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69화 (170/266)

〈 169화 〉 168. 흑룡회에서(2)

* * *

“……수호 씨. 지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세요?”

한여름의 물음에 나는 무심코 웃음이 새어나올 뻔했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 표정이 꼭 ‘너 제정신이냐’하고 묻는 것 같아서. 아마 담긴 뜻은 별반 차이 없겠지.

허나 난 지극히 제정신이었다. 한여름의 제안은 확실히 매력적이었지만, 내게 있어선 하등 쓸모없는 권유일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한테는 이미 경비대라는 직장이 있어서요.”

“……수호 씨 직업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경비대라고 해봤자 결국 월급 받는 직장일 뿐이잖아요. 일개 아카데미 경비대원이랑 대형 헌터 길드의 중책.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거 아니에요?”

“사람 일이라는 게 다 돈으로만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단순 수익만 놓고 보면 한여름의 길드로 넘어가는 게 넘사벽으로 많이 벌 것이다. 아마 상여금 따윌 제하더라도 연봉이 억 단위는 우습게 뛰겠지.

허나 내게 있어 돈 문제는 솔직히 뒷전이었다.

“그래요? 저는 갓난아기일 때부터 세상만사가 돈으로 다 해결된다고 들으면서 자라왔는데. 수호 씨는 뭐 달리 중요하게 여기시는 게 있나 보죠?”

“그렇죠 뭐. 일종의 사명감이랄까……. 앞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을 지키는 일이 좋거든요.”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사명감? 억지로 쥐어진 경비대라는 명함에 사명감 따위 있을쏘냐.

내가 한여름의 제안을 거절하는 건 전적으로 경비원 스킬 때문이었다. 아무리 쾌락천마가 내게 악의적이라지만 그 스킬만은 나름 쓸만했으니까.

스테이터스 뻥튀기에 상태창 기능까지.

빙의물 주인공이라면 으레 가져야 할 그 능력을 잃을 순 없었다. 그랬다간 안 그래도 비루한 이 몸뚱이가 차마 눈 뜨고 못 봐줄 수준이 될 테니까.

애초에 헌터길드로 넘어간다면 내게는 흑룡회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흑룡회는 한여름의 길드와 달리 이미 제대로 자리 잡은 국내 3위의 길드이며, 리더인 설아현 또한 한여름보다 훨씬 내게 우호적이었다.

그런 내가 굳이 한여름이 세울 신생 길드로 갈 필요는 없었다. 하물며 나는 한여름이 세울 길드가 어떤 운명을 걷게 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명감이요? 전도유망한 신생 길드에 합류해서 억 단위의 돈과 사회적 지위,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고작 사명감 때문에 포기한다고요?”

전도유망.

한여름은 자신이 리더로 앉을 한성그룹 길드의 미래를 그렇게 예측하고 있지만, 원작에 따르면 그녀의 길드는 대차게 망할 예정이었다.

시작 자체는 괜찮았다. 한여름과 한겨울, 그 외 여러 인재를 등용하고 막대한 자본을 밀어붙이며 탄생한 길드는 분명 처음에는 파죽지세로 성장해나갔다.

그렇지만 순풍만범한 건 딱 거기까지.

원작 기준 2학년 중반 에피소드부터 세상의 정세는 대대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게이트 발생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여명단의 동시다발적인 테러,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의 대대적 던전 크라이시스 사태와 그로 인한 대규모 난민, 그리고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치안 붕괴와 유사 아포칼립스 상황에 이르기까지.

그 급변하는 흐름 속에서 한성그룹의 길드는 결국 침몰하고 만다. 모기업의 힘이 있으니 아예 망하지는 않지만, 본래 예정했던 것보다 훨씬 자그마한 규모로 변변찮게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 고작.

애초에 헌터길드 사업이란 게 일종의 공공사업인지라 어떻게든 정부와 함께 발맞춰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포칼립스 상황이라 그 정부가 기능을 못하는데 잘 풀릴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안 봤는데, 수호 씨도 참 낭만적인 사람이네요.”

머릿속이 꽃밭이라는 걸 비꼬는 말이겠지. 실제로 표정은 딱 그런 표정이었다.

“그래도 사람 생각이란 건 바뀔 수 있는 거니까. 언제든 관심 생기시면 제 번호로 연락을­”

“안수호 님.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때 한여름의 뒤에서 쿨한 인상의 미녀가 다가와 말했다. 창백한 백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

“아현 씨 일은 끝났나요?”

