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157. 연막과 함께 사라지다
* * *
검다.
눈을 떴을 때 사방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검었다. 달조차 비치지 않는 한밤중의 숲속보다도, 자기 직전 감은 눈꺼풀의 뒷면보다도 검도 어두운 검은색.
그 검은 공간에 오직 내 몸만이 어색한 합성 사진처럼 떠올라 있었다. 이래서야 지금 내가 있는 곳이 현실이 아니라고 광고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내 몸이 내 눈에 보일 리가 없으니까.
고로 이곳은 현실이 아니었다. 현실이 아니라면 뭐, 꿈이라든가 무의식이라든가 정신세계라든가 차원의 틈새라든가 그런 거겠지. 소설이나 만화 따위에 흔히 나오지 않는가.
자 그럼. 어디 한 번 생각해보자.
나는 조금 전까지 여명단 놈들과 싸우고 있었다. 고로 놈들이 갑자기 수면제라도 들이부은 게 아닌 이상 일단 꿈속은 아니다. 그렇다고 차원의 틈새 같은 거창한 곳에 끌려올 껀덕지도 없었다.
즉 여긴 내 정신세계, 내지는 무의식이라는 소리겠지.
이렇게 황량하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내 정신세계라니 믿기지가 않았으나 그건 그러려니 했다. 지금 중요한 건, 왜 한창 싸우고 있던 내가 대뜸 이런 곳으로 끌려왔느냐.
그 원인은 대충 예상이 갔다. 아니, 거의 확실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이 암흑뿐인 세상에서 나를 제외하고 색을 가진 게 있다면 그게 바로 원인일 테니까.
고개를 돌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것은 처음부터 내 눈앞에 있었다. 사실 눈앞이라고 할 정도로 가까운지는 모른다. 빛도 명암도 없는 이 세상에는 거리감 또한 존재하지 않았으니.
때문에 나는 저 주먹만한 은색 구체가 정말 내 주먹만한 것인지, 아니면 엄청 멀리 있어서 주먹만하게 보이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저것이 태초의 은이라는 것만은 넌지시 짐작할 수 있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 마지막 기억이 놈에게 전신을 잡아먹히듯 감싸인 것이었으니까.
놈.
나는 태초의 은을 놈이라 불렀다. 놈은 인간만큼 고등하진 않으나 뚜렷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 홀로 떠오른 은색 구체를 바라보자 놈의 생각이, 사고가, 의식이 내 머릿속에 강물처럼 흘러들어왔다.
마치 텔레파시처럼. 나는 입 한 번 열지 않고 놈에게 물었다.
넌 누구냐.
“나는.”
소리 없이 물었으나 소리와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맑은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청아한 목소리.
마치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태초의 은.”
그건 알고 있다.
“태초의 은. 에테르. 현자의 돌. 너희들. 그렇게 불러. 그렇지만 전부. 아니야.”
전부 아닌가. 그렇다면 도대체 뭐냐.
“내 이름. 나도 몰라. 이름. 없어?”
이름을 모른다. 이름이 없다. 그야말로 첫인상 그대로 때묻지 않은 자아였다.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름조차 받지 못한,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한 날 것 그대로의 인격.
그렇기에 물었다. 왜,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어서 날 공격한 거냐고.
“공격. 아니야.”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겠다. 왜 얌전히 앰플 속에 있지 않고 날뛴 것이냐. 왜 탈리스만을 노리고 달려든 것이냐.
“배고팠어.”
배가 고프다. 아무리 자아가 있다 한들 태초의 은이 생물처럼 음식을 섭취할 것 같진 않았다. 그랬다면 전신이 휘감긴 내 몸부터 진즉에 씹어먹혔을 테니까. 아니, 녹여서 소화했으려나? 아무튼.
나는 이어서 물었다. 배가 고팠다니. 그렇다면 넌 탈리스만의 마력을 먹으려고 한 것이냐고.
“맞아.”
그 대답과 함께 은색 구체에서 자그마한 촉수가 삐져나왔다. 아기의 손처럼 앙증맞은 촉수가 살며시 내 오른손을 가리킨다.
“맛있어.”
탈리스만을 가리킨 촉수가 간식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강아지 꼬리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네 마력. 엄청 맛있어. 그리고 엄청 진하고. 엄청 많아. 이런 적 처음. 맛있는 게 잔뜩. 그래서 잔뜩 먹어치웠어.”
