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87화 (188/266)

〈 187화 〉 186. 동족혐오

* * *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건 반대로 말하자면 비슷한 부류끼리는 의외로 사이가 나쁘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를 흔히 이렇게 부른다.

‘동족혐오’라고.

­이 사람,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좀 받아가도 될까요?

“뭐?”

민채령과 한여름은 통화가 시작된 그 순간부터 서로에 대한 원인 모를 반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한여름의 저 폭탄 선언에 의해 민채령의 반감은 마침내 그녀의 이성을 뛰어넘었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녀­”

저도 모르게 비속어를 말하려던 그녀가 황급히 입을 닫는다. 그러나 S급 초인이 그걸 놓칠 리가 없었다.

­네? 뭐라고요? 미친년? 설마 지금 경비대 팀장이 학생보고 미친년이라고 욕한 건가요?

한여름은 굳이 자신의 후계자라는 지위를 들먹이지 않았다. 민채령이 모를 리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그녀의 말은 오히려 비아냥처럼 민채령의 이성을 쿡쿡 찔러댔다.

“……실언이었네요. 그렇지만 한여름 학생이 한 말이 워낙……기상천외했잖아요? 누가 누구한테 뭘 받아간다고요? 네?”

그럼에도 민채령은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온건하게 대꾸했다.

허나 한여름은 여전히 자중할 생각이 없었다.

­당신네 부하 제가 옆에서 계속 지켜봤는데 능력도 출중하고 여러모로 쓸만해보이더라고요. 그런데 당신이 이번 일에 제대로 케어도 못해주고 있는 걸 보니까 좀 불쌍해서, 도와주는 김에 이대로 제가 데려가려고 그랬죠.

“얼토당토않은 소리 마세요. 저희 부하직원이 뭐 길거리 고양이도 아니고, 데려가고 싶다고 멋대로 데려갈 수 있는 그런 건 줄 아나본데…….”

­아, 안수호 씨랑은 이미 합의했어요.

“…………네?”

한여름 혼자서 안수호를 멋대로 탐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민채령은,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문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 기색을 느낀 한여름이 입가에 웃음을 띠며 덧붙였다.

­예전엔 제가 억만금을 줘도 안 넘어오겠다고 하던 사람인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결국 저한테 손을 벌리더라고요. 그야 당신은 이번 사태에 부하직원을 위해 아무것도 못 해줬잖아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제가 안수호 그놈을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지 알기나 하냐고. 그렇게 반문하려던 민채령이 입술을 잘근 씹으며 입을 다물었다.

안수호가 그녀의 부하가 된 이래로, 그녀가 지금까지 안수호를 여러 방면에서 도와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여름의 말마따나, 이번 사태에 한한다면 그녀가 제 때에 조치를 취해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안수호를 구치소에서 빼낼 때 쓴 연줄로 인해 그녀에게까지 수사의 손길이 뻗칠 뻔했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이번에만 그런 거고. 지금까지 내가 걔를 얼마나 도와줬는데.’

안수호와 민채령의 관계는 비즈니스 관계, 라는 게 두 사람의 공통인식이었으나 기실 실상을 들춰내보면 안수호 쪽에서 받아먹은 게 더 많았다.

그렇기에 민채령은 생각했다.

비록 안수호가 자신에게 많이 받아처먹긴 했어도, 최소한 그에 대한 부채감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거라고.

적어도 지금처럼 누군가 자기네로 오라며 스카우트를 한다 해도 홀랑 넘어가는 천인공노할 쓰레기는 아닐 거라고.

그런데.

‘안수호……!’

정작 안수호는 연락이 두절된 하룻밤 사이 한여름에게 홀라당 넘어갔단다. 적어도 한여름 본인이 말하기에는.

물론 실상은 조금 달랐다. 안수호가 한여름과 맺은 거래는 어디까지나 프리랜서 계약의 약정. 그리고 그건 안수호의 경비대 신분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즉 일의 경위만 따지면 안수호는 오히려 민채령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할 수 있을 터.

허나 한여름은 일부러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민채령을 압박하기 위해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헌데 그녀는 왜 오늘 처음 통화하는 민채령을 상대로 이토록 악의적인 태도로 나오는가.

그 이유는 실로 간단했다.

‘이런 타입은 초장부터 밟아놔야 다루기 편하거든.’

한여름과 민채령은 세세한 부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 비슷했다. 둘 다 배후에서 사람을 다루는 지략가 스타일이요, 그렇기에 사람의 속내를 꿰뚫고 다루는 데에는 도가 튼 이들이었다.

아마 대등한 위치에서 만났다면 그 두 사람은 좋은 승부를 보여줬으리라.

