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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61화 (162/266)

〈 161화 〉 160. 빽

* * *

서울 어딘가에 위치한 한 호텔 객실.

지예원과 강하늘은 킹사이즈 침대 이쪽 저쪽 끝에 걸터앉은 채 어색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날. 안수호는 특임대에게 체포당하면서 두 사람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만 듣고 ‘그래. 우린 먼저 집으로 갈게.’하고 편히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안수호는 두 사람의 연인이었다. 아무리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속초로 돌아가는 대신 서울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로 했다. 그 판단에는 두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는데, 하나는 민채령이 개입했으니 금방 풀려날 수 있을 거란 지예원의 추측이요, 다른 하나는 안수호와 강하늘이 이미 해당 호텔 객실을 예약해둔 뒤였다는 사실이었다.

즉, 두 사람이 현재 있는 호텔 객실은 본래 그날 밤 안수호와 강하늘이 묵을 예정인 방이란 소리.

이에 지예원이 객실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척 봐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커다랗게 난 창 너머로 펼쳐진 몽환적인 야경.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하나만 놓여있는 킹사이즈 침대.

이내 그녀의 얼굴에 장난스런 웃음이 떠오른다.

“……아주 오늘 떡칠려고 작정을 했었구나.”

지예원의 너스레에 강하늘은 부끄럽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연인끼리 침대 하나 있는 호텔방을 예약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만, 그 사실을 면전에서 지적당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이제야 내가 끼어들었을 때 왜 그리 싫어했는지 알겠네. 싫어할만 했다. 미안했어. 하늘아.”

“너무 그렇게 놀리지 마요 언니…….”

“놀리는 게 아니라 사과하는 건데?”

“놀리는 거 맞잖……어어어 가, 가방은 갑자기 왜 뒤져요?!”

강하늘의 핸드백을 뒤적이던 지예원이 이내 새까만 담뱃갑 같은 상자를 꺼냈다. 담뱃갑과 다른 점이라면 상자가 옆으로 얇다는 점과 겉면에 고급스런 금색으로 ‘001’이라는 타이포그래피가 인쇄되어 있다는 점.

지예원이 그럼 그렇지 하는 눈으로 콘돔 박스를 들어보였다. 그녀가 피식 하고 웃는다.

“피임 대책은 확실해서 좋네. 근데……. 이건 좀 너무 얇지 않나? 0.01미리? 손톱으로 살짝만 긁어도 찢어질 것 같은데.”

“어, 언니하곤 상관없잖아요!”

강하늘이 지예원의 손에서 홱 콘돔 박스를 낚아챘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귀 끝까지 빨개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킥킥 웃어대는 지예원의 모습에 강하늘이 그녀를 나무란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언니는 걱정도 안 돼요? 오빠가 경찰에 잡혀갔는데?”

“걱정이야 되지. 그렇지만 괜찮을 거야.”

지예원이 침대에 풀썩 누우며 말했다. 일견 무신경해보이기까지 한 대답. 그러나 믿는 구석이 있기에 가능한 대답이었다.

“안수호 일은 민채령이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수상한 뒷공작 같은 건 그 여자 전문 분야거든.”

지예원이 핸드폰을 켰다. 그 화면에는 두 시간 전에 도착한, 지금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는 민채령의 문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

한편 그 시각.

안수호는 경찰서 지하에 마련된 초인용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구치소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깊이만 해도 지하 20층 깊이에 철창 바깥에는 무장 경비와 감시카메라와 연동된 센트리건이 설치되어 있었다. 구치소 내벽 또한 전면이 A급 충격 흡수 패널로 도배되어 있었으며 그걸로도 모자라 안수호의 손목에는 투박하게 생긴 특수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 삼엄한 감시와 구속은 경찰측이 안수호를 얼마나 위험한 인물로 판단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지표였다. 그 증거로 무장 경비들의 얼굴 표정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정작 갇힌 당사자인 안수호는 나름대로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

안수호의 취조를 맡은 형사, 김강민 경위는 그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소 온갖 범죄자들을 상대해온 그는 범죄자가 여유를 부리는 이유가 대개 세 가지로 나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신 나간 미친놈이거나, 자포자기하고 해탈했거나, 혹은 믿는 구석이 있거나.