탈리스만을 통해 흡수한 마력은 순수한 마력 그 자체. 태초의 은이 마력을 먹어치우는 아티펙트라면 그 이상 가는 진미가 따로 없으리라. 말하자면 태초의 은은 지금 생전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세 살배기 아이 같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한 입이라도 더 먹어치우려고 온 힘을 다하겠지.
“하지만. 맛있는 거 끝났어.”
은색 촉수가 시무룩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아쉬움이 가득 담긴 움직임.
나는 가만히 내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탈리스만에 박힌 보석의 색이 유독 탁해보였다.
과부하로 인한 일시적 기능상실.
어째서인지 나는 탈리스만의 상태를 단번에 간파할 수 있었다. 태초의 은의 생각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일까?
“끝났어. 그렇지만. 더 먹고 싶어. 그래서. 더 먹을 거야.”
“뭐?”
불길한 선언에 나는 육성으로 되물었다. 그러나 태초의 은은 더 이상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감정이 내 머릿속에 뚜렷하게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놈이 뭘 하려고 하는지도.
“……멈춰.”
“싫어.”
그 순간 암흑뿐이던 세상 저편에서부터 천천히 풍경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멈추라고.”
“싫어.”
무너진 건물들. 죄다 뒤집어진 보도블럭. 그 사이사이 엄폐한 채 날 포위하고 있는 군 병력들. 그 모든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내 몸이 빠르게 그들을 스쳐 지나간다.
“멈추라니까!”
“싫어.”
나는 달리고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면을 박차, 포위망을 뚫고, 오직 한 사람을 노리고 달려나가고 있었다.
“당장 멈추라고 시발!”
“너. 시끄러워.”
시야 중앙에 류태현의 모습이 잡힌 순간, 태초의 은이 퉁명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날 돌아봤다. 놈의 표면에서 날카로운 가시들이 날 위협하듯 돋아났다.
“끝날 때까지. 닥치고? 있어?”
“이 금속쪼가리 자식이……!”
다음 순간, 사방에서 튀어나온 촉수가 내 온몸을 결박했다.
***
투콰아아앙!!
은색 거권이 지면에 작렬하고 사방으로 파편이 비산했다. 그 주먹을 직전에 가까스로 피해낸 류태현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서렸다.
‘제대로 맞으면 뼈도 못 추리겠는데.’
조금 전 여명단과 싸우던 모습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태초의 은에 잠식당한 그의 신체능력은 문자 그대로 규격 외였다. 특급 아티펙트인 태초의 은에 에픽급 스킬인 연심의 벚꽃의 강화 효과까지 겹쳐졌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꺄아아악!”
“태현아!”
“이 괴물자식이!”
우왕좌왕하는 학생들 사이로 신재호 대원이 날아들었다. 샛노란 번개를 두른 발차기가 괴물의 등을 노리고 뻗어진다.
그러나.
크륵!
콰앙!
괴물이 등 뒤에서 꺼낸 촉수다발을 있는대로 지면에 박았다. 직후 신재호의 발차기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작렬했다.
파지지지지직!
여전히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발차기. 허나 전과 달리 대부분의 전기에너지가 땅에 박은 촉수를 통해 그대로 지면으로 흘러들어갔다. 일종의 간이 피뢰침이었다.
“성가시게……!”
크륵!
괴물이 비릿하게 웃었다. 괴물은 그저 막무가내로 날뛰고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학습하고 있었다. 안수호의 머릿속을 엿본 지식을, 그리고 계속되는 전투에서 얻는 경험을 통해.
휘리리릭! 터엉! 텅! 터엉!
괴물이 휘두른 촉수 다발이 신재호의 몸을 후려쳤다. 그 또한 가만히 맞아주기만 한 건 아니요, 거의 동시에 발차기로 반격했으나 고작 두 개의 다리로 수십 개의 촉수를 막아낼 순 없었다. 신재호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근접대!!! 얼른 붙어라!!!”
소대장의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괴물이 포위망을 뚫고 민간인 방향으로 간 탓에 특임대는 원거리 공격이 봉인되었다. 그 또한 괴물이, 태초의 은이 학습을 통해 도출해낸 묘수였다.
근접전을 담당하는 대원들이 달려드는 사이, 괴물은 멀찍이 떨어진 류태현에게 다시금 달려들었다. 류태현이 몇 번이고 몸을 피했지만 그때마다 괴물은 오직 류태현만 바라보며 그를 쫓았다.
‘왜 나만 쫓는 거지?’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의 뇌리에 조금 전 안수호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오면 안 돼! 탈리스만에 반응하는 거야! 가까이 오면 너도 휘말리게 돼!’
