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162. 귀여운 게 두 개.
* * *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민채령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서린다. 그녀가 긴장하다니 본래는 보기 드문 일이었으나, 요즈음에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늘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에 기거하던 민채령은, 요 근래 자신의 한계를 여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녀는 도박수를 던지려 하고 있었다. 안수호와 박지현의 관계에 대해, 그 수상쩍은 연결에 대해 캐물으면 안수호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관계로 무얼 알아낼 수 있을까. 그가 숨기고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확실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도박이었다.
민채령은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지현에게서 정보를 캐낼 수 없는 이상, 그녀에게 가능한 건 그런 도박밖에 없었다.
“물어보시죠.”
안수호는 그런 민채령의 속사정을 모른다. 그의 가벼운 수락에 민채령이 말을 고르고 고르며 묻는다.
“박지현. 혹시 누구인지 기억해?”
“박지현이라면…….”
안수호가 뜸을 들였다. 꾸며내지 않은 진실된 반응.
기실 그는 박지현에 대해 거의 잊고 있었다. 시간상으로는 고작 한 달 조금 더 전의 일이지만, 그간 워낙 많은 일이 있다 보니 이미 끝난 일에 대해선 서서히 망각해가고 있던 것이다.
“……그 여명단 간부 아닙니까? 그 왜, 서큐버스 사건 때 제가 죽였던…….”
그 망각 속에서 안수호는 가까스로 진실을 건져낸다. 건져냄과 동시에 긴장한다.
박지현.
그녀는 흡혈귀였다.
흡혈귀의 능력을 사용하는 초인이었다.
흡혈을 통해 대상을 제압하고, 매료하고, 그 마음과 기억을 읽어내는 게 가능했던 자요, 그 능력을 통해 안수호로부터 이 세상이 소설이란 걸 알아차린 비운의 캐릭터.
“갑자기 그 이름은 왜 꺼내십니까?”
그렇게 묻는 안수호의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안수호는 새삼 자신이 박지현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비록 그녀가 죽음으로써 이미 끝난 일이라곤 해도, 빙의자가 아닌 캐릭터가 제4의 벽을 알아차린다는 건 여간 일이 아니었다. 여간 일이 아니었기에 안수호는 민채령에게 제압당했던 박지현을 죽였다.
일부러.
입막음하기 위해.
그런데 그런 박지현을, 왜 이제 와서.
“살아 있어.”
그러나, 민채령의 다음 말이 안수호의 뇌리를 쎄게 강타했다.
“…………예?”
“살아있다고. 박지현. 살려서 안전가옥 아래 가둬놨어. 유현호랑 같이.”
“그게 무슨……소립니까. 박지현은 제가 죽였잖아요. 분명히 기억합니다. 제가 던진 단검에 머리가 뚫려서”
“살려냈어.”
민채령이 단호하게 말했다. 살려냈어. 딱 그 네 글자만.
“……네?”
단검에 미간이 꿰뚫려 죽은 사람을 살려냈다니.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상대는 그 민채령.
안수호의 머릿속이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쩌면. 그럴 리가 없겠지만. 불가능한 일인 게 뻔하지만.
민채령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무럭무럭 자라난 불안감은 민채령의 초연한 표정 앞에서 이내 확증으로 변했다.
“그때 네가 박지현을 죽였던 거, 입막음하려고 죽인 거지?”
그 확증 앞에서 민채령이 거듭 물었다. 말랑말랑했던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안수호의 얼굴에도 진한 긴장의 기색이 떠올랐다.
“입막음……이라뇨?”
그렇게 되물은 안수호는 문득 저번 회식 때 민채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와 만나면 어째 무슨 이야기를 하든 헤어질 땐 날 선 채로 헤어지게 된다고.
그 말마따나, 안수호와 민채령은 결국 오늘도, 이렇게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마치 그것이 두 사람의 본래 자리라는 것처럼. 의심하고 압박하며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 마치 그것만이 두 사람이 이뤄야 할 관계의 전부라는 것처럼.
“그때 네가 워낙 수상쩍게, 부자연스럽게 박지현을 죽였잖니. 그래서 박지현을 살려내고 내 나름대로 심문했어. 너랑 무슨 관련이 있는 친구 같아서.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꽤 재미있는 이야길 해주던데?”
민채령이 싱긋 웃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블러핑에 허세로 점철된 물음. 긴장감과 호기심, 그리고 두근거림이 그녀의 가슴에 차오른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티내지 않는다.
