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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81화 (182/266)

〈 181화 〉 180. 회담(2)

* * *

­끼이이익.

긴장감이 감도는 테이블을 뒤로하고 설아현과 예카테리나가 방을 나섰다.

안수호가 ‘협상’을 걸기 시작하면 자리를 비워달라고. 미리 그렇게 들었기에 방을 나서긴 했지만 설아현의 얼굴에는 불안감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회주님…….”

예카테리나는 그런 설아현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집단의 리더란 모름지기 맺고 끊음이 확실해야 한다. 그리고 설아현은 지금껏 냉철한 리더로서 흑룡회를 잘 이끌어왔다.

헌데 어째서, 유독 안수호와 관련된 일에는 이렇게나 냉정해지지 못하는지.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수호 님께서도 생각이 다 있으시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카챠…….”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상사를 보며 예카테리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말하고 싶었다.

안수호는 남이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이번 일의 책임을 그가 온전히 짊어지기로 한 이상, 그가 어떻게 되든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것이 한 점 거짓 없는 예카테리나 본인의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회주님께서 이번 회담에 함께하신 건 안수호 님을 믿고 계시기 때문이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디 너무 염려치 마시길. 다 잘 될 겁니다.”

그 ‘남’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게 뻔히 보이는 설아현에게, 충직한 그녀가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진심을 숨긴 채 최대한 온건한 말로 설아현을 달랬다. 잘 될 거라고. 그런 마음에도 없는 낙관론을 읊으면서.

‘과연 저 문이 다시 열릴 때 상황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굳게 닫힌 룸 문을 바라보며 예카테리나가 마른 침을 삼켰다.

***

한편 그때, 방 안에서는.

“정보라…….”

안수호가 대뜸 던진 거래 제안을 성유진은 턱을 괸 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정보는 중요하다. 특히 성유진처럼 양지를 살아가면서도 음지에서 암약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권력과 무력, 재력이 소용돌이치는 폭풍 속에서 유용한 하나의 정보는 때로는 억만금의 가치를 지니기도 하니까.

허나 그 가치란 결국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에겐 절실한 정보도 다른 이에게는 필요 없을 수도 있으며, 어제까지는 귀했던 정보가 오늘 갑자기 쓰레기가 될 수도 있었으니.

“유용한 정보를 팔겠다……. 거래 제안치고는 좀 추상적이군요. 무릇 장사꾼이란 남들에게 그들이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을 잘 보여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보여주는 시점에서 가치를 잃는 게 정보긴 하지만 뭐, 좋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까지 알고 어느 정도까지 팔 수 있는지는 말씀드려야 하니…….”

어디보자, 하고 중얼거리며 안수호가 눈을 굴렸다. 물론 어디까지나 계산된 제스처였다. 성유진에게 거래를 제시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샘플’로 제시할 정보를 무엇으로 할지는 결정해 두었으니.

“그럼 이렇게 하죠. 당신네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보 하나와 당신네들을 협박할 수 있는 정보 하나. 이렇게 두 개를 먼저 공개하겠습니다.”

“자신만만하군요. 어디 한 번 해보시죠.”

“겨울동맹 간부 신명철.”

그가 짧게 내뱉은 말이 판사의 사형선고처럼 좌중에 내려앉는다.

묵직하고. 또렷하게.

“……그는 여명단 서울지부 소속 내통자입니다. S급 길드 내부에 잠입해 내부 사정을 유출하는 한편 여명단에 유리한 급진적인 초인우월사상을 전파하는 임무를 맡고 있죠.”

“그게 무슨­”

그 말에 듣고 있던 박인호가 사색이 되어 반문했다. 그러나 워낙 뜬금없고, 충격적이고, 또 믿기 어려운 말인지라 그는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신명철 님은 겨울동맹의 초창기부터 함께 해오신 개국공신 같은 분이신데. 그분이 여명단의 내통자라니…….”

“믿기 싫으시면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단지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요.”

“……증거는 있습니까? 설마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건 아니겠죠.”

“글쎄요. 거기까지 말해주는 건 너무 제가 손해 보는 장사군요. 아직 당신네들이 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결정한 것도 아닌데.”

안수호의 대답에 박인호가 노골적으로 표정을 찌푸렸다. 그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성유진에게 간언하려 했다.

그러나.

“그렇군요. 그게 저희한테 유용한 정보인가요?”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박인호는 성유진의 눈에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흥미의 빛을 발견했다.

탐스러운 먹잇감을, 혹은 위험한 적을 앞에 둔 한 마리 늑대의 눈빛.

