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 182. 기업과 싸우려면(1)
* * *
안수호가 잠시나마 안심한 사이, 그 주말 동안 성유진이 준비한 공격은 물리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여론전.
성유진은 겨울동맹의, 더 나아가 국내 2위의 재벌 그룹인 여일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안수호의 문제를 공론화했다.
네버랜드에서 특임대를 상대로 날뛴 기생괴수. 그것이 아직 안수호의 오른팔에 남아있음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수호가 풀려난 데에는 무언가 석연찮은 ‘뒷거래’가 있었음을.
안수호는, 그리고 민채령은 성유진이 이러한 수단으로 공격해 오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수단이 가능은 할 거라고 생각은 했으나, 결코 이를 선택하진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야 여론을 통한 공격은 안수호는 물론이고 성유진 자신마저 옭아매는 양날의 검이었으니까.
태초의 은과 관련해 성유진은 적지 않은 범죄를 저질렀다. 게다가 그 범죄는 비단 그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닌 겨울동맹과 여일, 심지어 중국 공산당과도 연결되는 상당한 규모의 범죄였다.
그렇기에 성유진은 비밀리에, 그리고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세간의 주목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며 안수호에게 접근했다. 그 움직임이 안수호나 민채령으로 하여금, 성유진이 사태를 조용히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인식을 더욱 강하게 품게 만들었다.
당장 민채령만 해도 성유진과 만났을 때 그 점을 들며 그를 압박할 정도였는데 오죽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유진이 오히려 스스로 사태를 키우며 여론전을 펼쳤다는 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는 명백했다.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거지.’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든 자신들의 범죄 사실을 숨기고, 태초의 은을 회수할 수 있다는 자신.
그 사실을 실감하자 안수호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민채령은 일단 상황 파악을 한 뒤에 연락준다 했지만……. 제아무리 민채령이 날고 기어도 기업을 상대로 여론전에서 이기는 건 불가능하겠지. 게다가 민채령은 날 구치소에서 빼낼 때 이미 음지의 권력을 휘둘렀어. 만약 그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간…….’
어쩌면 지금 자신보다 민채령이 더 위험한 상황인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진한 식은땀이 안수호의 주먹에서 배어나왔다.
띠리리리리리!
그때 다시금 전화벨이 울렸다. 결코 달가운 전화는 아닐 것 같다는 예지에 가까운 예감.
“류태현……?”
이내 화면을 확인한 그의 얼굴에 더욱 진한 불안감이 퍼진다. 안수호가 설마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는다.
형. 뉴스 봤어?
착잡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안수호가 그렇다 대답하자 류태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잔뜩 오더라고. 확인해보니까 다 무슨 신문사니 방송국이니 하는 곳들이더라. 뭔가 이상해서 인터넷 보니까 형 사진도 돌아다니고 그러던데…….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연락주었다는 말에 안수호가 말없이 한숨만 푹 내쉬었다.
형. 지금 이게 설마 다 그 성유진이라는 사람이 꾸민 짓이지?
“아마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정황상 99%지.”
좀 이상하지 않아? 형 말로는 그 사람이 강경하게 나와 봐야 몰래 청부업자나 보내는 수준일 거라며. 그런데도 이렇게 대대적으로 일을 키우는 건…….
“나도 이상하다 생각해. 그래서 왜 그놈이 지금 이딴 짓을 벌였는지 생각하는 중이야.”
생각을 해도 해도 도무지 그럴듯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게 문제였지만.
그렇게 답한 안수호가 류태현에게 넌지시 물었다.
“태현아. 그쪽은 별일 없지? 전화는 잔뜩 왔어도 뭐 기자들이 잔뜩 몰려왔다든가…….”
응. 여기는 그런 일 없어. 기자들이 와봐야 어차피 정문에서 다 막힐 거고. 아, 나 말고 다른 애들도 몇 명 기자한테서 전화 온 애들 있대. 아마 경찰조사 명단 같은 게 어디서 유출된 것 같더라.
“태현아. 내가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부탁? 뭔데? 말해봐.
성유진의 이번 공격으로 인해 안수호는 운신의 폭이 크게 제한되었다. 당장 집에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설령 이목을 피해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긴다 해도 자유로운 외출은 당분간 불가능하겠지.
그렇기에 안수호는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을 류태현에게 부탁하려 하고 있었다.
“하늘이를 좀 부탁할게. 성유진 쪽에서 소란을 틈타 내 지인한테 해코지할지도 모르니까.”
난 또 뭐라고. 알겠어. 어차피 하늘이랑은 수업이든 훈련이든 다 겹치니까 계속 붙어 다닐게. 기숙사까지 따라갈 순 없지만, 그건 설이나 다른 여자애들한테 부탁하면 될 테고.
