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56화 (157/266)

〈 156화 〉 155. 태초의 은(2)

* * *

­파캉!

새된 파열음과 함께 은색 액체가 지면에 떨어졌다. 그 순간 안수호도 아이기스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꿈틀.

바닥에 떨어진 태초의 은이 한 차례 꿈틀 움직였다. 쏟아진 액체가 퍼질 때와는 명백히 다른 모습으로, 태초의 은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두근, 두근 맥동하기 시작했다.

­꿈트을.

이윽고 액체 가운데에서 자그마한 촉각이 돋아났다.

마치 벌레의 더듬이처럼, 혹은 달팽이의 촉각처럼.

낯선 환경에 놓인 동물이 고개를 갸웃하듯 은색 촉각이 주위를 살폈다.

‘……뭐야 저게.’

안수호의 뺨을 따라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그가 알기로 태초의 은은 결코 저렇게 혼자 움직이는 아티펙트가 아니었다.

아티펙트가 활성화되려면 정신적 연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분명 그런 내용을 읽었었는데.

­꿈틀.

그때. 주위를 살피던 태초의 은의 시선이 한 곳으로 고정됐다. 그것에 ‘시선’이라 부를만한 감각이 있다는 전제의 이야기였으나, 태초의 은은 삐죽 튀어나온 고개를 정확히 안수호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 오른손에 있는 탈리스만에게로.

­키이이이잉.

탈리스만은 지금도 은은한 푸른빛을 발하며 대기 중의 마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태초의 은은 마치 그 영롱한 빛에 매료된 것처럼 촉각을 곤두세운 채 가만히 굳어 있었다.

안수호가 시험 삼아 오른손을 좌우로 저었다. 튀어나온 촉각 또한 그 움직임에 반응하듯 좌우로 천천히 흔들렸다.

‘설마 탈리스만에 반응하는 건가?’

어떻게 그런 일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태초의 은의 촉각이 휘릭 돌아갔다. 안수호가 아닌, 한창 싸우고 있는 류태현이 있는 방향으로.

­콰앙!

전투가 잠시 멈춘 안수호 쪽과 달리, 류태현 쪽은 여전히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방에서 빗발치는 푸른색 탄환과 날카로운 빛을 번뜩이는 나이프의 궤적들. 그 폭풍 같은 공격들 속에서 류태현은 필사적으로 몸을 놀리고 있었다. 오른손에 낀 탈리스만에서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주륵.

그 빛에 시선이 팔린 태초의 은이 천천히 그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안수호의 뇌리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경종을 울렸다.

‘저걸 류태현한테 보내선 안 돼.’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근거 없는 불안감이 그의 정신을 잠식했다. 태초의 은은 더 이상 그가 알고 있던 원작의 아티펙트가 아니었다. 그런 불확정요소를 원작 주인공인, 더군다나 자신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는 류태현에게 보낼 순 없었다.

그렇기에.

­키이이이잉!!

안수호는 있는 힘껏 탈리스만을 발동했다. 주위에 퍼진 마력이 단숨에 그의 오른손으로 빨려들어가고, 그 흐름을 쫓듯 태초의 은의 시선도 다시금 안수호에게로 향했다. 부르르 경련하던 그 은색 몸체에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 수많은 자그마한 촉각이 새로 돋아나고.

­파앗!

직후 먹잇감에 달려드는 짐승처럼 태초의 은이 안수호의 오른손으로 날아들었다.

“우왓?!”

그 전까지와 다른 엄청나게 빠른 움직임. 갑작스런 돌격에 안수호가 당황한 찰나, 길게 뻗어진 촉각 끝이 그의 오른손에 찰싹 달라붙었다. 직후 다른 촉가들이 휘리릭 달라붙더니 이내 태초의 은 전체가 안수호의 오른손에 찰싹 붙었다.

­두근. 두근. 두근.

분명하게 느껴지는 맥박은 안수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태초의 은 그 자체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한 번의 고동이 지나갈 때마다 손바닥 크기였던 은색 몸체가 천천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동시에 엄습하는 격한 통증. 안수호는 태초의 은이 닿은 부위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을 느꼈다.

‘꼭 날카로운 바늘 수백 개가 모공을 찌르는 것 같아!’

달라붙은 은은 떨어뜨리고자 했으나 섣불리 손을 댈 수도 없는 노릇. 고민하던 안수호가 오른손에서 있는 힘껏 검은 연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파바바바박!

“끄아아악!!”

