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151. 철벽의 아이기스(1)
* * *
갑작스레 하늘에서 지면으로 꽂힌 검은 파도.
사방으로 퍼지는 연무보다 한 박자 늦게 안수호가 지면에 착지했다. 샤오메이를 사이에 두고 류태현의 맞은편에 착지한 그는 옆에서 우왕좌왕하던 너클을 낀 남자, 델타5에게 추가타를 날렸다.
콰아아앙!!!
새된 굉음과 함께 압축된 연기가 그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남자의 몸이 주르륵 밀려나 지면을 뒹군다.
파앗!
직후 연기를 가르며 안수호가 튀어나왔다. 샤오메이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온 그가 샤오메이를 지키듯 선다.
“수호 형?”
쓰러진 유성태를 뒤로한 채 류태현이 그에게 달려갔다. 그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눈앞의 남자는 안수호임이 분명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긴 했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째서.
“형이 왜 여기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왜 상관도 없는 일에 나서? 네가 무슨 경찰이라도 돼?”
안수호가 진심을 담아 그를 나무랐다. 그러나 류태현은 장난스럽게 받아칠 뿐이었다.
“……딱 봐도 나쁜 놈들이 설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몰라? 스파○더맨도 안 봤어?”
류태현이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으쓱였다. 영화 속 명대사 따위가 류태현의 오지랖을 정당화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류태현은 그런 것 따위 상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법이니 규칙이니 다 알 바 아니었다. 그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싸움이 있으면 뛰어든다. 그것이 류태현이라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안수호는 그런 그의 캐릭터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주인공 최적화 성격이라는 거지. 망할.’
덕분에 그는 팔자에도 없는 전투에 끼어들게 되었다. 한 시라도 빨리 류태현을 데리고 이탈하고 싶은 마음에 그가 묻는다.
“그래서 넌 지금 어쩌고 싶은”
쐐애액!
허나 직후 안수호가 공격했던 사내가 너클을 앞세워 달려들었다. 사내의 팔꿈치에 전투기 노즐 같은 기관이 솟아나 있었다. 그 노즐이 불꽃을 뿜으며 주먹의 속도를 더한다.
그렇지만.
퍼억!
직후 돌아간 건 안수호가 아닌 사내의 턱이었다. 사내의 주먹은 애꿎은 허공만 가르고, 직후 그의 몸에 안수호의 주먹이 매섭게 꽂혔다.
퍼버버버벅!
노도와 같은 연격에 사내의 몸이 허물어졌다. 앞으로 고꾸라지려던 그 몸을 안수호가 있는 힘껏 걷어찼다.
콰앙!
가로등에 부딪힌 사내가 몸을 기역자로 꺾은 채 신음한다.
“……그래서 어쩌고 싶은데?”
직후 안수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 전의 질문을 이어갔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수호 형이 원래 저렇게 셌나?’
특히 안수호의 실력을 알고 있던 류태현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안수호와 함께 싸워본 건 약 일주일 전 강하늘 납치 사건 때였다. 그때도 약했던 건 아니었지만 결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저 남자도 그렇게 약한 것 같진 않던데…….’
류태현이 보기에 너클을 낀 사내는 못해도 B급은 되어보였다. 적어도 사내의 주먹에는 그만한 기세와 속도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안수호는 그런 상대를 여유롭게 가지고 놀듯 제압했다.
즉 전력을 발휘한 것조차도 아니었다.
류태현이라고 해서 B급 초인을 저렇게 제압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같은 상황에 안수호가 아닌 그가 있었다 하더라도 아마 비슷한 결과를 냈겠지.
허나 그 말은 즉 지금의 안수호가 류태현과 엇비슷한 수준은 된다는 소리였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놀란 표정이었던 그의 입가에 자그마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호승심이 잔불처럼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류태현. 어떻게 하고 싶냐고.”
그러나 안수호의 재촉에 그가 퍼뜩 정신 차렸다. 그 물음에 류태현이 두 사람 사이에 주저앉아 있던 샤오메이를 내려다봤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죠?”
샤오메이가 불안한 눈치로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류태현이 친절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지나가던 정의로운 대학생. 그리고 이 형은 지나가던 정의로운 경비대원이에요.”
“…………네?”
“누님.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찰 올 때까진 저희가 지켜드릴게요. 형. 괜찮지?”
“누구 마음대로?”
대답한 것은 안수호가 아닌 근육 거한이었다. 그가 주먹을 앞세우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반대편에선 나이프를 든 여성이, 나머지 두 방향에서도 류태현과 안수호에게 당했던 두 사내가 부상을 추스르며 임전 태세에 돌입했다.
