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163. 이게 정령...?
* * *
내가 한창 소설에 빠져 살던 시절,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 직후부터 이 빌어처먹을 세상에 빙의당하기 직전까지 나는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 늘 이런 감상을 품곤 했다.
여가 수단으로서의 소설이란, 참 안타깝고도 기구한 매체라고.
여가 수단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재미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매체는 다른 매체, 이를테면 영화나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따위 보다 그 재미의 즉효성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 혹은 흥미의 즉효성이라고 할까.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매체는 수용자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쉽다.
가령 만화라면 첫 페이지부터 힘 빡 준 그림체로 장엄한 전투를 묘사한다든가.
영화라면 문외한이 봐도 극찬할 뛰어난 미장센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혹은 그런 고급스런 방식이 정 어렵다면 대충 헐벗은 여자나 유혈낭자한 장면을 제일 먼저 배치하기만 해도 순간적인 이목 정도는 손쉽게 끌겠지.
허나 소설은 그게 안 된다.
제아무리 세기의 대문호가 수려한 문체로 글을 써내려갔다 한들 독자가 보기에는 그저 글자의 모음일 뿐. 그 자체로 자극과 흥미를 유발하진 않는다. 소설로부터 자극과 흥미를 얻어내려면 독자가 먼저 자발적으로 글자의 바다 위로 다이빙해야 된다.
재미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글을, 5페이지고 10페이지고 묵묵히.
그것이 소설이 다른 시각적 매체에 비해 불편한 점이요, 불리하고 불친절한 점이었다.
그렇기에.
글 좀 써봤다 싶은 작가들은 그러한 독자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즉 독자가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의 글에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 최고의 첫 문장을 쓰려고 노력한다. 이를 증명하듯 이름난 명작 소설의 도입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
이 몸은 고양이로다. 아직 이름은 없다. 나쓰메 소세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레프 톨스토이
유명한, 그리고 인상 깊은 도입부는 그 자체만으로 독자에게 인상적인 경험을 선사해준다. 앞서 소설은 흥미의 즉효성이 떨어진다 했으나 정말로 잘 쓴 소설들은 그 법칙에서 예외였다.
그래서 그런가.
요즈음 나오는 소설 중에는 그러한 유명한 도입부를 논문 인용하듯 제 소설에 갖다 붙이는 경우도 왕왕 있다. 오마주 내지는 패러디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작가가 아닌 나로서는 작가들이 왜 그런 시도를 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나, 그래도 아예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명작의 유명세에 편승하기 위해. 혹은 그 작품에 대한 순수한 팬심의 발로.
아마 그런 이유가 대부분이겠지만은,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유명한 문장을 차용하는 것은 작가가 전하고픈 감정이 차용된 소설과 일맥상통하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하고.
글자만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느꼈던 감상을 떠올리게 하는 건 쉽다. 작가가 인용한 명작을 읽었던 독자라면, 그 인용된 문장을 보고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될 테니까.
……헌데 난 왜 대뜸 이러한 장광설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것은 내가 처한 작금의 상황이 앞서 늘어놓은 장광설과 합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소설 도입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션이라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SF 소설인데, 그 소설 도입부가 아마 이랬을 거다.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앤디 위어,
“이봐 형씨. 아까부터 우리 종업원한테 너무 치근덕대는 거 아냐? 확 성희롱으로 신고해버린다?”
나는 있는 대로 식은땀을 흘리며 눈앞의 카페 점장을 바라보았다.
카페 점장이라곤 하나 점장처럼 보이는 구석은 대충 두른 갈색 앞치마밖에 없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카페 내부와 달리, 점장의 인상착의는 그야말로 파격적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빛이 바랜 레몬 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
짙은 음영이 져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눈매.
몸에 착 달라붙는 민소매 상의에 그 옆으로 드러난 까맣게 태닝된 피부. 그리고 그 위를 빽빽하게 덮은 수많은 문신들.