“……탈리스만을 노리는 건가? 그렇지만 어째서?”
류태현은 탈리스만이나 마력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 태초의 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때문에 류태현은 왜 눈앞의 괴물이 탈리스만을 노리는 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으나, 이용할 수는 있겠다 싶었다.
‘수호 형은 지금 이성을 잃었어. 아니면 저 금속한테 조종당하고 있는 상태겠지. 자력으로 저 상태를 벗어나는 건 무리일 거야. 그러니 특임대가 형을 쓰러뜨려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어.’
미친 듯이 날뛰는 괴물의 상대에 특임대는 한참 애먹고 있었다. 애초에 괴수가 아닌 초인을 상대하기 위한 부대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지만 놈이 내 탈리스만을 노린다면, 그걸 이용해서 특임대를 도울 수 있을 거야. 놈의 경로를 유인한다든가, 이목을 끌어서 기습을 노린다든가…….’
일단 저 괴물을 제압하고 나면 그 안에 잡혀 있던 안수호에 대해선 얼마든지 변명이 가능하다. 아티펙트에게 조종당했다든지, 혹은 정신을 잃었다든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수호가 죗값을 물게 되는 일은 없으리라. 애초에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그러나.
‘좋아. 그럼 일단 저 대원들한테 사정을 설명해서’
퍼어억!!
“크흡!?”
작전을 구상하느라 정신이 팔려 류태현은 아주 단순한 사실 한 가지를 간과했다. 바로 태초의 은을 두른 안수호가 규격 외로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둘 사이의 신체능력 차이는 명백했다. 유인이고 자시고 류태현은 가까스로 괴물의 공격을 피해내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작전을 짠다며 한눈을 팔았으니 회피에 실패하고 따라잡히는 건 당연지사.
“이런…….”
류태현이 얻어맞은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신음했다. 손바닥에 힘을 주자 갈비뼈 몇 대가 움푹 들어갔다. 뼈가 완전히 바스라진 모양.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괴물이 류태현에게 짓쳐들었다. 류태현보다 두 배는 커다란 손아귀가 그의 오른손을 우악스럽게 틀어쥐었다.
“크아아아아악!!”
키이이이이잉!!
새된 비명소리와 함께 탈리스만이 억지로 발동되었다.
사방에서 모여드는 마력에 태초의 은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그 마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러면 그럴수록 작아졌던 몸집도 다시금 불어나, 어느새 괴물은 처음 특임대와 마주쳤을 때처럼 4미터 남짓의 거구로 성장해 있었다.
“이, 자식이……!”
퍼억!!
류태현이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단단하게 굳은 괴물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대를 때리든 마찬가지였다.
퍼억!! 퍼억!! 퍼어억!!
때리면 때릴수록 류태현의 주먹만 아파올 뿐이었다. 괴물은 그런 류태현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마력을 먹어치우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 허망한 결과에 류태현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크르이이이이이익?!
연신 몸집을 불려대던 괴물이 한 차례 경련했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 온몸이 곤두선 괴물이 고개를 돌렸다.
“은솔?”
“……태현이를 놔줘……!!”
그곳에선 나은솔이 한 팔을 뻗은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눈가에는 걱정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눈물이 그렁그렁했으며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연신 떨어댔다.
그러나 그 눈동자에 떠오른 의지만은 결연했다. 그녀가 주먹을 꽉 쥐자 괴물의 몸이 다시 한 번 요란하게 들썩였다.
나은솔의 초능력은 금속조작.
자신이 금속이라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물질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이었다. 어떻게 보면 전기 계열과 마찬가지로 태초의 은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
그러나.
크르르르…….
비록 능력의 종류는 천적이라 해도 마력을 잔뜩 머금은 태초의 은을 조종하기엔 출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나은솔은 필사적으로 괴물을 류태현에게서 떨어뜨리려 했지만, 기껏해야 괴물의 전신에 불쾌한 진동을 가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주르르륵.
괴물의 등 뒤에서 수십 다발의 촉수가 흘러내렸다. 그 순간 류태현이 다급하게 외쳤다.
“은솔아! 도망쳐!”
키익.
그러나 한 발 늦은 경고였다. 허리를 숙이며 반바퀴 회전한 괴물이 그 회전력을 살려 사방으로 촉수를 휘둘렀다.
“으와아앗!!”
“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아아악!!”
