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84화 (185/266)

〈 184화 〉 183. 기업과 싸우려면(2)

* * *

그날 밤.

안수호와 샤오메이 두 사람은 해안 절벽 위에 지어진 어느 고즈넉한 별장에 도착했다. 두 사람을 데려온 운전기사는 그들이 내리자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곤 곧바로 핸들을 돌렸다.

“……들어가자.”

안수호의 말에 샤오메이가 긴장한 얼굴로 그의 뒤를 따랐다. 선선한 밤바람이 불어오는 별장은 이미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상태.

‘이미 도착해있나.’

안수호는 그 안에 있을 선객이 누구일지 너무나도 뻔히 예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내 그가 별장에 들어서자.

“어서오세요. 안수호 씨.”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있던 이는 그의 예상대로의 인물이었다.

“한여름 학생…….”

“일단 앉아서 푹 쉬세요. 거의 쫓기다시피 달려오셨을 텐데. 아, 일단 마실 것부터 내올까요?”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한여름은 여유로운 몸짓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한여름의 말대로 소파에 앉은 안수호는 의아한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척 봐도 수십억은 처발랐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놀라서가 아니었다.

‘사람이 한 명도 없군.’

별장 안에 있는 사람은 한여름 한 명뿐이었다. 평소 무조건 수행인을 대동하고 다니던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하물며 지금 상황은 또 어떠한가.

샤오메이는 지명수배 중인 명백한 범죄자요, 안수호 또한 수배만 안 내려졌지 언제 경찰이 다시 쫓을지 모를 몸이었다. 헌데 그런 두 사람을 경호인력 하나 없이 혼자 대면하다니.

‘……아니, 생각해보니 한여름 정도 되면 딱히 경호원이 없어도 되려나.’

그러나 안수호는 이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최연소 S급 초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기에.

“두 분 다 커피로 괜찮죠?”

그때 한여름이 주방에서 따스한 김이 올라오는 커피를 내려왔다. 기분 좋은 커피 향이 은은하게 실내에 퍼져나간다.

한여름은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았다. 도도하게 다리를 꼰 그녀를 보며 안수호가 넌지시 말한다.

“낮에 연락 받았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쪽에서 절 도와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거든요.”

“서로 어려울 땐 돕고 살아야죠. 안 그런가요?”

“물론 좋은 말씀이시긴 합니다만…….”

동네 이웃도 아니고,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후계자가 고작 그런 이유로 자신을 도와줄 리가. 분명 다른 꿍꿍이속이 있겠지.

“이제는 슬슬 말씀해주시죠. 한여름 학생이 제게 무얼 바라고 절 도와주셨는지.”

안수호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한여름을 바라보며, 조금 전 낮의 일을 떠올렸다.

­안수호 씨?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진 않으신가요?

처음 한여름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안수호는 무심코 ‘살았다!’라고 생각했다.

기업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기업의 힘이 필요한 법. 한성그룹 후계자인 한여름이 이라면 성유진을 필두로 한 여일을 상대로도 괜찮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아니, 잠깐.’

그런 긍정적인 생각은 채 10초도 가지 않았다. 이 타이밍에 한여름이 자신에게 전화를 주었다는 건 즉, 그녀가 스스로 제공하는 ‘도움’을 빌미로 무언가 요구하려는 게 뻔했으니까.

그렇기에 안수호는 노골적으로 물었다. 당신이 날 공짜로 도와줄 리는 없지 않느냐. 허니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글쎄요?

한참을 뜸들이던 한여름은 묘하게 기분 좋아보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답했다. 답조차 아닌 얼버무림이었다.

­그건 이따가 만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만나서 말입니까?”

­네. 집 앞에 기자들이 그렇게 몰려있어서야 여간 불편한 게 아닐 텐데. 당분간 조용히 지낼 장소가 필요하실 거 아니에요? 게다가 중국인 지명수배자라는 혹까지 달고 계시는데.

“그건 어떻게­”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도 만나서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 지금은 이쪽으로 오실 준비부터 하세요. 1시간 뒤에 거기로 사람을 보낼 테니까.

“사람을 보내신다고 해도…….”

안수호는 조금 전 창밖으로 본 풍경을 떠올렸다. 집 앞은 물론이고 입구 반대편 골목까지. 그야말로 그가 살고 있는 원룸 건물을 둘러싸듯 들어찬 기자 무리를.