마치 고요한 밤중의 호수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민채령이 물었다.
‘설마.’
알아차린 건가. 박지현에게서 이 세상이 소설이란 걸 들어낸 건가.
일순 안수호가 그렇게 생각했다. 당연히 그 반응은 그의 표정에 드러났다. 안수호는 민채령과 달리 감정을 숨기고 기만하는 데에 능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안수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나친 걱정에 불과하다며.
그의 우려가 현실이 되기에는 넘어야 할 관문이 엄청 많았다. 당장 죽은 박지현을 살려냈다는 것조차 믿기 어려우며, 설령 그랬다 해도 박지현이 그 충격적인 사실을 민채령에게 털어놓았을지는 미지수. 무엇보다 고문과 심문 끝에 박지현이 그 진실을 털어놓았다 한들, 민채령이 그런 말을 믿을 리가 없다.
27년을 평범하게 살아오던 사람이 대뜸, 어느 날 처음 보는 범죄조직 간부한테서 ‘이 세상은 소설이고 넌 캐릭터며 모든 것이 가짜다.’ 따위의 말을 듣는다 한들 어찌 믿겠는가. 그저 정신나간 여자의 헛소리로 치부할 게 뻔하지.
“안수호. 네 입으로 그랬잖아. 나랑 돈독한 협력 관계가 되자며. 그런데 그런 ‘중요한 사실’을 숨기다니 좀 실망인데? 너는 멋대로 내 배경이나 약점을 캐내려 했으면서, 정작 자기 정보를 공개하는 데엔 지나치게 인색하더라?”
민채령은 계속해서 그럴 듯한 말로 블러핑을 더해갔다. 그러나 안수호는 거의 한 귀로 흘리면서 여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박지현이 내 기억을 얼마나 읽었는지는 몰라. 최악의 경우는 내 기억을 통해 원작 내용을 전부 꿰찼다 생각해도 무방하겠지.’
‘그렇지만 그건 원작 내용일 뿐이야. 원작에 등장하지 않던 안수호와 관련된 내용은 아니지. 그렇지만 민채령은 꼭 나한테, 안수호라는 개인한테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
‘물론 확실한 건 아니야. 박지현이 정말 살아났는지, 살아났다면 민채령에게 뭘 말했는지 난 전혀 몰라. 그렇지만, 지금 민채령의 질문은 묘하게 핀트가 없어. 눈이 안 보이는 장님처럼, 핵심 주변만 더듬으면서 내 답을 유도하고 있어.’
‘그렇다는 건 즉…….’
안수호의 눈이 번뜩였다.
‘이건 아마도 허세야.’
민채령이 만약 확실한 정보를 잡아냈다면 그 사실을 면전에 대고 압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질문이 두루뭉술하다는 건 즉, 그녀가 알아낸 내용도 두루뭉술하다는 것일 터. 혹은 알아낸 게 아무것도 없거나.
어느 쪽이든 민채령의 압박은 허세에 불과하다는 소리였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태.
‘만약 허세가 맞다면 부인하면 그만이야. 내가 무슨 말이냐고 잡아떼면 민채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렇지만 의심은 하겠지. 내가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그렇다면 차라리.
“……말씀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박지현에게서 제 비밀을 들으신 모양이군요.”
마냥 부인하는 대신 그녀가 원하는 ‘진실’을 던져주면 어떨까.
“제가 본래 여명단 소속이었다는 비밀을 말입니다.”
단, 진실과 전혀 상관없는 거짓정보를.
“…….”
안수호가 그렇게 밝힌 순간 민채령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바로 표정을 가다듬으며 되물었다.
“……안수호.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야?”
‘빙고.’
안수호가 속으로 쾌재를 불었다. 안수호가 전직 여명단이라는 쥐뿔도 아닌 미끼를 민채령은 보기 좋게 물어버렸다.
허나 민채령이 멍청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보기에는 꽤나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배신자 지예원의 정보를 가장 먼저 물고 온 것이나 박지현과의 수상한 관계, 거기에 묘하게 음지의 사정에 밝은 정보망까지.
그 정황들은 안수호가 사실 여명단이었다는 거짓 진실에 나름 그럴듯하게 들어맞았다. 그렇기에 민채령은 자신의 압박에 안수호가 숨기고 있던 진실을 실토해냈다고 지레짐작했다.