“그렇죠. 신명철은 여명단에서도 나름 위치가 있는 자입니다. 그런 그를 체포한다면 음지에 숨어있는 여명단의 색출에 큰 도움이 되겠죠. 신고한 겨울동맹에게는 커다란 사회적 명예와 그에 따른 부수적인 이득이 따라올 것입니다.”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요. 그렇다면 이어서, 저희를 협박할 수 있는 정보라는 건?”

“이것도 똑같이 신명철에 관련된 정보긴 한데…….”

말끝을 흐린 안수호가 성유진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일순, 안수호의 등줄기를 따라 매섭게 일어나는 오한.

안수호는 마치 으르렁거리는 짐승을 눈앞에 마주한 것 같았다. 실제로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성유진의 초능력은 짐승화. 그의 몸에 흐르는 피의 절반은 늑대의 것이었으니.

“성유진 씨.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허나 안수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또렷한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죠? 신명철이 여명단의 내통자라는 것을.”

“예?”

그 말에 반응한 것은 박인호였다. 조금 전부터 급격하게 진행되는 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안수호와 성유진 사이에 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

“당신은 신명철이 내통자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방치했습니다. 신명철이 길드에 가져다주는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겸사겸사 그를 통해 여명단의 동태를 살필 수 있으면 좋겠구나 싶었겠죠. 그래서 이미 길드 외 인원으로 따로 감시도 붙여둔 상황이고. 안 그렇습니까?”

“흐.”

안수호의 자신만만한 물음에 성유진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목구멍을 잔뜩 긁으며 튀어나온 그것은 꼭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았다.

“맞습니다. 신명철이 여명단의 내통자인 것도, 제가 그걸 알면서 일부러 방치하고 있던 것도 전부 맞아요. 대단하군요. 길드 안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일이었는데…….”

“이, 이사님?”

“어떻게 알아냈느냐 물어본다 해도 대답해주진 않겠죠?”

“당연하죠. 영업비밀인데. 하지만 제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그 영업비밀을 통해 얻어낸 ‘유용한 정보’를 당신들에게 팔 의향은 있습니다.”

“태초의 은 건을 무마하는 대가로 말이죠.”

여전히 당혹감에 빠진 박인호를 뒤로한 채 두 사람은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갔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안수호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으니, 남은 건 성유진이 제안을 수락하느냐 마느냐.

성유진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애초에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문제였으니.

이윽고 그가 꺼낸 대답에 안수호가 웃으며 말했다.

현명한 판단에 감사하다고.

***

­벌컥.

예고도 없이 열린 문으로 성유진과 박인호가 방을 나섰다. 그러자 그들과 교차하듯 설아현과 예카테리나가 방 안으로 들어선다.

“수호 씨. 그…….”

어떻게 됐냐고. 그렇게 물어보기도 전에 안수호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때까지도 불안에 젖어 있던 설아현의 얼굴에 일말의 안도가 스쳐 지나간다.

“하아아아. 다행이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푸욱 내쉬는 설아현.

그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한 안수호가 짓궂게 말했다.

“언제는 칼같이 선 긋고 안 도와주겠다 하시더니, 그 반응을 보니 말은 안 해도 절 많이 걱정해주셨나 봅니다.”

“읏…….”

뒤늦게 표정과 자세를 가다듬은 설아현이 항변하듯 내뱉는다.

“그래도 같이 싸웠던 동료……잖아요. 사업 파트너 비슷한 거기도 하고. 또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그리고 또…….”

우물쭈물 말을 잇다가 ‘아, 아무튼! 어쨌든 잘 풀렸다니 다행이네요!’하고 대충 얼버무리는 설아현.

그런 그녀의 모습에 안수호의 입가에 애매한 미소가 번졌다. 왜 미소가 애매하냐면, 설아현의 그 풋풋한 반응을 마냥 즐길 수만은 없었기 때문에.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조금씩 낌새가 보이긴 하네.’

지난번 만남에서 설아현이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의심한 뒤로, 안수호는 설아현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나 언행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 결과 판정은 회색.

설아현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확답할 수는 없으나 그럴듯한 낌새가 보이기는 했다. ‘에이 설마,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설아현이 나한테 반하겠어?’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으나, 지예원이나 강하늘의 전적이 있는 만큼 마냥 안심할 수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 조만간 강하늘에게 멱살 잡힐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안수호가 두려운 미래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

그런 두 사람을 예카테리나가 한 발자국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았다. 그녀 또한 안수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어쩐지 요즘 회주님 태도가 이상하더라니.

역시 이 남자가 범인이었군.

