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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72화 (173/266)

〈 172화 〉 171. Home sweet home(1)

* * *

안수호가 설아현과 만난 날로부터 며칠 전. 구체적으로는 그가 체포되었던 당일.

경찰조사를 마치고 나온 샤오메이는 전에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큰일 났다…….’

그녀는 브로커였다. 브로커는 신뢰도가 생명이고, 신뢰도는 곧 의뢰를 얼마나 잘, 그리고 조용히 해결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헌데 지금 그녀의 상황을 보라.

고객에게 전달해야 할 물건을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가로채였다.

게다가 그 사람은 경찰에게 체포되어, 그녀가 자력으로 물건을 회수하는 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심지어 일련의 사건에 의해 그녀가 운반하던 물건, ‘태초의 은’이 뉴스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녀의 의뢰는 실패라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파탄났다. 지금쯤 물건을 판매한 당 위원도, 이를 받았어야 할 겨울동맹 쪽도 머리끝까지 화가 났겠지.

‘이제 어떡하지…….’

중국으로 돌아가자니 아티펙트 밀반출로 공안한테 잡혀갈 테고, 그렇다고 국내에 남아있자니 이미 물건값 30억에 웃돈 10억까지, 40억이나 투자한 겨울동맹이 자신을 가만 놔둘 리가 없는 상황.

역대급 의뢰를 역대급으로 말아먹은 샤오메이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이에 그녀가 생각하길 오호통재라. 바람 앞의 등불 같던 브로커 인생, 언제 한 번 제대로 말아먹겠구나 싶었는데 그것이 오늘이었노라고.

“저기…….”

도망친다면 어느 나라로 도망치는 게 좋을까. 근데 도망이나 칠 수 있을까. 어딜 가든 공안 놈들이 자길 쫓아올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힘없이 늘어져있던 샤오메이에게 한 남자가 접근해 묻는다.

“뭔가 사정이 있으신 것 같은데…….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그 남자는 류태현이었다. 워낙에 성격이 좋고, 워낙에 오지랖이 넓으며, 곤란한 이를 결코 외면하지 못하는 주인공.

그런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곤란해 보이는 이를 돕고자 나선 것이었다.

‘도와준다고? 나를? 네가?’

허나 샤오메이는 그런 류태현의 손길이 고깝기만 하다.

도와준다면 어떻게 도와줄 건데. 당신이 도대체 뭘 할 수 있는데. 지금 내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가볍게 말 던지지 말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불평불만들. 허나 이내 샤오메이는 자신이 불평할 처지조차 되지 못한다는 걸 상기했다. 하물며 이 이역만리의 타국에서 그녀가 의지할 사람이 눈앞의 남학생밖에 없다는 차디찬 현실도.

‘하지만, 어쩌면…….’

그러나 다음 순간 샤오메이의 눈에 일말의 희망이 떠오른다. 눈앞의 남자는 이미 생면부지인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자 아닌가.

어쩌면 이 남자가 오늘 낮에 자신을 구해준 것처럼, 앞으로 닥쳐올 위기로부터도 구해줄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시간 되시면, 저랑 잠깐 이야기 좀 해주실래요?”

그 실낱같은 가능성에 걸고 샤오메이가 류태현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

­……아무튼 그렇게 된 거야 형. 딱 보니까 형이랑 연관된 사정이 있으신 것 같은데 갈 곳도 없으시다길래. 일단 내 기숙사 방에서 같이 지내고 있어.

“기숙사 방이라고??”

류태현의 태평한 말에 안수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너 남자기숙사잖아. 근데 같이 지내는 게 돼??”

­당연히 들키면 끝장이지. 그래도 어찌어찌 잘 숨어 지내고 있어. 들킨 사람도 없……지는 않구나. 은솔이랑 교수님한텐 들켰으니까. 아, 진이한테도 들켰네. 그리고 또…….

속속들이 나오는 익숙한 이름들에 안수호가 헛웃음을 삼켰다. 이름만 들어봐도 지난 2주 동안 류태현의 생활이 어땠을지 뻔히 짐작이 갔다.

가령 뜬금없이 나타난 동거녀의 존재에 류태현에게 집착어린 애정을 불태우고 있는 나은솔이 발작을 일으키며 쳐들어온다든가.

