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96화 (197/266)

〈 196화 〉 195. 삼파전(2)

* * *

“여명단……?”

정지민의 중얼거림에 안수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컨테이너 가장 안쪽에 있는 그는 바깥 상황을 살필 수 없었으나, 정지민의 말을 통해 그는 적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명단 놈들이 왜?’

라는 의문은 곧바로 들어갔다. 애초에 여명단은 원작에서도, 그리고 이 세계에서도 태초의 은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이제 와서 놀랄 일은 아니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경찰 호송 행렬을 습격할 정도로 막 나갈 줄은 몰랐지만.

“경위님!”

안수호의 외침에 정지민이 그를 돌아봤다. 안수호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표정과 눈빛만으로 자신의 의지를 그녀에게 전달했다.

“안 됩니다.”

허나 정지민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특임대원 두 명과 함께 컨테이너 바깥으로 나갔다. 남은 두 대원은 남아서 컨테이너 입구를 지켜섰다. 그것은 적의 침입을 막으려는 것과 동시에 안수호의 참전을 방지하려는 목적이기도 했다.

“젠장…….”

그 모습에 안수호는 초조함을 금치 못했다.

현재 호송 차량에는 기생괴수의 폭주와 외부의 습격이라는 안팎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기동대 2개 소대가 함께 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급하게 연락을 받고 파견 나온 특임대가 1개 분대.

그것이 현재 이쪽의 총전력이었다. 특임대는 전원이 A급 초인. 기동대 쪽도 전원이 직업경찰인 A에서 C급의 초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상당한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전력만 상당하기는 적들도 마찬가지.

‘놈들은 이미 암살팀이라는 최고 전력을 기용하고도 태초의 은 탈취에 실패했다. 재탈환을 노린다면 당연히 그때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준비해왔겠지.’

컨테이너 안에 있는 안수호는 적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허나 들려온 무전을 통해 좀 전에 이야기가 나왔던 물류 트럭 넷이 전부 여명단의 차량일 거라 유추할 수 있었다.

만약 그 차량 안에 여명단 단원들이 꽉꽉 들이차 있었다면…….

‘차량을 네 대나 기용할 정도면 못해도 사십은 되겠지. 심지어 어중이떠중이로 채워진 사십도 아닐 거야. 최소 간부급 인원들로. 어쩌면 암살팀 멤버가 복수로 끼어있을 지도 몰라.’

아무리 생각해도 불리한 건 자신들 쪽이라고. 안수호는 특유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렇게 짐작했고.

그 짐작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사격 개시!!”

­타다다다다당!!!

도로 전방과 후방으로 찢어진 2개의 기동대 소대는 각 소대장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총을 발사했다. 상대가 여명단이란 걸 확인한 이상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국가가 공인한 반정부 테러단체였으니까.

그러나.

­터더더더덩!!

발사된 총알이 적들에게 닿기 직전, 거대한 얼음벽이 나타나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전방과 후방 모든 방향에서.

­타다다닷!

얼음벽이 엄폐물 역할을 해주는 사이, 헬멧 차림의 적들은 빠르게 우회하여 기동대에게 접근했다. 적들 또한 전원이 초인인즉, 그들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들어왔다.

“근접전 준비!!”

소대장의 명령에 기동대원들이 저마다 진압용 스턴 블레이드를 뽑아들었다. 전기 충격을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게 주목적이었지만 전압을 올리는 것으로 얼마든지 살상용으로 돌변할 수 있는 무기였다. 그리고 기동대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전압 설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쾅! 콰앙! 터엉! 퍼버벙! 타다다당!

사방에서 터지는 굉음과 폭음. 그리고 총성들. 오색찬란한 초능력과 총알들이 빗발치며 전장은 순식간에 난전으로 돌입했다. 간접적으로 들려오는 소음과 진동을 통해 안수호는 그러한 바깥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시발. 딱 봐도 이쪽이 밀리는 것 같은데.’

안수호는 그냥 막 나가자는 식으로 자기도 싸울까 싶었으나,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신재호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발치에서 번개를 파직! 파직! 일으키곤 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바깥의 적만큼이나 안수호 또한 예의주시의 대상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안수호로선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척 봐도 불리한 전황에 합세해주겠다는데 왜 말리는지 원.