상황이 그래서야 설령 한여름이 차량 따윌 보낸다 해도 과연 그걸 탈 수 있을까. 물론 안수호는 초인이었으니 인파 자체는 각력으로 뛰어넘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카메라였다.

‘샤오메이가 지명수배된 이상 카메라에 찍히는 순간 쫓기게 되겠지. 연막으로 주위를 가린다고 해도 그런 수상한 행동 자체가 쓸데없는 주목을 끌게 될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행한다면 하다못해 그나마 사람들 눈이 어두워지는 밤, 그것도 새벽 시간이 적당했다. 적어도 한여름이 말한 벌건 대낮 시간대는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그러한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보내는 건 사람이지 차량이 아니니까.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모르겠는 안수호에게 그녀가 이어 말했다.

­공간이동 능력자를 통해 당신이랑 그 중국인 수배자를 500미터 떨어진 주차장으로 이동시킬 거예요. 거기서 제가 준비한 차에 탑승해 제가 있는 곳까지 오면 돼요.

“과연. 그 방법이면 기자나 카메라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요.”

­할아버님이나 아버님께서 소싯적에 자주 쓰시던 방법이죠. 예전에는 단번에 수십 km도 이동하시던 분인데, 노환 때문에 요즘은 예전같지 못하다 그러시네요. 뭐, 그거야 아무튼.

전화기 너머에서 한여름의 목소리가 빠르게 흘러들어왔다.

­저도 바쁜 시간 쪼개서 당신을 도와주려하고 있는 거니까 슬슬 결정해줬음 좋겠어요. 제 도움을 받아서 거길 빠져나올지, 아니면 겁먹은 강아지처럼 방구석에 박혀 있다가 들이닥친 경찰한테 체포당할지. 선택은 당신의 몫이에요.

한여름의 재촉에 안수호는 아주 잠시 고민했다. 한여름이 자신에게 무얼 요구할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옳은 일인가.

“……한여름 학생.”

허나 그 고민은 얼마 이어지지 않았다.

여일그룹을 등에 업은 성유진을 상대하는 지금, 유일하게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한여름의 손을 뿌리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으니.

“먼저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염치없지만 한여름 학생의 도움을 받도록 하죠.”

­좋아요. 이따 밤에 뵙도록 하죠.

안수호의 답을 듣자마자 한여름은 전화를 끊었다. 시간낭비를 혐오하는 그녀다운 일이었다.

전화를 마친 안수호는 샤오메이와 함께 떠날 채비를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우우우웅.

그들이 있던 집 거실에 대뜸 던전의 게이트처럼 생긴 푸른 차원문이 생겨났다. 세 사람이 놀란 것도 잠시, 그 안에서 양복 차림의 노신사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이쪽으로.”

노신사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새로운 게이트를 열더니 두 사람에게 손짓했다. 샤오메이가 잠시 망설이다 게이트로 들어서고, 한 박자 늦게 따라나서던 안수호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꽈악.

돌아본 그곳에는 지예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옷깃을 꽈악 쥐고 있었다. 차마 손을 직접 쥐진 못하고 옷깃만 소극적으로 쥔 그 모습에서 그녀의 불안함과 걱정이 다분히 묻어나왔다.

“……가자마자 바로 연락해.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또 바로 연락하고.”

“알겠어. 너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기자들 없어질 때까지 당분간 외출은 삼가고.”

“크흠.”

노인의 채근에 지예원은 애매하게 잡고 있던 옷깃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로 들어서기 직전, 안수호가 슬쩍 그녀를 돌아보며 작게 말했다.

“다녀올게.”

­우우우웅.

지예원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안수호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노인마저 게이트 안으로 몸을 감추자 게이트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없어졌다.

“…….”

지예원은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허공을 말없이,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녀의 어깨에 매달려있던 분신이 그녀를 위로하듯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한편 안수호와 샤오메이는 한여름이 보낸 차량을 통해 속초에서 포항까지 내려왔다. 가는 길에 안수호는 지예원에게 연락하려했으나, 운전기사는 보안상의 이유로 연락을 금지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안수호는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지예원을 걱정하며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해안대로를 따라 쭉 펼쳐진 바다 풍경은 한낮에서 저녁을 지나 이윽고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고.

