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54화 (155/266)

〈 154화 〉 153. 철벽의 아이기스(3)

* * *

­투콰아아아아앙!!

거센 폭음과 함께 새까만 연기 기둥이 피어올랐다. 안수호는 주위에 피해가 가는 걸 막기 위해 연기의 진행 방향을 수직 방향으로 한정시켰다. 덕분에 그가 쏘아낸 연기는 높이만 백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벽을 형성했다.

“세상에…….”

아이기스의 공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정지민 경위는 그 압도적인 광경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뇌리에 이건 자기 선에서 감당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쥔 그녀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특임대 급파를 요청했다.

­투화아악!!

바로 그 순간. 까만 연막을 가르며 아이기스가 튀어나왔다.

촤르르륵! 지면을 미끄러진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가슴께는 날카로운 무언가로 난도질당한 듯 수많은 자상으로 가득했다.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되겠군. 생긴 건 단순한 연막이지만 중간중간 보이지 않는 칼날이 숨어있다. 놈의 초능력을 보면 아마 저 까만 기체를 극한으로 압축한 다음 아주 빠르게 쏘아낸 거겠지…….’

아이기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사람의 살갗을 가르는 칼날이 된단 말인가. 방어용 반사필드를 공격용으로 쓰는 그조차 한 수 접어주는 응용력이었다.

‘저렇게 광범위하게 쏘아내면 눈으로 보고 막을 순 없다. 운에 맡기고 공격 방향에 방어를 집중하는 수밖에. 확실히 내 입장에선 더럽게 성가신 능력이군. 그렇지만…….’

그러나 이내 그 웃음은 회심의 미소로 바뀌었다. 그가 전방을 노려보자 어느새 걷힌 연기 사이로 힘겨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안수호가 나타났다.

“허억. 허억. 허억……!”

안수호의 입가에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가 징그럽게 쩍 벌어진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힘겨운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전. 완벽하게 빈틈을 찌른 안수호의 공격을 아이기스는 방어해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방어를 도외시한 카운터를 날렸다. 그 결과 아이기스는 안수호의 옆구리를 깊숙하게 베어낼 수 있었다.

안수호가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철철 흘러내리는 붉은 혈액.

‘상처가 깊다. 그렇지만 치명상은 아니야.’

반사 필드가 닿기 직전 있는 대로 몸을 비틀어 겨우 내장이 다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그 정도 상처라면 그에게 있어선 그닥 심한 상처가 아니었다.

­까득! 까드드드등!

그의 목에 걸린 서리정령의 증표가 싸늘한 기운을 뿜어냈다. 옆구리를 감싼 오른손을 중심으로 새하얀 서리가 퍼져나간다. 서리정령의 권능이 흐르던 피와 함께 그의 상처를 얼려서 봉합했다.

“반지에, 팔찌에, 목걸이에……. 아주 걸어 다니는 보물창고가 따로 없군.”

아이기스가 보기에 안수호의 몸에 둘러진 아티펙트는 하나같이 특급에 준하는 것들이었다. 자연스레 그는 특급 아티펙트를 둘둘 두르고 있는 안수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우리 임무를 알아차린 정부의 요원. 혹은 적대 조직의 조직원. 아니면 중국 쪽 감시자…….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

잠시 고민하던 아이기스는 이내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오직 눈앞의 목표에만 집중했다. 암살팀이란 본래 그런 족속들이었기에.

안수호를 노려보던 그가 샤오메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음 순간, 그의 눈이 놀란 듯 휘둥그레 떠진다.

직후.

“꺄앗!”

샤오메이의 비명소리에 안수호와 류태현이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서 조금 떨어진 채 부자연스럽게 일어서 있었다. 그런 그녀의 등 뒤로 보이는 풍경이 호수에 비친 풍경처럼 일렁였다.

“이제야 온 건가…….”

그 광경을 보며 김주연이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직후 샤오메이의 뒤편이 크게 일그러지며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170 정도의 작은 키에 눈가를 덮는 헝클어진 바가지머리. 한 손에는 나이프를 든 채 샤오메이의 목젖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파앗!