그건 오히려 역효과였다. 연기 때문에 부풀어오른 은색 몸체는 안수호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더욱 넓은 면적을 덮으며 달라붙었다. 고통이 더욱 강해진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 광경을 아이기스는 놀란 눈으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티펙트가 제멋대로 용기를 깨고 나와 사용자를 공격하다니,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는 사이에도 태초의 은은 착실히 체적을 불려나가며 안수호를 압박하고 있었다. 어느새 손목을 넘어 팔꿈치까지 뒤덮은 은색 몸체.

“……수호 형?”

그 이상 현상에 싸우고 있던 류태현조차 시선을 빼앗겼다. 그와 함께 전투 중이던 다른 세 사람도 마찬가지.

“형! 그거 괜찮­”

“오지 마!”

자신에게 다가오려던 류태현을 안수호가 가까스로 제지했다.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오면 안 돼! 탈리스만에 반응하는 거야! 가까이 오면 너까지 휘말리게 돼!”

그 필사적인 태도에 류태현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가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마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설명이라도 바라는 듯이.

“뭐야 저게……? 태초의 은이 저런 물건이었어……?”

그러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건 다른 이들도, 심지어 아티펙트를 가지고 온 샤오메이조차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행동을 멈춘 채 안수호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 기묘한 주목 가운데서 안수호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식은땀을 흘려댔다.

‘그래! 상태창!’

그 순간 안수호의 눈이 번뜩였다. 그가 반신반의의 심정으로 자신의 상태창을 열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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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호’의 상태창 ]

이름 : 안수호

성별 : 남성

신장/체중/나이 : 182.3cm/76.5kg/24세

직업 : 아카데미 경비원

소속 :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보유 초능력 : 검은 연기(D), 마력 흡수(A)

[ 능력치 ]

근력 C+**

민첩 A+**

내구 B*

마력 A*

기교 A*

의지 C*

행운 S*

1. <샛별의 숨소리="">의 착용 효과에 의해 근력과 민첩에 플러스 보정이 붙습니다.

2. <스킬 :="" 연심의="" 벚꽃="">의 효과로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 보유 스킬 ]

1. 아카데미의 경비원(유니크. C)

2. 서리정령의 계약(유니크. E)

[ 장비 목록 ]

1. 마력 흡수의 탈리스만

2. 샛별의 숨소리

3. 서리정령의 증표

4. 태초의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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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직감한 그가 곧바로 태초의 은의 상세 설명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

태초의 은(특급)

­태초의 은. 혹은 현자의 돌, 에테르 등으로도 불리는 이 아티펙트의 정체는 살아있는 금속 생명체입니다. 태초의 은은 마력을 통해 사용자의 정신과 교감해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으며, 전투 상황에서 자율적으로 사용자의 움직임을 보조해줍니다.

­태초의 은은 고유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아티펙트입니다. 따라서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선 긴 시간을 들여 태초의 은에게 사용자의 마력을 각인시키며 정신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단, 이 과정에서 태초의 은이 지나치게 강한 마력에 노출될 경우 사용자의 의지에 상관없이 폭주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경우 사용자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

‘쾌락천마 시발 좆같은 새끼야 이런 내용 원작엔 없었잖아!!’

살아있는 아티펙트니, 고유의 자아니, 마력에 의한 폭주니.

죄다 금시초문인 내용들뿐이었다. 원작에 등장했던 태초의 은은 그저 자유자재로 형태가 바뀌는 만능 무기에 불과했다. 상태창의 설명과 같은 리빙 메탈스러운 면모는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었는데.

‘그 천사년도 시발, 이런 건 미리 경고해줘야 했을 거 아니야!’

뒤늦게 원망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사용자의 의지에 상관없는 폭주. 그 말처럼 태초의 은은 있는 대로 폭주해대고 있었다. 어느새 그것이 뒤덮은 범위는 안수호의 어깨를 넘어 가슴께까지 전진해 있었다.

원작 설정 상, 초인의 마력이 모이는 장소인 심장 부근까지.

­푸욱!

날카롭게 솟은 촉각 하나가 안수호의 가슴에 박혔다. 그러곤 마치 주둥이를 꽂은 모기처럼, 그의 심장에 자리한 마력을 게걸스럽게 탐하기 시작한다.

안수호는 그제야 그간 느꼈던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태초의 은이 안수호의 마력을 먹어치우는 고통이었다. 탈리스만을 통해 그의 체내로 흡수된 마력이 채 심장에 자리하기 전에, 외부에서 빨대를 꽂은 포식자가 이를 중간에서 가로챘다.

‘그래, 지금이라도 탈리스만을 멈춰야…….’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그가 탈리스만의 마력흡수를 멈추려 했다. 그러나 탈리스만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뇌에서 내려진 명령이 중간에서 끊긴 것처럼.

‘설마…….’

