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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71화 (172/266)

〈 171화 〉 170. 랜덤 가챠 미래시

* * *

“수호 씨……. 우리 큰일 난 거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안수호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니, 심장뿐만 아니라 모든 장기가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동시에 싸늘한 오한이 등줄기를 따라 그의 몸을 간질인다.

뭐 얼마나 대단한 소리를 들었다고 그리 호들갑인가. 설아현의 말은 그 액면 그대로의 형태만 보면 지극히 단촐하고 건조한 우려였다. 허나 말이란 으레 화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법.

작금의 상황을 안수호 입장에서 보면 어떠한가.

두 사람은 성유진과 겨울동맹에 관한 대책을 논의했다.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했지만 그래도 두 사람에게는 최후의 수단이 있었다. 바로 설아현의 미래시요, 그 편법 아닌 편법을 통해 두 사람은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과정에 임한 설아현은 자못 당당해 보였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안수호에게 도움이 된다는 기쁨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로 가득찬 표정. 옆에서 보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웬걸.

미래를 본다며 눈을 감았다 다시 뜬 설아현의 낯이 갑자기 창백해지기 시작하고, 입술은 파르르 떨리며, 눈동자는 물 위에 던져놓은 생선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며 날뛰어대는데.

하물며 그런 불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처음 꺼낸 말이란 것이 큰일이 났다고.

조금 저속하게 표현하면 우리 좆됐다고.

좀 전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데. 안수호가 철인도 아니고 놀라지 않고 배길쏘냐.

“……도대체 무슨 미래를 보셨기에 그러십니까?”

“그게…….”

설아현은 더듬더듬 자신이 본 장면을 설명했다. 이를 다 들은 안수호는 ‘과연, 우린 좆된 게 맞구나!’하며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렸다.

어둑한 주차장. 전투의 흔적. 그 한복판. 오른팔이 잘린 채 숨을 거둔(것처럼 보이는) 자신.

“……좆됐네.”

그 액면 그대로의 표현이 안수호의 심정을 대변해줬다. 이에 설아현이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한다.

“괘, 괜찮아요 수호 씨…! 그건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니까, 지금부터 대책을 강구하면 돼요! 게다가 우리는 몇 번이고 미래를 엿볼 수 있잖아요?”

무한히, 까지는 아니지만 설아현의 체력이 허락하는 수십에서 백여 번 정도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권리. 비록 시점이 랜덤이긴 하나 확실히 든든한 능력이었다.

이에 안수호가 설아현의 손을 꽈악 맞잡는다.

“부탁드릴게요. 아현 씨.”

“저만 믿으세요.”

그렇게 설아현은 조금 전 보았던 파국을 타개하기 위해 다시금 미래로 몸을 내던졌다.

그러나.

“……수호 씨랑 제가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고 있었어요. 수호 씨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저는 자바칩 프라푸치노로요.”

“……수호 씨랑 제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어요. 운전수는 카챠고. 제가 뒷좌석에서 수호 씨한테 폰으로 사진을 보여주는데 무슨 전망대? 같은 곳을 배경으로 찍힌 수호 씨 사진이었어요.”

“……수호 씨랑 제가 골목을 걷고 있었어요. 손에 커피가 들린 걸 보니까 조금 전 봤던 미래의 다음 장면인가 봐요. 네? 아, 특이할 건 없었고 수호 씨한테 막판에 전화가 걸려왔다는 거? 아, 누군지는 확인 못했어요. 그때 미래시가 끝났거든요.”

“……수호 씨랑 제가 호수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어요. 어디인진 모르겠는데 산책로도 잘 닦여있고 조깅하는 사람도 많은? 꼭 한강 둔치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게 끝이에요. 진짜 보는 내내 말없이 산책만 했어요. 도대체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수, 수호 씨랑 제가 그, 그게……. 으음, 이번 미래는 별로 안 중요한 것 같아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네? 지, 진짜 안 중요하다니까요? 제, 제제제 말 못 믿으세요?!”

