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159. 왜 요즘 들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까
* * *
한편.
안수호가 태초의 은을 굴복시킨 그 시각, 특임대는 그가 도망친 북한산 자락을 중심으로 수색대를 편성하고 있었다.
현장에서야 갑작스레 연막을 뿌리고 도망친 탓에 놓치긴 했지만 현대에는 CCTV니 인공위성이니 온 사방에 공권력의 눈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활용하면 안수호의 행선지를 쫓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가 도망친 곳이 하필이면 나무가 우거진 산 속이라는 점일까.
투타타타타타타.
시끄럽게 돌아가는 로터 소리 사이로 특임대 소대장의 한숨이 섞여들었다. 그가 내려다본 북한산의 전경은 크고, 넓고, 그리고 온천지가 녹색 수풀로 가득했다. 저래서야 인공위성으로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있을 턱이 없다.
결국 답은 인력 수색밖에 없는데 문제는 수색 영역이 넓어도 너무 넓다는 점이었다. 말이 북한산이지 목표가 작정하고 북쪽 산맥을 따라 도망치면 수색 영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아마 경기 북부 전체, 혹은 과거 휴전선 너머 지역까지 수색 영역이 확장되겠지.
“……이런 씨발. 이건 텄구만 텄어.”
소대장은 올해로 특임대 짬밥만 11년이었다. 덕분에 그는 어지간한 임무는 척 보기만 해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 뻔히 예상이 되었는데, 그가 생각하길 이번 수색의 결과는 썩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위치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아.’
이미 각 지역의 경찰과 군부대에 협조를 구해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다곤 하지만, 그 정도로 안심하기엔 목표가 도망칠 구석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산맥 북서쪽과 북쪽으로는 체계화된 검문과 감시가 힘든 도서지역이 쭈욱 이어졌으며, 동쪽으로는 공권력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의정부 슬럼 일대가 펼쳐져 있었다. 어느 쪽이든 수색에 난항을 겪을 게 뻔히 예상되는 지역들.
“목표 신원 파악 됐다고 했지? 핸드폰 위치 추적 결과는?”
소대장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부하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산 남동쪽 중간에 있다고 신호가 오긴 합니다만, 놈도 생각이 있다면 휴대폰은 진즉에 버렸을 겁니다. 요즘 세상에 GPS로 위치 추적이 되는 걸 모를 리도 없으니.”
“싸울 때 보니까 짐승새끼처럼 날뛰던데. 놈한테 그만한 지능이 없기를 바라자고.”
본인이 말하고도 웃긴지 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부하도 따라 웃었다. 소대장의 말대로만 되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두 사람 다 자기들 일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랬는데.
제브라 1으로부터 각 제브라들에게 전달. 현시간부로 수색 중단하고 집결 위치로 귀환할 것. 반복한다. 현시간부로 수색 중단하고 집결 위치로 귀환할 것.
“엉?”
그때 들려온 무전에 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무어라 물어보려던 찰나 다음 무전이 날아든다.
제브라 1으로부터 각 제브라들에게. 목표가 투항했다. 반복한다. 목표가 투항했다.
“투항……했다고?”
“예? 진짭니까?”
소대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의 부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다. 놀라서, 황당해서, 혹은 어이가 없어서. 두 사람은 서로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그렇게 5초 정도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로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푸른 하늘 위, 땀내나는 남자 둘이서 그렇게 진득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
산자락을 따라 내려간 안수호는 수색대와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투항했다. 자신이 그 은색 괴물이며 저항할 의사가 없다는 걸 어필하며. 최대한 온건하고 신속하게.
‘이게 최선이야.’
도망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엔?
전투에 돌입했을 때 안수호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안수호임을 알아낼 수 있는 증거는 차고 넘쳤다. 당장 류태현이나 다른 학생들의 증언만 들어봐도 특임대와 싸운 용의자가 그린하우스 경비대 소속 안수호라는 걸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였으니.
설령 그들 전원인 함구한다 해도 현장에 남은 검은 연막이 바로 증거였다. 모든 초인의 데이터를 국가에서 관리하는 세상, 대략적인 인상착의에 초능력 종류만 알면 그게 누군지 가려내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거 너무 그렇게들 살벌하게 노려보지 마세요. 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도 그 괴물한테 억지로 조종당한 거라고. 그래서 이렇게 순순히 투항했고, 이거이거 수갑도 제가 자진해서 찬 건데…….”
안수호는 현재 네버랜드 주차장에서 특임대원들에게 둘러싸인 채였다. 손목에는 초인용으로 제작된 특수 수갑을 찬 채. 살벌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호송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
안수호의 너스레에도 특임대원들은 한 마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프로답다면 프로다운 태도요,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당연한 태도였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안수호와, 정확히는 그를 잠식한 태초의 은과 목숨을 걸고 싸운 사이였으니.
특임대 입장에서 안수호는 언제 다시 날뛸지 모를 폭탄 같은 존재였다. 막말로 곧바로 총알부터 박아넣지 않은 것만 해도 충분히 신사적인 태도인 것이었다.
