스 바로 다음가는 7위의 실력자였으나 안수호는 그녀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다만 아이기스나 큐브와 함께 온 것으로 보아 그녀 또한 암살팀일 거라 짐작할 뿐.

“흐음.”

그런 안수호의 시선을 받아내며 러스티네일은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무리를 살펴봤다. 이내 그녀의 미간에 한줄기 깊은 주름이 파인다.

“뭐야, 저것들 왜 죄다 우리 상징을 팔에 차고 있어? 쟤네들 우리 조직 애들이야?”

“크하하핫! 그럴 리가! 아무래도 애먼 놈들이 우릴 사칭하고 날뛰고 있는 것 같은데!”

“단체로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러스티네일이 오른팔을 뻗다가 주저했다. 그녀가 옆에 서있던 아이기스에게 빈정거리듯 묻는다.

“어떡할까 아이기스? 네 명령을 들어야 하는 건 정말 치가 떨리는 일이지만, 그래도 서열은 서열이니까. 일단은 네 의사를 존중해줄게.”

“……저 앞에 싸우고 있는 놈들 따위 알바 아니다. 지금은 목표의 확보가 최우선이다.”

“그럼 저 사칭범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자고?”

“단. 그 과정에서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그래?”

그 말에 러스티네일이 만족했다는 듯 잠시 내렸던 오른손을 다시 뻗었다. 그러나 먼저 행동한 건 그녀가 아닌 큐브였다.

“크하하핫! 그렇게 나와야지! 오늘도 한 번 거하게 날뛰어 보자고!”

­키이이이잉!!

그의 양손 위에 정육면체 모양의 거대한 에너지 탄환이 떠올랐다. 이내 그 에너지체가 자그마한 큐브 모양으로 갈기갈기 나누어지더니, 곡사포처럼 하늘로 솟구쳐 전장 전체에 골고루 낙하했다.

­콰앙! 쾅! 콰아앙!! 퍼버버벙!!

그야말로 폭격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 그 무차별 공격에 당한 건 경찰과 여일에 예외가 없었다.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보며 큐브가 광소와 함께 외쳤다.

“으하하하핫! 네놈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우릴 사칭해놓고 살아돌아갈 생각은 말라고!”

한편 안수호는 폭연 저편에서 들려오는 큐브의 목소리에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는 정지민과 함께 호송 트럭 그늘에 숨은 채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온 사방이 폭발과 시꺼먼 연기로 뒤덮여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수호 씨도 봤어요?! 방금 그 사람 네버랜드에서 싸웠던 여명단원이었죠?!”

“네! 여명단 암살팀 놈들입니다!”

“암살팀?? 이렇게 화려하게 날뛰어대면서 암살팀이라고요?!”

“목격자까지 다 죽고 없으면 그게 암살이죠 뭘!”

실없는 농담을 입에 담으면서도 안수호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금발 여자까지 암살팀이라면 암살팀만 셋이다. 목표는 보나마나 태초의 은일 테고. 아무래도 여명단이 이번 일에 아주 사활을 걸었나보군.’

안수호는 재빨리 암살팀 셋을 상대로 자신이 이길 수 있을지를 가늠했다.

네버랜드에서 폭주한 실비는 큐브와 아이기스를 상대로 일방적인 전투를 이어갔다. 무차별적인 폭주와 달리 안수호가 직접 실비를 운용한다면 그들을 이기는 것도 꿈은 아니리라.

그러나 그때와 달리 안수호의 오른팔에 있는 실비는 50%에 불과, 그마저도 전력전개 상태는 탈리스만의 과부하 때문에 15분을 넘기지 못한다. 거기에 아이기스와 함께 온 정체모를 여성의 전력까지 감안했을 때, 안수호는 작금의 상황이 자신에게 상당히 불리한 상태라 예측했다.

‘3대 1 정면승부는 힘들어. 확실하게 이기려면 난전을 유도해서 놈들이 나한테 집중하지 못할 때 기습적으로 한두 명을 제압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전장의 상황은 폭발과 연기로 인해 지극히 혼란스러웠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안수호는 자신의 초능력으로 기습과 일격일탈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방침을 정한 그가 엄폐물 밖으로 몸을 드러냈다.

그 순간.

­타다다다닷!

이쪽으로 접근해오는 발소리에 안수호가 태초의 은을 휘둘렀다. 길게 뻗어진 채찍 다발이 러스티네일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끄흑…! 뭐야, 이야기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빠르네?”

달려들던 러스티네일이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신음했다. 안수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촉수 다발을 꺼내 그녀에게 찔러들어갔다. 러스티네일은 필사적으로 몸을 놀리며 그 찌르기들을 피해냈지만, 결국 미처 피하지 못한 촉수 하나가 그녀의 어깨에 푸욱 박혔다.