‘오늘 밤에 안수호 씨한테 전화기를 준비해주면 아마 자초지종을 다 듣게 되겠지만……. 어디 그때까지 전전긍긍 해보라지.’

허나 현실은 두 사람의 위치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쪽은 국내 최대규모의 대기업 후계자인데 반해 다른 쪽은 기껏해봐야 아카데미 이사장 의붓딸, 경비대 팀장급에 불과했으니.

그러나.

“잠깐.”

한여름은 그런 자신의 우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지나치게 낮잡아보고 있었다.

“……안수호가 그쪽한테 아예 넘어갔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다뇨? 안수호 씨는 이미 저희 쪽 사람이 되기로 저랑 합의를…

“좀 전부터 그쪽으로 넘어갔다, 그쪽 사람이 됐다라고 애매하게 말씀하시는데.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 그게? 안수호가 한성그룹 사업체에 입사라도 한다는 건가요? E급 초인 나부랭이를 어디

쓰신다고?”

갑자기 강하게 반격하기 시작한 민채령의 모습에 한여름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꼴에 자존심은 있는지 추하게 발버둥치는구나 하면서.

­서류상으로나 E급이지 실전력은 S급에 준해요. 그런 인재라면 써먹을 곳이야 차고 넘치죠.

“그래서 어디에 쓸 거냐니까요? 왜 대답을 못 하실까?”

­그건…….

허나 민채령이 가진 건 자존심만이 아니요. 비단 ‘재력’이라는 우위를 제외한다면 민채령이 딱히 한여름에게 꿀리는 부분은 없었다.

상대방을 꿰뚫어보고 상황을 추론하는 통찰력을 포함해서.

“대답을 못 하시는 거 보니까 무언가 외부에 밝힐 수 없는 사정 같은데……. 그렇다면 그거겠네요. 조만간 설립된다던 한성그룹 자체 헌터 길드. 그놈이 전투력이 꽤 쓸만해보이니 헌터로 고용하려나 보죠?”

­…….

‘그걸 어떻게?!’ 같은 어설픈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허나 곧바로 반박하지 못한 침묵이야말로 민채령에게 있어선 긍정이나 다름없는 제스처였다.

“이거, 제가 아무래도 정곡을 찔렀나보네요. 이를 어쩐다?”

한성그룹의 헌터 사업 진출은 대외비. 무슨 철통보안 속에 감춰진 1급 비밀 수준은 아니더라도 관계자 외에는 아는 이가 없는 기밀사항 중 하나였다.

그런 사실을 일개 경비대 팀장이 어떻게 아는가. 찰나의 고민에 빠진 한여름은 이내 분하다는 듯 입술을 씹었다. 그런 제스처마저 민채령과 비슷했다.

‘아버님이랑 직통으로 연줄이 있는 여자야. 그룹 내부에 인맥은 그 외에도 얼마든지 있겠지.’

“그래서, 안수호 걔가 댁네 길드 헌터로 들어가기로 했다는 거죠?”

­……그렇다면 어쩔 건데요?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걔가 그런 식으로 자기 소속을 멋대로 옮겼을 리는 없어요. 제가 그 애의 약점을 아주 단단히 쥐고 있으니까.”

­약점……?

민채령이 말하는 약점이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지예원의 목에 박아둔 발신기 겸 폭탄이 그것이요, 강하늘이 그녀가 관리하는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점이 그것이요, 안수호가 지예원처럼 여명단 탈주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지막 하나는 안수호의 블러핑이긴 했지만, 그 외의 것들은 확실히 그의 약점이 될 만한 점들이었다.

“제가 그 약점을 틀어쥐고 있는 이상 안수호는 저에게 노골적으로 반항할 수 없고, 섣불리 제 곁을 떠날 수도 없어요. 그런데 그런 안수호가 저한테 상의도 없이 소속을 한성으로 옮기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저라면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안수호 씨를 보호해줄 수 있…

“그런 종류의 약점이 아닌데. 헛다리 제대로 짚으셨네요. 이거 아무리 봐도 안수호가 그쪽으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건 블러핑인 것 같은데? 근데 왜 이런 블러핑을 치셨을까? 어차피 언젠가는 들킬 수작인데…….”

민채령은 곰곰이 생각했다. 대화 초장에 한여름이 민채령에 대해 파악했듯, 민채령 또한 한여름이라는 여자를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그녀가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란 것도, 그렇기에 어떤 식으로 상대방을 대하는지도.

그렇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가 없는 짓거리인데. 그나마 의미가 있다면 단순 압박 정도? 앞으로 안수호 건으로 자주 대화하게 될 사이 같으니까 초장부터 기를 죽여두려고 했다든가?”

­…….

