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75화 (176/266)

〈 175화 〉 174. 내부의 적

* * *

“안 봐도 뻔하네. 겨울동맹에서 보냈나?”

안수호의 물음에 사내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가다듬으며 그가 묻는다.

“겨, 겨울동맹이라뇨? 전 그린하우스 학생 맞는데요? 여기 학생증만 봐도…….”

“그게 뭐 어쨌다고?”

안수호가 사내의 목에 걸려있던 학생증을 홱 낚아챘다. 헌터과 20학번 김준수. 그 위에 작게 들어간 증명사진은 분명 그가 깔고 앉은 사내의 얼굴과 일치했다.

그렇지만.

‘아마 위조 학생증이겠지.’

학생증은 얼핏 보기에 진짜 학생증과 전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순 있어도 안수호가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이겠지.

그렇지만 안수호에겐 시스템 메시지라는 확실한 물증이 있었다. 만약 눈앞의 사내가 정말 아카데미 재학생이었다면 상태창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을 터.

“학생증이고 나발이고 중요한 건 댁이 우리 아카데미 재학생이 아니라는 거지. 이미 다 뽀록났는데 순순히 인정하지 그래? 쓸데없이 피곤하게 말싸움하지 말고.”

“…….”

안수호의 확고한 태도에 사내가 침묵했다. 그 얼굴에 떠오르는 당혹감과 억울함.

‘어떻게 알아낸 거지?’

그러나 그건 무고한 자의 억울함이 아닌, 자신의 철두철미한 준비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사내는 안수호가 그의 정체를 눈치 챈 방법을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다.

‘분명 내 학생증이 위조이긴 해. 그렇지만 재료부터 공법까지 정규 학생증과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어낸 가짜야. 명부를 조회해본다면 모를까, 눈으로 봐서 구분할 순 없을 텐데. 그런데 어떻게?’

허나 모르는 문제를 계속 고민한다 해서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그 방법은 일단 차치해두고, 사내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몸이 전혀 움직이질 않아!’

사내는 안간힘을 쓰며 구속을 벗어나려 했지만 무리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사지를 결박한 건 특급 아티펙트인 태초의 은. 탈리스만의 마력을 듬뿍 머금은 그것의 완력은 A급 초인 이상이었으니까.

하여 힘으로 벗어나는 게 안 된다면 안수호를 말로 설득해야 하나 그마저도 불가능한 건 마찬가지였다.

안수호는 눈앞의 사내가 겨울동맹의 끄나풀이라고, 최소한 재학생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확신하고 있었으니.

‘빌어먹을…….’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방법을 모색하던 사내는 결국 체념했다. 힘이 꽉 들어갔던 사내의 고개가 이내 맥없이 꺾인다.

“잘 생각했어. 쓸데없이 저항하는 것보단 얌전히 잡혀가는 게 서로한테 좋잖아?”

그 체념을 감지한 안수호가 싱긋 웃으며 실비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그의 오른손에서 떨어져나간 태초의 은의 일부가 수갑처럼 사내의 손목을 등 뒤에서 구속했다.

“읏차.”

사내의 몸을 일으켜세운 안수호가 그의 등을 팡팡 두어 번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게 한 10분만 일찍 오지 그랬어. 그랬으면 네가 뭘 하려 한 건진 몰라도 내가 오기 전에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잖아. 안 그래?”

“…….”

“그래서? 무슨 목적으로 우리 학생의 방을 찾아온 거지?”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순순히 대답할 리가 없었다. 만에 하나 잡힐 경우 임무에 대해선 함구하고 절대 발설하지 말 것. 그것이 그가 받은 명령 중 하나였으니까.

“말하기 싫다 그건가? 하긴, 이런 장소에서 나눌 이야기가 아니긴 하지.”

그런 사내의 태도에 안수호가 싱긋 웃었다. 친근하게 사내의 어깨에 팔을 두른 안수호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장소를 옮기자고. 조용하고 아늑한 취조실로.”

***

한 면이 매직미러로 되어 있는 취조실 안. 그곳에는 조금 전 안수호에게 잡혀간 사내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런 사내의 모습을 보며 안수호가 슬쩍 옆에다 대고 물었다.

“팀장님. 저 잘했죠?”

“끄응…….”

그 질문에 민채령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민채령은 조금 전까지 팀장급 회의 중이었다. 헌데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돌아간 줄 알았던 안수호가 대뜸 손을 흔들며 취조실로 와보라는 것이 아닌가.

왜 안 돌아갔느냐고 따지는 것도 잠시, 겨울동맹의 끄나풀을 잡은 것 같다는 그의 말에 부리나케 취조실로 달려온 게 바로 조금 전 일이었다.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칭찬해야할지 아니면 꾸짖어야 할지…….’

