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 196. 삼파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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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으앗 뜨거!”
한여름이 소유한 별장 마당. 안수호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은색 거체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오른손에 끼워진 탈리스만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푸른 번개를 파직! 파직! 뿜어대고 있었다.
“미안! 긴급 상황이라 좀 쓸게!”
그렇게 외친 안수호가 서리정령의 증표로 열기를 식혔다. 목걸이 안의 정령과 말을 터놓기 전까진 가급적 쓰지 않으려 했지만, 안수호 말마따나 긴급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치이이익.
새하얀 냉기가 피어오르며 뜨겁게 달궈진 탈리스만이 빠르게 식었다. 안수호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손가락을 내려다보고 있자, 뒤편에서 꾸물거리던 실비가 그에게 다가왔다.
미안해요. 주인님. 내가 또 실수, 했어요?
“……아냐. 내가 조절하지 못한 탓이지. 그래도 덕분에 어느 정도가 한계인지는 알겠네.”
별장에 은거한 이래로 안수호는 실비의 활용법을 본격적으로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가 방금 한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그가 임시로 ‘풀 아머’라 명명한 기술이었다.
풀 아머는 실비가 네버랜드에서 특임대와 싸울 때 취했던 폭주 형태를 의도적으로 끌어내는 기술이었다. 자유자재로 쓸 수만 있다면 강하늘의 스킬에 의존하지 않고도 S급 수준의 전투력을 낼 수 있을 테니 기대가 컸다.
그러나.
‘실비의 마력 소모 속도를 탈리스만이 따라가지 못해. 무리하게 사용하면 탈리스만에 과부하가 걸려서 일시적으로 기능을 상실한다. 시간으로 따지면 대략 15분 정도.’
현재 안수호와 함께 있는 실비는 분신 둘을 떼어낸, 50%에 해당하는 본체였다. 실비가 100%일 경우에는 어떨지 아직 알 수 없었으나, 안수호는 심리적인 가이드라인을 대략 10분 정도로 설정했다.
10분.
한 번의 전투를 가정하면 길다고도 짧다고도 할 수 없는 시간. 연속 전투를 상정할 경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제아무리 일시적으로 S급을 상회하는 힘을 낼 수 있다 해도, 그가 상대할 적들을 전부 10분 안에 쓰러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대출력에서 10분이다. 평상시에는 적과 상황에 맞춰서 출력을 조절하면 괜찮겠지. 물론 아직은 출력 조절이 어설프지만…….’
그건 지금부터 연습하면 된다고. 탈리스만이 제 기능을 되찾은 걸 확인한 안수호가 실비에게 손짓했다.
“자, 다시 연습하자.”
넹.
그 말과 함께 실비가 그의 오른팔에 달라붙어, 오른팔을 중심으로 서서히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전보다 더욱 세심하게, 신중에 신중을 기울이며.
그로부터 2주 뒤 그가 자진 출두하는 날까지, 안수흐는 단 하루도 연습을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파바바밧!
궁신탄영. 안수호가 무심코 그 단어를 떠올릴 정도로 재빠르게 접근한 허성찬에게 안수호는 수십에 달하는 은색 칼날로 화답했다. 그의 등에서 뻗어나온 촉수가 그 끝을 날카롭게 벼려낸 채 허성찬의 상하좌우로 날아들었다.
꾸드드득!
그렇게 두 사람이 인지한 순간, 허성찬의 양팔이 평상시의 절반 수준으로 압축되며 나사처럼 휘리릭 꼬였다. 뼈와 근육이 뒤틀리는 불쾌한 소리.
“하하!”
그러나 허성찬의 입가엔 강적을 앞둬 기쁨을 주체 못하는 웃음뿐이었다. 극한으로 압축된 탄성이 해방되며 그의 주먹이 사방으로 분출했다.
퍼버버버버버벙!
주먹과 칼날이 격돌하며 공기가 폭발한다. 주위로 날카로운 파공성을 흩뿌리는 음속의 공방은 1초에도 수십 합을 교차했다.
그 결과.
투확!
“오?”
먼저 물러선 건 허성찬이었다. 자신 있게 내지른 두 주먹은 붉게 물들고, 불법 약물로 인해 민감해진 신경에 아릿한 고통이 차오른다.
“너 엄청 강해졌다! 그 기생괴수의 힘인가?! 아무튼! 즐거운 싸움이 될 것 같아 두근거리는걸!!”
“그러게 말이다!!”
흥분한 건 안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실비가 전신의 근육과 신경에 파고듦에 따라 올라오는 고양감. 거기에 더해 좀 전의 공방으로 느낀 전능감이 그의 투쟁심을 부추기고 있었다.
‘사람을 상대로 써보는 건 처음인데 생각 이상이다. 50% 출력으로도 S급 수준이라니!’