나는 단번에 그녀가 설아현의 비서인 예카테리나인 걸 알아봤다. 예카테리나, 애칭 카챠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예. 지금 바로 사장실로 모시겠습니다. 부디 이쯕으로.”

몸을 돌리기 직전,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한여름의 몸을 쭈욱 훑었다. 한여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수한다.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한여름 학생.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만나죠.”

나는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자리를 뜨려고 했다.

“저기요.”

그러나 한여름이 날 붙잡았다. 예카테리나와 나를 번갈아 보던 그녀가 짐짓 여유로운 태도로 묻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수호 씨가 여기 왜 왔는지를 못 들었는데. 혹시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뇨. 비밀입니다.”

“……네?”

허나 다음 순간 그 여유에 쩌적 금이 갔다. 태초의 은이니 회귀자니 설명할 게 한둘이 아닌데 내가 그걸 왜 말해주나.

나는 싱긋 미소 지으며 살짝 목례한 뒤 벌써 저만치 가있던 예카테리나의 뒤를 쫓았다.

“…………와,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드는 데에 도가 텄네?”

걸어가던 등 뒤로 한여름의 중얼거림이 허망하게 흩어졌다.

***

나는 예카테리나와 함께 로비 제일 좌측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1층과 사장실만을 오가는 직통 엘리베이터.

“…….”

헌데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예카테리나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게 됐다. 싸늘하게 식은 눈빛이 꼭 쓰레기 전남친을 보는 여자 쪽 친구 같았다.

뭐 이해는 갔다. 이번에 설아현이 나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녀는 순전히 호의로 내 부탁을 들어준 입장이다. 그런데 그 부탁이 원인이 되어 겨울동맹과 마찰이 생기게 되었으니 비서인 예카테리나에겐 내가 아니꼽게 보일 수도 있으리라.

“예카테리나 씨. 이번 일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제 불찰로 인해 두 분을 포함한 흑룡회분들께 폐를 끼치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

“…….”

고개 숙여 사과했으나 예카테리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고작 사과 한 번으로 앙금을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때.

“다소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안수호 님께선 저희 회주님과 어떤 사이시죠?”

“네?”

다소 실례, 라기보다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야 솔직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

설아현과 내 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다. 고독한 회귀자인 그녀를 꼬드기기 위해 나는 그녀에게 나 또한 미래에서 온 회귀자라고 거짓말했다. 즉, 그녀 입장에서 보면 나는 이 세상에서의 유일한 이해자요, 그 이해를 바탕으로 협력하는 동반자이기도 했다.

허나 그런 사실을 예카테리나에게 곧이곧대로 밝힐 수는 없는 노릇.

그녀는 설아현의 심복이었지만 설아현의 회귀 사실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 고로 적당히 사실을 숨기며 얼버무려야 하는데…….

“보시는 그대로의 사이입니다. 말 잘 통하는 동업자……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즉, 남녀 간의 정이 통하는 사이는 아니다 그 말씀이시군요.”

예카테리나는 아무래도 조금 다른 오해를 품고 있던 듯 하다.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럴 리가요. 전 이미 여친 있는 몸입니다. 아현 씨랑은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정말입니까?”

“뭐 여자친구랑 통화라도 시켜드려야 믿을 겁니까?”

“여자친구가 있어도 바람은 피울 수 있지 않습니까. 양다리라든가, 단순 섹스파트너 사이일 가능성도­”

“……도대체 왜 그런 의심을 하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예카테리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다만 그 특유의 차가운 시선으로 내 전신을 품평하듯 위아래로 쭈욱 훑어볼 뿐.

“……흐음. 이 사람이 아닌가? 그럼 다른 상대가…….”

이내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들릴 듯 말듯하게 중얼거렸다. 나로선 다소 어이가 없는 상황.

뭐? 나랑 설아현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야 나는 설아현과 전혀 그런 사이로 발전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애초에 우리 둘 사이에 그런 기류가 흐른 적조차 없었는데.

아, 혹시 류태현이랑 슬슬 진도 빠지기 시작한 건가?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긴 했지만, 저번 하늘이 납치 사건 때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으니까…….

­띠링.

그러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고풍스럽게 깔린 카페트와 척 봐도 근엄해보이는 목재 문이 날 맞이해줬다.

그 위를 예카테리나가 도도한 걸음걸이로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회주님. 안수호 님께서 오셨습니다.”

­우다다다!

그러자 안쪽에서 들려오는 한바탕 소음.