“적 접근!!!”

그때 입구에서 상황을 살피던 다른 대원이 다급하게 외쳤다. 신재호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 찰나, 그의 입에서 ‘시발’이라는 나지막한 욕설이 새어나왔다.

직후.

­콰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그들이 타고 있던 컨테이너 한쪽이 움푹 우그러들었다. 직후 두 번째, 세 번째 충격과 함께 컨테이너 한쪽 벽이 완전히 뚫린다.

­후두두둑.

드러난 벽 사이로 모습을 보인 건 키가 3미터는 될법한 암석거인이었다. 몸 곳곳에 얼기설기 붙어있는 옷조각으로부터 그가 변신계 초능력자라는 걸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런 주제에 얼굴만은 여전히 까만 헬멧으로 가리고 있는 채였다.

“응?”

안수호는 그 헬멧을 본 순간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가 더 생각할 새도 없이, 입구를 지키고 있던 신재호가 벼락 같은 속도로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흐읍!”

­콰르르르릉!!!!

지천을 뒤흔드는 천둥 소리와 함께 신재호의 발차기가 거인에게 꽂혔다. 그러나 암석거인이라 그런지 상성이 좋지 못했다. 척 봐도 별다른 타격이 없어 보이는 거인의 모습에 신재호가 욕설을 뱉으며 외쳤다.

“바깥에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얼른 이놈 끌어내!!”

허나 바깥의 상황은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어지러운 난전 상황 속에서 기동대는 적들에게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고, 군데군데 드러난 구멍을 통해 적들이 좀 전의 암석거인처럼 침투해대고 있었다.

몇몇 특임대원들이 그 구멍을 메우며 버티고는 있으나, 신재호가 보기에도 중과부적이었다.

­콰아아아앙!!

그러는 사이 반대편에서 접근한 적이 컨테이너와 격돌했다. 암석거인과 마찬가지로 힘 꽤나 쓰겠다 싶게 덩치가 좋은 그 적은 컨테이너 벽에 손가락을 박아넣더니 철제 컨테이너를 그대로 위아래로 찢어발겼다. 덕분에 안수호는 호송 이후 처음으로 새파란 하늘을,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전장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난장판인데 이거.’

그리고 그는 곧바로 전황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심각함을 알 수 있었다. 이래서야 정지민의 허가고 나발이고 당장 자신도 싸워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실비를 통해 구속구를 벗어던지려던 순간.

“끼얏호우!!”

심각한 전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합성에 안수호의 고개가 돌아갔다. 직후 그의 눈이 믿을 수 없는 걸 목격한 것처럼 크게 뜨여진다.

­스팡! 팡! 파바바바방!

한 사내가 스프링처럼 사방팔방으로 튀어다니며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아니, 사내는 정말 스프링 그 자체였다. 나선 모양으로 변형된 두 다리로 차량이며 사람이며 전부 밟아대며 어지러이 유린하는 그 모습에 안수호가 생각했다.

신체를 스프링으로 변형시키는 초능력. 저 체격. 저 목소리. 그리고 저 이상하리만치 높은 텐션까지.

“허성찬……?”

그 모든 특징들은 그가 알고 있는 한 인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허성찬. 일찍이 여일의 사주를 받아 강하늘을 납치하려고 했던 의정부의 청부업자.

“찾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안수호와 눈이 마주친 스프링 인간이 곧바로 그를 향해 내달렸다. 동시에 안수호가 구속구를 벗어뎐젔다. 신재호를 포함한 몇몇 특임대원이 그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당장 급한 건 안수호가 아닌 눈앞의 적들이었다.

­키이이이잉!

탈리스만의 발동과 함께 안수호의 오른손에 검은 연기가 모여들었다. 오른팔을 앞으로 뻗어 겨눈 채, 안수호는 자신의 앞으로 날아드는 허성찬(으로 추정되는 헬멧남)을 보며 생각했다.

허성찬의 무력은 B급 수준. 강하늘의 스킬이 없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애초에 아직 그가 한참 약했을 시기에 이미 격퇴한 적이 있었으니, 안수호는 어렵지 않게 그를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투웅! 퉁! 퉁! 퉁!

