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79화 (180/266)

〈 179화 〉 178. 회담 전(2)

* * *

밀회에는 사람이 없는 장소가 필요한 법이다.

민채령과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필요했던 성유진은 부하직원이 끌고 온 차를 타고 인적 없는 해안도로로 향했다. 운전석에는 그, 조수석에는 민채령. 그 외에는 아무도 동승하지 않은 채.

두 사람은 이동하는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안부 따위나 물을 정도로 달가운 사이는 아니었으며, 이후 밀회에서 할 말을 고르고 정리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니.

­끼이이익.

그렇게 해안도로 구석 갓길에 차가 멈추고, 성유진이 조수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표정한 민채령의 옆모습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슬슬 울긋불긋 물들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파도소리. 그리고 세상을 완연하게 비추는 저물어가는 황혼.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되는 아름다운 풍경에 잠깐 넋을 놓았던 성유진이 이내 다시금 민채령에게 시선을 돌린다. 때마침 그녀 또한 성유진을 바라본다.

“이 동네가 풍경 하나는 참 예쁘지? 여기 살다보면 괜히 마음속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이라니까?”

질 나쁜 농담이었다. 민채령은 속이 검기로는 대한민국 전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건 예전부터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성유진이 기억하는 민채령이라는 선배는 일견 친절해보이면서도, 늘 속에는 시커먼 음모를 품곤 하던 자였으니.

“선배. 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용건이 있다면 빨리 말씀해주시죠.”

“킥.”

성유진의 재촉에 민채령이 피식 웃었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다.

“……왜 웃는 거죠?”

“저번이랑 상황이 반대라서. 저번에는 내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니까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끼리 정도 없냐며 따지더니, 오늘은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하네.”

“…….”

“하긴. 저번이랑 입장이 바뀌긴 했지. 저번에는 내가 아쉬운 쪽이었고 이번에는 네가 아쉬운 상황이니까.”

입장에 따라 태도가 홱홱 변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우리 둘 사이에 선후배간의 정 같은 건 없는 게 맞나보다며. 민채령의 너스레에 성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후배의 정 따위로 묶이기에는 서로의 입장이 너무나도 달랐으며, 손에 쥔 게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선배, 왜 부하를 시켜 저희 일을 방해하려는 겁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시치미 떼지 마십쇼. 세간에는 기생괴수라 알려진 아티펙트 ‘태초의 은’이 엮인 일련의 사태, 선배도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알고만 있지. 이번 일은 내가 시킨 게 아니라 순전히 부하의 독단이야. 나도 머리 아파 미칠 지경이라고.”

생각하니 짜증이 더 치밀어 오른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민채령.

그 반응은 한 점 거짓 없는 진심이었지만 성유진이 알 턱이 없었다. 진심인지 연기인지 가늠하던 그를 바라보며 민채령이 피식 웃는다.

“그러고 보니 그 아티펙트 가격이 꽤 한다지? 40억이라든가? 참 안타깝게 됐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든 물건을 다시 받아낼 테니까.”

“어떻게? 고소라도 하게? 불법으로 빼돌린 장물을 다른 사람이 가로채갔다고 하면 법원이 퍽이나 들어주겠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받아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음지에는 음지의 방법이 있는 법이죠. 선배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비아냥거리듯 던진 성유진의 말에 민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녀도 비합법의 영역에 대해선 훤히 꿰고 있는 자들이었으니.

“잘 알고 있지. 그래서 네가 수작질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도 않을 거고.”

“섭섭하군요. 그 안수호라는 경비원보다 제가 선배와 알고 지낸 세월이 몇 배는 길 텐데.”

“그래서 지금 이렇게 경고해주고 있잖니. 괜히 내 부하 건드렸다가 피 보지 말라고. 지금 그 애를 건드렸다간 분명 큰 소란이 될 걸? 그거 감당할 수 있겠어?”

현재 안수호의 주위는 얼핏 평화로워 보이지만 기실 폭풍전야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저번 기사의 무덤 공략 건부터 시작해 이번 기생괴수 사건까지. 안수호가 굵직한 사건들을 몰고 다니며 사방에 자기 PR을 해댄 덕에 지금은 온갖 단체가 그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찰과 정부, 아카데미, 한성그룹, 그리고 일선 헌터 길드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그런 상황에서 괜히 뜨거운 감자인 안수호를 건드리는 건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이겠지.

“게다가 그 왜, 듣자하니 거래 상대가 리하오위 정치국 상무위원이라며? 괜히 소란 피웠다가 니들 암거래가 탄로나기라도 하면 그쪽에서 보복이라도 당하는 거 아니야?”

“걱정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무위원이라고 해봤자 결국 외국 정치인. 여기가 중국도 아닌데 힘을 써봤자 얼마나 쓰겠습니까?”