어쩌다가 사정을 알게 된 담당교수 도소영이 처음에는 반대하다가도 결국 류태현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만 예외입니다 류태현 학생.’ 따위로 말한다든가.

옆방을 쓰고 있던 류진에게 들킨 뒤에는 어쩌다 여동생 류설까지 그 사실을 알아버려 그 수다쟁이 여동생의 입막음을 두고 두 남성진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든가.

그 외에도 한 방에서 남녀가 지내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이런저런 썸씽이라든가. 기숙사 점호 시간 불시 검문에 따른 숨막히는 숨바꼭질이라든가.

‘내가 구치소에서 썩고 있을 동안 이놈은 청춘 러브코미디 찍고 앉았네.’

안수호는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도, 내심 과연 류태현이 주인공은 주인공이구나 싶었다. 매번 사건에 휘말리는 건 안수호랑 비슷했으나 그 내용물은 천지차이였다.

헌데 아무리 그래도 남자 기숙사에 대뜸 여자를 데려와선 2주 동안 재우다니…….

“근데 태현아. 너 겨울이한테는 이야기해봤어?”

­겨울이?

“응. 한겨울 정도면 그 브로커가 지낼 장소쯤이야 쉽게 마련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한겨울이라면 샤오메이가 조용히 지낼 방 한 칸 마련해주는 정도야 누워서 떡먹기였다. 헌데 왜 그녀에게 부탁하지 않고 위험 부담이 큰 류태현 자신의 기숙사방에 그녀를 머물게 했는가.

­안 그래도 원래는 겨울이한테 사정 설명하고 도움을 구하려고 했어. 근데 겨울이 걔가 요즘 좀…….

“요즘 좀 왜. 설마 아직도 둘이 껄끄러워?”

­둘이 껄끄럽다기보다는 걔가 날 일방적으로 피하고 있지. 저번 랭킹전 이후로 계속. 연락은커녕 수업 때 얼굴 보기도 힘들 정도야.

그 말에 안수호는 적잖이 놀랐다. 랭킹전이라고 해도 벌써 거의 3주 가까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실의에 빠져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생각보다 충격이 컸나 보네.’

확실히 그와 대련했을 때 한겨울의 자신감이 남다르긴 했다. 분명히 이길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렇게 져버렸으니 상심이 여간 큰 게 아니었겠지.

그 상심이 계속되다가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안수호는 조만간 한겨울의 상태를 한 번 살피러 가야겠다 생각했다.

­태현 씨. 도대체 뭘 그리 오래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얼른 그 인간보고 당장 여기로 오라고 해요! 아니, 그냥 저 바꿔줘요! 제가 직접 이야기할 테니까!!!

­샤오메이 씨. 소리요 소리. 밖에 다 들리겠어요.

­앗. 미, 미안해요. 그치만 아무튼 빨리 와달라고 해주세요. 이쪽은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안수호를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예의 바른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묘하게 달달한 향기가 풍겨오는 그 목소리에 안수호는 두 사람이 지난 2주 동안 상당히 가까워졌음을 직감했다.

‘하긴. 원래대로라면 히로인이 됐을지도 모를 캐릭터니까.’

류태현의 연애사 따위 아무래도 좋았으나, 안수호는 내심 억울했다. 샤오메이를 위해 싸운 건 자신도 마찬가지인데 류태현에게만 살갑고 자기는 웬수 취급이라니.

물론 태초의 은을 가로챈 시점에서 그런 취급을 받는 게 싸다는 건 안수호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태현아. 샤오메이 씨…한테 전해줘. 조만간 뵈러 간다고. 편한 시간대 알려주면 내가 맞춰서 갈게.”

­알겠어 형. 어차피 나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듣고 싶던 참이니까. 조만간 얼굴 함 보자.

전화를 끊은 안수호가 고개를 들자 설아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멋쩍게 말한다.

“죄송해요 아현 씨. 갑자기 전화가 와서. 우리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있었죠?”

“……수호 씨가 여친이 둘이나 있어서 복에 겨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부분까지요. 그런데 전화 들어보니 주위에 여자가 그 두 분으로 끝인 것도 아닌가 봐요?”

“아하하…….”