“아악!!”

마스크 안에서 터진 비명에 안수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암살팀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정체불명이었던 자라 내심 경계했는데, 작금의 공방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꽈아악.

“잡았다.”

러스티네일이 자신의 어깨를 관통한 촉수를 꽈악 붙잡았다. 그 날카롭고 가느다란 눈을 더욱 길게 찢어 웃으며.

­꺄아아아아악!!!!

그러자 다음 순간 안수호의 뇌리에 실비의 비명이 가득 차올랐다.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으나 실비의 비명은 물리적인 소리가 아닌 사념. 머리를 뒤흔드는 그 비명은 조금도 작아지지 않았다.

“실비! 갑자기 왜 그래?!”

­아파, 아파요!! 너무 아프, 아, 아아아아아악!!!!

“실비!!!”

실비의 이상반응에 안수호의 시선이 러스티네일에게 향했다. 초능력인지 아티펙트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녀 때문에 실비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그리고 다음 순간, 안수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버석. 퍼서석.

러스티네일의 어깨를 관통한 실비의 촉수. 그 촉수에 그녀에게 잡힌 부분을 중심으로 검붉은 녹이 번지고 있었다. 안수호가 급하게 촉수를 거둬들이자 녹이 슨 부분이 썩은 살점처럼 떨어져나갔다. 실비의 비명이 다시 한 번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평범한 금속이 아니라서 그런가? 녹이 번지는 데에 꽤 시간이 드네. 그냥 금속이었으면 순식간에 녹 덩어리로 만들어줬을 텐데.”

“……그게 네 초능력인가? 아니면 아티펙트의 능력?”

“웃겨 진짜. 그걸 내가 왜 말해줘?”

그렇게 말하며 러스티네일이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그녀가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그녀의 발이 닿은 곳을 중심으로 붉은 녹이 천천히 번지기 시작했다. 분명 도로 재질은 금속이 아닌 아스팔트임에도 불구하고 녹이 슬어 문드러지는 그 모습에 실비가 두려움에 차 떨었다.

금속에게 있어 녹은 독이나 다름없다. 실비 또한 마찬가지며, 이는 조금 전 녹슬어 떨어져나간 실비의 일부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안수호가 보기에 눈앞의 여자는 실비에게 있어 그야말로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이거 아무래도 최악의 상대를 만난 것 같은데.’

여명단이 준비를 해도 참 단단히 준비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안수호가 실비를 다독였다. 덜덜 떨던 실비가 그의 손길에 차츰 진정해가기 시작한다.

‘확실히 금속 상대로 녹은 치명적이지. 그렇지만 공략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야.’

안수호가 보기에 러스티네일의 능력은 접촉을 통해서만 발동되는 것 같았다. 고로 접촉할 새도 없는 빠른 공격, 동시에 다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격을 퍼부으면 녹스는 것보다 빨리 그녀를 잡아낼 수 있을 거라고.

“간다.”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등 뒤에서 수십 다발에 달하는 촉수를 뽑아냈다. 다음 순간 그 촉수들이 일제히 러스티네일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터엉! 터더더더덩!

촉수들이 닿기 직전, 그녀의 주위에 펼쳐진 반투명한 반사필드가 촉수들을 튕겨냈다.

“그렇게는 안 둔다. 안수호.”

직후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 안수호는 러스티네일의 저편에서 유유히 걸어오는 아이기스의 모습에 입술을 씹었다.

‘하긴. 무슨 게임도 아니고 놈들이 친절하게 1대1로 싸워줄 리는 없나.’

아이기스의 등장에 안수호는 촉수를 거둬들인 뒤 실비에게 할애하던 마력을 초능력쪽으로 돌렸다. 그의 능력을 상대하는 데에는 형태가 없고 유동성이 큰 연기 쪽이 주요하다는 걸 이미 경험해보았기에.

“아서라. 네놈은 절대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

오른손에 시꺼먼 연기를 모으기 시작한 안수호를 보며 아이기스가 말했다.

“우리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널 습격하려 한 줄 아나? 이번에야말로 태초의 은을 받아갈 자신이 있으니까 온 것 아니겠나.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죽이지는 않겠다. 태초의 은이 담긴 오른팔을 자르는 선에서 끝내주지.”

서둘러 지혈하고 곧바로 병원에 가면 살 수는 있을 거라고. 아이기스의 말에 안수호가 코웃음쳤다. 그러나 실상 속내는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물리 공격을 반사하는 아이기스와 실비조차 녹슬게 만드는 러스티네일.