직후 안수호의 손에서 연기의 탄환이 뿜어져 나왔다. 그간 성장한 안수호의 기량에 의해 연기 탄환은 2달 전 허성찬을 상대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묵직해져 있었다.

허나.

­팡! 파바바바바방!!!!

순식간에 짓쳐드는 수십 발의 연기 탄환을 적은 어렵지 않게 전부 피해냈다. 스프링 특유의 탄성을 이용한 불규칙적인 회피기동. 안수호가 아차 싶은 순간, 특임대원들을 피해 컨테이너 위에 착지한 남자가 외쳤다.

“오랜만이다! 안수호!!”

그 말과 함께 남자가 헬멧을 벗어 던졌다. 역시나 그 안의 인물은 안수호의 예상대로 허성찬이었다.

“허성찬. 네가 왜…….”

그렇기에 안수호는 의문이었다.

왜 허성찬이 여명단의 완장을 차고, 여명단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가.

단순히 생각하면 여명단이 허성찬을 고용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돈에 따라 움직이는 청부업자였으니.

허나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한 건 여명단이 결코 청부업자 따윌 고용할 조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으로 그들이 벌이는 모든 행위는 초인우월사회의 이룩이라는 대의 아래 행해지는 것들이었다. 때문에 여명단은 대외적인 활동에 있어 모든 일을 그들 스스로 하며, 결코 돈으로 다른 범죄자를 고용하는 일 따윈 하지 않는다.

‘허성찬이 여명단에 들어갔을 리도 없고. 도대체 저놈이 왜 여기서 튀어나온 건지…….’

고민하던 안수호의 시야에 문득 허성찬이 벗어던진 헬멧이 잡혔다. 까만 헬멧은 흔하디 흔한 디자인이었으나 안수호는 보면 볼수록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꼭 언젠가 한 번 본 것처럼.

‘잠깐. 헬멧? 그러고 보니 분명 예전에…….’

“내가 그때 말했지!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고!!”

안수호가 그 기시감의 끝자락을 붙잡을뻔한 순간, 허성찬이 기세 좋게 외치며 그의 생각을 방해했다. 때문에 안수호는 어쩔 수 없이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했다.

“줄곧 오늘만을 기다려왔다! 널 다시 만나서 쓰러뜨리는 날을 말이야!”

일찍이 안수호에게 한 번 패배했던 허성찬은 그날 이후 매일 밤마다 안수호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언젠가 반드시 그날의 패배를 설욕하고야 말겠다고.

“자! 어디 한 번 싸워보자고!”

허성찬이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자세를 낮췄다. 당장이라도 탄성을 이용해 튀어나갈 것처럼.

­파직!

다만 컨테이너 위에 있던 건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파지지지직!!!

신재호가 번개를 두른 왼발을 앞세워 허성찬에게 날아들었다. 그가 볼 수 없는 머리 뒤의 사각에서, 벼락에 비견되는 재빠른 속도로.

안수호조차 겨우 인지한 그 일격을 허성찬이 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허성찬은 B급 초인. 그에 비해 신재호는 A급에서도 상위인데다가 특히 속도에 특화된 초인이었으니까.

허나.

­스팡! 파바방!!

공격이 닿기 직전, 허성찬의 고개가 홱 돌아가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그의 몸이 튕겨져나갔다. 기습을 실패한 신재호가 재빨리 그를 쫓았으나, 허성찬은 부서진 컨테이너 벽을 발판 삼아 종횡무진 튀어다니며 그의 시야를 교란했다.

­퍼억!

“끄윽?!”

결국 신재호는 허성찬의 움직임을 쫓지 못해 등 뒤에서의 일격을 허용했다. 그 일격으로 인해 그가 주춤한 사이, 허성찬이 두 주먹을 스프링으로 바꾸며 수십 발의 난타를 그의 옆구리에 꽂았다.

“커허억!”

반응할 새도 없이 수많은 공격을 허용한 신재호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비틀비틀 물러섰다. 그 무위에 안수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사이, 허성찬이 기세 좋게 외쳤다.

“으하하핫! 이거 약빨 진짜 죽이는데! 근력! 민첩함! 반응속도! 초능력까지! 꼭 슈퍼맨이라도 된 기분인걸!”