앞서 파격적, 이라고 표현했으나 불량해 보인다는 말이 더 적합할 지도 모른다. 양아치스럽다 표현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다 동의하지 않을까. 일본 만화 따위에서 과장되게 그려진 양아치의 스테레오 타입, 그것이 내 눈앞에 있는 점장의 인상착의였다.
금발에 태닝에 양아치.
한 마디로 말하면 금태양인데, 나는 과연 이 점장을 금태양으로 정의해도 되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뭐야. 왜 대답이 없어?”
점장은 앞서 말한 모든 특징에 정확히 부합하는 외모였으나, 다만 그 성별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
금태양이라고 하면 으레 남자 양아치를 가리키는 경우가 99%니, 이 경우엔 그녀를 금태양이라 정의하는 건 좀 이상하겠지.
그렇다면 나는 이 점장을 뭐라 불러야 할까.
갸루라고 하기에는 배경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었고. 일진녀라고 하기에는 누가 봐도 명백한 성인이었다. 풍기는 분위기는 화류계 종사자와 얼핏 비슷했으나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라든가, 인생만사에 달관한 듯한 퇴폐적인 분위기라든가, 아무튼 무언가 달라도 상당히 달랐다.
“왜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되셨을까? 왜, 우리 알바생은 만만하고 난 아닌가봐? 엉? 뭐라고 말을 해보라고 말을!”
쿵!
점장은 접객 태도 따위 엿 바꿔먹은 듯 안하무인한 태도로 날 압박해왔다. 내가 알바생한테 치근덕댔다며.
허나 난 결백했다. 고로 난 억울했다. 점장이 말은 전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오해.
그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라엘이 내게 준 지도는 종로구 인사동의 한 카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사동하면 흔히 떠오르는 한국적인 관광 거리에서 살짝 빗겨간, 번화가와 주택가 사이의 후미진 곳에 있는 자그마한 카페.
이른 낮 시간이어서 그런가 손님이라곤 한 명도 없던 그 카페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목소리가 날 반겨주었다.
“어서오세요!”
목소리의 주인은 카운터에 서있던 여자 알바생이었다.
밤하늘처럼 짙은 검은 머리카락에 백옥 같은 피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그 외모는 마치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비경의 자연을 한 폭 베어내어 그대로 옮겨둔 것 같았다.
그 감상은 단순히 아름답다 아니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외모만 놓고 보면 예원이나 하늘이가 더 예뻤으니까. 콩깍지 따위가 아니라 실제로 둘은 원래 세상이었으면 배우나 아이돌을 해도 될 정도의 미인이었다.
그리고 저 알바생의 외모는 그런 두 사람과 엇비슷할지언정 그 이상 가지는 않았다. 단순히 이목구비만 보면 말이다.
허나 풍기는 분위기가 이제껏 내가 봐온 여자들과는 전혀 달랐다. 말로 잘 표현하진 못하겠지만, 인간 같지 않은 이질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하나.
“한 분이신가요? 음료를 주문하시고 원하시는 자리에 앉아계시면 저희가 가져다드릴게요. 주문하시겠어요?”
게다가 그 이색적인 외모에 더불어 마치 장인이 한땀 한땀 조율한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미성까지.
‘저 여자군.’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눈앞의 알바생이야말로 천사 아라엘이 말했던, 인간으로 변신해 이 세상에 숨어 살고 있는 정령일 것이라고.
“아, 네. 그러니까…….”
나는 적당히 시그니처 커피라는 걸 주문한 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알바생은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정성 들여 원두를 갈았다.
드르륵. 드르륵.
조용한 카페에 원두 가는 소리만이 작게 울려 퍼졌다. 이른 낮의 햇살이 살짝 어두운 카페 안을 이리저리 비추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곧 은은한 커피향이 점내에 감돌기 시작하고, 이윽고 알바생이 시그니처 커피를 쟁반에 받친 채 내 테이블로 왔다. 점원이 직접 테이블까지 음료를 가져다준다니 꽤 드문 방식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저희 카페의 오리지널 커피, 정령의 속삭임이에요.”