신재호를 어렵지 않게 제압한 허성찬은 못해도 A급 상위, 어쩌면 S급에 해당하는 적일 터. 고작 B급 수준이던 그가 어떻게 단시간에 그렇게 강해졌는지 안수호는 알지 못했지만,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그가 그런 허성찬을 상대로 비등, 혹은 압도할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리라.
투쾅!
안수호는 숫제 트럭을 부숴버릴 기세로 있는 힘껏 도약했다. 그러나 도약력이라면 허성찬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안수호의 접근을 알아챈 그는 스프링의 탄성을 극한으로 활용해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그 높이 약 100미터.
실비의 촉수조차 닿지 않는 높이에서 허성찬은 전장을 관망했다.
어지러이 펼쳐지는 난전 속 서로 주먹과 검을 교차하며 강함을 뽐내는 수많은 강자들. 그들은 누구 하나 뺄 것 없이 허성찬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강자들이었다.
그러나 허성찬은 그들에게 조금의 신경도 할애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바닥. 은색 갑주를 걸친 안수호에게.
허성찬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트럭에 함께 타고 온 영문 모를 헬멧놈들보다도. 멋드러진 기동복을 걸친 기동대보다도. 청부업자 시절 쥐가 고양이 보듯 두려워했던 특임대원보다도 안수호가 강하다는 것을.
‘놈을 쓰러뜨린다! 그리고 죽인다! 다른 건 다 상관없어! 지금은 오직 그것뿐!!’
약물에 의해 빨라진 혈류가 혈관을 찢어발길 듯한 기세로 그의 전신을 질주했다. 점처럼 축소된 그의 까만 동공이 안수호를 포착한다.
그러자.
철컥.
안수호는 하늘 한가운데 떠오른 허성찬을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그 오른팔은 팔꿈치 부분부터 기존의 형태를 잃어, 이윽고 길이 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포신을 형성했다.
“실비!”
그의 부름에 실비가 마력 소모를 잠시 멈췄다. 그로 인해 생겨난 잉여 마력을 안수호는 전부 초능력에 할애했다. 포신 속에서 꽈악 쥔 그의 오른주먹에 시꺼먼 연기가 맹렬히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공중으로 도망친 게 실수였어. 어디 그 잘난 스프링으로 공기라도 밟아서 피해보라고!”
투쿠우웅!!
다음 순간, 거친 폭음과 함께 압축 연기가 분출됐다. 극한으로 압축된 연기는 조금도 퍼지지 않은 채, 허공에 시꺼먼 직선을 그리며 허성찬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흐읍!”
피할 수 없으리라 직감한 허성찬은 있는 힘껏 오른손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아앙!!!!
직후 거센 폭발과 함께 허성찬의 몸이 차에 치인 사람처럼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안수호는 불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명중하는 순간 오른팔을 순차적으로 스프링으로 바꿔 탄성으로 충격을 죽였나.’
허성찬은 그 초능력 덕에 타격 계열 공격에 대해 상당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고로 그에게 주효한 공격은 타격보다는 참격.
스릉.
안수호의 좌우 팔뚝에서 리스트 블레이드가 솟아났다. 그는 구태여 허성찬을 추격하진 않았다.
그가 이 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허성찬 쪽에서 알아서 달려들 걸 알고 있었기에.
파앙!
아니나 다를까 허성찬은 착지와 동시에 다시금 그에게 달려들었다. 주위에서 싸우는 다른 이들에겐 시선조차 보내지 않은 채.
‘거리를 벌리면 성가셔져! 붙어서 죽인다!’
수십 미터의 거리를 허성찬은 순식간에 줄였다. 그 질풍같은 돌격에 안수호는 양팔의 리스트 블레이드와 등 뒤에서 꺼내든 칼날들, 그 모두를 곤두세운 채 허성찬의 돌격을 맞이했고.
타앙!
“푸억?!”
직후 그의 옆에서 터진 총성에 달려오던 허성찬이 주르륵 고꾸라졌다.
“엉……?”
극도로 조여져있던 긴장감의 해소와 함께 안수호가 고개를 돌렸다.
“허억…! 허억…! 허억…! 맞았다. 맞았죠? 맞은, 거죠?”
그곳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총 견착을 유지하고 있는 정지민 경위가 있었다. 가느다란 팔에 어울리지 않는 육중한 소총은 대 괴수용으로 만들어진 가우스 라이플이었다. 초음속의 속도로 8mm 스파이크탄을 토해내는 그 괴물은 당연하게도 초인에게 또한 통용되는 놈이었다.
‘하긴. 무빙도 뭣도 없이 일직선으로 달려왔으니 맞추긴 쉬웠겠지.’
“끄아아아아아악!!”
안수호의 상념을 허성찬의 고함이 지워버린다. 바닥에 쓰러졌던 그가 벌떡 일어서며 어깨에 박힌 총알을 뽑아냈다.