그렇게 생각한 예카테리나가 안수호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그 시각, 지상에서는.

“…….”

박인호는 묵묵히 계단을 오른 성유진의 뒷모습을 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긴 시간의 침묵 끝에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이사님. 정말 그 자의 제안을 받아들이신 겁니까?”

조금 전. 성유진은 안수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50억에 상응하는 가치 있는 정보를 대가로 태초의 은 건을 불문에 부치겠노라고.

박인호가 생각하길 안수호의 정보력 자체는 진짜였다. 자신도 모르던 길드 내부 사정까지 훤히 꿰고 있던 걸 보면 정말 50억 수준의, 어쩌면 그 이상의 고가치 정보를 물어와 길드의 이익이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놈이 가져온 정보가 정말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고. 애초에 형태도 없는 정보 따위를 현물이랑 맞바꾼다니…….’

박인호는 부하로서 성유진의 결정을 존중했다. 존중했다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납득이 되지도 않았다.

늘 합리적인 판단만을 하던 자신의 상사가 왜, 도대체 오늘따라 이런 불합리한 결정을 내렸는지.

‘게다가…….’

그런 박인호의 우려 섞인 사고는 이윽고 조금 전 들었던 ‘정보’로 흘러들어갔다.

신명철. 겨울동맹의 기틀을 다진 간부 중 한 사람. 그가 알고 보니 여명단의 내통자였고 심지어 성유진은 그걸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진실.

박인호 또한 겨울동맹의 간부로서 길드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렇기에 불안했다.

상사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 자신조차 모르던 길드의 내부 사정.

그러한 무지에서부터 비롯된 막연한 불안감이 그의 뇌리에 스멀스멀 차오를 때.

“인호 씨.”

가게 앞에 멈춰선 성유진이 대답했다.

“오늘 들은 것들은 일은 전부 잊으세요. 그게 당신 신상에도 이로울 겁니다.”

“예? 아, 알겠습니다….”

정중한 말투였으나 거의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당황한 채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한 박인호를 보며 성유진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 남자, 하필이면 신명철 건을 건드릴 줄은…….’

신명철에 대한 진실은 길드 안에서도 그를 포함해 단 세 사람만이 아는 극비 중의 극비.

심지어 서브마스터인 그의 유일한 상사인 길드마스터조차 그 사실에 대해선 알지 못하고 있었다. 헌데 간부라고는 해도 다소 지위가 낮은 박인호가 뜬금없게 그 사실을 알아버리다니, 그로서는 통탄할 노릇이었다.

‘박인호는 나와 대립하는 길드마스터 쪽 인사. 게다가 여일그룹에서도 한 자리 꿰차고 있지. 이대로 가다간 분명 오늘 일에 대해 여기저기 보고하고 다닐 게 분명해. 어떻게든 입막음을 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그 입을 틀어막든, 아니면 협박과 회유를 통해 완전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든.

성유진이 고민하고 있던 사이 눈치를 보던 박인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냐고.

정말 안수호의 제안을 받아들이신 거냐고.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그 질문에 성유진이 그렇게 대답했다.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기실 박인호가 느끼는 것과 달리 성유진에게 있어서 안수호의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안수호의 정보력에 대한 의문을 버리지 못한 박인호와 달리, 성유진에게는 ‘안수호는 민채령이 직접 기용한 엘리트다’라는 보증수표가 있었으니까.

아마 안수호도 성유진이 그렇게 생각할 거라 판단하고 그런 제안을 자신만만하게 건넨 것일 터. 그렇기에 성유진은 안수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나나 여일에게 있어서 태초의 은을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지.’

태초의 은은 다중능력 연구에 필수불가결한 아티펙트. 설령 50억이 아닌 100억, 200억 어치의 정보를 준다 한들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허나 그 자리에서 더 버틴다 해서 안수호가 생각을 바꿀 리도 없었다. 그렇기에 성유진은 일단 겉으로나마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안수호가 안심하고 방심하도록.

그리고 안심과 방심의 틈을 찔러, 태초의 은을 회수할 계획을 진행시키기 위해서.

‘안수호라 그랬나.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한번 보자고.’

무력.

권력.

재력.

문자 그대로 겨울동맹, 나아가서 여일그룹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방에서 조여들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작자라도 버틸 수 없겠지.

그렇게 자신하는 성유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 자신감을 증명하듯.

그로부터 이틀 뒤. 월요일 이른 아침.

“이게 뭐야 씨발…….”

안수호는 자신의 눈앞에 닥쳐온 성유진의 마수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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