그 네이밍이 확인사살이었다. 무슨 칵테일 이름도 아니고, 맨정신으로 마시는 커피에 정령이니 속삭임이니 달아대는 네이밍 센스가 그녀가 정령임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저기…….”
“네?”
돌아서려는 점원을 불러세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예쁜 여자를 앞에 둬서 긴장했다든가 하는 귀여운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질문의 화두를 어떻게 던질지 고민되었을 뿐이다.
그야, 대뜸 상대에게 ‘당신 정령입니까?’하고 물어볼 수도 없잖은가. 무슨 삼류 연애드라마도 아니고. 그렇게 물었다간 커피 이름이 정령의 속삭임이니 당신이 정령이겠군요, 따위의 오글거리는 작업 멘트로 들릴 게 뻔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게 있나요 손님?”
“그러니까…….”
허나 나는 정령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고로 간접적인 질문으로 그녀의 정체를 캐낼 수가 없단 뜻이었다.
“이 목걸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나 내겐 이미 물증이 있었다. 혹은 증표. 그 이름대로 서리정령의 증표가 말이다.
내가 들어 보인 푸른 목걸이에 점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할 법도 한데 그녀의 태도는 초연하기 그지없었다. 그 사실이 그녀가 정령이라는 것을 더욱 확실시하는 것 같았다.
“예쁜 목걸이네요.”
“그런가요?”
“네. 예쁘네요. 무척.”
“……그게 다인가요?”
“어…….”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내 거듭된 질문에 점원의 초연한 태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점원이 아리송한 얼굴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그……. 세세한 세공이 돋보이는 목걸이네요. 유리는 아닌 것 같고, 얇은 세라믹을 눈꽃 모양으로 가공한 건가요? 요 앞에서 파는 몇천 원짜리 기념품들하곤 다른 품격이 느껴져요. 제가 보는 눈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혹시 브랜드 있는 명품인가요? 아, 아니면 외국 장인이 만든 수제작품……?”
“………………네?”
전혀 핀트가 맞지 않는 대답에 이번엔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점원의 대답은 마치 귀찮게 치근덕대는 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짜낸 고육지책 같았다. 아니, 실제로 상황만 놓고 보면 그게 맞았다.
그렇지만.
‘정령이잖아? 근데 서리정령의 증표를 못 알아본다고?’
실비만 해도 정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같은 정령이 그게 안 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왜 영문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거지?
그때.
“은하야?”
“네. 점장님!”
카페 안쪽의 가림막 너머에서 점장이라 불린 여성이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눈앞의 점원이 청초의 극치라면 점장은 완전히 반대, 퇴폐의 극치였다. 목에 목걸이 대신 전자담배를 건 채 그녀가 점원에게 명령했다.
“2층 여자화장실이 좀 더러운데 청소 좀 부탁해도 될까? 대신 청소 끝난 다음엔 위에서 좀 쉬어도 돼. 어차피 평일 오전이라 손님도 별로 안 올 테니까.”
“아, 네!”
그것이 명령을 빙자한 배려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무슨 배려냐 함은, 진상 손님으로부터 가련한 알바생을 구원해준 점장의 배려였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점원과 교차하듯 다가온 점장이 내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저…….”
“이봐. 형씨.”
갑작스런 상황에 내가 당황한 찰나, 점장이 차가운 웃음을 싱긋 지으며 물었다.
“아까부터 우리 종업원한테 너무 치근덕대는 거 아냐? 확 성희롱으로 신고해버린다?”
그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난 결백하고 억울했다. 그야 점장이 보기에 내가 알바생한테 치근덕댄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난 결코 불순한 의도를 품고 접근한 게 아니었다.