아무래도 무언가 불법적인 약물이라도 한 모양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사념으로 실비를 불렀다.

­주르륵.

직후 그의 오른손에서 흘러나온 태초의 은이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신재호를 어렵지 않게 제압하는 모습으로 보아 맨몸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터억!

안수호의 등 뒤에서 나타난 손이 그의 왼팔을 꽈악 붙잡았다. 정지민이었다.

“경위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은 절대 싸우지 말라고!”

그 말에 안수호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지금 상황을 보고 하는 말인가. 당장 눈앞에 적이 들이닥쳤는데 싸우지 말라는 것인가 하며.

“적들의 목적은 당신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 당장 도망치세요! 멀쩡한 차량이 아직 남아있으니까 그걸 타고 도망치면­”

“도망쳐봤자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당하면 절 쫓아오겠죠. 차라리 남아서 함께 싸우겠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싸우면 안 된다니까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제가 싸우는 걸 반대하는 겁니까?”

“그거야 당신 오른팔 때문이죠!”

정지민은 은색 액체금속으로 뒤덮인 안수호의 오른팔을 흘긋 쳐다보았다. 마치 무서운 괴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당신이 그 괴수를 통제 하에 두고 있다 생각하는 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외부 자극이나 고통으로 그때처럼 다시 폭주할 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만약 정말 폭주라도 했다간 그때는 정말 끝이에요. 더 이상 누구도 당신을 변호해주지 못할 거라고요.”

정지민의 논리는 무조건적으로 실비를 두려워한다기 보다는, 안수호를 걱정하는 쪽에 무게가 맞춰져 있었다. 답답해 미칠 것 같던 안수호는 그 속내를 알아차리곤 멋쩍게 입술을 씹었다.

“쫑알쫑알 시끄럽다고 누님! 난 지금 그놈하고 무조건 싸워야 한다고! 방해하면 여자라도 안 봐줘!”

허성찬의 외침에 안수호가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팔을 꽈악 붙잡고 있는 정지민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안수호가 그녀를 바라보자 정지민은 또렷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서는 시민을 지키는 경찰이라는 사명감이나, 안수호를 걱정하는 마음이나, 그 외에도 다양한 감정이 전해져 왔다. 개중 부정적인 감정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경위님. 그렇지만 팔은 놔주세요. 지금 여기서 저놈 막을 수 있는 사람 저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신재호는 이미 당했으며 다른 특임대원들은 바깥의 적을 상대하느라 바쁜 상황이었다. 더 이상 안수호를 지켜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그는 누군가에게 지켜져야 할 정도로 약하지도 않았다.

“실비.”

그의 호출에 실비가 빠르게 그의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범위를 넓혀가는 은색 액체에 정지민이 반사적으로 그를 붙잡고 있던 손을 떼어버린다.

“안수호 씨!”

“걱정하지 마세요. 폭주 안 할 거니까.”

­키이이이잉!

실비가 몸을 뒤덮어감에 따라 탈리스만이 맹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마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안수호의 전신을 덮은 실비가 천천히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그 형태는 언뜻 보기에 중세의 갑옷 같기도, 혹은 SF 영화에 나오는 슈트 같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유선형인 매끄러운 디자인에 군데군데 날카로운 돌출부가 솟아난 그 모습은 남자의 로망을 한껏 살린 형태였다.

혹 설아현이나 한여름이 본다면 그 형태가 일찍이 그들이 싸웠던 빌헬름과 상당히 닮아있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안수호 본인은 그 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실비가 취한 형태는 그가 의식적으로 정한 게 아니었기에.

그 형태는 안수호와 동화된 실비가 멋대로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최강’의 형태를 이미지해 적용한 결과였다. 가느다란 슬릿 사이로 번뜩이는 푸른 안광에 허성찬이 유쾌한 웃음을 띠며 외쳤다.

“크핫! 꽤 멋있는데 그래! 그토록 기대하던 리벤지가 지루하지만은 않겠어!”

그 외침과 동시에 허성찬이 안수호에게 뛰쳐들었고.

­스팟!

직후 안수호의 몸에서 은색 칼날이 솟아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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