그의 어깨는 총알구멍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말려들어가 있었다. 아무리 총탄이 회전한다 한들 사람 살을 비틀어버릴 리가 없으니, 안수호는 아마 자신의 능력으로 총탄의 충격을 죽인 것이겠거니 싶었다.
“아프잖아 누님! 그리고 방해하지 마! 나는 그자식이랑 오늘 결판을 지어야 한다고!”
그래도 아픈 건 아픈지 허성찬이 눈물을 찔끔 흘리며 억울한 얼굴로 외쳤다. 그러나 정지민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이런 망할!”
그 움직임에 허성찬이 표정을 찡그리며 도약을 준비했다. 도망치기 위해서, 혹은 달려들기 위해서.
그러나.
“잠깐만요. 경위님.”
당장이라도 총알을 쏟아낼 기세인 정지민을 안수호가 제지한다. 정지민과 허성찬이 동시에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허성찬. 싸우는 건 좋은데 그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자.”
전투의 흐름이 끊긴 김에 안수호는 조금 전부터 느끼던 위화감과 기시감의 정체를 파악해보고자 했다. 대뜸 싸우다 말고 입을 놀리기 시작한 그가 불만이라는 표정을 지는 허성찬에게 안수호가 물었다.
“네 팔에 그 완장, 그거 여명단 상징인 건 알고 있지? 도대체 왜 여명단 행색을 하고 우릴 습격한 거냐? 누가 시킨 건데?”
“자기 입으로 다 말해놓곤 왜 물어? 당연히 여명단이지! 여기 이 완장 안 보여?”
“그럴 리가 없어. 여명단은 자기들 일에 절대 외부인을 고용하지 않으니까. 즉 네 고용주는 여명단이 아니야. 주변에서 싸우는 헬멧 놈들도 아마 여명단이 아니겠지.”
“…….”
안수호의 질문에 허성찬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사이 안수호는 주변 전장을 쭈욱 훑었다.
‘저 헬멧. 저거랑 비슷한 걸 어디서 본 것 같아서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역시 그랬던 건가.’
여명단을 사칭하며 경찰의 호송차량을 습격할 정도의 배짱을 가졌으며, 그 습격에 이만한 대인원을 투입할 자금력을 가진 곳. 그곳이 바로 이번 습격의 배후라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안수호는 그제야 줄곧 마음에 걸렸던 헬멧의 정체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여일의 사냥개 부대.’
사냥개 부대. 혹은 하운드독. 여일그룹이 불법의 영역에서 폭력을 휘두를 때 기용하는 오직 그들만을 위해 일하는 전투집단. 일찍이 강하늘이 납치되었을 때 창고에서 마주쳤던 그놈들은 분명, 마치 전대물 속 악역 엑스트라처럼 전원이 새까만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래, 딱 지금 싸우고 있는 저놈들처럼.
‘아마 지금 여길 습격한 놈들의 정체는 사냥개 부대와 여일이 따로 고용한 청부업자의 혼성 부대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똑같은 헬멧 차림이어도 조금은 구분이 가. 허성찬처럼 개성 넘치게 날뛰는 놈이 있는가 하면, 꼭 기계처럼 딱딱하게 움직이는 놈들도 섞여있어.’
그렇다면 이번 일의 배후는 여일인가. 그 질문에 안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여일의 수뇌부는 자신의 협상을 받아들였다. 이제 와서 태초의 은을 탐내며 이런 대대적인 습격을 벌일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즉 배후는 여일에 속한 자이되 여일 수뇌부의 의향에는 반하는 자. 동시에 어떠한 연유로 태초의 은에 지대한 집착을 보이는 자.
즉…….
“성유진인가.”
“어, 어떻게!”
안수호의 중얼거림에 허성찬이 반사적으로 답했다. 뒤늦게 입을 턱 막은 그를 안수호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블러핑인가?’
아니, 허성찬은 그런 수를 꺼내들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입을 놀리고 전술을 논하는 건 허성찬이 아니라 그의 파트너인 유진수의 몫.
‘어라?’
거기까지 생각하자 안수호는 그제야 허성찬과 세트로 다녀야 할 유진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힘과 지능의 듀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줘야 할 그 콤비는 어째서인지 힘만 세고 복잡한 일을 꺼려하는 허성찬뿐이었다.
즉.
“……성유진 맞구나? 이번 일의 배후. 내 말이 틀렸어?”
조금 전의 반응은 진짜며 자신은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애초에 반쯤 확신하고 있던 부분이지마 안수호는 그럼에도, 그 판단에 마지막 쐐기를 박고자 허성찬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허성찬은.
“…….”
여전히 입을 틀어막은 채 전장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똑같은 헬멧을 쓴 채, 자신과는 달리 철저히 몸을 숨기며 능수능란하게 싸움을 회피하고 있는 파트너 유진수를.
어째서인지 헬멧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무어라 외치고 있는 것 같은 파트너를 보며 허성찬이 생각했다.
‘큰일 났다. 진수한테 또 혼나겠네.’
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