안수호는 자신의 오른팔에 달라붙은 태초의 은을 노려봤다. 심장에 촉각이 꽂힌 이래로 안수호는 태초의 은으로부터 묘한 일체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만약 이게 설명에 나온 ‘정신적 유대감’이라면…….

“망할…….”

안수호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리고 그 예감이 사실이라는 듯,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탈리스만이 최대 출력으로 발동되기 시작한다.

­휘오오오오오!!

사방에서 몰려드는 마력의 분류. 눈에 보일 정도로 짙어진 무형의 기운이 그의 오른손으로, 그 오른손 위에 달라붙은 태초의 은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마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면 먹어치울수록, 그 은색 몸체의 체적이 눈에 띄게 불어나기 시작한다.

­꿀렁.

이윽고 그것은 안수호의 몸을 전부 덮어버렸다. 그 모양새가 꼭 실력 없는 조각가가 만든 금속 주물 같았다.

“수호, 형……?”

류태현이 파르르 떨리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답만 없다 뿐인가. 의식이 있긴 한 건지, 살아있기는 한 건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이봐. 아이기스. 저거 어쩔 거야?”

“…….”

큐브의 불안에 찬 물음. 아이기스는 말없이 안수호‘였던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위험하다.’

그의 본능이, S급의 영역에 다다른 초인 특유의 직감이 연신 경종을 울려댔다.

제멋대로 폭주해 사용자를 집어삼킨 태초의 은을 향해, 위험하니 당장 도망치라고.

“……태초의 은은 포기한다. 지금 당장 후퇴하도록 하지.”

“뭐? 저걸 저대로 그냥 두고 가자는 거야?”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불확실한 게 너무 많아. 이대로 시간을 허비하다간 이도 저도 아닌 채 특임대가 들이닥치게 될­”

그 순간.

­키이이이이잉!!!!

불길한 울림과 함께 아이기스의 시야가 은색으로 가득 차올랐다.

***

네버랜드 정문 인근 광장.

그곳은 갑작스런 테러로 인해 놀이공원 바깥으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강하늘과 그 일행은 그 인파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안수호가 류태현을 데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벌써 20분은 더 지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강하늘은 불안한 눈으로 자신들이 온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선 나은솔이 똑같은 표정으로 함께했다.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은 각각 달랐으나 둘 다 얼굴 가득 걱정이 떠오른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

나은솔의 물음에 다른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안수호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 류태현의 실력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명실상부 1학년 최강인 류태현이 이처럼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즉, 보통 상황이 아니란 소리였다.

“가서 어쩌려고 그러지? 같이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흥. 그랬다간 다 같이 사이좋게 철창신세나 질걸?”

“하성민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태현이가 걱정되지도 않아?”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 경비대원이 혼자 간 것도 류태현을 말리려고 그런 거였잖아? 근데 지금까지 못 돌아오고 있는 걸 보면 싸움에 휘말린 게 뻔하지. 우리가 가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어.”

신경질적인 태도였으나 정론이었다. 류태현이 지금껏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자의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던가 아니면 차마 후퇴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란 뜻이니까. 그들이 간다 한들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하늘아. 괜찮아. 수호를 믿어.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거야.”

“언니. 그치만…….”

남겨진 사람들 입장에선 1분 1초가 흐를수록 불안감이 더욱 커져만 갔다. 특히 강하늘은 그중에서도 유독 걱정이 심했다.

지예원이라고 안수호가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안수호에 대한 믿음으로 애써 걱정을 덮었다. 그라면 잘 할 거라고. 이제껏 그래왔듯 이번에도 무사히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애써 그렇게 믿고 또 믿었다.

­……투타타타타타타타!

그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헬리콥터 소리에 그들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 저편에서 시꺼먼 헬기 다섯 대가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저건…….”

“저게 뭐지? 방송국 헬기……는 아닌 것 같은데.”

“특임대 헬기네.”

다른 학생들과 달리 지예원은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아봤다. 그러나 그 표정은 오히려 더욱 어두워졌다.

‘특임대까지 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란 소린데…….’

그러나 그녀가 불안해하면 강하늘이 더욱 불안에 빠질 것이다. 그렇기에 지예원은 애써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투타타타타타타!!!

그 사이 헬리콥터는 놀이공원 바로 위 상공까지 다가왔다. 헬리콥터에는 각 헬기당 8명씩, 총 40명의 대원이 탑승해 있었다.

그들은 상공에서 놀이공원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집중된다.

“……뭐야 저건.”

대원 중 한 명이 마스크를 끌어내리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씨발. 난 분명 초인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 들었는데. 저 괴물은 뭐야?”

그의 눈동자에는 사방팔방으로 촉수를 휘두르며 날뛰는 은색 괴물이 떠올라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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