“정곡을 찔리면 말문이 막히는 거 저도 가지고 있는 버릇인데. 한여름 학생도 그런가 보네요?”

­하.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민채령의 지적에 애써 대답을 해보지만 급조한 티가 뻔히 보이는 대꾸였다. 한여름은 민채령이 가지지 못한 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을 가지고 노는 능글맞음은 민채령이 한 수 위였다.

그도 그럴 게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단순 인생 경험부터가 4년 가까이 차이가 났으니까.

“한여름 학생. 저희 부하직원이 많이 탐이 나시는 모양인데. 이해해요. 저도 처음에 그 녀석을 봤을 땐 아래에 두고 쓰면 쓸만하겠다 싶어서 가지려고 했으니까.”

­그 사람을 꽤 낮게 평가하시네요. 고작 쓸만한 정도가 아닐 텐데.

“지금이야 그렇지만 처음 만났을 땐 쥐뿔도 없이 당돌하기만 한 놈이었거든요. 게다가 아래 두고 있으면 이리저리 날뛰어대는 통에 여간 피곤한 게 아니고.”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린 민채령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안수호는 그녀에게 있어서 하자매물이나 다름없었다. 써먹기는 까다로우면서 막상 바라는 건 더럽게 많았으니.

그렇지만.

“그러니 인재를 등용하고 싶으시다면 안수호 말고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걸 추천할게요. 상사 입장에서 안수호 같은 부하는 참 계륵 같고 다루기 힘든 부하니까.”

그렇기에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설령 그 상대가 국내에서 제일가는 기업의 후계자라 하더라도.

“뭐, 어차피 그녀석이 당신한테 넘어갈 일은 절대 없겠지만요.”

안수호의 약점을 꽉 쥐고 있다 생각했기에 나온 말이지만, 한여름이 듣기에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한여름은 그 말을 들으며 마치 민채령이 그녀의 자질을 얕잡아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가요? 그렇지만 전 포기할 생각 없어요.

“써먹기 힘든 하자매물이라고 말해줘도 포기할 줄을 모르네요.”

­그거야 당신 그릇이 그 사람을 품을 정도가 못 되기 때문이겠죠. 이번 사태만 봐도 그렇고. 하여튼, 어디 한 번 두고 봐요. 그 사람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게 당신일지, 아니면 저일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여름은 전화를 끊었다. 민채령의 입가에 어이없는 웃음이 떠오른다.

‘안수호가 마지막에 선택하는 게 누구일지 두고 보라고?’

말하는 투만 보면 꼭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자간의 치정극 같았다. 물론 민채령이나 한여름에게 그런 사사로운 감정은 없었다. 두 사람 다 어디까지나 안수호를 이용해 이득을 취할 생각뿐이었다.

‘치정극은 무슨. 안수호 그놈이 뭐가 이쁘다고 걜 사이에 두고 여자끼리 싸우겠어……라고 말하기엔 이미 선례가 있던가?’

강하늘과 지예원을 떠올리며 민채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도대체 안수호의 어디가 매력적이라고 여자가 둘씩이나 그에게 달라붙는지.

‘둘 다 안수호한테 목숨을 구해진 경험이 있으니까. 무슨 흔들다리 효과 같은 거겠지.’

그게 아니고서야 안수호 같은 남자를 연애 상대로 삼을 리가 없다. 적어도 민채령이 보기에는 그랬다.

‘허구한 날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는 걸 모자라 이제는 지가 사건을 일으키면서 주위를 귀찮게 만드는데. 그딴 놈이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당장 아침 댓바람부터 한여름과 피곤하게 설전을 벌인 것도 다 안수호가 원인 아니던가. 팀장실 구석 명부에 붙은 그의 사진을 노려보며, 민채령이 깊은 한숨과 함께 생각했다.

안수호 따위, 콱 뒤져버리라고.

그리고 그 시각. 포항에서는.

­주인님…? 실비 버릴 거예요…? 아니죠…? 안 버릴 거죠……? 실비 버리지 마요. 제가 잘할게요. 버리지 마, 흑, 흐에엥…….

“안 버려. 안 버린다고. 안 버린다니까? 내가 몇 번을 말해야 믿겠냐.”

­그치만,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게 전해져요. 여차하면 저 버리겠다는 거…….

“그러니까 최대한 안 버리겠다고 말하잖……. 에휴 됐다. 말해봤자 뭐해. 어차피 감정이고 생각이고 다 통하는데.”

민채령이 안수호 따위 콱 죽어버리라고 생각하던 그 시점, 때마침 안수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짜 죽겠네 시발.’

­흐에에엥 죽지 마여어…….

‘시발.’

손목을 탁탁 때리면서 애원하는 실비를 보며 안수호가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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