안수호의 부탁에 류태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말의 고민이나 망설임도 없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주인공답다고 할 수 있었다.
“고맙다. 태현아.”
고맙긴 뭘. 나도 형한테 자주 도움받……지는 않았나? 생각해보니까 내가 거의 형을 도와줬지 형이 나 도와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류태현의 너스레에 안수호가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니 처음 만났던 서큐버스 사건 이후로 줄곧 그에겐 도움만 받았었다. 이중던전 때만 해도 류태현은 알아서 던전에서 잘 빠져나왔으니.
“내가 다음에 밥 살게. 그럼 됐지?”
설마 한 끼로 퉁치려는 건 아니지?
“……먹고 싶은 만큼 원 없이 사줄게. 이제 됐냐?”
분명 그렇게 말했다. 형 통장 내가 텅장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전화를 끊은 안수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하늘 쪽은 류태현과 그 친구들이 있다면 일단은 안심이었으니.
허나 그 안도는 채 10초도 가지 않았다. 강하늘이 안전하다 한들 사태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으니까.
‘성유진 그놈 목적이 도대체 뭘까.’
상식적으로 태초의 은을 회수하고 싶다면 이렇게까지 일을 키우는 건 미친 짓이었다. 아니, 미친 짓을 넘어서 오히려 방해밖에 안 되는 깽판에 불과했다.
안수호가 태초의 은을 자발적으로 넘기지 않는 이상 불법적인 수단을 걸어올 텐데, 매스컴의 이목이 집중된 지금 안수호에게 어떻게 해코지를 하겠는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일단 두 가지. 일단 하나는 내가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하늘이나 예원이처럼 내 주변 사람을 통해 협박하는 거. 가령 납치라든가 해서 말이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어지는 생각에 안수호가 침음성을 삼켰다.
‘놈이 불법적인 음지의 수단이 아니라 양지의 수단을 쓸 작정인 경우. 가령 날 일단 다시 체포한 다음에 여일의 재력으로 경찰을 매수해서 태초의 은을 뜯어낸다든가. 혹은 중국 쪽과 말을 잘 맞춰서 태초의 은이 본래 겨울동맹 소유 아티펙트인 것처럼 꾸민 뒤 정당한 소송으로 뜯어낸다든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에도 당초에 그런 가능성을 생각지 않았던 건, 그 방법들이라는 게 하나같이 귀찮고, 돈과 시간이 많이 들며, 세간의 이목과 관심을 끄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태초의 은은 비싸긴 하지만 끽해야 3, 40억이야. 벼룩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짓을 놈들이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은…….’
당장 온갖 언론에서 안수호와 기생괴수에 대해 떠들어대는 지금 상황만 해도 초가삼간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를 불태우는 격이었다. 그렇기에 안수호는 의문이었다.
도대체 태초의 은에 얼마의 가치가 있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자아가 있는 것만 빼면 단순한 강화형 아티펙트에 불과할 텐데. 설마 성유진이나 여일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추론에 가정을 더해보지만 그래봤자 혼자만의 고민, 근거 없는 추론과 가정에 불과했다. 원작의 내용이야 알고 있으니 그럴듯한 가설을 세워보는 거야 어렵지 않았지만 당장 확인해볼 방법이 없었으니.
“으음. 으, 안수호……? 거기서 뭐해?”
그때 바깥의 소란 때문에 지예원이 잠에서 깼다.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그녀가 창가에 선 안수호에게 묻는다.
“왜 그래? 바깥에 혹시 무슨 일 있어?”
지예원의 얼굴에는 묘한 불안감이 일고 있었다. 아직 사태를 파악하진 못했어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은 직감한 모양새.
그런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하려던 안수호의 시선이 문득 벽으로 향한다.
‘샤오메이는 아직 자고 있겠지.’
그녀 또한 일어나면 바깥의 이상을 알아차릴 터.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 미리 깨워서 사태에 대해 설명하는 게 나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지예원에게 말했다.
“……일단 씻어. 일이 좀 많이 귀찮게 돼서, 저쪽으로 넘어가서 한 번에 설명해줄게.”
***
지예원, 안수호, 그리고 샤오메이.
세 사람은 본래 안수호의 집이었던 방에 모여 있었다. 시간은 오후 세 시로, 안수호가 사태를 알아차리고부터 약 7시간 뒤.
그 사이 사태는 안수호의 예상과 하나도 다를 게 없이 흘러갔다.