하늘이가 이 이상 여자 늘리면 죽여버린다 그랬는데 내가 미쳤다고 그럴까. 그러나 점장이 그런 내 사정을 헤아려줄 리가 없다. 그녀의 싸늘한 미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절대영도를 향해 빠르게 낙하하고 있었다.
“그, 오해입니다.”
“오해애?”
내 변명에 점장이 눈을 가늘게 흘기며 전자담배를 입에 물었다. 손님 앞에서 담배라니. 날 손님으로 생각하지도 않는구나.
푸우우우우우.
라고 생각한 순간 그녀가 담배연기를 그대로 내 면전에 대고 뱉었다. 뭔지 모를 과일향이 담긴 연기가 내 얼굴을 정통으로 훑고 지나갔다.
아무래도 점장은 날 손님은커녕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예. 저는 결코 그 직원분께 불순한 의도로 치근덕거린다거나 한 게”
“알아.”
“예?”
“안다고. 내가 여기 골목에서 커피 장사만 15년인데. 이 손놈 자식이 음흉한 변태새끼인지 아니면 그냥 뭐 좀 물어보려 한 건지 그 정도도 분간 못하겠어?”
“그런데 왜 저한테 이러시는 겁니까?”
“마음에 안 들어서.”
내가 다시 한 번 ‘예?’하고 반문했다. 점장은 그런 내 태도가 더욱 마음에 안 든다는 것처럼, 다시 한 번 면전에 대고 연기를 뱉었다.
그쯤 되자 나도 화가 치밀어올랐다. 초면인 상대에게, 심지어 손님한테 이런 처사는 너무하지 않은가. 조금 전 친절했던 점원과는 그야말로 극과 극. 완벽한 흑과 백의 대비를 이루는 언행이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드시는진 모르겠지만. 전 정말 불순한 의도 없이 뭐 하나만 물어보려고 한 겁니다. 방금 점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요.”
“그래? 우리 손놈 새끼께선 내 소중한 알바생한테 뭘 물어보고 싶었을까?”
그러나 나는 꾹 참았다. 이곳에 온 목적이 있었기에. 그래. 나는 아라엘이 말해준 정령을 찾아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헤쳐나갈 기연을 얻어내야만 하는……
“혹시 정령에 대해서?”
“!!”
그 순간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뭐라고?
어떻게?
이 여자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와.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네? 너 정말 상상 이상의 쓰레기구나?”
당황에 빠진 날 바라보며 점장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정령에 대해서 아는 걸 보면 자기가 목에 걸고 있는 게 정령을 가둬둔 아티펙트라는 것도 당연히 알 테고. 그런데 정작 그 정령이 하는 말은 귀 싹 닫은 채 무시하면서 지 꼴리는대로 착취하기만 해? 뭔 씨팔 노예야? 내가 살던 곳이야 중세시대니까 노예제가 있다 쳐도 자랑스런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새끼가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
“당신이 그걸 어떻게”
“어떻게는 뭘 어떻게야 이 씨방새야.”
그 외모만큼이나 걸걸한 말투로 점장이 말했다.
“나도 씨발 정령이거든요. 네가 멋대로 목에 걸고 노예마냥 부려먹는 그 애랑 똑같은 정령.”
“엥? 그 비주얼로?”
“왜. 정령은 머리 염색하고 피부 태닝하면 안 되나? 아니면 문신 때문에 그래? 뭐 내가 홍대병 걸린 양아치년이라도 되는 줄 알았어?”
무심코 되물었으나 점장은 전혀 변함없는 태도로 이죽거렸다. 그녀가 슬쩍 시선을 내리더니 내 앞에 놓여있던 커피잔을 홱 낚아챘다.
벌컥.
“어?”