그 뒤로 몇 번이고 미래시를 발동해봤지만 어째 보이는 미래는 하나같이 일상적인, 나쁘게 말하면 쓸모없는 미래뿐이었다.

특히 중간중간 섞인 외설적인 장면 탓에 설아현의 얼굴은 어느새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익어있었다. 안수호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아현 씨. 무리하지 마시고 쉬세요. 표정이 많이 힘들어 보여요.”

“그, 그럴까요? 그럼 잠시만, 잠시만 쉬었다가 다시 하죠…….”

“오늘은 이쯤 하죠. 괜히 무리했다가 혹시 모를 부작용이라도 나오면 안 되니까.”

“그렇지만…….”

“어쨌든 제게 위험이 다가온다는 건 알았잖아요. 그거라도 건진 게 어디에요. 게다가 아현 씨 말마따나 미래는 바꿀 수 있는 거니까. 지금부터 준비하면 그런 미래는 닥치지 않겠죠.”

안수호는 설아현이 자신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무리하고 있다 생각했다. 기실 그 원인은 능력 사용 따위가 아니었으나 설아현은 안수호의 배려가 고맙기도 했고, 굳이 그 이유가 아니라고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다.

설아현이 줄곧 맞잡고 있던 손을 놓자 끈적한 땀이 찬 공기를 만나 빠르게 식었다. 그 땀이 자신의 땀인지 안수호의 땀인지, 설아현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수호 씨. 혹시 내일도 시간 되세요?”

“아마도요. 당분간은 직장에 안 나가거든요.”

“그럼 혹시 내일도 뵐 수 있을까요? 이게 능력이 무작위이긴 해도 횟수가 많아지면 얻어걸리는 게 있을 테니까…….”

“전 상관없습니다. 근데 아현 씨는 시간 괜찮으세요? 길드마스터이신데.”

“길드마스터니까 한두 시간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융통할 수 있어요. 그래도 업무가 있으니 제가 속초로 가는 건 안 되겠지만…….”

“괜찮아요. 시간 널널한 사람이 와야죠. 게다가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제 책임인걸요.”

“그럼 죄송하지만 내일도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시간은 오늘 저녁까지 알려드릴게요.”

“좋습니다.”

한껏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갈증을 느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계속 말을 주고받았기 때문이었다.

“벌써 1시가 넘었네요.”

“그러게요. 점심시간 다 지나갔네. 아, 혹시 수호 씨는 식사 하셨나요?”

“아뇨? 아직입니다.”

“그럼 저랑 같이 드실래요?”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안수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설아현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현 씨는 어떤 식사를 하시려나?’

사람이 먹는 음식에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만은, 설아현은 일단 흑룡회의 길드마스터이자 그 길드를 포함한 기업체의 사장이었다. 매 식사마다 출장 쉐프를 부르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내 어딘가에 임원진 전용 사내 레스토랑 정도는 있을 지도 모를 일.

하다못해 외식을 하더라도 좀 고급스러운 가게를 가지 않을까.

안수호는 내심 그렇게 생각했으나, 싱글벙글한 얼굴로 설아현이 꺼내든 핸드폰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배달 중개 어플 화면이 떠올라 있었다.

“으흐흥. 오늘은 뭘 먹어볼까…….”

행복한 얼굴로 요리를 고르는 설아현.

자세히 보니 그녀의 테이블 서랍에는 중국집이며 치킨집이며 온갖 가게의 광고용 자석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집 냉장고에 흔히 붙이는 바로 그 녀석 말이다.

국내에 다섯 밖에 없는 S급 길드의 길드마스터가 여고생 같은 얼굴로 희희낙락 배달 음식을 고르고 있는 풍경.

안수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내심 의외였다. 설아현이 한여름&한겨울 자매처럼 아예 재벌 출신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서민적일 줄은 몰랐는데.