그렇게 약 4시간 정도 지났을 때, 두 사람은 마침내 한여름이 기다리고 있던 포항의 어느 별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하여. 현재.

“이제는 슬슬 말씀해주시죠. 한여름 학생이 제게 무얼 바라고 절 도와주셨는지.”

안수호의 물음에 한여름은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그녀의 취향에 따라 블렌딩한 커피의 독특한 향이 그녀의 입 안에 진하게 맴돌았다.

“……사실 원래는 당신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어요. 정확히는, 먼저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말할 생각이 없었죠.”

그렇게 말하는 한여름의 입가에 연한 미소가 떠올랐다. 평소에 웃는다 하면 조소가 대부분인 그녀에겐 드문 정말 즐거운 듯한 웃음.

“제가 먼저 당신을 도와주면 제쪽이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러니 당신이 저한테 먼저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죠. 성유진 쪽에서 이렇게 대대적으로 나선 이상, 당신 인맥 선에서 대항할 수 있는 진영은 저희 한성그룹 정도밖에 없으니까.”

그 말에 안수호는 침음성을 삼켰다. 한여름은 안수호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한여름 말이 맞아. 그대로 있었다간 내 나름대로 민채령과도 의논해보고 설아현의 도움을 구해보려고도 했겠지만, 결국에는 한여름에게 손을 벌리게 됐겠지.’

그녀의 말마따나 국내 2위의 여일그룹에 대항할 수 있는 건 국내 1위의 한성그룹밖에 없었으니.

안수호는 이곳으로 오는 길에 이미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의문이었다.

“그런데 왜 먼저 제게 연락을 주신 거죠?”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먼저 첫 번째는, 안수호 씨 상황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급해보였다는 거.”

“제 상황이요?”

“구치소에서 풀려나셨을 때 모종의 연줄을 동원하신 것 같던데. 그거 관련해서 당신 재구속하려는 움직임이 경찰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더라고요. 전혀 모르고 계셨죠?”

그 말에 안수호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모르고 있었다면 모르고 있었지만,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은 하고 있던 일이었으니까.

“……의외로 경찰 내부 소식에 정통하시군요.”

“서울특별시경찰청장이 저희 아버님 대학 동아리 후배시거든요. 저한테는 어릴 적부터 뵙던 삼촌 같은 분이셔서, 덕분에 경찰 안에 이래저래 연락 닿는 사람이 많은 편이죠.”

인맥이 인맥을 만든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안수호는 새삼 그녀가 대기업 후계자임을 실감했다. 그 민채령조차 이처럼 고위공직자와 다이렉트로 연줄이 닿아있지는 않을 텐데.

“그럼 샤오메이가 저희 집에 있다는 걸 안 것도 경찰을 통해 들은 겁니까?”

“아뇨. 그건 다른 사람한테 들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제가 당신을 먼저 도와준 두 번째 이유기도 하죠.”

“그 사람……이라뇨?”

“당신도 아는 사람이에요.”

말을 마친 한여름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늘 짓던 차가운 웃음이 아닌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웃음이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평소에는 후계자 싸움이다 경쟁구도다 뭐다 해서 별로 친하게 안 지내지만, 막상 그쪽에서 먼저 부탁해오니까 저도 차마 거절할 수가 없더라고요. 오히려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하나? 그 아이가 저한테 먼저 굽히고 들어오는 걸 보니까 잊고 있던 자매간의 정도 떠오르고. 유독 그 아이가 귀여워 보이는 거 있죠?”

한여름은 속사포처럼 말하는 내내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마치 자랑하듯이, 그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듯 연신 미소를 지어댔다.

반면 안수호는 멍하니 그 말을 듣다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이 입을 떡 벌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한여름 학생이 말한 ‘그 사람’이라는 게…….”

“네. 제 동생 겨울이에요. 그 애가 저한테 부탁했거든요. 저보고 당신을 도와줬으면 한다고. 그게 좀 전에 말했던 두 번째 이유에요.”

그 말에 안수호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한여름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겨울이?’

‘나를?’

‘왜?’

‘도대체?’

‘어째서?’

그의 얼굴에 진한 의문의 감정이 떠올랐다.

한편 그 시각.

속초에 위치한 한성그룹의 저택. 그 2층의 어느 창가에는 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달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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