그러더니 대뜸 멋대로 커피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한 모금도 남기지 않고 몽땅. 깨끗하게 잔을 비운 점장이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뭔 사정이 있어서 날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이미지만 보면 넌 개새끼 중에서도 천하의 개새끼야. 그리고 개새끼는요 시발, 커피를 마시면 거품 물고 뒤지거든? 그러니 이 커피는 내가 마셔야지 별 수 있겠어?”
“아니 손님한테 판 거를 멋대로”
“불만 있으면 환불해줄게! 나도 너 같은 손님한테 받은 돈으로 밥 벌어먹고 싶진 않거든! 게다가, 어차피 여기 온 목적이 한가롭게 커피 마시는 건 아니었을 거 아니야. 안 그래?”
정곡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여기 온 목적은 아라엘이 말한 정령을 만나기 위해, 즉 눈앞의 점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시발.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정령과의 만남도 최악이었고, 그 이전에 정령이라는 년부터가 최악의 인격파탄자 양아치년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뭣 때문에 온 건진 모르겠지만 볼일 있으면 오늘 장사 끝날 때까지 기다려. 아니, 어디 다른 곳에 있다가 그때 다시 와. 니새끼 얼굴 1초도 더 보기 싫으니까.”
마감은 9시야. 그렇게 덧붙인 점장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노골적인 축객령이었다.
그러나.
“……이런 씨발.”
참는 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뭐? 씨바알?”
점장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 찡그려진 얼굴에 대고 내가 속사포처럼 입을 놀렸다.
“그래 씨발! 야! 진짜 해도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뭔 착취니 노예니 뭐니 하는데 난 이 목걸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래서 목걸이에 대해 물어보려고 찾아왔더니!! 뭐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고 대뜸 초면에 개새끼니 씨발새끼니 하면서 욕부터 박아대는데 내가 화 안 나게 생겼냐고!!”
끓어오르는 분노가 이성을 가볍게 집어 삼키고 제멋대로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허나 스스로 입을 놀리면서도 위화감이 들었다.
‘어라?’
분명 나는 화났다. 점장의 언행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평소의 나라면 목적을 위해 그 화를 억눌렀을 것이다. 나는 아라엘이 말한 정령의, 눈앞의 점장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이거이거 그냥 개새끼인줄 알았는데 아주 당돌한 개새끼였네? 뭘 잘했다고 지금 큰소리야?! 어?!”
“피차 마찬가지야! 카페 점장이라는 년이 손님한테 이지랄하는데 이건 잘한 짓이냐?! 어?!”
어째서인지 나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마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분노에 휘말려 멋대로 입을 놀리는 자신을 이성적인 자신이 머릿속 구석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 나 자신의 말과 행동임에도 묘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그렇게 냉정하게 생각하면서도 입은 끊임없이 점장과 말싸움 중이었다. 아니, 그녀와 나의 갈등은 언쟁으로 그치지 않았다.
덥썩!!
점장이 내 멱살을 틀어쥐고 나는 그 손목을 붙잡았다.
“놔라. 부러뜨리기 전에.”
“할 수 있으면 해보든가.”
“내가 못할 것 같아?”
“꼴에 초인이라고 잘난 척은. 야, 내가 살던 곳에서 너 정도 실력으로 나대다간 다음날 뒷골목에서 목 돌아간 채 뒤져있었어! 이 하룻강아지 새끼야!”
“뭐 씨발 별 좆도 아닌 양판소 세상에라도 살았나 보지? 마법이랑 오러는 무섭고 초능력은 안 무섭다 그거냐?”
분위기는 그야말로 일촉즉발. 나는 점장의 손목을 쥔 손아귀에 꽈악 힘을 주었다. 여차하면 정말 부러뜨릴 기세로. 그 정도로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라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양판……소?”
마찬가지로 죽일 기세로 달려들던 점장이 돌연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시선이 정확히 내 눈동자로 향했다.
직후.
“………………어?”
점장의 입에서 처음으로 얼빠진 탄성이 새어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