“글쎄. 조사해보니까 중국 재벌가부터 뒷세계 범죄조직까지 이어지지 않은 곳이 없던 거물이던데? 그런 위험한 놈하고 거래를 트다니 배짱 한 번 두둑하네. 태초의 은이 그렇게 필요했어?”

­움찔.

성유진의 얼굴에 떠오른 포커페이스 아래로 아주 옅은 동요의 기색이 퍼진다. 그리고 민채령은 그 기색을 놓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이상하네. 태초의 은이 뭐라고. 그냥 좀 특별한 아티펙트에 불과한데 왜 웃돈까지 쥐어주면서 그걸 구하려고 했을까.’

세상에는 어떤 일로든 엮이지 않는 편이 좋은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리고 지금껏 말이 나온 상무위원 리하오위가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중국 정·재계는 물론 지하세계까지 주름잡고 있는 거물 정치인.

그런 인간과의 접촉은 당연하지만 커다란 리스크를 낳는다. 헌데 그런 리하오위와 접촉해서 얻어낸 것이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고작 무기형 특급 아티펙트 하나라니.

‘자아를 가진 아티펙트가 귀하긴 해도 그렇게까지 해서 얻어야 할 물건은 아닐 텐데…….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게 있나?’

민채령의 의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의심어린 눈초리로 그녀가 다시 한 번 묻는다.

“있지. 하나만 물어보자. 도대체 왜 그게 필요했던 거야?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태초의 은을 가지려고 하는 건데?”

그 질문에 성유진은 침묵했다. 말해선 안 될 부분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이 바뀐다. 굳이 침묵을 지킬 필요가 있는가. 어차피 민채령이 이렇게 자신을 만나 직접 물어본다는 건 즉, 이미 알만큼 다 알아본 뒤에 왔다는 것일 테니까.

“다 아시면서 왜 굳이 물어보십니까?”

“글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그렇기에 성유진은 그렇게 되물었고, 민채령은 평소처럼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받아쳤다.

성유진은 그 대답마저도 기만이라 생각했다. 조금 전 민채령의 말마따나 둘 중 아쉬운 건 성유진 쪽이었기에. 그 입장 차이를 즐기며 자신을 얕잡아 보는 거라고.

성유진은 부아가 치미는 한편 어딘가 그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신이 아는 민채령은 늘 이렇듯,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서도 능글맞은 악의가 묻어나오는 사람이었으니.

그러나.

‘………………진짜 모르는데.’

기실 성유진의 짐작과 달리 민채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가 태초의 은을 원하는 건 여일에서 진행 중인 다중능력 연구 때문이고, 민채령도 그가 그런 연구에 발을 담구고 있다는 건 알지만, 어디까지나 딱 거기까지.

자세한 연구의 진척 상황이라든가, 복수의 능력을 버틸 신체 강도를 만들기 위해 태초의 은이 필요하다는 내부 사정 따위를 그녀가 어찌 알겠는가. 당사자도 아닌데.

그러나 민채령은 그 무지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은 채, 침묵을 지키며 성유진을 무언으로 압박한다.

그가 알아서 멋대로 착각하기 쉽도록.

그 착각으로 인해 제 스스로 내부 사정에 대해 말하도록.

그것은 그녀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를 믿었기에 저지를 수 있는 도박수였다. 들켰다간 더 이상 뒤가 없는, 배수의 진의 기세로 내민 블러핑.

“……시치미 떼지 마십쇼. 선배는 저희가 다중능력자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래서 저희 연구에 훼방을 놓으려고 일부러 부하를 시켜 태초의 은을 빼돌린 것 아닙니까.”

‘빙고.’

그리고 성유진은 그 블러핑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민채령은 그가 말한 내용을 토대로 추측했다.

‘다중능력 연구에 태초의 은이 필요하다라. 왜 필요하지? 자아가 있는 아티펙트에 능력을 이식하는 실험이라도 하나? 그러고 보니 저번에 나주용이 이상한 기계로 초능력을 발동하긴 했지. 그 연장선상인가? 아니면 다른 방향……. 이를 테면 아티펙트의 능력을 사람에게 이식한다든가?’

추측은 무한대로 뻗어나갔다. 개중에는 진실과 얼핏 비슷한 추측도 있는가 하면, 아예 동떨어진 방향으로 폭주하는 내용도 있었다.

‘뭐가 됐든 떠보면 떠볼수록 점점 윤곽이 잡히겠지.’

진실의 힌트를 캐내기 위해 다음에는 어떤 질문을 던질까. 민채령이 머릿속으로 질문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선배. 겨울동맹이 태초의 은 밀수에 들인 돈만 거의 50억입니다. 관련 연구 비용은 천문학적인 수준이고요. 저희는 무조건 태초의 은이 필요합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빼앗을 거라고요.”

