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164.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궁극적인 대전제(1)
* * *
“……………………어?”
점장의 입에서 새어나온 얼빠진 탄성.
그 탄성에 안수호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좀 전까지 함께 화내며 욕설을 주고받던 점장은 마치 믿기지 않는 사실을 목도한 것처럼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뭐야. 왜 갑자기 말이 없”
홱!
그 순간 점장이 안수호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혹은 그녀가 안수호에게 안겨들었다 해야 할까. 둘 사이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져 입술과 입술이 닿기 직전에서야 멈췄다. 서로가 내뱉는 숨결마저 분명하게 느껴지는 간격.
“지금 이게 뭐하는 짓”
“가만히.”
당황한 안수호가 뿌리치려 했으나 점장은 완강했다. 가까이 달라붙은 그녀가 진귀한 보석을 살피듯 안수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섞여 있어…….”
이윽고 점장이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안수호의 뇌리에 돌연 한 차례의 번뜩임이 스치고 지나간다.
‘섞여 있다?’
분명 빌헬름도 자신을 두고 그런 말을 했었다며. 안수호가 그 의미 불명의 표현에 대해 물으려 했다. 그러나 점장은 묻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너 빙의자구나?”
“!! 그걸 어떻게……?”
안수호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떻게 자신이 빙의자란 걸 알아차렸나. 설마 눈앞의 이 정령도 빙의자란 말인가. 그의 머릿속에 온갖 의문이 떠올랐으나, 점장은 대답해주는 대신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의 몸을 툭 밀어냈다.
“어째 성격도 더럽고 건방지다 했더니 빙의자였구나. 그래. 그럼 날 찾아온 것도, 온몸에 아티펙트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
“그럼 설마 당신도 나처럼 빙의자…….”
“9시.”
점장이 안수호의 질문을 막으며 시계를 가리켰다. 할 말이 있으면 그때 다시 오란 소리였다. 안수호는 지금 당장 궁금증을 풀고 싶었지만 점장의 태도는 완강했다.
“……알겠어. 그때 다시 오지.”
결국 안수호가 한 발 물러섰다.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분노는 그보다 더한 당황과 호기심에 어느새 봄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분노 따위 없었다는 것처럼.
기분 나쁜 찝찝함을 뒤로한 채 안수호가 카페를 나섰다.
그날 밤.
“9시 0분 15초. 아주 딱 맞춰서 왔네?”
‘CLOSED' 팻말이 걸린 카페 문을 열고 안수호가 터벅터벅 들어왔다. 안수호는 대꾸하지 않은 채 오전과 같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점장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두 잔을 들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가 그중 한 잔을 안수호에게 권했다. 안수호가 미심쩍은 눈으로 묻는다.
“오전에는 개새끼가 커피를 마시면 뒤진다느니 나 같은 놈한테는 커피를 팔고 싶지 않다느니 그랬으면서 무슨 바람이 분 거지? 아니면 뭐, 이거 먹고 나가 뒤지란 뜻인가?”
“성격 참 더럽게 꼬여 있네. 별 거 아니야. 생각해보니 낮에 환불해준다 해놓고 그냥 보냈더라고. 그래서 사과도 할 겸, 내가 아주 정성을 들여서 내린 커피니까 함 잡숴봐.”
안수호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였다. 직후 그의 표정이 더욱 찡그려졌다.
“……이거 믹스커피 아니야?”
“정성을 들여 포장지를 뜯고 정성을 들여 스푼을 저었답니다 손님. 건방진 개새끼한텐 이 정도가 딱이잖아요? 아, 침이나 변기물은 타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점장이 실실 웃으며 전자담배를 꼬나물었다. 안수호가 슬쩍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그녀는 낮과 달리 안수호가 없는 방향으로 연기를 뱉었다.
그 모습에 안수호가 살짝 안도했다. 그녀의 태도는 여전히 불친절하고 적대적이었지만, 적어도 면전에 대고 연기를 뱉어대던 낮보다는 나아 보였다.
“일단 서로 통성명이나 할까? 난 루엘이라고 해. 너는?”
“안수호.”
“그건 네 원래 이름? 아니면 이 세상에서 뒤집어 쓴 그 껍데기의 이름인가?”