그 순간 류태현이 샤오메이를 향해 뛰쳐나갔다. 그러나 직후, 급하게 제동을 건 그가 두 팔을 교차한 채 방어 자세를 취한다.

­퍼버버버버버버버벙!!!!!

그 방어 위로 골프공 크기의 샛노란 큐브 수십 개가 날아와 박혔다. 류태현이 큐브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험상궂게 생긴 남성이 주위에 정육면체 모양의 에너지를 두른 채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의 코드네임은 큐브. 아이기스와 마찬가지로 암살팀 소속이었으며 그 순위는 9위. 함께 나타난 바가지머리의 사내의 이름은 강준구로, 그의 파트너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수십 분 전, 흑룡회 헌터들과 싸웠던 한가람 습격조이기도 했다.

“큐브. 네가 여길 어떻게…….”

“저어어어어기 일반대원님께서 지원 요청을 보내서 부리나케 달려왔지.”

그 말대로 조금 전. 류태현과 안수호의 등장에 김주연은 한가람 습격조 인원들에게도 지원 요청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그 결정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덕분에 막상막하의 교착 상태에 빠졌던 전황이 단숨에 여명단 쪽으로 기울어졌으니까.

“고작 물건 하나 빼돌리는 거에 뭔 지원 요청인가 싶었는데 와보니까 알겠네. 한 놈은 내 기습 공격을 막아내질 않나 한 놈은 아이기스랑 대등하게 싸워대질 않나. 도대체 저놈들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큐브가 고개를 내저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주위에 떠올라 있던 큐브 형태의 에너지 탄환이 잘게 쪼개지기 시작한다.

그의 초능력은 ‘에너지 탄환’. 그 코드네임에서 알 수 있듯 큐브 모양의 에너지를 생성해 쏘아내는 초능력이었다. 허나 안수호는 그 능력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아이기스와 달리 큐브가 원작에 등장하지 않았던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안수호가 마른 침을 삼키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떨어지는 큐브의 단호한 한 마디.

“움직이지들 말어. 움직이는 순간 내 파트너가 저 중국년 모가지를 따버릴 거니까.”

그 말에 류태현의 뺨이 움찔 떨렸다. 반면 안수호는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정의로운 마음으로 샤오메이를 구하러 나선 류태현과 달리, 안수호는 그녀가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었다.

‘정육면체 모양의 에너지 탄환……인가? 원작엔 나오지 않았던 능력이야. 좀 전에 아이기스가 큐브라고 부르던데, 만약 그게 코드네임 같은 거면 암살팀일 가능성도 있겠어. 그중 몇 위인지는 모르지만…….’

원작에 등장했던 암살팀은 총 4명. 6위인 아이기스 외에 2위, 5위, 10위였다. 즉 새롭게 등장한 저 남자가 아이기스보다 강할 확률은 2분의 1.

‘만약 아이기스보다 높은 순위면 이기는 건 어렵겠지.’

그러나 이번 싸움에 있어서 승리는 필수적인 게 아니었다. 샤오메이는 아카데미 학생도 아니요, 그녀와 관련된 퀘스트가 따로 나온 것도 아니었다. 안수호는 여차하면 주위에 연막을 잔뜩 뿌린 뒤 류태현과 함께 도망치면 된다 생각했다.

“준구. 그 여자한테 말해. ‘물건’만 순순히 넘기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들었지?”

“……그러니까, 거래는 이미 끝났다고 말했잖아. 물건은 이미 한가람 헌터한테 넘겼다고!”

“지랄하네. 한가람은 조금 전에 내가 직접 이 나이프로 멱따고 오는 길인데 네가 무슨 수로 걔한테 물건을 넘겨? 허튼 수작 부리지 마.”

강준구가 나이프를 휘리릭 돌리더니 샤오메이의 목을 더욱 꽈악 압박했다. 날카로운 날 끝이 그녀의 살갗을 가르며 붉은 핏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진짜야! 진짜라고! 얼굴도! 목소리도 그 사람이었다고! 둘만 아는 암호까지 말했단 말야! 저, 정 못 믿겠으면 몸 수색이라도 해보든가! 난 진짜 이미 물건 넘겼다고!”