거수자를 잡아온 건 좋지만 애초에 그 거수자의 침입 원인이 안수호였다. 곧바로 집에 돌아가라는 명령을 어기긴 했지만 덕분에 기숙사에 숨어든 침입자를 잡을 수 있었다.

고민하던 민채령은 결국 다시 한 번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 한없이 깊은 한숨이 그녀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신원은 확인했어?”

“아뇨. 잡혀오고 나서부터 아예 입을 열지를 않아서요. 그렇지만 자기 이름조차 말하지 않는다는 건 즉 뭔가 숨기는 게 확실히 있다는 거죠.”

“죄목은?”

“재학생 사칭 및 학생증 위조. 기숙사 건물 무단 침입. 일단 그 정도네요.”

“딱히 형사로 걸고 넘어질만한 부분은 없네. 기껏해야 무단 침입 정도? 그나마도 경찰한테 보내봤자 저정도 죄목으로 구속될 리도 없으니…….”

“그래서 일단 여기 구류해놨죠. 한 번 내보내면 그걸로 끝이니까. 지금 최대한 정보를 캐내야 합니다.”

경비대는 아카데미의 경찰 같은 조직이었지만 경찰 그 자체는 아니다. 사건 발생 시 자체 재량으로 용의자를 조사할 권한은 있지만 결국 마지막엔 경찰에게 인계하는 것이 원칙.

이에 안수호는 최대한 경찰에게 사내를 늦게 넘기고자 아직 경찰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허나 그래봤자 그리 긴 시간을 벌 수는 없었다. 주변의 보는 눈이 워낙 많았으니까.

“차라리 저 용의자를 안전가옥으로 옮기는 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나보고 지금 납치 감금이라도 하라는 거야?”

“아무리 팀장님이라도 그건 어렵나요?”

“할 수는 있지만 수습이 귀찮지. 그것도 엄청. 그 귀찮음을 감수하더라도 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야 모르겠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거로군요.”

“그래. 리턴에 비해 리스크가 커도 너무 크지.”

안수호가 침입자를 잡은 건 류태현의 방 앞. 이에 안수호는 침입자가 겨울동맹에서 샤오메이에게 무언가 해코지를 하기 위해 보낸 작자일 거라 예상했다.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거지.’

눈앞의 사내와 겨울동맹이 엮여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는 이상, 설령 사내가 겨울동맹의 끄나풀이라 하더라도 언제든 잘라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든 잘라낼 수 있는 인원이라는 건 겨울동맹 내에서의 위치도 그리 높지 않다는 것.

그런 상대를 구태여 납치 감금하여 정보를 캐낼 필요가 있을까. 민채령의 말마따나 리턴에 비해 리스크가 지나치게 컸다.

하물며 눈앞의 사내는 유현호나 박지현과 달리 양지를 살아가는 일반인. 납치 감금에 따른 리스크는 당연히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팀장님. 혹시 혈액검사에서 검출되지 않는 자백제 같은 거 없습니까?”

“그런 게 있었다면 진즉에 가지러 갔겠지?”

“없다는 뜻이군요. 그럼 말로 저 남자를 설득해서 정보를 캐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설득하죠? 저지른 죄가 크다면 모를까, 죄다 경범죄도 안 될법한 자잘한 죄들이라 사법 거래 식으로 협상할 수도 없고.”

“차라리 한 대 맞고 오지 그랬니. 그랬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저도 마침 후회하던 참입니다. 직접 몸으로 제압했다면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몇 대 맞을 수도 있었을 텐데. 실비가 워낙 성능이 좋아서…….”

“실비……? 아, 그 오른 손에 그거?”

­맞아요. 저는 실비예요. 기억해줘서. 고마워.

안수호의 오른손에서 삐죽 튀어나온 실비가 인사하듯 촉각을 흔들었다. 그 목소리만 들어보면 평화로운 여느 때의 일상 같았으나.

“막막하네요.”

“그러게. 좀 막막하네.”

실상 두 사람은 모처럼 잡은 용의자를 어떻게 요리해야할지 막막해 미칠 지경이었다. 민채령이 입술을 잘근 씹으며 고민한다.

“……일단 이쪽이 알고 있는 정보로 압박해보는 수밖에 없겠는데. 그러다 보면 뭐라도 흘리는 게 있지 않을­”

­끼이이익.

그때 두 사람만 있던 취조실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동시에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이 이내 동시에 놀란다.

“김수현?”

“경비대장님?”

취조실로 들어온 건 그린하우스 경비대 경비대장이자 민채령의 의붓오빠인 김수현이었다. 그가 두 사람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침입자를 보며 물었다.

“2팀장. 저 사람은 뭐지?”

“……남자기숙사에 침입한 거수자야. 지금 막 취조하려던 참이고.”