“오랜만에 마라탕? 아니면 이 가게 로제 떡볶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여기 돈까스도 먹어본 지 꽤 됐고. 면류……는 배달하면 좀 불어서 오니까 별로겠지? 아, 그치만 중화정 여기는 면 따로 국물 따로 보내주는데…….”

한껏 들뜬 채 고민하던 설아현이 아차, 싶은 얼굴로 안수호를 빼꼼 바라봤다.

“아…….”

안수호의 입가에 떠오른 웃음을 본 그녀가 부끄럽다는 듯 핸드폰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 수호 씨는 혹시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저야 다 좋죠. 아현 씨 드시고 싶으신 걸로 먹어요.”

“그, 그래도 되나요?”

“네. 어차피 전 이 근처에서 뭐가 맛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이참에 유명한 맛집이나 하나 소개해주세요. 나중에 근처 오면 또 시켜먹게.”

“그, 그럼 제가 좋아하는 가게로 할게요오…….”

그 후 약 10분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설아현이 주문한 것은 ‘너드 피자’라는 가게의 라지사이즈 피자였다.

그녀가 말하길 뿌려진 치즈 한 조각에서도 사장의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숨은 맛집이라나.

이윽고 피자가 도착하기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점포 자체가 흑룡회 본사로부터 두 블록 떨어진 거리에 있어서 갓 만들어진 뜨끈뜨끈한 피자를 즐길 수 있는 게 또 하나의 장점이라고. 설아현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피자가 네모 모양이군요.”

“히히. 신기하죠? 살짝 이국적인 느낌 들지 않아요?”

애초에 피자부터가 이국의 음식이긴 하다만은, 안수호는 설아현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라지사이즈치고는 작은 사각 박스에 담겨온 피자는 그 박스만큼이나 내용물 또한 정사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두께가 보통 피자의 세 배는 될법한 피자는 바깥쪽 반죽이 타르트처럼 바삭하게 익어 있었다. 꼭 네모난 접시에 피자가 꽉꽉 들어찬 모양새.

“자, 드셔보세요. 진짜 맛있거든요 여기!”

설아현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피자를 권했다. 포크도 쓰지 않고 손으로 조각을 집어 입으로 들이민 탓에, 안수호가 별수 없이 입만 벌려 피자를 받아먹었다.

“오…….”

“어때요? 맛있죠?”

”네. 정말 맛있군요. 피자는 잘 모르지만 치즈든 소스든 다 일품이에요.“

입안에서 꾸덕지게 흐르는 듯한 식감의 치즈와 그 안에서 알싸하게 퍼지는 토마토소스의 향기. 지나치게 자극적이지도 밋밋하지도 않은 적절한 맛의 향연이 안수호의 입안에서 펼쳐졌다. 기실 배달 피자가 맛있어봐야 거기서 거기지, 라 생각했으나 상당히 기대 이상이었다.

“그나저나 의외네요. 아현 씨가 이렇게 배달 음식에 빠삭할 줄이야. 전 회사 사장님이니까 당연히 비싼 레스토랑만 다니실 줄 알았는데.”

“에이. 그게 다 몬 소용이에요? 이 사각박스 안에 인생의 행복이 다 담겨있눈데.”

설아현이 기쁜 표정으로 치즈를 옴뇸뇸 씹으며 말했다. 확실히 그 얼굴은 안수호가 보기에도 행복해 보였다. 배달료 포함 27000원어치의 행복은 S급 초인의 얼굴조차 살살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수호 씨. 오늘 돌아가시면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으음. 일단 아현 씨가 본 미래에 있던 두 사람을 만나보려고요.”

“한여름이랑 한겨울이요?”

“네. 언니 쪽은 제가 만나고 싶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동생은 아카데미에 있으니 얼마든지 볼 수 있거든요. 미래 장면에 있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이번 일에 관계되어 있거나, 혹은 휘말려들 입장이라는 거니까. 근황도 물을 겸 한 번 만나보려고요.”