샤오메이는 그런 상대가 전혀 아니었지만, 확실히 안수호 주변에 여자가 많기는 했다. 물론 샤오메이를 포함해 그 누구와도 연인으로 발전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할까요? 저도 이후에 오후 업무가 있고, 수호 씨도 돌아가셔서 이래저래 할 일이 있으신 것 같으니까…….”

설아현이 묘하게 날이 선 목소리로 권유했다. 그러나 워낙 미묘한 변화여서 안수호는 그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래요. 그럼 내일 다시 뵙죠.”

어차피 식사도 마쳤고 볼일도 다 봤으니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도 없었다. 미묘하게 찝찝한 낌새를 뒤로하고 안수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수호와 설아현의 회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안수호는 곧바로 속초로 향했다. 아무리 철도가 이어져있다고 한들 거리가 거리인지라,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저녁이 다 되어 있는 시간이었다.

­띠링.

그 즈음 마침 류태현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만남 장소와 시간에 대한 문자였다.

‘오늘 밤 12시 1학년 남자기숙사 A동 옥상이라.’

참 급하게도 잡았구나 싶었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샤오메이 입장에선 빠르게 해결해야 할 문제였으니.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일찍 만나는 편이 안수호 입장에서도 좋긴 했다. 그가 몇 시간 뒤의 만남을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어서와.”

아무도 없어야할 집안에서 지예원이 그를 맞이했다. 안수호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지예원? 네가 여긴 웬일이야?”

“너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지. 그리고 나만 있는 것도 아냐.”

­맞아요! 저도 있어요!

그때 현관 옆 화장실 안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또한 익숙한 목소리였다.

“……하늘아? 넌 또 거기서 뭐해?”

­당연히 오빠 기다리고 있었죠! 수업 끝나자마자 계속! 지, 지금은 타이밍이 살짝 안 맞아서 화장실 안이긴 하지만요…!

“그러니까 너희 둘이 왜 날 기다리고 있냐는 거야.”

“걱정되니까 그렇지.”

지예원이 안수호에게 쏘아붙였다.

“안수호. 아까 아침에 연락했을 때 네가 서울이라 그래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구치소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어제 풀려났잖아. 근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벌써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녀?”

“꼭 필요한 일이었어. 이번 일 관련해서 흑룡회 설아현이랑 상담할 게 있어서­”

“알아. 나도 안다고. 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여기저기 쏘다니는 거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렇지만 어딜 가기 전에 우리한테 최소한 이야기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

그 말에 안수호가 아차싶었다. 지예원의 말처럼, 그는 오늘 흑룡회에 향하기 전 두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었다.

“미안해. 다녀와서 바로 말하려곤 했는데 배려가 부족했어.”

“……우리가 뭐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받겠다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이런 일은 미리 말해줘야지. 갑자기 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져버리면, 남겨진 우리 입장에선 네가 또 무슨 일에 휘말린 건 아닌가 걱정되는 게 당연하잖아.”

“…………그러게. 내가 너희 심정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나봐.”

안수호는 무어라 변명하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안수호 잘못이 맞았으니까.

생각해보면 이번 서울행은 지나치게 급하게 정한 감이 있었다. 사안 자체가 급한 사안이긴 했지만, 최소한 연인인 두 사람에게는 언질을 해두고 가는 게 맞았다. 두 사람 쪽에서 연락해서 뒤늦게 알게 되는 게 아니라.

“미안해 예원아. 내 생각이 짧았어.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할게.”

“……그래. 알면 됐어.”

“하늘이 너도. 나 때문에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무, 무슨 사과를 볼일보고 있는데 문 너머에서 해요?! 나중에 나가면 해요 나가면! 아니, 일단 문에서 좀 떨어져주세요! 소, 소리 다 들리니까…!

“?? 괜찮아. 난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제가 신경 쓴다구요 제가!!!! 얼른 떨어져요! 아니, 그냥 나가요!! 밖에 나갔다가 제가 됐다고 하면 그때 들어오라구요!! 빨리!!

왜 하필 돌아와도 자기가 화장실에 있을 타이밍에 오느냐며. 강하늘이 화장실 안에서 원망스럽게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화장실 안에서 웅웅 메아리쳤다.

“그, 그래. 여러모로 미안해 하늘아…….”