둘 다 상대하기 성가시기 짝이 없는 적들이었다. 최소한 실비를 통한 물리 공격은 사실상 봉인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초능력이 있긴 했지만 실비가 강화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신체능력뿐. 강하늘의 스킬처럼 초능력까지 강화해주는 건 아니었다. 그 점이 그의 발목을 뼈아프게 붙잡았다.

“훗. 그 표정을 보니 네놈도 꽤 초조한가보군. 그렇지만 오래 기다려주진 않겠다. 딱 10초 주지. 그 안에 얌전히 항복할지, 아니면 저항하다 우리에게 목숨을 잃을지 정하도록.”

10, 9, 8, 7. 아이기스가 천천히 초를 세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안수호는 결코 항복할 생각 따위 없었다. 오히려 그가 준 10초의 유예를 기회 삼아 오른손에 검은 연기를 극한으로 압축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불리하기 그지없었다. 지금만 해도 1대2. 큐브까지 가세하면 1대3의 싸움이었다. 안수호 쪽에도 특임대원이라는 걸출한 전력이 있기야 했으나, 그들은 대부분 난전 속에 발이 묶여 그를 지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허나 물러선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설령 고독하고 불리한 싸움이더라도 반드시 이겨내고야 말겠다고.

“10초 끝났다. 약속대로 네놈을 이 자리에서 죽여주도록 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안수호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순간이었다.

­터엉!!!

아이기스의 측면에서 튀어나온 주먹. 때아닌 기습을 반사적으로 반사필드를 세워 막은 그가 고개를 돌렸다.

“네놈은…….”

그곳에는 허성찬이 피투성이가 된 오른팔을 내지른 채 굳어있었다. 그 상처를 본 아이기스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반사필드의 정체를 몰라 제 스스로 팔을 아작냈구나 하며.

그러나.

­터엉!!!!

팔의 상처에도 아랑곳 않고 허성찬은 다시금 주먹을 내질렀다. 그 역시 곧바로 막혔으나 아이기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반사필드에 한 번 당해놓고도 계속 친다고? 생각이 없는 건가?’

그 의문은 아이기스가 허성찬의 팔을 본 순간 해결되었다. 배배 꼬인 스프링의 형태를 한 그 팔은 아이기스가 반사한 주먹의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오히려 흡수한 충격을 반동삼아 더욱 강한 일격을 연신 뿜어대고 있었다.

­터엉! 텅! 터덩! 터더더더더더더덩!!!!!!!

“우오오오오오오오!!!!!!”

한껏 기세를 탄 채 양주먹을 휘둘러대는 허성찬. 그 노도와 같은 연격에 아이기스가 측면에 집중한 반사필드에 쩌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아이기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 반사필드에 금이 갔다고?’

지금껏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는 최강의 방패가 부서지려 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허성찬의 주먹이 마침내 반사필드를 뚫고 들어왔다. 아이기스와 러스티네일은 곧바로 거리를 벌린 덕에 그 주먹에 맞지는 않았으나, 두 사람 다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허성찬. 네가 왜…….”

그리고 그 상황에 놀란 건 안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적이던 허성찬이 왜 자신을 도와주듯 저들을 공격했는가.

“……네가 그랬지. 이번 내 의뢰주가 날 한 번 배신한 놈이라고.”

허성찬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배신자거든? 난 복잡한 건 모르지만, 여기서 네가 쓰러지면 그 의뢰주 놈한테 좋은 거잖아? 그런 꼴을 배알 꼴려서 어떻게 보냐고! 그렇게 둘 순 없지! 게다가 넌 나랑 싸워서 나한테 죽어야 해! 근데 다른 놈이 널 죽이게 둘 것 같냐!?”

그렇게 말하며 허성찬이 안수호의 곁에 섰다. 두 주먹을 아이기스 쪽으로 향한 채. 마치 그의 동료라도 된 것처럼.

“허성찬?”

“그러니까 그거다! 임시동맹! 난 아직 널 용서하지 않았지만! 이번만은 특별히 같이 싸워줄게!!! 넌 나한테 죽어야 하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논리로 꼭 만화 속 악역 캐릭터라도 된 듯 그렇게 외치는 허성찬을 보며 안수호가 생각했다.

이놈 이거 참 종잡을 수 없는 미친놈이라고.

“……그래? 그래주면 고맙지!”

그렇지만 오늘만은 그 광기가 고마웠다. 안수호가 주먹을 꽈악 말아쥐며 그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간다! 내가 틈을 만들 테니까 잘 노려서 공격해!”

“시끄러! 난 그런 복잡한 거 못해! 네가 나한테 알아서 맞춰라!”

다음 순간, 허성찬이 스프링의 탄성으로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안수호가 그 뒤를 뒤따랐다.

두 사람의 인생에 다시는 없을, 단 한번뿐인 공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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