‘샤오메이를 데리고 도망쳐봤자 쫓아올 테고. 결국 한바탕 할 수밖에 없나.’
안수호가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는 고요했다. 그러나 인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건물 안이며 모퉁이며 몸을 숨긴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그러나 흥미진진한 눈으로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안수호가 류태현에게 말했다.
“류태현. 넌 가만히 이 여성분만 지키고 있어. 괜히 앞에 나서지 말고.”
“그게 무슨 소리야 형. 2대 4인데 당연히 나도 싸워야지.”
“내 말 들어 이 대책 없는 자식아. 벌건 대낮에 보는 눈도 많은데 치고받고 싸우다 쌍방폭행으로 잡혀 들어가고 싶어? 철창신세 지기 싫으면 내 말 듣고 몸 적당히 사려. 나서지 말고.”
상식에 기반한 조언이었으나 류태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왜 그래 형. 형이랑 나랑 같이 싸운 게 몇 번인데 이제 와서…….”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그땐 다 밤에 주위에 아무도 없었고. 지금은 대낮에 놀이공원 한복판이잖아. 지금 건물 창문마다 사람들이 영상 찍고 있는 거 안 보이냐? 보이면 제발 머리 좀 식혀. 이미 저 권총남한테 선빵 친 시점에 정당방위도 아슬아슬하니까.”
“끄응…….”
류태현은 무어라 반박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안수호의 말대로, 머리를 조금 식히자 그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볼 수 있었다.
상황은 명백히 샤오메이가 피해자고 여명단이 악당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권한이 없는 류태현의 사적제재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었다.
“……그럼 형은 어쩌게. 형도 싸우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난 괜찮아. 아카데미 경비대는 2급 치안직이거든. 아카데미 관계자 보호 및 긴급 상황 하에 공공치안을 위한 무력행사는 면책 사유야.”
“와 그건 좀 부럽네. 나도 경비대나 할까?”
“경비대는 아카데미를 지키는 거지 사방팔방에 설치고 다니는 직업이 아니거든?”
“형 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
우스갯소리에 우스갯소리로 응수하며 두 사람이 샤오메이를 사이에 두고 등을 마주했다.
전투 직전의 일촉즉발의 상황. 안수호의 시선이 흘긋 사거리 남쪽, 가설무대 방향으로 향했다.
‘……아이기스는 오지 않는 건가.’
같은 여명단인 그가 왜 합류하지 않는 건지. 영문 모를 일이었으나 불행 중 다행이기도 했다. 암살팀인 아이기스가 끼어들지 않는다면, 평범한 일반 단원으로 보이는 이들을 상대로 그와 류태현이 패배할 리가 없으니까.
“아무튼 사리고 있어. 은솔이가 너보고 다치지 말랜다.”
“……걘 다 좋은데 걱정이 많은 게 탈이라니까.”
류태현의 입가에 여유로운 웃음이 떠오르고, 직후 네 방향에서 적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투화악!
안수호의 양손을 검은 연기가 휘감았다. 그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한다.
“후읍!”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근육 거한. 그가 육중한 거완을 휘두르고 있었다. ‘결정화’의 초능력을 지닌 그의 주먹은 다이아몬드 같은 광석으로 뒤덮여 있었다.
후우웅!
그러나 주먹은 맥없이 허공만 갈랐다. 빠르게 거한의 품으로 파고든 안수호가 연기로 휘감긴 주먹을 내질렀다. 캉! 하고 울리는 금속음.
“……흐.”
거한이 소리 죽여 웃었다. 안수호의 주먹 따위 간지럽다는 듯이.
그러나.
카가가가가각!!
다음 순간, 안수호의 주먹에서 자그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극한으로 압축된 연기가 수십 갈래의 가시로 화하며 거한의 몸을 난도질했다. 사방으로 투명한 결정 파편이 휘날린다.
“크헉?!”
당황해서 물러선 거한. 그를 향해 안수호가 팔을 뻗었다. 직후 뻗어나간 시커먼 탁류가 거한의 몸을 집어삼킨다.
투콰아아아앙!!
대지를 흔드는 굉음과 함께 남자의 몸이 튕겨나가듯 날아갔다. 안수호는 주변에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곧바로 연기를 거뒀다. 그럼에도 거한의 몸은 쭈욱 뻗은 대로를 따라 몇 번이고 지면을 튕기며 굴러갔다.