“그래서?”

“저를, 겨울동맹을, 그리고 정녕 여일을 적으로 돌리고 싶으신 겁니까?”

우리와 적대하고 싶지 않다면 태초의 은을 넘기라는 알기 쉬운 협박.

그 협박에서 민채령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 강하늘이 납치당할 뻔하고 여일 장학사가 그녀에게 접근했을 때. 강하늘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담판을 지으러 그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협박을 들었던 것 같다고.

그때와 지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강하늘이든 태초의 은이든 여일의 다중능력 연구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

“……적이라. 성유진. 너도 실은 알고 있잖아. 너네랑 내 사이는 이미 적이나 다름없다는 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민채령은 일말의 갈등의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여일이 다중능력 연구에 손을 댄 시점에서 니들은 나랑 한 편이 될 수가 없어요. 나는 그 빌어처먹을 연구에 아주 학을 뗀 사람이거든.”

찐득한 분노가 뚝뚝 묻어나오는 대답.

그 대답에 성유진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는 정부도 그린하우스를 통해 뒤로는 몰래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맞아.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 정부든 너희 여일이든 다 잡아족치고 싶어. 근데 내가 힘이 없는 걸 어쩌겠니. 나랏돈 받아먹고 사는 일개 경비대 팀장이 뭘 할 수 있겠어?”

“선배는 다중능력 연구와 무관하다 그겁니까? 그럼 저희가 강하늘을 납치하려 했을 때 왜 그렇게까지 방해한 겁니까?”

“와, 이젠 대놓고 말하네? 내가 지금 녹취록 따고 있었으면 너 이거 깜빵 신세다?”

“질문에나 대답해주시죠.”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던져진 질문에 민채령이 힘없이 웃었다. 성유진은 그녀가 왜 웃었는지 몰랐지만, 적어도 유쾌한 기분이 아니라는 것만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요람’이라는 단체에 대해 알고 있니?”

“예.”

“당연히 알고 있겠지. 니들이 하는 다중능력 연구가 다 거기서 시작된 거니까. 그럼 나랑 강하늘이 거기 실험체 출신인 것도 알겠네?”

두 번째 질문에 성유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사의한 원리로 복수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민채령. 그리고 ‘아바타’라는 하나의 능력에서 비롯된 다양한 부가능력을 사용하는 강하늘.

두 사람의 그 축복과도 같은 능력이 자연발생적이지 않다는 것을 성유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민채령이 말했듯, 여일이 손을 댄 다중능력 연구는 두 사람이 실험체로 있던 요람의 연구를 계승한 것이었으니까.

“그 애는 워낙 어렸어서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한테는 나름 옆집 동생 같은 아이거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

“……선배가 그런 인간적인 정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요.”

성유진의 말에 민채령이 피식 웃었다. 자기가 말해놓고도 설득력이 없다는 듯이.

“정 못 믿겠으면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든가. 그치만 적어도 니들처럼 다중능력 연구에 쓰려는 목적이 아닌 것만 알아둬.”

“끝까지 자기는 그런 연구와 관련이 없다 잡아떼시는군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초의 은은 돌려줄 수 없다 그겁니까?”

“당연하지. 넘겨줘야 할 이유도 없고, 니들 연구가 잘 되어봤자 나한테 좋을 일도 없잖아? 게다가……. 애초에 내가 이렇게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태초의 은을 가지고 있는 건 내 부하 안수호인데. 내가 뭘 어떻게 생각하든 결국 그녀석이 선택할 문제지.”

“선배의 부하니까 선배 명령이라면 칼같이 들을 텐데요.”

“그랬으면 참 좋겠네. 애가 반항아 기질이 심해서 좀처럼 말을 듣질 않거든.”

“선배의 부하인데도 선배한테 반항한다라. 공략 때도 그랬지만 참 강단이 있는 친구군요.”

“나처럼 이해득실을 잔뜩 따지는 애니까 어디 잘 설득해봐.”

말을 마친 민채령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남의 차 안이었지만 거리끼는 기색도 없었다. 성유진 또한 굳이 말리지 않고 말없이 창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막 그녀가 불을 붙였을 즈음 성유진이 물었다.

“그럼 제가 안수호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태초의 은을 받아낸다 치면……. 그땐 그대로 넘어가주실 겁니까?”

비단 그가 말하는 ‘설득’이란 온건히 말로만 하는 설득만 포함하는 말은 아닐 터. 민채령은 담배를 꼬나문 채 잠시 고민했다.

“글쎄. 그거야 뭐…….”

그리고 이내, 매캐한 연기와 함께 그녀의 대답이 피어올랐다.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지?”

그 입가에는 여느 때와 같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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