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95화 (196/266)

〈 195화 〉 194. 삼파전(1)

* * *

안수호가 이제 막 성남으로 출발했을 즈음.

한여름은 그런 안수호보다 한 발 앞서 성남에 위치한 제3 격리연구소에 도착해 있었다.

제3 격리연구소는 소속 자체는 정부 산하였으나 기실 반쯤은 한성그룹의 소유나 다름없었다. 설비나 시설, 인원에 이르기까지 한성그룹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까.

당장 그녀가 조금 전 만난 연구소장만 해도 한성그룹의 연구원 출신이었다. 그런 인원이 연구소에 수두룩한 덕에, 한성그룹의 후계자인 한여름은 이곳에서 무소불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비록 대놓고 명령을 하진 못하더라도 자그마한 청탁은 가능할 정도의.

“이야기 즐거웠어요 소장님. 그럼 전 이만 가볼 테니, 아무쪼록 좀 전에 말한 건은 잘 부탁드릴게요.”

“예. 조심히 들어가시죠.”

소장실을 나선 한여름은 한 건 해냈다는 듯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이렇게 미리 언질을 줬으니 그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은 없겠지.’

그 언질이란 안수호에 관한 것이었다.

안수호가 품고 있는 기생괴수는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위험하지 않으며, 그는 기생괴수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날 선 태도로 대하지 말라는 자그마한 부탁.

이는 안수호에게 주는 한여름 나름대로의 서비스였다. 자신의 시간을 금처럼 여기는 그녀가 일부러 업무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성남의 연구소까지 온 건 상당히 이질적인 일이었으나, 한여름은 그저 안수호에게 그만한 호의를 품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까지나 거래상대, 비즈니스 관계로서.

다만.

“밖에서 그렇게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을 거면 그냥 같이 들어오지.”

안수호에 대한 감정에 확실한 선을 그어둔 언니 한여름과 달리, 동생 한겨울은 안수호에 대해 복잡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한여름의 말에 한겨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됐어. 나는 그런 불편한 자리는 질색이거든.”

“이런 자리에 익숙해져야 기업가가 될 수 있는 건데. 우리 겨울이도 참 아직 어리다니까.”

“…….”

한겨울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한여름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한여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아이가 저런 반항적인 눈빛을 하다니. 한여름 입장에서는 꽤나 흥미로운 변화였다. 그리고 한여름은 그 변화가 누구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뭐, 그런 어린애다운 점이 싫지는 않아. 지금도 봐. 기말고사가 한창인 애가 그 사람이 걱정된다고 부리나케 성남까지 달려온 거. 풋풋하고 좋네 정말.”

“거, 걱정하는 거 아니거든?!”

어린애를 놀리듯 능글맞은 언니의 말에 한겨울이 발끈해 외쳤다.

“걱정은 무슨! 그냥 얼굴만 보러 온 거야. 그, 그 사람한테는 여러 가지로 도움도 받았고. 언니네 별장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보러 가지 못했으니까. 잘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따로 할 말도 있으니까…….”

그게 걱정이 아니면 뭐냐고. 한여름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아무리 동생을 놀리는 게 즐겁다고 해도 자존심 강한 아이를 너무 자극하면 괜히 피곤해질 테니까.

“그런데 할 말이라니? 그동안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게?”

“그것도 있지만 본론은 아니야.”

“그럼?”

“저번에 언니한테 전해달라 한 말 있잖아. 그때는 낯간지러워서 언니한테 부탁했지만, 직접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하.”

그 말에 한여름이 고개를 끄덕이며 즐겁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1학기 마지막 랭킹전이지? 상대는 너희 학년 1위고.”

그 말처럼 한겨울과 류태현의 마지막 랭킹전은 어느새 바로 내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간 류태현이 계속 쌓은 승점이 있으니 이번 한 번의 결과만으로 학년 순위 결과가 뒤집어지지는 않겠지만, 학기의 마지막을 승리로 마무리하는 것에는 분명 의미가 있었다.

특히 그간 류태현을 이기는 것만 바라온 한겨울에게 있어선 더더욱.

“‘두고 봐요. 이번에는 정말 이길 거니까.’라고 했던가. 하긴, 그렇게 말해두면 졌을 때 창피할 걸 생각해서라도 이길 수밖에 없겠네. 그래서 직접 그 사람을 보러 온 거구나? 의지를 다지고 싶어서.”

한여름의 추측에 한겨울은 입을 앙 다문 채 고개를 돌렸다. 한여름은 그 반응에 풋풋한 동생이 부끄러워하는 거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부끄러워하는 게 맞았다.

다만.

한겨울이 안수호를 만나러 이 먼 길을 온 것에는 비단 포부를 밝히고 의지를 다지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한겨울 학생은 강하니까. 다음번엔 무조건 이길 수 있을 겁니다.’