“…….”

그 말에 강준구가 거칠게 샤오메이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따금 그의 손이 민감한 부위를 지나쳤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샤오메이는 조금도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반면 강준구의 얼굴에는 몸수색을 거듭함에 따라 점차 초조한 기색이 떠올랐다.

“……뭐야. 진짜 없는데?”

혹시나 싶어 몇 번이고 꼼꼼하게 뒤져봤지만 평범한 소지품 외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며 김주연이 달려와 소지품을 살펴봤지만, 그들이 원하는 태초의 은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둘 중 하나군. 어딘가에 물건을 숨겼거나. 혹은 정말로 거래 상대에게 넘겼거나.”

잠자코 지켜보던 아이기스의 말. 그 말에 큐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가람은 자신들이 확실하게 처리했다고. 적어도 샤오메이가 그에게 물건을 넘겼을 가능성은 없다고.

그러나 아이기스는 이미 그에 대해 생각한 바가 있었다.

“이봐. 거기 너. 분명 탐지 계열 초능력자라 그랬지? 이 주변에 변신이나 환각 계열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나 찾아봐.”

“……알겠습니다.”

아이기스의 강압적인 명령에 김주연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품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초능력을 강제로 폭주시키는 불법증폭제 ‘도니체티’.

제아무리 그녀라 해도 수천 명은 되는 놀이공원 이용객 중 특정 초능력 보유자만 찾아내려면 몸에 부담이 되는 불법증폭제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녀가 주사기를 목에 꽂자 주변 혈관이 울긋불긋 돋아났다.

“큭…!”

외마디 신음과 함께 김주연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그 눈동자에 십자선 모양으로 새겨진 조리개가 빠르게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팟!

김주연이 근처에 있던 건물 벽을 타고 빠르게 올라갔다. 5층 높이 정도 되는 건물 지붕에 매달린 그녀가 넓게 확장된 시야로 놀이공원 전체를 쭈욱 훑어봤다.

­빠직! 빠지직!

그러자 수백 수천 명의 정보가 일제히 그녀의 뇌를 강타했다. 머릿속을 벌레가 헤집는 것 같은 격통을 감내하며 그녀가 빠르게 필요 없는 정보를 걸러내고 또 걸러냈다.

그 결과.

“……환각 계열은 0. 변신 계열은 한 명 있습니다.”

“위치랑 특징은?”

“위치는 정문 앞 분수대. 외형적 특징은 그냥 평범한 20대 여자애 같은데……. 아, 머리카락이 까만색인데 끝만 하늘색이네요.”

그 말에 안수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어떻게. 그의 뇌리에 처음 든 의문은 바로 ‘어떻게’였다. 그가 알기로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에서 특정 초능력을 가진 사람을 분별해내는 초능력은 원작에 등장한 적이 없었다.

백 번 양보해서 그러냐 초능력이 있다고 해도, 강하늘의 아바타 능력은 연심의 벚꽃 효과 때문에 지금 자신에게 옮겨져 있을 터.

헌데, 어째서.

도대체, 어떻게.

안수호의 뇌리에 갖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나 상황은 마냥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떡할까 아이기스? 일단 네가 여기서 제일 높으니까 네 의견에 따를게.”

큐브의 물음에 아이기스가 고민에 잠겼다. 그러나 오래 가진 않았다.

“……변신 능력자가 한 명이라면 아마 정답이겠지. 큐브, 여기서 곡사로 정문 분수대 주변을 폭격할 수 있나?”

“그 정도야 충분히 가능하지.”

“좋아. 큐브 네가 원거리 폭격으로 주위에 소란을 피우면 그 사이 준구, 네가 김주연과 함께 가서 그 여자를 납치하는 거다. 저 중국 브로커랑 함께 데려가서 심문하면 물건의 행방을 알 수 있겠지.”