갑작스레 훅 들어오는 날카로운 질문.
안수호가 흠칫 얼굴을 떨며 표정을 굳혔다. 그러나 이내 심드렁한 얼굴로 그가 대답한다.
“……내 원래 이름은 알 필요 없잖아. 껍데기고 나발이고 이 세상에서 난 안수호지 다른 누가 아니니까.”
“흐음.”
루엘은 그런 안수호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커피를 마셨다. 안수호에게 준 것과 달리 제대로 로스팅한 원두로 우려낸 제대로 된 커피였다.
“그런데……. 넌 어떻게 내가 빙의자라는 걸 알아차린 거지?”
“눈에 뻔히 보이거든.”
“뻔히 보인다고? 행동이나 말투 같은 곳에서 빙의자인 티라도 난다는 건가?”
“그런 것도 있긴 하지만……. 내 말은 있는 그대로의 의미야. 정령은 상대의 눈동자를 통해 그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거든.”
눈동자는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다.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정령에게 있어서만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그 말처럼, 루엘은 그 창을 통해 안수호의 영혼을 엿보았다.
“네 눈동자 안에는 지금 두 개의 영혼이 섞여있어. 원래 그 몸에 있던 ‘안수호’의 영혼과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너 자신의 영혼이.”
“내 영혼이 섞여있다고?”
안수호가 불안한 눈치로 되물었다.
영혼.
안수호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영혼이 섞여있다는 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자아의 침식이라든가, 한 몸을 차지한 두 영혼의 주도권 싸움 같은. 창작물에서 흔히 나오는 클리셰들에 대해 안수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
‘그러고 보니…….’
문득 안수호의 뇌리에 몇 가지 기억이 스쳤다.
며칠 전. 강하늘을 납치한 칼리를 상대했을 때. 안수호는 이미 제압된 칼리를 상대로 개처럼 짖어보라든가 무릎 꿇고 빌어보라든가 하며 가학심을 표출했다. 평소 그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언행.
그런 이상 행동은 오늘도 있었다. 오늘 낮 루엘과의 대화에서 안수호는 지나치게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평소의 그라면 설령 화가 난다 해도 루엘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그 화를 억눌렀을 텐데도, 그는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성을 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왜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는지 싶었지만, 막상 그 당시에는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강렬한 감정들의 원인이 만약 루엘이 말한 영혼의 뒤섞임 때문이라면?
“표정을 보아하니 짚이는 구석이 있나 보네.”
루엘이 안수호의 속내를 날카롭게 꿰뚫어보았다. 안수호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가끔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긴 했어. 오늘 낮의 일도 그렇고.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게 설마 영혼 때문일 줄은…….”
“아. 그러니까 원래 네 성격은 그렇게 개차반이 아닌데 그 몸에 섞인 영혼 때문에 나한테 그렇게 욕을 쳐박으셨다? 씨발. 변명할 여지 주니까 바로 받아먹는 거 봐라?”
“변명하려는 건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그래. 그러시겠지. 너는 나한테 예의바르게 대하고 싶었는데 섞인 영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낸 거고. 나는 누구랑 달리 뒤섞임 하나 없는 깨끗한 영혼인데도 처음 보는 손님한테 대뜸 개새끼니 씨발새끼니 입에 걸레를 물었다고 온 동네방네 자랑한 쓰레기다 그거지 뭐. 잘 알겠어.”
루엘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담배를 물었다. 달콤한 과일향이 섞인 허연 연기가 뻑뻑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깨끗한 영혼이라는 건 즉……. 너는 나처럼 빙의자가 아니라는 건가?”
“그래. 너처럼 다른 세상에서 끌려오긴 했지만 난 순도 100% 자연산 정령이야. 이 몸도, 그 안에 담긴 영혼도 말이지.”
“근데 내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건 어떻게 안 거지? 내가 빙의자라 해도 이쪽 세상의 영혼끼리 섞인 거일 수도 있잖아.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 온 영혼은 뭐 특별한 차이라도 있는 건가?”
“아. 그거? 그건 그냥 촉이야 촉.”