안 그래도 한겨울은 언젠가 한 번 만나봐야 했다. 저번 랭킹전 패배로부터 슬슬 2주.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봐야 했으니까.

“그 외에는……. 사정을 밝힐 수 있는 제 주변 사람들하고도 한 번 논의를 해봐야죠. 제 상사인 민채령이라든가……. 저번에 보셨던 지예원 기억하시죠? 걔랑 강하늘한테도 한 번 이야기해보려고요. 둘 다 제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러고 보니 그 둘하고는 어떤 관계에요? 강하늘 학생? 쪽이야 아카데미 학생이라 쳐도 그 지예원이란 분은…….”

그러고 보니 설아현에겐 아직 두 사람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가.

그럼 뭐라 설명할까. 잠시 고민하던 안수호는 이내 사실대로 밝히기로 했다. 딱히 숨길 사실도 아니었으니.

“여자친구입니다.”

“……네?”

안수호의 고백에 설아현이 히끅! 하고 숨을 삼켰다. 넘어가다 만 치즈 조각이 그녀의 목에 걸려 딸꾹질이 인다.

“딸꾹! 여, 여자친구요? 둘 중 어느, 딸꾹! 어느 쪽이요?”

“둘 다요. 이래저래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두, 두두두두두 둘 다요?!”

어찌나 놀랐는지 딸꾹질마저 멈추며 그녀가 되물었다. 안수호는 두 사람과 사귀게 된 계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설아현의 얼굴엔 차츰 당혹감이 번져갔다.

“아하하. 좀 많이 당황스러우시죠? 요즘 시대에 양다리라니.”

“……네. 마, 많이 당황스럽네요. 죄송해요. 전혀 상상도 못한 일이라서…….”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에요. 보통 공인된 양다리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제가 아주 복에 겨웠죠 진짜.”

안수호는 대수롭지 않게 우스갯소리라도 떠벌리듯 말했으나, 설아현의 속마음은 피자가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심각했다.

‘수호 씨한테 이미 여자친구가 있다고? 그것도 두 명이나??’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따로 안수호에 대해 조사를 해본 적도 없었고 그가 딱히 여자친구가 있는 티를 내고 다니지도 않았으니까.

물론 강하늘 납치 사건 때 그 두 사람과 마주친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때도 그런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아현이 보기에 지예원은 딱 안수호의 동료 내지는 지인, 강하늘은 무고한 납치 사건의 피해 학생일 뿐이었다.

헌데 그런 두 사람이 안수호의 여자친구라니?

‘그럼 내가 본 미래는 뭔데??’

설아현은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미래는 확정된 게 아니다.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안수호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선 그런 의심을 품어보지 않았다.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 그럼 이대로만 가면 수호 씨랑은 아무 일도 없이 끝나는 건가?’

시작한 것도 없는데 끝나는 게 어디 있겠냐만은. 그렇게 생각하자 설아현은 괜히 아쉽고 입안이 씁쓸했다.

본인 스스로도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마음이 불편했다.

‘아까부터 낌새가 이상한데…….’

한편 안수호는 그런 설아현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뇌리에 스친 한 가지 가능성.

‘설마 설아현도 날 좋아하나?’

……까지 생각한 순간 그의 머릿속에 인터넷에서 읽었던 연애 관련 유머글이 스쳐 지나갔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딱 지금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에이 설마. 설아현이랑 난 그냥 비즈니스 관계고 우리 둘 사이에 뭐 썸씽이 있던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의 관계는, 적어도 안수호 본인 입장에선 호의적인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었다. 남녀간의 썸씽이라고 해봐야 빌헬름과 싸울 때 그가 설아현을 구해준 것뿐이요, 그마저도 일곱 명의 초인이 부대끼며 싸워댄 난전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막말로 구해준 걸로 자신에게 반했다면 성유진한테도 반했어야지. 안수호의 머릿속은 점차 그런 회의적인 생각들로 가득 찼다.