“저 사람이 기숙사에 침입해 학생에게 위해를 끼쳤나?”

“아니. 무언가 해보기 전에 여기 있는 내 부하가 제압했거든.”

“그럼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나? 혹은 학생에게 위해를 끼치려 계획했다는 증거나 정황이 있었나?”

“무기는 소지하고 있지 않았어. 그렇지만 초인은 온몸이 무기잖아. 게다가 학생증까지 위조해가며 기숙사에 침입한 자가 무언가 수상한 일을 꾸몄다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즉 정리하자면 해당 용의자가 현재 저지른 것으로 확실시되는 죄는 기숙사 침입 및 학생증 위조 정도의 경범죄. 그 외 기숙사 침입 목적이나 꿍꿍이에 대해서는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황이고, 이에 용의자를 취조하기 위해 이곳에 잠시 구류해두었다. 이런 거로군.”

민채령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며 상황을 정리한 김수현의 태도에 안수호는 위화감을 느꼈다. 상황은 마치 김수현이 민채령으로부터 상황 보고를 요구하는 듯 했지만 막상 그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이미 사정을 다 파악한 뒤에 이곳에 온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리고 위화감을 느낀 건 민채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질문에 김수현이 흐음, 하고 뜸을 들이더니 이내 담담하게 말했다.

“분명 학생증 위조와 무단 침입은 범죄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두 사람이 가벼운 범죄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 싶군.”

“……뭐?”

“어차피 경찰에 넘겨도 적당히 조사하다 훈방조치, 내지는 불기소로 끝날 수준의 경범죄 아닌가. 그러니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적당히 주의만 주고 풀어주는 게 어떨까 싶은데.”

김수현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특히 민채령의 경우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살살 저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지금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이 사람 무단침입자야. 그것도 학생들 사는 기숙사에 무담 침입한 범죄자라고!”

“허나 실제 피해는 없었다. 안수호 대원의 조기 진압으로 인해 미수로 끝났으니까. 그나마도 정말 범죄를 저지르려 했는지는 알 수 없고.”

“그래서 그걸 지금부터 조사해본다고 한 거잖­”

“어차피 별 일도 아닌 것 같은데 괜히 안팎으로 시끄러운 와중에 일을 더 벌이지 말라는 거다.”

저벅저벅 다가온 김수현이 민채령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안 그래도 요즘 조만간 있을 축제 준비로 바쁘잖냐. 게다가 2팀장 넌 채소연 대원이나 옆에 안수호 대원 때문에 더더욱 바쁜 시기고. 이런 자잘한 해프닝에 시간과 노력을 들일 바에야 차라리 조금이라도 휴식하는 게 어떤가?”

“김수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야.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어디에도 없­”

“민채령.”

김수현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민채령이 흠칫 하고 놀란다.

“오빠 동생 사이로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비대 전체를 총괄하는 경비대장 김수현이 특수대책과 2팀 팀장 민채령에게 내리는 지시야. 헌데 지금 상사의 지시에 불복하겠다는 건가?”

­타앗!

민채령이 신경질적으로 김수현의 손을 쳐냈다. 그녀의 얼굴에 분노와 짜증, 그리고 의문의 감정이 떠오른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평소에는 아주 작은 범죄도 눈에 불을 켜고 잡아냈으면서.”

“나는 늘 아카데미의 평화를 위해 행동했고, 그건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야. 알아들었으면 얼른 풀어주기나 해.”

“알아듣게 설명을 해야 알아들을 거 아니야! 막말로 저 용의자가 기숙사에서 물건을 훔치려 했을지 사람을 죽으려 했을지 조사를 해봐야 아는 건데!!! 별 같잖은 논리나 들먹이며 풀어주라고 하면 내가 ‘예 풀어줘야죠 경비대장님.’하고 납득할 것 같아?!”

“상사의 명령은 납득하는 게 아니야. 따르는 거지.”

격정적인 외침에 되돌아오는 차가운 대답. 그 대답에 민채령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이 더욱 짙어졌다.

“……정말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너 도대체 오늘따라 왜 이래……?”

평소 김수현이라는 남자가 어떤 이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민채령은 도무지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김수현은 민채령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허나 직후.

“잠깐. 설마 너…….”

민채령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이 이내 당혹과 불신으로 바뀌어간다. 그녀치고는 드물게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민채령이 설마 그럴 리가 없겠지 하는 심정으로 김수현에게 묻는다.

“……설마 성유진이 시킨 거야? 성유진이 너보고 저 남자를 풀어달라 시켜서. 그래서 지금 우리보고 저 남자를 풀어주라 말하는 거야……?”

아니지? 하고 덧붙이며 민채령이 그의 답을 재촉한다. 그러나 김수현은 여전히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리 길지 않은 침묵 끝에 마침내 김수현이 입을 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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