루엘이 별 거 아니라며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안수호가 미심쩍은 눈으로 그녀를 흘기자 그녀가 불쾌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촉이라고 해서 박수무당마냥 찍은 건 아니야. 정령은 다들 감이 좋거든. 게다가 그럴 듯한 정황증거도 있었고.”
“정황증거?”
“응. 온몸에 온갖 귀한 아티펙트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행색이나, 뭐만 하면 양판소니 판타지세상이니 운운하는 말투 같은 게. 예전에 만났던 다른 빙의자랑 비슷했거든.”
“다른 빙의자라고?!”
쾅!
안수호가 거칠게 테이블을 내리치며 일어섰다. 그러자 안수호가 마시던 믹스커피 잔이 넘어져 내용물이 테이블 위에 번졌다. 루엘이 있는 대로 미간을 찌푸렸다.
“아 시발 방금 청소했는데…….”
“다른 빙의자라는 건 나처럼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을 말하는 건가?! 그건 누구지?! 어디에서 만난 거야?! 인상착의나 특징은? 혹시 그 사람이 초인들의 시대나 쾌락천마 같은 말을 꺼내진 않았”
“일단 앉아. 그리고 네가 쏟은 거나 닦아. 말라서 끈적해지기 시작하면 냄새 남으니까.”
루엘이 신경질적으로 행주를 휙 던졌다. 그걸 받아든 안수호가 닦는 둥 마는 둥 하며 대충 테이블 위를 휘휘 저었다.
“야 씨발 그렇게 닦으면 주변에 다 튀잖아!”
“자. 다 닦았어. 그러니까 이제 대답해.”
루엘의 짜증난 외침도 안수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그녀가 말한, 또 다른 빙의자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있었다.
“……야. 지금 네가 뭘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난 지금 네 궁금증이나 풀어주려고 여기 앉아있는 게 아니거든?”
“그럼 뭐 때문인데?”
“뭐긴 뭐야. 네가 목에 걸고 있는 ‘그 아이’ 때문이지.”
루엘이 안수호가 목에 차고 있던 서리정령의 증표를 가리켰다. 그러자 목걸이에서 뿜어져나오던 냉기가 아주 조금 강해졌다.
“내가 살던 세상이랑 달리 이 세상엔 정령이 없어. 가끔 던전에 끌려오는 애들도 죄다 헌터한테 사냥당하기 일쑤지, 나처럼 던전 밖으로 무사히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 근데 웬 놈팽이 하나가 멀쩡한 정령을, 그것도 거의 정령왕 수준의 고위 정령을 악세사리마냥 차고 다니는데 어떻게 모른척하겠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정령왕이라고……?”
안수호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반문했다. 그야 그 빌헬름이 데리고 다니던 정령이니 지체 높은 존재일 거라곤 직감했지만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니, 애초에 안수호는 그 목걸이를 단순한 아티펙트로만 생각했지 살아있는 정령이 담겨 있다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너도 뭔가 목적이 있어서 날 찾아온 거겠지만, 그걸 해결하는 건 우선 내 질문에 답한 뒤야. 네가 목에 걸고 있는 그 서리정령에 대해서 나한테 있는 대로 다 말해. 그 정령은 도대체 어디서 만난 건지, 왜 그런 식으로 목걸이에 갇혀서 네 목에 걸려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루엘이 묘하게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은연중에 느껴지는 분노는 딱히 이해 못할 감정도 아니었다. 목걸이라는 형태 때문에 실감이 안 가서 그렇지, 루엘 입장에서 안수호는 자기 동료를 노예처럼 목줄 채워 데리고 다니는 무뢰한처럼 보일 테니까.
“대답은?”
“……좋아. 나도 이 정령에 대해서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건 전부 말해줄게. 대신 내 말이 끝나면 너도 내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
“좋아.”
얼핏 둘 사이에 거래가 오간 것 같은 모양새였으나 기실 어느 쪽이나 안수호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그가 오늘 루엘을 찾아온 목적에는 서리정령의 증표에 대해 묻기 위함도 있었으니까.
“일단, 이 아티펙트는 서리정령의 증표라는 아티펙트인데…….”
안수호는 자신이 아는 선에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시간은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야 그가 아는 것이라고 해봐야 서리정령의 증표가 본래 빌헬름의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다른 세상에서 왔으며 자유자재로 서리마법을 부리던 자라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과연. 그렇게 된 건가.”