“이놈들은 어쩌고?”

“너랑 나 둘이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이놈들을 정리하는 대로 우린 저 브로커를 데리고 빠지면 돼.”

“오케! 이해했으!”

아이기스의 지시에 따라 여명단이 빠르게 움직였다. 김주연과 강준구는 강하늘에게로. 큐브와 아이기스는 류태현과 안수호를 상대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샤오메이는 유성태가 강준구로부터 넘겨받아 제압한 상태였다.

‘빌어먹을…….’

그 상황 속에서 안수호가 빠르게 생각했다.

‘강하늘쪽으로 향하는 사람은 두 사람. 김주연이라 불린 저 여자랑, 준구라는 이름의 투명화 능력자.’

‘여자 쪽은 류태현하고 접근전으로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투명화 능력자도 꽤 성가셔 보여. 하성민이나 다른 애들이 이놈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정면 승부라면 이길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렇지만 저 남자의 폭격 때문에 혼란스러운 와중에 하늘이만 납치하려 한다면?’

‘놈들은 이미 A급 헌터 둘이 지키고 있는 와중에 한가람 헌터를 죽였어. 하성민이나 나은솔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A급 턱걸이 수준. 하늘이를 100% 지킬 수 있다곤 장담 못해. 그럼 하늘이한테 바로 능력을 돌려줘야 하나? 그렇지만 그랬다간 암살팀 둘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형. 하늘색 머리카락의 변신 능력자라니. 그거 설마 하늘이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그때 류태현이 불안한 눈빛으로 안수호에게 물었다. 그 순간 안수호의 뇌리를 강타하는 하나의 아이디어.

‘차라리 여기선 샤오메이를 넘겨주고 하늘이 쪽으로 붙는 게 어떨까? 그래. 그렇게 하자. 류태현도 하늘이가 위험하단 걸 알았으니 샤오메이를 지켜야 한다고 고집부리지 않을 테니까.’

류태현은 주인공답게 정의로운 마음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림으로 그린 듯한 무조건적인 선인은 아니었다.

만약 아는 이와 모르는 이가 동시에 위험에 처하면 그야 아는 사람을 지키고자 할 터.

실제로 그는 지금 강하늘이 위험하다는 사실에 크게 갈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만 놈들이 우릴 순순히 보내줄까? 보내준다 해도 문제야. 샤오메이를 포기한 우리가 곧바로 강하늘에게 달려가면, 놈들 입장에선 강하늘한테 태초의 은이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그림이 돼. 그렇다고 우리가 그쪽으로 합류 안 하면 말짱 도루묵이고. 생각해라. 생각. 뭐든 방법이 있을 거야. 제발……!’

안수호는 스스로 긴 시간 고민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10초도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긍정적인 소식은 아니었다. 10초가 흐르든 1분이 흐르든 타개책을 내지 못하면 강하늘은 위험에 빠지게 된다.

‘하늘이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나랑 류태현도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 그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의 생각이 이내 하나의 답으로 수렴했다. 안수호가 조심스럽게 품에 손을 넣었다. 그 손끝에 딱딱한 앰플 하나가 잡혔다.

‘어떻게든 놈들 전원을 여기 묶어놔야 해.’

‘꼭 놈들을 전부 이길 필요는 없어. 이만큼 소란을 벌였으니 슬슬 대초인특임대가 급파될 거야. 아무리 암살팀이어도 특임대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벌이고 싶진 않겠지. 아마 후일을 도모하더라도 일단은 후퇴할 거야.’

‘즉 시간만 끌면 돼. 시간만. 시간만 끌면…….’

이내 안수호가 품에서 자그마한 앰플을 꺼내들었다. 그 안쪽에서 은색 액체가 찰랑거렸다.

“이봐.”

그의 말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몰렸다. 이내 그 모든 시선이 삽시간에 경악에 물든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샤오메이의 당황 섞인 한 마디. 그 한 마디가 모두에게 확신을 주었다. 놀란 눈을 한 아이기스가 이내 피식 웃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찾는 수고를 덜었군.”