‘물론 예원이나 하늘이도 내가 두 사람을 구해준 걸로 관계가 시작되긴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지예원은 첩보원으로 길러지며 겪어온 고립된 환경 탓에, 강하늘은 낯선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 빙의자라는 입장 탓에 안수호에게 끌리게 되었다.

허나 설아현은 달랐다. 그녀는 뭐 하나 부족할 게 없는 S급 초인이자 길드마스터였다. 그런 그녀가 뭐가 아쉽다고 안수호에게 별 것 아닌 계기로 반한단 말인가.

‘예원이나 하늘이가 특이케이스였던 거지. 설마 설아현까지 그러겠어?’

라고 생각했으나, 기실 설아현 또한 종류는 달라도 특이케이스이긴 했다.

안수호의 말마따나 설아현은 아직 안수호에게 반하지 않았다. 대신 이미 자신과 안수호가 이어져서 그렇고 그런 짓을 하는 미래를 관측했다.

말하자면 문제의 풀이는 알지 못하나 답만 덩그러니 던져진 상태.

사람의 심리가 수학 문제는 아니니 그것만으로 설아현이 그에게 반할 리는 없지만 아무래도 신경은 쓰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안수호가 그녀에게 딱히 모나게 굴지도 않았고, 오히려 호감을 살만한 짓만 골라 해왔다. 고로 슬슬 말랑말랑한 감정이 들기 시작한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물론 두 사람은 그런 서로의 심리를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남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는 데에는 진솔한 대화가 필수이나 두 사람은 아직 그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으니.

‘잠깐. 근데 만약 수호 씨가 겪었던 미래에서 내가 수호 씨 여친이었고, 지금 수호 씨 여친이 다른 사람이라면……. 그럼 난 버려진 건가……? 설마 나랑 사귀게 될 미래를 알고 일부러 다른 사람과 사귀었다든가……?’

‘역시 설아현이 날 좋아할 리가 없어. 두 사람 이야기에 반응이 이상했던 것도 그냥, 여친이 두 명이라니까 당황한 것뿐이겠지. 뭐 다른 뜻이 있겠어?’

그렇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조차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착각을 키워갔다. 둘 사이에 놓인 피자는 분명 그 맛이 일품이었으나, 둘 다 이미 피자 맛을 느낄 겨를 따위 없었다.

그때.

­띠리리리리리리.

안수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류태현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형님! 어제 출소하셨다 들었슴다! 어디심까? 지금 두부 들고 모시러 가면 되겠슴까!

익살스런 어조로 묻는 류태현의 말에 안수호가 피식 웃었다.

“내가 뭐 교도소라도 다녀온 줄 아냐? 됐어 임마. 그것보다 왜 전화했는데? 무슨 일 있어?”

­내가 무슨 일 있어야지만 형한테 전화할 수 있어? ……라 말하고 싶지만 무슨 일이 있긴 해. 왜 그, 저번에 놀이공원 일로 형한테 상담해야 할 게 있어서……어어어!

­우당탕탕!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수호가 눈썹을 찡그린 찰나,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찌르고 들어왔다.

­야!!! 야 이 도둑놈아!!! 당장 내 아티펙트 돌려줘!!!

“??? 누구야 당신?”

­뭐??? 누구야???? 누구야아아아아???? ni xiang si ma?! 니, 니 진짜 나한테 죽고 싶나?!

‘중국어……?’

대뜸 들려오는 중국어 욕설에 안수호가 설마하는 찰나, 앙칼진 목소리가 이어서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나 샤오메이다 샤오메이!!! 니가 아티펙트 훔쳐간 중국 브로커!! 당장 내 물건 돌려줘 이 개자식아!!!!!!

전화기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노성에 안수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얘가 왜 류태현하고 같이 있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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