안수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현관을 나섰다. 잠시 후 작게 새어나오는 물 내리는 소리. 직후 강하늘이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들어오라 소리쳤다.

­끼이익.

안수호가 안으로 들어갔다. 지예원은 안수호의 사과 덕인지 조금 전보다 다소 풀어진 표정이었고, 반면 강하늘은 부끄러움 때문인지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침대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으음. 그, 둘 다 식사는 했어?”

할 말이 없어 꺼낸 질문이었으나 때마침 두 사람 다 아직 식사 전이었다.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두 사람의 모습에 안수호가 마침 잘 됐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밥이나 먹자. 먹으면서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내가 준비할 테니까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볼까 하며 안수호가 자신만만하게 냉장고를 열었다. 그러나 냉장고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엉? 왜 아무것도 없냐?”

“네가 갇혀있는 동안 상한 것들 싹 다 버렸으니까.”

대답한 건 지예원이었다. 그녀가 안수호의 어깨너머에서 스윽 냉장고를 훑더니 그럼 그렇지, 하며 일어섰다.

“버렸다고? 누가?”

“내가. 나 아니면 누가 네 집 관리를 해주겠어? 마침 바로 옆집에다가 비밀번호도 알고 있는데. 이럴 때 써먹어야지.”

그렇다고 남의 집을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들어도 되는 건가. 안수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자 지예원이 어깨를 으쓱이며 현관으로 향했다.

“어디가?”

“내 방. 오늘 아침에 카레 만들어둔 거 있는데 그거나 먹자.”

“카레? 갑자기 웬 카레?”

“오늘 저녁에 너랑 먹으려고 했지. 구치소에서 제대로 못 먹었을 거 생각하니 안쓰러워서. 게다가 너 카레 좋아하잖아?”

“내가 카레를……?”

안수호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딱히 카레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저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마는 정도.

‘근데 왜 지예원이 내가 카레를 좋아한다고 알고 있……. 아.’

그때 그의 뇌리를 스치는 예전 기억.

‘분명 한 달 전 즈음에 예원이가 카레 만들어줬을 때 그렇게 말했었지. 별 생각없이 그냥 예원이가 직접 만들어준 음식이니까 좋아한다 말한 거였는데…….’

그저 지나가듯 언급한, 의례적으로 흘린 한 마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예원은 그 한 마디를 기억하고 오늘 카레를 만들었다. 구치소에서 갓 나왔을 그를 위해,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서.

“끓이기만 하면 되니까 냄비째로 들고 올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지예원이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현관을 나섰다.

“……오빠.”

그러자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강하늘이 안수호를 불렀다. 침대에 누운 채 고개만 살짝 돌려서, 여전히 베개에 반쯤 얼굴을 파묻은 채.

“오, 오늘은 예원 언니가 해줬지만 다음번엔 제가 요리해줄게요. 저도 요즘 주말마다 요리 연습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강하늘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 조금 전 일 때문인가 안수호와 마주보는 것이 부끄러운 모양.

그러나 사과처럼 빨갛게 익은 귓볼이나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발가락 따위가 그녀의 심정을 여실히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 귀여운 모양새에 안수호가 피식 웃는다.

“고마워 하늘아. 그리고 미안해. 너한테 미리 말하지 못했던 것도. 그리고 조금 전에 화장실 문에 대고 사과한 것도.”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뭐.”

퉁명스럽게 대답한 강하늘이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침대에서 날뛰느라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가 안수호를 올려다본다.

“아무튼 오빠. 그……, 고생하셨어요.”

“응?”

“고생하셨다구요! 이번 일 말이에요! 생각한대로 일이 잘 풀리진 않았고 그리고 아직 다 마무리된 것 같지도 않지만……. 아무튼 이렇게 무사히 잘 돌아왔잖아요. 그럼 된 거죠. 고생하셨어요 진짜.”

우물쭈물 말을 이어간 강하늘이 이내 부끄러움을 못 이기며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술김에는 할 말 못할 말 전부 해대는 그녀였지만, 맨정신으로 낯간지러운 말들을 하는 건 아직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허나 그런 태도가 오히려 그녀의 말이 진심어린 말인 것을 보여주었다. 그 풋풋한 격려에 안수호가 피식 웃었다.

“그래. 고맙다. 하늘아.”

참으로 홀가분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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