허나 안수호는 정신이 나간 것 같지도, 그렇다고 자포자기한 것 같지도 않았다. 고로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일 터.

김강민 경위가 짜증 섞인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안수호 씨. 당신 진술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틀린 게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알겠습니다.”

“우선, 오늘 낮에 일어났던 폭력 사태의 배후에 관해 당신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싸움에 휘말리게 된 건 그저 함께 놀이공원에 갔던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고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싸움에 휘말려 ‘정당방위’를 하던 중, 의문의 은색 액체형 기생괴수가 당신을 덮쳤습니다. 특임대와의 전투나 도주 등 일련의 행위는 전부 그 기생괴수의 짓이며 조종당하던 당신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조종이 풀린 걸 확인하고 당신을 수색하러 나온 특임대 대원들에게 당신은 투항했습니다……. 여기까지 뭐 틀린 건 없습니까?”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진술에 거짓 또한 없겠지요?”

“물론이죠. 없습니다.”

망설임 하나 없는 대답에 김강민 경위는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 기생괴수의 출처에 대해서는 짐작가는 바가 없습니까?”

“예. 전혀.”

“정말로?”

“정말로요.”

안수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지금 시점에 경찰 측에서 태초의 은에 대해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해당 거래에 대해 아는 건 중국 위원 측과 겨울동맹, 그리고 여명단뿐. 허나 경찰은 그 세 진영 중 어느 진영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샤오메이만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지만, 그녀가 미쳤다고 자기가 태초의 은을 중국 정부로부터 빼돌렸다고 순순히 밝히겠는가.

고로 현재 시점에서 경찰은 태초의 은을 안수호의 말대로 특이한 기생형 괴수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것이 안수호의 노림수였다.

‘태초의 은이 아티펙트가 아니라 기생괴수라면, 즉 난 그 괴수에게 기생당한 피해자란 소리지. 그런 프레임이 씌워진 이상 나한테 죗값을 물 수는 없을 거야.’

기생괴수에게 조종당해 어쩔 수 없이 특임대와 싸웠다. 결코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나도 피해자다.

그러한 안수호의 주장은 그 주장만 놓고 보면 전부 진실이었다. 고로 말이 되는 이야기였고 경찰로서도 납득이 되는 주장이었다.

허나 김강민 경위는 그 그럴듯한 주장 속에서 무언가 원인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그는 안수호가 자신들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다 직감했다. 형사로서의 감이었다.

“흐음…….”

그렇기에 몇 번이고 안수호의 진술을 검토해보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이렇다 할 구멍이나 허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저어, 형사님. 전 언제쯤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가요? 제 이야기를 들으셨으면 제가 피해자일 뿐이라는 건 아실 거 아닙니까.”

“……설령 당신의 주장이 전부 사실이더라도 당신 오른팔에 여전히 그 괴수가 붙어있는 이상 당신을 풀어줄 순 없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그랬잖습니까. 서로 원만하게 잘 합의했다니까?”

안수호가 억울하다는 듯 오른손을 들어보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손등 절반 정도를 덮는 은색 얼룩이 번져 있었다. 얼룩 끄트머리는 중지에 끼고 있는 탈리스만까지 뻗어 있었다.

“……괴수와 합의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죠.”

김강민은 안수호의 주장을 허튼 소리로 치부했다. 그가 보기에 안수호는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설령 그가 진짜 억울한 피해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안수호 씨. 비록 조종당한 것이라 해도 당신은 대한민국 최정예 대테러부대와 싸워 막심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런 당신을 아무런 보증도 없이 풀어줄 순 없습니다.”

“그러니까 괴수랑 잘 합의했다니까요. 얘가 이제 멋대로 날뛸 일은 없을 겁니다.”