‘그래도 다짜고짜 죽이려 들지 않은 걸 보면, 적어도 나를 대화가 통하는 상대로는 생각해준다는 거네. 그나마 다행이야. 그럼…….’
안수호가 시야 구석에 떠오른 타이머를 바라봤다. 연심의 벚꽃 효과의 지속시간을 나타내는 타이머는 어느덧 30분 이하로 줄어든 상태였다.
‘더 이상 싸울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강하늘에게 능력치를 반환했다. 시야 구석의 타이머가 사라짐과 함께 갑갑한 위화감이 그의 전신을 짓눌렀다. 갑작스런 신체능력의 저하에 감각이 교란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괜찮을까.’
여명단은 도망쳤으니 당장 위협이 될만한 요소는 없었다. 지예원의 부상이 걱정되긴 했지만 주변에 구급대원들이 있었으니 곧바로 적절한 조치를 받았으리라.
그래도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안수호의 얼굴에 근심이 떠올랐다.
띠리리리리리리!!
그때 안수호의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긴장된 상태에서 흠칫 놀란 특임대원들이 여기저기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안수호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전화예요, 전화! 그냥 전화라고! 여기 바지 주머니에! 이거 볼록 튀어나온 거 보이죠?”
직접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괜히 더 그들을 자극할까봐, 안수호가 다리를 내민 채 손가락으로만 그곳을 가리켰다. 그제야 격양되었던 특임대원들이 하나 둘 방아쇠에 건 손가락을 내렸다.
“그, 혹시 받아도 될까요? 제 일행이 걱정해서 연락한 것 같은데…….”
그 질문에 특임대원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집중됐다. 현재 안수호를 구류하고 있는 C분대의 분대장, 박재현.
“…….”
잠시 고민하던 그가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레 안수호에게 다가간 박재현이 그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강하늘’이라는 이름 석 자가 찍혀 있었다.
박재현이 대신 핸드폰을 들어주고, 안수호가 스피커폰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빠?! 괜찮아요?! 괜찮은 거죠!? 지금 어디세요?!
“진정해. 나는 괜찮아. 좀 전에 특임대랑 만나서 바로 투항했어.”
투, 투항?! 뭘 믿고 투항한 거예요! 그 사람들이 오빠한테 해코지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투항해야지 계속 도망쳐? 그랬다간 범죄자 돼서 지명수배당할 게 뻔한데?”
그, 그렇지만 위험하잖아요. 능력도 반환하셨고……. 만약 그 사람들이 다짜고짜 오빠를 공격했으면 어떡, 흐끅! 어떡하려고 그런 거예요…….
걱정스런 목소리 사이로 자그마한 울먹임이 하나 둘 섞이기 시작했다. 안수호가 안심하라는 듯 자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투항한 건 아니야. 게다가 결과적으로 이렇게 잘 살아 있잖아. 그럼 된 거지. 안 그래?”
안 그래? 가 아니거든요! 제가, 제가 오빠 없어지고나서 얼마나 걱정, 걱정했는데에……. 흐윽! 태현이도 경찰한테 끌려가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몰라서…! 흐윽! 흐으에에엥…….
결국 시원하게 울어제끼기 시작한 강하늘. 그런 그녀의 울먹임 너머에서 지예원의 다독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수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더니 지예원이 전화를 바꿨다.
안수호?
“응. 예원아.”
지금 특임대한테 구속된 상태라 그랬지? 혹시 우리가 도와줘야 할 일 있어?
강하늘과 달리 지예원의 태도는 담담했다. 그러나 안수호는 별로 아쉽지 않았다. 겉으론 무정해보여도 지예원 또한 강하늘만큼이나 그를 걱정하고 있음을, 안수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와줄 일?”
슬쩍 반문하며 안수호가 박재현의 눈치를 살폈다. 박재현이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는 제스처.
“……괜찮아. 이쪽에서 알아서 할게. 두 사람은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 있어.”
정말 괜찮겠어?
“응. 괜찮다니까 그러네. 내가 뭐 고의로 날뛴 것도 아니고. 나도 그 괴물한테 멋대로 조종당한 피해자라고. 사정만 잘 설명하면 별일 없을 거야. 아. 팀장님한테만 말씀 좀 전해줘. 개인사정 때문에 월요일에 출근 못할 수도 있다고.”
팀장님한테?
반사적으로 반문한 지예원이 이내 그 속뜻을 알아차리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처음보다 좀 더 담담하게 가라앉는다.
알겠어. 팀장님껜 내가 따로 연락드릴게.
“그래. 고마워. 슬슬 끊자. 계속 통화하기엔 눈치가 보여서.”
그래. 조심해. 안수호.
지예원의 염려 뒤로 강하늘의 훌쩍임이 살며시 새어나오고, 이내 박재현이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회수해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은 그가 안수호에게 묻는다.
“팀장님……이라는 건 누굽니까.”