꼭 주인 돌아온 강아지가 달려오는 발소리 같다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커다란 문이 벌컥 열리며 설아현이 나타났다.

“오, 오오오셨어요 수호 씨?! 차, 차린 건 없지만 안으로 드, 들어오세욧!”

눈에 띄게 당황한 설아현의 모습에 나는 예카테리나를 바라봤다.

때마침 그녀 또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 상태였는데,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싸늘한 시선이 일품이었다. 그녀가 내 몸을 위아래로 다시 훑더니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먼저 들어갔다.

그런 두 사람의 태도에 내 머릿속에 일말의 불안감이 살짝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

다 눈치 챘으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아니면 꼴에 눈치 좀 있다 자신하면서도 결국 눈새에 불과한 건지.

안수호는 설아현의 낌새를 보고도 전혀 진실에 다가가지 못했다. 본인부터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너무 강한 것도 있었고, 당면한 문제가 워낙 시급을 다투는 일인 탓도 있었다.

“일단 상황부터 정리해보죠.”

안수호와 설아현은 전화로 미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저 나눴다. 서로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고 겨울동맹이나 성유진의 움직임에 대해 추론한다.

그 결과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일단 대전제. 성유진, 혹은 겨울동맹은 안수호에게서 태초의 은을 회수하고 싶어 한다. 애초에 브로커를 통해 거래를 걸었던 게 그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겨울동맹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일단 태초의 은을 가져간 안수호에 대해 조사해볼 것이다. 그 부분은 이미 끝났다 봐도 옳겠지. 그랬기에 정황상 안수호와 협력해서 태초의 은을 가로챈 것으로 유력해보이는 흑룡회에게 성유진이 비밀리에 접근한 것일 터.

그렇다면 다음 스텝은 바로 회유와 설득이다. 안수호든, 혹은 그와 협력한 흑룡회든. 상대방을 설득해서 태초의 은을 받아낸다. 그것이 그들이 취할 두 번째 행동.

그리고 세 번째. 만약 협상이 결렬되든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든 안수호로부터 자발적으로 태초의 은을 넘겨받지 못했을 경우.

그 경우 겨울동맹은 다소 강압적이고 불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리라……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안수호가 가로챈 태초의 은의 가치는 1500만 위안. 한화로 약 30억이 조금 안 되는 돈이었다. 모든 아티펙트가 1차적으로 정부에 귀속되는 중국 특성상 제대로 가치가 매겨지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그 실제 가치는 더더욱 뛰어오르겠지.

그런 거물을 가로챘으니 겨울동맹이 만약 이미 대금을 치렀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태초의 은을 회수하고 싶어할 것이다. 두 사람은 그러한 전제 위에서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했다.

“일단 겨울동맹 쪽이 저랑 수호 씨의 협력을 의심한다면 당장 대놓고 무력으로 밀고 들어오지는 못할 거예요. 자칫 잘못하다간 길드 간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해도 아티펙트 밀거래부터가 불법적인 일이었으니 불가능할 테고…….”

“그렇다면 성유진이나 겨울동맹 쪽이 어떻게 나올 거라 보십니까?”

“아마 비밀리에 회담을 요청해오겠죠. 사정을 알만한 길드 간부급 이상 인원들로. 이 경우엔 아마 저랑 수호 씨, 그리고 성유진 이렇게 셋 아닐까요?”

“아마 요구 사항은 둘 중 하나겠죠. 겨울동맹이 이미 브로커측에 대금을 치렀다는 전제 하에 태초의 은을 내놓아라, 혹은 자신들이 치른 대금을 지불하라.”

“그 경우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설아현이 테이블에 턱을 괴며 말했다. 평소 그녀는 안수호를 바라볼 때마다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두근거리는 눈빛으로 봐왔으나, 그 순간만큼은 유독 차가운 기운이 폴폴 풍겼다.

“만약 겨울동맹 측에서 태초의 은과 관련해 배상을 요구할 경우, 저희 흑룡회는 수호 씨와의 관계를 일체 부정할 거예요. 즉 저희가 대금을 대신 지불할 일은 없다는 거죠.”

일견 차갑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실은 당연한 대응이었다. 안수호도 그 부분에 대해선 불만이 없었다.

“당연하죠.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제가 벌인 일이니까. 아현 씨나 흑룡회가 거기까지 해줄 이유는 없습니다.”

설아현이 안수호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든 그녀는 흑룡회의 리더이자 하나의 회사를 경영하는 사업가였다. 제아무리 안수호가 그녀의 유일한 이해자라 해도 수십 억 단위의 손해를 감수할 만큼 아직 두 사람의 사이는 각별하지 않았다.