사방에서 터지는 비명소리. 중구난방으로 휘둘러진 촉수에는 예외가 없었다. 달려들던 특임대 대원들도, 경찰들도, 나은솔도, 그녀와 함께 있던 다른 학생들까지. 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빨라진 은색 채찍에 모두가 평등하게 나가 떨어졌다.
키익. 킥. 킥. 킥.
그 모습을 보며 괴물이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태초의 은은 마침내 학습에 학습을 거듭한 끝에 감정의 편린마저 깨우친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괄목할만한 일이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류태현이 보기엔 그저 평범한 비웃음에 지나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분노한 그가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터엉!!
조금 전보다 훨씬 강해진 위력에 괴물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격한 감정에 의한 일시적인 능력 상승.
허나 그마저도 유의미한 타격은 주지 못했다. 잠시 밝아졌던 류태현의 표정이 삽시간에 다시 어두워진다.
‘빌어먹을…….’
류태현은 개탄스러웠다. 적이 강해도 너무 강했다. 혹은 자신이 약한 것인가. 이런 무력감은 태어나서 난생 처음이었다. 그간 그보다 강한 자를 아예 만나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존재는 눈앞의 괴물이 처음이었다.
무력감.
좌절감.
패배감.
그러한 감정들이 류태현의 뇌리에 가득 차올랐다. 꽉 말아쥔 주먹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며 그의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지려 했다.
허나 그때.
‘어?’
류태현은 자신에게 얻어맞은 괴물의 고개가 여전히 돌아가 있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인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괴물은 멀쩡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채, 한 방향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허억. 허억. 허억…….”
“어, 언니…….”
그곳에는 강하늘과 지예원이 있었다. 강하늘은 잔해더미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 앞을 지예원이 양손에서 흑요석 칼날을 뽑아낸 채 강하늘을 지키듯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칼날은 둘 다 부러져 있었으며 그녀의 몸 또한 성치 않았다. 온몸에 그려진 수많은 상처들.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는 명백했다.
괴물은 그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매끈한 얼굴에는 눈조차 달려있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 둘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울컥! 울컥!
이내 괴물의 두 어깨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싶더니 몸 전체가 요란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류태현을 놓은 괴물이 괴롭다는 듯 머리를 감싸쥔 채 무릎을 꿇었다.
쩍 벌어진 입에서 스산한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으오오오오오……!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서 들은 류태현은, 그 울음소리 사이에서 사람이 내뱉는 탄식을 엿들었다.
“……수호 형?”
크라아아아!!
류태현의 부름에 괴물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휘둘러진 오른 주먹은 류태현에게 닿기 전 왼팔에 붙들려 정지했다. 자신의 주먹을 자신이 막아선 모양새.
크아아아아아아!!!
거센 포효 속에 또다시 인간의 노성이 섞여들었다. 노성. 그 이름대로 분노에 찬 비명이었다. 쉴 틈 없이 요동치며 사람의 형태를 잃은 괴물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누가 봐도 괴로워하는 모양새.
…………날뛰지. 마! 가만히…! 있어…!
그때 괴물의 벌어진 입에서 지금까지의 울음소리완 전혀 다른 청아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가만히…! 있으라고…! 싫어…! 아직 배고프단 말야…! 왜. 이제 와서…!
“목표가 쓰러졌다! 전원 대형 정비!!”
소대장의 외침에 움직일 수 있는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갖췄다. 그러는 와중에도 괴물은 연신 괴로워하며 녹아내린 끝에 반쯤 슬라임처럼 변해 있었다.
이내 흘러내린 얼굴 사이로 안수호의 눈이 살며시 드러나고.
“……형?”
그가 괴로움에 젖은 눈으로 지예원을, 그리고 강하늘을 바라봤다. 그 찰나의 순간 세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직후.
“사격 준”
투화아아아아아아악!!!!
소대장의 구령이 떨어지기 직전, 안수호를 중심으로 시꺼먼 연막이 피어올랐다.
공격용으로 압축할 때와 달리 문자 그대로 눈속임을 위해 피운 연막. 덕분에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사거리를 넘어 주변 일대를 완전히 가득 채웠다. 그 모습이 꼭 하늘의 먹구름이 지상에 그대로 내려앉은 것 같았다.
……! …………!
……! …………!
자욱한 연막 속에서 특임대 대원들간에 바쁘게 말이 오갔다.
반면 류태현은 그 한복판에 우두커니 선 채 눈앞의 바닥을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
조금 전까지 안수호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물론이고 주변에 흘러내린 태초의 은마저.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