한겨울의 머릿속에 언젠가 안수호로부터 들었던 격려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그에게 랭킹전을 대비한 대련을 부탁한 이래로, 안수호는 시도 때도 없이 한겨울을 격려하고 응원해줬다. 그리고 그 격려와 응원은 알게 모르게 한겨울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녀가 좌절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안수호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리라.

그렇기에.

랭킹전을 내일로 앞둔 이 순간, 한겨울은 다시 한 번 안수호의 격려를 듣고 싶었다. 특별히 논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나, 다만 그가 이번에도 격려해준다면 이번에야말로 류태현에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한겨울 본인도 알 수 없었다.

***

­우우우웅.

호송차량이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며 성남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웅웅웅 울려대는 짐칸 안에서 안수호는 어색한 분위기에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석상처럼 부동자세인 특임대원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임무 중이라지만 어떻게 말 한 마디 없냐.’

호송 차량이 출발하고 30분 정도 지났을 즈음. 안수호는 컨테이너 안에 흐르는 어색한 침묵을 깨보고자 갖은 노력을 했으나 특임대원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일찍이 실비에 의해 3개 소대가 반파된 경험이 있었으니, 경계심이 극한에 달한 것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쨌든.

그러한 사정에 따라 컨테이너 안의 소리는 바깥에서 새어들어오는 차량 소음과, 이따금 무전을 치는 정지민의 목소리뿐이었다. 안수호는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잠이나 잘까 하며 구속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때.

“이봐.”

옆에서 들려온 굵직한 목소리에 안수호는 순간 자신이 환청을 듣는 건가 싶었다. 1시간 가까이 미동도 하지 않던 특임대원이 먼저 말을 걸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혹시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나?”

“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에 안수호는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댁의 얼굴을 기억하느냐고? 우리가 어디에서 만났다고?

안수호는 진득하게 말을 건 특임대원의 얼굴을 살폈으나 기억에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날 네버랜드에서 두 사람이 마주쳤다 한들, 안수호나 특임대원이나 서로의 얼굴을 살펴보고 기억할 정도로 한가로운 분위기는 아니었으니.

“죄송합니다. 당시에 제가 워낙 경황이 없어서 기억이 잘…….”

“그럼 이 초능력은 기억하나?”

­파지지직!

말이 끝난 직후 특임대원의 발에서 샛노란 번개가 파직 피어올랐다. 그제야 안수호는 눈앞의 특임대원이 누구인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폭주한 실비를 상대로 엄청 잘 싸우던 그 사람이네.’

은은 전도율이 높은 금속이다. 그리고 태초의 은은 당연히 실제 은과는 전혀 다른 물질이지만, 그 물리적 특성만은 비슷한 구석이 꽤 있었다. 그에 따라 전기는 실비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고, 덕분에 안수호에게 말을 건 특임대원, 신재호는 그 초능력으로 실비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

“초능력을 보니 기억이 나네요. 화려한 능력이라 인상이 강하게 남았었습니다.”

“전격 계열 초능력은 엄청 드무니까. 그중에서도 나 정도의 출력이 나오는 건 더더욱 드물고.”

“그렇……군요.”

“헌데 이상하단 말이지.”

갑작스레 시작된 자기자랑에 안수호가 어색하던 와중, 신재호가 이어서 말했다.

“나는 그때 그 괴물을 죽이고자 최대 출력으로 공격했어. 안에 있는 사람의 안전을 다소 도외시하면서 말이지. 헌데 당신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살아있더군. 서류상으로는 E급 초인에 불과한데.”

신재호가 미심쩍다는 눈으로 안수호를 흘겼다. 안수호가 서류상의 스펙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은 기실 이번 사태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러나 신재호는 그날 이래로 줄곧 안수호를 경계하고 있던 바, 아주 약간의 수상한 부분조차 쉬이 넘길 수 없었다.

“게다가 E급 초인의 몸으로 그 괴물한테 기생당하고도 멀쩡히 살아남았다는 것도 신기해. 보통의 기생괴수들은 다 숙주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는데. 당신은 마치 부담 따위 하나도 없다는 듯 행동하는군.”

“그건 그…….”

“즉 당신에게 비밀이 있거나. 아니면 그 기생괴수에게 비밀이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뭐, 어느 쪽이든 어차피 연구소에서 밝혀질 테지만.”

적의와 의문이 묘하게 어우러진 그 시선을 받아내며 안수호가 식은땀을 흘렸다.

신재호가 품은 의문들의 답은 기실 전부 간단했다. 그의 공격을 안수호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실비의 방호력에 더해 당시 안수호가 강하늘의 스킬 덕에 A급 초인 수준으로 강해져 있기 때문이고, 실비가 안수호의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건 행동에 필요한 마력을 전부 탈리스만을 통해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허나 어느 쪽이든 신재호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안수호는 신재호의 의심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못했다.