언론은 기생괴수 사태의 용의자 A씨(24)에 대한 근거 없는 추측성 보도를 내보냈고 인터넷에는 어느새 털린 그의 신상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또한 매스컴의 눈길은 비단 안수호만이 아닌 그날 안수호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던 이들, 즉 류태현과 그 친구들에게도 향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시달린 건 단연 안수호와 함께 싸웠던 류태현이었는데, 덕분에 그는 오후 수업 도중 진상 조사 명목으로 따로 교수에게 호출당하는 일에 처했다.
한편 민채령 역시 상황은 안수호의 예상과 비슷했다. 금방 상황을 파악한 뒤 지침을 내려주겠다던 민채령은 그 이후 한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다. 안수호를 챙기는 것보다 그녀 자신의 앞가림을 하는 게 더 급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민채령이 그런 상황이니 안수호가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바깥은 다소 줄어들긴 했어도 여전히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괜히 나갔다가 카메라에 찍히기라도 하면 그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지금 위험한 건 나나 샤오메이만이 아니야.’
안수호는 침대에 기댄 채 핸드폰을 하는 지예원을 바라보았다.
현재 바깥에는 방송국 카메라가 잔뜩 돌아가고 있는 상태. 만약 그중 하나라도 지예원의 얼굴을 잡았다간 그녀의 얼굴이 곧바로 전국으로 방송되게 될 것이다.
‘예원이가 여명단을 배신한 건 세 달 전. 여명단 중에는 아직 예원이를 쫓고 있는 놈들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방송국 카메라에 잡히는 건 무조건 피해야 해.’
어쩌면 안수호나 샤오메이보다 지예원 쪽이 더욱 위험에 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안수호는 괜히 자신 때문에 지예원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정작 지예원 본인은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그녀라고 해서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안수호만 마음이 편치 않아질 테니 최대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중이었다.
우우웅.
그때 핸드폰 진동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샤오메이가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내든다.
“무슨 일이지?”
“동료 브로커한테서 온 연락이야. 왜 저번에 말했던, 내 밀항편 알아봐주는 동료가 있다 그랬었……아, 빌어먹을.”
그나마 평온했던 샤오메이의 표정이 단숨에 구겨진다. 안수호가 왜 그러냐 묻기도 전에 그녀가 스마트폰 화면을 두 사람에게 보여준다.
“지명……수배?”
“불법무기 밀수 및 내란 모의. 나한테 웃기지도 않는 죄목을 붙여주셨어. 아마 이것도 여일그룹 짓이겠지.”
“이건 큰일인데.”
그렇게 말한 안수호의 표정은 전보다 훨씬 어두워져 있었다.
“큰일? 왜?”
“샤오메이가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근처 CCTV에 다 찍혀있어. 경찰이 샤오메이가 우리집에 있다는 걸 알아내는 건 순식간이겠지. 어쩌면 이미 알지도 모르고.”
“그렇다는 건…….”
“언제라도 수배자 체포를 명목으로 여기 들이닥칠 수 있다는 거지.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한시라도 빨리 장소를 옮겨야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어딜 가든 경찰과 언론의 눈이 그들을 쫓을 텐데.
‘고작 하루만에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안수호는 스스로의 안일함이 저주스러웠다. 성유진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압박을 걸어올 거라는 건 예상 밖이었다 해도, 최소한 자신이 상대하는 게 성유진 개인이 아닌 여일그룹 전체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움직였어야 했는데.
‘아니, 그 순간에는 그게 최선이었어. 내가 낼 수 있는 정보라는 패로 성유진을 만족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활로였으니까. 그게 제대로 안 풀려서 문제지.’
과거의 흐름을 복기하고 그 선택을 후회한들 이제와선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였다. 그러나 현실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여일. 국내 2위에 해당하는 대기업이었다. 그런 상대가 작정하고 사방에서 죄어드는 와중에 일개 개인인 안수호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비록 안수호라는 개인이 개인 대 개인의 싸움에서는 출중한 능력을 보인다 한들 거대한 기업 앞에서는 맥없이 스러지는 촛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기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안수호 또한 그에 상응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야 하나, 안수호에게 그런 힘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안수호에게는, 말이다.
띠리리리리리!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에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안수호의 핸드폰이었다. 곧 화면을 확인한 그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이 사람이 왜……?’
이 사람이 왜 지금 자신에게 전화했는가. 머릿속에 떠오른 갑작스러운 의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전화의 상대야말로 작금의 상황을 타파할 활로일지도 몰랐으니까.
곧 안수호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안수호 씨?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진 않으신가요?
많이 들어서 익숙한, 그러나 오늘따라 유독 따스하게 들리는 그 목소리가 안수호를 반겨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