그러나 루엘에겐 그 정도로 충분했다. 특히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세상에서 끌려온 빌헬름의 이야기에서 많은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 빌헬름이란 기사가 온 세상은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것 같지만, 정령이나 마법의 메커니즘은 비슷한 것 같아. 아마 그 정령은 네가 말한 기사와 종속계약을 이루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그 기사가 던전의 괴수로 이 세상에 끌려오면서 졸지에 그 정령도 함께 오게 된 거지. 이쪽 세상의 시스템에 의해 강제로 아티펙트 형태로 변환된 채로. 그래야만 빙의자인 너한테 보상의 형태로 그 정령을 쥐어줄 수 있을 테니까.”
루엘은 마치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술술 말을 이어갔다.
비록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다곤 하나 그녀는 고위 정신체인 정령. 하나를 알면 열을 유추해내는 그 통찰력은 평범한 인간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 아이도 참 불쌍하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세상에선 반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신적 존재로 대우받던 존재였을 텐데 지금은 목걸이 안에 갇혀 입도 뻥끗 못하며 노예처럼 부려지는 꼴이라니…….”
루엘이 측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수호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서 그녀의 배경이 범상치않음을 직감했다. 그야 정령왕급은 된다는 서리정령을 두고 계속 ‘그 아이’라 하대한다는 건 즉, 루엘 본인은 최소한 그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란 뜻이니까.
그러나 안수호는 지금 그보다 더욱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서리정령의 증표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던 루엘에게 안수호가 넌지시 물었다.
“이봐. 루엘.”
“왜?”
“좀 전에 분명 시스템이니 보상이니 말하던데, 넌 이 세상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그 말대로. 루엘은 안수호처럼 빙의자가 아님에도 마치 빙의자인양 이 세상을 한 발자국 떨어진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 태도는 빌헬름에게서조차 보이지 않은 부분이었다.
“글쎄? 너나 나나 피차 재수 없게 억지로 끌려온 건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너보다는 이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럼 이 세상이 소설 속 세상이란 것도 알고 있나?”
안수호는 반쯤 떠보듯이 질문했다. 다른 빙의자와도 만났다니 아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은연중에 그녀가 그 사실만은 모르고 있을 거라 직감했다. 당장 다른 세상에서 왔던 빌헬름조차 쾌락천마의 존재는 간파했을지언정 결국 소설이라는 거대한 틀에 갇혀 살던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거 봐. 역시 내가 너보다 훨씬 잘 알고 있네.”
“뭐?”
“전후관계가 달라. 이 세상이 소설 속 세상인 게 아니라, 네가 읽은 소설이 이 세상을 모티브로 쓰여진 거야. 나야 그 소설이란 걸 읽어본 적은 없지만, 뭐 뻔한 이야기지.”
루엘이 덧붙였다. 소설의 형태로 자기 세상의 이야기를 다른 세상에 뿌려, 거기 낚인 불쌍한 영혼을 자신의 세상으로 홱 낚아채오는 일이 한창 어린 신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 충격적인 말에 안수호의 정신이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안수호의 표정을 감상하며 루엘이 가소롭다는 듯 미소 지었다.
“후우우우우.”
그녀가 입에서 진한 연기를 내뱉었다. 달콤한 과일향이 두 사람 사이에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궁금해?”
무엇이, 라는 목적어는 필요 없었다. 짧은 물음이었지만 그 안에 내포된 뜻을 안수호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까.
긴장한 얼굴을 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루엘이 테이블 위에 턱을 괴며 바깥을 살폈다.
어둡게 잠든 한밤중의 골목을, 그 위로 펼쳐진 드넓은 밤하늘을.
“……너도 참 타이밍 좋게 날 찾아왔네.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 저 하늘 위에 계신 높으신 분께서 두문불출하시거든.”
그래봤자 내가 여기 숨어 지내는 것도 모르는 멍청한 년이지만. 그렇게 덧붙인 루엘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걸렸다. 이내 밤하늘로부터 시선을 거둔 그녀가 안수호에게 말했다.
“특별히 알려줄게.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궁극적인 대전제에 대해서.”
그 거창한 말에 안수호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