“저희가 원하는 건 애매한 합의 따위가 아니라 그 괴수가 다시 폭주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증입니다. 그에 관해서 몇 가지 논의되는 게 있습니다만, 가령 그중에서는 괴수의 분리가 불가능할 경우 안수호 씨의 오른손을 절단해서 소각하는 방안도…….”

­스파앗!

그때 아무런 전조도 없이 안수호의 손등에서 날카로운 촉수가 솟아났다. 철창 사이를 휘리릭 빠져나간 촉수가 5미터 정도 떨어진 김강민 경위의 미간으로 날아든다.

“멈춰.”

­우뚝.

그러나 안수호의 말에 그 촉수는 김강민 경위의 미간 5cm 앞에서 멈췄다. 한 박자 늦게 경비들이 당황하며 안수호에게 총구를 겨눈다.

“움직이지 마!”

“지금 뭐하는 짓이냐!”

경비들이 윽박질렀으나 안수호의 표정은 태연했다. 그가 새파랗게 질린 채 굳어있는 김강민 경위에게 물었다.

“형사님. 괜찮으십니까?”

“어, 어?”

“죄송합니다. 방금 건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형사님께서 잘라낸다느니 소각한다느니 말씀하셔서 이 괴수 놈이 멋대로 뛰쳐나간 것 같네요.”

안수호가 눈짓하자 곧게 뻗었던 촉수가 휘리릭 갈무리되었다. 직후 그의 뇌리에 불만 섞인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거짓말. 제가 멋대로 한 거 아니에요. 당신이 공격하랬어요. 공격해서. 직전에 멈추랬어요. 근데 왜 나를. 탓해요?

‘진짜 탓하는 게 아니라 연출이야, 연출.’

­연, 출?

의아해하는 태초의 은을 뒤로하고 안수호가 김강민 경위의 안색을 살폈다. 촉수는 진즉에 갈무리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만약 이 남자가 조금만 늦게 멈췄다면…….’

그랬으면 자신은 머리가 꿰뚫려 죽었을 거라고. 사실 그럴 일은 결코 없었을 테지만, 김강민 경위가 보기에 그는 지금 구사일생으로 죽지 않은 것이었다. 안수호가 제 때 태초의 은을 멈춰세운 덕분에.

“그래도 이걸로 제가 이놈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건 확실하게 아셨을 겁니다. 그렇죠?”

“당신, 설마 일부러 나를…….”

“그럴 리가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정말 사고였다니까요.”

안수호가 곤란한 얼굴로 그리 주장했으나 김강민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조금 전, 바로 눈앞까지 닥쳐온 자신의 죽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득 그가 자기 손을 내려다보자 꽉 쥔 주먹 사이로 식은땀이 진하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그때.

­띠리리리리리리.

김강민 경위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자 현재 그들이 있는 경찰서의 경찰서장이었다.

“예. 서장님.”

긴장한 기색으로 전화를 받는 김강민 경위. 곧 그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피어오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접견……신청이라고요? 아니 아직 조사도 끝나지 않은 용의자를 누구 멋대로 본다 만다 한답니까? 심지어 경비 병력도 다 물리고 일대일로 만나겠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김강민 경위는 제 나름대로 항변했으나 결국 서장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결정에는 서장의 입에서 나온 ‘윗선의 개입’이라는 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윽고 그가 전화를 끊자 옆에 서있던 경비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서장님 지시로 22시부터 일대일 접견이랍니다. 저희는 그동안 지하 1층에서 대기하라는군요.”

그 지시가 이해가 안 되는 건 경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두 사람 다 김강민 경위만큼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안수호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던 그는 방금 일로 인해 그에 대해 더욱 깊은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상사의 지시에는 따라야하는 법. 현 시점에서 김강민 경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안수호를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런 김강민 경위를 향해 안수호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고.

그로부터 정확히 10분 후.

“안수호 이 미친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악!!!!!!!!!”

민채령의 노성이 온 지하에 울려 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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