“팀장님이 팀장님이지 누구겠습니까. 제 직장 상사분이에요.
의심스런 태도로 물은 박재현에게 안수호가 대답했다.
“가만히 있어도 어련히 연락이 가겠지만……. 미리 말씀드려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이내 그의 입가에 피식, 하고 자그마한 웃음이 떠올랐다.
***
“하아아아.”
한편 그 시각. 박지현이 갇혀 있던 한성 그룹 소유의 안전가옥.
“그럼 들고 가겠습니다.”
“그래. 꼴도 보기 싫으니까 최대한 멀리 가져가서 버려.”
김호철의 시체를 군청색 가방에 담은 부하를 떠나보내며 민채령이 피곤한 얼굴로 답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짜증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 시체박이놈만 아니었어도 박지현을 놓치진 않았을 텐데…….’
어제 밤.
그러니까 특책과 회식이 끝난 금요일 밤 박지현의 탈출을 보고받은 민채령은 밤을 새가며 박지현 수색에 몰두했다. 기용할 수 있는 부하와 인맥을 전부 동원해서 최대한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박지현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예정된 결과지. 예정된 결과야…….’
박지현은 흡혈귀화라는 초능력을 가진 초인이었다. 이는 여러 가지 능력이 복합적으로 발현된 초능력이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을 꼽아보자면 흡혈을 통한 대상의 제압, 매료 및 안개 형태로의 변신, 자유로운 비행 등이 있었다.
하나같이 도망치거나 숨을 때 편리한 능력들.
그런 박지현이 작정하고 도망쳐 몸을 숨겼는데 찾아낼 수 있을 턱이 없다. 그나마 확보한 CCTV 영상도 그녀가 후미진 골목길로 들어간 이후 완전히 끊겼다.
민채령은 새삼 구멍투성이인 대한민국의 치안 체계가 원망스러웠다. 그녀가 치안을 어그러뜨리는 쪽일 때는 그토록 편리할 수가 없는 구멍들이었으나, 이럴 때는 그 부실함이 야속하고 또 야속했다.
“하아아아아.”
민채령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품을 뒤졌다.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며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아.”
그러나 이미 어젯밤부터 줄담배를 피워대던 그녀의 담뱃갑은 이미 텅텅 빈 지 오래였다. 민채령은 그제야 30분 전에 피웠던 게 돛대였다는 걸 생각해냈다.
즉 그녀는 지금 새 담배를 사러나갈 시간도 없이 수색에 열중하고 있으며, 담배가 떨어졌다는 것조차 무심코 잊어버릴 정도로 피폐한 상태였다.
“망할…….”
민채령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엇이 원망스러운지는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고르자면, 요즘 들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이 더럽게 꼬이기만 하는 그녀의 인생 그 자체가 원망스럽다 할 수 있겠지.
민채령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꿀꿀한 그녀의 기분을 비웃듯 하늘은 새파랗기 그지없었다. 그야말로 어디 놀러가기 딱 좋은 날씨. 한가롭게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그녀의 의식도 정처없이 흘러갔다.
놀러가기 좋은 날씨였다. 놀러가기 좋은 날. 그러고 보니 안수호, 걔는 지금쯤 강하늘과 함께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놀고 있겠구나. 팔자 좋게. 아무런 근심도 없이.
“하아아아.”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한숨과 함께 민채령이 터덜터덜 현관으로 향했다.
어차피 수색에 진전 하나 없는데 자기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봐야 뭐하는가. 나가서 담배라도 사오고, 겸사겸사 바람이나 쐴 겸 산책이라도 하면 이 꿀꿀한 기분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우우우웅.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긴 순간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두 개 있는 핸드폰 중 대외업무용이 아닌 쪽이.
그녀가 '드디어 찾은 건가!' 하며 핸드폰을 꺼내든다. 그러나 화면에 찍힌 이름은 그녀가 기대하던 이름이 아니었다.
“……지예원? 네가 나한테 무슨 일”
민채령이 낙담하며 물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날카로운 촉이 그녀의 뇌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평소 지예원은 결코 그녀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헌데 그런 그녀가 이 타이밍에, 하필이면 박지현이 도망친 이 타이밍에 연락을 했다. 게다가 박지현과 마찬가지로 지예원 또한 본래 여명단 출신.
‘설마?’
민채령의 얼굴에 실낱같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혹시 지예원이 무언가 알아낸 건 아닌가. 혹은 이번 사태와 연관이 있는 거 아닌가. 그녀의 연락이야말로 박지현 수색의 실마리가 될 절호의 기회인 것이 아닌가.
그 설마하는 가능성에 민채령의 가슴이 두근 뛰었다.
그러나.
“……………………뭐?”
그녀의 기대와 달리 지예원이 가져온 소식은 호재가 아닌 악재.
“안수호가 체포됐다고? 그것도 대테러특임대랑 싸우다가? 그건 또 무슨, 무슨 개 같은 상황이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것도 아주 역대급 악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