그가 속으로 그녀를 비웃고 있는 것조차 모른 채.
“제가 제 스스로 약점을 밝힐 리가 없잖습니까. 여명단은 국가지정 반정부단체라고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전 곧바로 깜방행입니다.”
“글쎄. 너는 내가 자기 부하를 경찰에 신고할 거라 생각하니?”
“득실을 따지다 필요하다 판단하면 그러셨겠죠.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고 기다린 겁니다. 제 능력을 충분히 보여드릴 때까지. 팀장님이 절 팽하는 대신 품는 편이 이득이라 판단하실 때까지 말이죠.”
“그러니까 언젠가는 말하려고 했다? 근데 내가 먼저 알아버린 거네?”
“그 부분은 예상 외였습니다. 과거 경력은 정말 깨끗하게 지웠다고 자부했는데, 설마 박지현한테서 정보가 샐 줄은…….”
안수호가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 반응에 민채령은 늘 짓던 여유로운 미소로 화답했다. 안수호가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붙잡는다.
“그런데 박지현은 어떻게 살려내신 겁니까? 분명 죽었다고 확신했는데…….”
“다 방법이 있지.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아니야. 다 죽어가던 걸 억지로 살린 거라 며칠도 못 버텼거든.”
이번에는 민채령이 거짓을 말했다. 안수호는 그 말을 걸러 들으면서도 며칠 뒤에 죽었다는 사실만은 진실일 거라 판단했다.
실상 박지현이 민채령의 손에서 도망쳤고, 안수호와 접선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여튼. 속인 건 죄송하게 됐습니다.”
“됐어. 딱히 탓하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숨기는 게 당연하지. 네 말마따나 네 약점이니까."
약점. 그 말에 강세를 두며 싱긋 웃는 민채령이 안수호는 가소롭다 못해 귀엽기까지 했다.
그 뱃속이 시꺼먼 민채령을 귀엽다고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안수호가 감회가 새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민채령. 귀여워? 귀여운 거. 좋아해요?
실비의 순진무구한 물음에 안수호가 속으로 답했다.
딱히 싫어하진 않는다고.
***
안수호에게서 가짜 진실을 들어낸 민채령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안수호는 그런 민채령을 향해 한껏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아무리 민채령이라도 뒤통수에 눈이 달린 건 아닌지 그녀는 그의 비웃음을 보지 못한 채 구치소를 나섰다.
접견 시간이 22시부터였던지라 끝났을 땐 이미 취침 시간을 넘긴 뒤였다. 딱딱한 침대에 누운 안수호는 좀처럼 오지 않는 잠에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그때.
주인, 님?
안수호의 오른손에서 자그마한 촉각이 솟아났다.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에 그가 속으로 답했다.
‘왜?’
저, 배고파요. 마력. 먹고 싶어.
실비가 촉각으로 탈리스만을 톡톡 건드렸다.
그가 걸치고 있던 아티펙트 중 압수된 건 샛별의 숨소리밖에 없었다. 탈리스만과 서리정령의 증표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안수호에게 귀속된 탓에 타인이 강제로 벗겨낼 수 없었다.
이거. 파란 보석. 탈리, 스만? 써주면 안 돼요?
태초의 은, 실비는 마음만 먹으면 자기 멋대로 탈리스만을 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낮의 일로 인해 둘 사이에는 확실한 상하관계가 형성되었다. 호되게 당한 실비는 더 이상 혼자 멋대로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
‘배고프다고?’
안수호가 슬쩍 철창 바깥을 살폈다. 경비를 서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 그마저도 의자에 앉은 채 핸드폰 삼매경이었다.
‘뭐 괜찮겠지.’
안수호가 조용히 탈리스만을 발동했다. 은은한 푸른빛이 퍼지기 시작하자 실비가 강아지처럼 그의 손가락을 앙 물었다.
맛있어. 맛있어요.
식욕과 관련된 순수한 기쁨. 쾌감. 그리고 안수호에 대한 감사의 마음. 실비가 느끼는 미약하지만 다양한 감정이 안수호의 머릿속으로 직접 흘러들어갔다. 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낀다는 건 여전히 신기한 감각이었지만, 썩 나쁘진 않았다.
‘그나저나 나도 참 템빨이 심하네.’
탈리스만. 샛별의 숨소리. 서리정령의 증표. 게다가 태초의 은까지.