그때.

“안수호 씨의 초인등급과 실제 강함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서류상의 초인등급이 최신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지민 경위의 말에 신재호가 그녀를 돌아봤다.

“최신화……말입니까?”

“네. 안수호 씨의 초인등급이 마지막으로 측정된 건 2년 전 그가 군인시절일 때 받은 정기검사 때였습니다. 그때는 분명 E급 초인이었겠지만, 그 이후에 급격한 성장을 이뤄 지금 수준으로 강해진 거겠죠.”

“지금 수준이라 하면……?”

“일단 경찰 조사에서는 추정 A급이라 보고 있어요.”

정지민의 말에 신재호가 납득이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E급 초인이 2년 만에 A급으로 성장한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건 알아요. 그렇지만 그게 사실인걸요. 안수호 씨가 맨몸으로 네버랜드에서 싸웠던 여명단원들은 대부분 추정 A급 이상이고, 조사 결과 비공식적인 편법으로 몰래 오버랭크 던전 공략에 참여한 기록도 있더군요.”

“그걸 어떻게­”

“길드에서 숨긴다고 숨겼겠지만 경찰이 조사하면 다 나온답니다. 참고로 안수호 씨, 네버랜드에서의 일은 몰라도 공략 참가는 명백한 불법이에요. 안수호 씨는 헌터 면허가 없으니까요.”

“아하하…….”

안수호가 멋쩍게 웃으며 얼버무리자 정지민이 걱정하지 말라며 덧붙였다. 경찰은 이제 와서 그 건을 들쑤실 생각이 없으며, 애초에 설령 처벌을 받더라도 그건 안수호가 아닌 공략을 주관한 길드가 될 테니까.

“아무튼. 안수호 씨가 A급 초인이라면 대원님께서 수상쩍게 여기시는 부분들은 대부분 해명이 될 거예요. 그러니 그렇게까지 경계하지 않으셔도 돼요.”

정지민의 말에 신재호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진실과는 다르다 해도 정지민의 논리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대단하군.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2년 만에 E급에서 A급으로­”

­치이익. 후방에서 물류 트럭 다수 접근 중. 안전거리 미준수하고 가까이 따라붙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 대형을 추월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재호의 말을 끊듯 울려퍼진 무전.

­치이익. 우리나라 트럭 운전수들 성격 급한 게 어디 하루이틀인가. 그냥 얼른 지나가라고 비켜주자고. 대형 그대로 유지하면서 좌측으로 이동. 우측 화물차선을 비워주도록.

­확인.

무전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수호의 트럭을 포함한 차량 행렬 전체가 좌측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정지민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차선 점유는 이미 협조받은 사항이라 굳이 안 비켜줘도 되는데…….”

정지민은 민간 차량 때문에 대형을 흐트러뜨린 상사의 결정이 아니꼬운 눈치였다. 그러는 사이 후방에 따라붙었던 트럭들은 도로를 잔뜩 진동시키며 행렬을 추월해 지나갔다.

­치이이익. 트럭 추월 확인. 대형 원래 위치대로 돌리겠음.

­치이익. 잠깐. 아직 후방에 트럭 두 대가 남아있다. 추월한 트럭은 네 대 중 두 대뿐. 전부 같은 물류 회사 트럭이다.

“참나. 비워줬으면 빨리빨리 지나갈 것이지 뭘 밍기적대고 있는 거­”

­끼이이이이이익!!!!!!!!

“꺄앗!?”

정지민이 볼멘소리를 뱉은 순간 그들이 타고 있던 트럭이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급제동했다. 직후 여기저기서 울리는 충돌음과 차체에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들.

­치이익. 적습! 적습! 앞서 추월해간 트럭 두 대 급정거 후 짐칸에서 거수자 다수 출현! 전원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장하고 있다!

직후 울린 무전에 컨테이너 안에 있던 이들의 얼굴이 단숨에 굳었다. 정지민과 특임대원들이 부리나케 컨테이너 입구로 향했다.

“저도 가겠습­”

“안수호 씨는 거기 가만히 계세요! 저희가 상황 파악할 때까지 절대 나오시면 안 돼요!”

그렇게 말한 정지민이 컨테이너 문을 박차고 나갔다.

직후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연속 추돌로 인해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차량들 사이로 경찰 인원들이 저마다 내려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감싸듯 고속도로 양끝을 막아선 육중한 물류 트럭 네 대.

그 안에서 속속들이 내리는 수십 명의 적들을 보며 정지민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가능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했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저놈들이라니…….’

정지민의 시선이 적들의 오른팔에 채워진 완장으로 향했다. 푸른 바탕에 수놓아진 흰색 욱광 무늬. 대한민국 경찰 중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여명단……."

정지민이 소총 방아쇠에 손가락을 살며시 걸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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