안수호나 예카테리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만. 수호 씨가 저희 측 요구를 들어준다면……. 대출의 형태로 겨울동맹 쪽에서 요구하는 액수만큼 대신 지불해드릴 용의는 있어요.”

“대출……말입니까?”

“회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

“말하자면 저희가 대신 내줄 테니 몸으로 갚으란 뜻이죠. 수호 씨라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으시겠죠?”

그 말에 안수호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말의 형태는 달랐지만 그 본질은 조금 전 1층에서 한여름이 던진 제안과 같았다.

“저보고 흑룡회에 들어오라는 것 아닌가요?”

영입 제의.

분명 30억은 큰 돈이다. 한 번 함께 일했을 뿐인 생면부지의 남에게 줄만한 돈은 아니다.

그렇지만 실력 있는 초인을 영입하기 위핸 계약금의 개념으로 보면 그렇게 큰 돈도 아니었다. 어지간한 S급 초인이라면 길드에 들어갈 때 으레 그정도 계약금을 받고 들어가니까.

‘그리고 수호 씨는 최소 S급 초인 이상이야.’

안수호의 무력은 기사의 무덤 공략 당시만 해도 A급 상위에서 S급 하위는 됐었다. 물론 강하늘의 스킬빨을 받은 상태였지만 설아현이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다.

하물며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 태초의 은이라는 특급 아티펙트까지 더해진 상황.

안수호가 특임대를 상대로 보여준 활약을 생각하면 그는 명실상부 S급 초인 수준의 무력을 지닌 셈이었다. 그런 안수호를 유리한 계약 조건으로 영입할 수 있다면 흑룡회에겐 남는 장사였다.

그렇지만.

“죄송합니다. 적어도 당분간 길드나 다른 직장으로 옮길 생각은 없어서요.”

안수호는 이번에도 거절했다. 당연히 이유는 전과 마찬가지였다.

“……뭐, 그게 수호 씨 의견이라면 존중해줘야죠.”

그러나 한여름과 달리 설아현은 별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안수호가 회귀자라고 알고 있었기에, 어떠한 사정 때문에 경비대에 붙어있어야 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그럼 어쩌실 건데요? 태초의 은은 이미 수호 씨한테 정착해서 분리할 수도 없고. 수호 씨 혼자 그 많은 돈을 마련할 방법도 없잖아요?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 그러면 최악의 경우 그쪽에서 강압적으로 수호 씨를 습격할 지도 몰라요.”

사용자에게 귀속되는 아티펙트는 일방적인 방법으론 빼앗을 수 없다. 그러나 아예 방법이 없는 건 또 아니었다.

세상에는 탈리스만이나 태초의 은과 같은 귀속 아티펙트의 귀속을 해제하는 아티펙트 또한 존재하며, 그 이전에 어지간한 아티펙트는 사용자가 죽게 되면 곧바로 귀속이 풀린다. 즉 겨울동맹 입장에선 수틀리면 안수호를 죽여서라도 태초의 은을 회수할 수 있는 상황.

범죄조직도 아닌 헌터 길드가 그런 수까지 벌일까 싶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태초의 은 거래부터가 불법으로 점철된 일이었다. 심지어 성유진은 원작의 빌런 출신. 뭣하면 살인 정도는 전혀 마다하지 않겠지.

“수호 씨. 혹시 뭔가 생각해두신 타개책이라도 있나요?”

그렇기에 설아현은 불안한 눈치로 물었다.

기실 겉으로는 흑룡회주로서 차가운 태도를 유지했지만, 그녀는 정 안 되면 일단 안수호 대신 대금을 지불하는 방안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안수호에게 반했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회귀자인 그의 가능성이나 유용성을 고려한 일종의 투자 개념으로.

……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지만, 제3자가 그녀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면 그것이 채 자각하지 못한 첫사랑에 의한 결정이란 걸 단번에 알아볼 것이다. 그 계기가 다소 불순하긴 했지만.

아무튼.

설아현은 안수호에게 무언가 방법이 있으리라 직감했다. 애초에 태초의 은을 가로챈 것부터가 그가 의도한 바였으니까, 분명 그 뒤의 일도 준비를 해뒀을 거라고.

“……예. 일단 생각해둔 방안이 몇 개 있긴 합니다.”

그런 그녀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안수호가 그렇게 대답했다.

다만, 어째서인지 어딘가 초조한 표정으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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