기실 안수호의 신체능력 자체는 천지던전에서의 근골정렬 이후 크게 성장하지 않았다. 얼마 전 오버랭크 던전 공략까지 훌륭하게 완수해낸 그였지만, 그 활약의 배경에는 템빨과 스킬빨의 지분이 대부분이었다.
‘빙의물 주인공들이 으레 템빨 스킬빨 기연빨이라곤 해도 난 정도가 너무 심한 것 같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자체 스펙도 얼른 키워놔야 하는데…….’
마음은 굴뚝같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안수호라는 캐릭터의 신체능력은 쾌락천마가 악의적으로 조작한 결과물. 온갖 괴물이 판을 치는 초인들의 시대 세상에서 평균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둔재였으니.
‘진짜 아티펙트들이 없었으면 진즉에 죽었겠지.’
그가 한 손으로 목에 걸어둔 서리정령의 증표를 들어보였다. 푸른 구슬이 달린 목걸이는 가만히 들고만 있어도 차가운 한기가 조금씩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때.
응? 뭐라고. 했어?
맛있게 마력을 먹고 있던 실비가 돌연 질문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니야. 주인님 말고. 목걸이 쪽. 계속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 말고. 주인님도 말고. 다른? 누구랑?
‘뭐?’
안수호가 흠칫 놀라 몸을 일으키려다 말았다. 경비의 눈치를 살피며 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목걸이라면 서리정령의 증표를 말하는 거야? 이 목걸이가 말하고 있다고?’
네. 말하고 있어요. 계속 이상한 이야기? 응? 아니야. 나는 정령이 아니라 태초의 은. 지금 이름은 실비. 아니? 잘 모르겠어. 그럼 너는 정령?이야?
실비의 목소리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마치 거리가 멀어진 것처럼. 안수호는 아무리 집중해도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뭐야, 갑자기 왜 소리가 작아지는’
주인님. 카멜리아가 전해달래요.
‘카멜리아? 그게 누군데?’
목걸이 이름. 카멜리아래요. 카멜리아가 주인님. 엄청 밉대요. 자기를. 능…멸? 착취? 잘 모르겠지만. 주인님을 엄청. 싫어하는 것 같아요.
안수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갑작스레 그런 말을 들어도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대뜸 아티펙트가 능멸이니 착취니 하며 자길 싫어한다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무슨 말인지 좀 더 확실하게 물어봐줄 수 있어?’
아니요. 카멜리아. 이제 잔대요. 목소리가 없어졌어요.
안수호가 서리정령의 증표를 들어보였다. 그러나 실비의 말마따나 목걸이는 묵묵부답이었다. 애초에 안수호는 그것의 목소리를 처음부터 듣지 못했지만.
‘……그러고 보니 원래 내일 하늘이랑 같이 그 정령한테 가기로 했는데.’
천사 아라엘이 말해주었던 또 하나의 기연. 게이트에서 흘러나와 이 세상에 정착한, 인간으로 변신해 숨어 지내는 다른 세상에서 온 정령.
강하늘과 서울 관광하는 차에 겸사겸사 찾아가려 했었다. 마침 서리정령도 같은 정령이니 그와 관련해서도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하늘이는 내일 돌아갈 테니까. 구치소에서 풀려나면 나 혼자 찾아가봐야겠네.’
카멜리아. 그 이름을 되뇌며 안수호가 다시 바른 자세로 누웠다. 어느새 꺼진 탈리스만에서 실비가 촉각을 톡 떼며 다시 그의 손등으로 스르륵 빨려들어갔다.
‘정령이라…….’
묘하게 이쪽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초인들의 시대는 일단 헌터물 현대판타지였고, 정령이라함은 보통 중세판타지 내지는 정통판타지라 불리는 장르에 등장하는 존재였으니.
‘만나면 어떨지 조금 기대되긴 하네.’
아라엘은 그 정령을 기연이라 말했다. 즉 어떤 형태로든 안수호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자명한 사실.
호기심과 기대감을 뒤로한 채 안수호가 눈을 감았다. 며칠 뒤에 있을 정령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그리고 며칠 후.
“이봐 형씨. 아까부터 우리 종업원한테 너무 치근덕대는 거 아냐? 확 성희롱으로 신고해버린다?”
종로구 인사동 뒷골목의 어느 허름한 카페.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카페 점장의 날카로운 말에 안수호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려대고 있었다.
‘시발,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