“그러게 말이야.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옛말에 틀린 말 하나 없구만.”

큐브가 그 말을 받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두 사람이 형형한 살기를 피워올리며 안수호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

“다가오지 마.”

안수호가 왼손으로 앰플을 들었다. 동시에 그의 오른손에서 검은 폭풍이 휘몰아쳤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오면 날려버릴 거야.”

“뭐?”

“날려버릴 거라고. 내 능력으로. 유리병을 부순 다음에 안에 든 액체를 사방팔방으로 날려버릴 거야. 찾아서 다시 주워담지도 못하게.”

“같잖은 허세를­”

“허세 같아?”

­파캉!

안수호의 오른손에서 검은 칼날이 튀어나와 앰플 윗부분을 깔끔하게 잘랐다. 두꺼운 뚜껑 끝부분만 자른 덕에 앰플은 여전히 밀폐 상태를 유지했지만, 그의 의지를 드러내기엔 그 정도로 충분했다.

“이제 허세가 아닌 걸 알겠어?”

“……대놓고 협박질하는 걸 보면 바라는 게 있나 보군. 얼른 말해라.”

“말이 잘 통하는군. 외국인인데도 말이야.”

안수호가 앰플을 넘겨주듯이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거래를 제안하지. 태초의 은을 넘길 테니 나랑 류태현, 그리고 샤오메이까지. 이렇게 셋의 안전을 보장해라. 순순히 물건만 받고 물러가란 소리야.”

“……그 물건이 진짜라는 보증은?”

“좀 전에 샤오메이 반응 봤으면 알 텐데. 그래도 보증이 필요하다면…….”

다음 순간 안수호의 몸이 흰색 빛에 휩싸이더니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샤오메이와 거래를 했을 때의, 한가람으로 변장한 모습으로.

“자. 니들의 의심하던 변신 능력자가 바로 나야. 내가 샤오메이에게 한가람 헌터의 모습으로 접근해 태초의 은을 받아냈어. 어때, 앞뒤가 맞는 이야기지?”

“…….”

아이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은 채 가만히 큐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수호의 모습이 한가람과 동일하다는 제스처.

‘……과연. 그렇게 된 건가.’

아이기스는 모든 상황을 파악한 건 아니었다. 다만, 안수호가 태초의 은을 빼돌리려 시도했고 실제로 빼돌리는 데에 성공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황이 얼추 들어맞았기에.

“서두르는 게 좋을걸.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곧 특임대가 올 거야. 아무리 여명단 암살팀이 잘났어도 특임대원 수십 명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벌이는 건 힘들지 않겠어?”

“아이기스. 어쩔 거냐.”

“…….”

큐브의 재촉에 아이기스가 가만히 생각했다.

‘물건은 아마 진짜일 거다. 저 브로커의 반응도 그렇고, 우리조차 파악하지 못한 실물의 모습을 놈이 미리 알고 가짜를 준비했다 생각하기도 어려워.’

‘게다가 놈의 말도 사실이다. 특임대가 오면 불리해지는 건 이쪽이야. 사실 지금도 이미 아슬아슬해. 가능하면 1초라도 빨리 벗어나는 게 우리 입장에서도 좋다. 그렇지만…….’

아이기스는 안수호를 이대로 살려보내는 것이 불안했다. 그가 보기에 안수호는 자신들도 겨우 알아낸 태초의 은 거래 정보를 입수한 정보력에, 온갖 아티펙트를 몸에 둘둘 두르고 있는 자금력, 거기에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초능력을 사용하는 전대미문의 초인이었으니까.

‘만약 놈이 우리를 적대하는 입장의 인간이라면……. 죽일 수 있을 때 죽여놔야 한다.’

그것은 아이기스 개인이 아닌, 조직의 미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여온 암살팀으로서의 판단이었다. 잠시간의 고심 끝에 아이기스가 손가락을 튕기고.

­쐐애애애애액!!

다음 순간, 12장의 반사필드가 안수호에게 날아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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