파앗!
직후 안수호가 옆으로 튀어나갔다. 눈앞에 짓쳐드는 은색 너클.
그러나 그보다 두 박자 빠르게 안수호의 발길질이 사내의 명치를 가격했다. 밀려나려는 사내의 멱살을 쥔 그가 사내의 몸을 있는 힘껏 지면에 메다꽂는다.
쿠우웅!!
“커흐억!”
돌로 된 지면에 쩌저적 금이 갔다. 안 그래도 이미 안수호에게 몇 대나 맞았던 사내가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신음했다. 그 콧대 위로 안수호의 주먹이 무자비하게 꽂혔다.
타앙! 타앙! 타앙!
한편, 반대편에선 유성태의 권총이 새된 총성을 울려댔다. 뭉툭한 납탄 세 발이 나이프녀의 명치를 걷어찬 류태현의 옆구리로 향했다. 이를 눈치 챈 류태현이 휘리릭 손을 휘두른다.
파바밧!
푹!
“끄윽!”
류태현이 주먹을 꽉 쥔 채 신음했다. 그가 주먹을 펼치자 찌그러진 총알 두 발이 땅에 떨어졌다.
‘시발 미친. 총알을 손으로 잡는다고?’
유성태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총구 방향이나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고 총알을 피하는 거라면 모를까, 날아드는 총알을 잡아채는 건 S급 초인이라 해도 성공할까 말까한 기예였기에.
허나 잡아낸 총알은 두 발뿐이었다. 남은 한 발은 류태현의 옆구리에 제대로 꽂혀 들어갔다. 이를 발견한 유성태의 얼굴에 아주 잠시 화색이 돈다.
그러나.
“와. 이게 안 되네.”
류태현이 아쉽다는 얼굴로 옆구리에 박힌 총알을 뽑아들었다. 끄트머리에 피가 조금 묻어있긴 했지만 그뿐.
평범한 총탄은 금속 섬유처럼 오밀조밀 엮인 류태현의 근육을 뚫지 못했다. 이에 기겁한 유성태가 반쯤 질린 표정으로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우우우우우웅!!!
버튼을 누르자 나이프 날이 거세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대 괴수용 소닉 블레이드를 짧게 자른 초음파 나이프.
“으아아아아아!!!”
꼴사나운 기합과 함께 유성태가 나이프를 휘둘렀다. 겁에 질린 표정과 달리 날카로운 궤적은 확실히 평범한 동네 양아치 수준은 아니었다.
허나 류태현에게 대척할 수준 또한 아니었다.
터억!
류태현이 유성태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가 힘을 꽉 주자 우드득, 거리는 소리가 그의 손목에서 울렸다.
유성태의 얼굴에 떠오른 고통에 찬 표정. 손목의 격통 때문에 그가 나이프를 놓쳤다……라고 생각한 순간 떨어지는 나이프를 반대 손으로 낚아챘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찌르기.
퍼억!
그러나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류태현이 그의 명치를 걷어찼다. 좀 전에 달려들었던 나이프녀와 마찬가지로, 유성태의 몸이 기역자로 꺾인 채 수 미터를 날았다.
“이게 도대체…….”
그 사이에서 샤오메이는 입조차 다물지 못한 채 놀라움에 빠져 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의문의 적들.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의문의 아군.
그 자체로도 이미 놀라움의 연속이었으나 더욱 놀라운 건 바로 두 사람의 실력이었다. 샤오메이도 일단은 초인이었기에 적들의 강함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순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여명단 델타 팀 인원들은 결코 만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허나 눈앞의 두 사내는, 그중 한 명이 밝히길 지나가던 대학생과 경비대원에 불과한 두 사내는 그런 적들을 손쉽게 요리하고 있었다. 마치 무협 영화에서 고수가 시정잡배를 상대로 무위를 뽐내는 것처럼.
기실 여명단원들과 두 사람 차이에는 그만한 차이가 존재했다.
류태현은 그린하우스 1학년 랭킹 1위이자 전체 학생 중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강자. 안수호는 비록 강하늘의 스킬 덕이라지만 내로라하는 S급 초인들과 함께 오버랭크 던전 보스인 빌헬름과 싸웠던 몸. 둘 다 여명단 일반대원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적수는 아니었다.
일반대원 수준에서는, 말이다.
타앗!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그때. 건물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델타팀 리더, 김주연이 재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녀가 양손에 쥔 나이프를 류태현에게 종횡무진 휘둘렀다.
파바바바바밧!
이전의 적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속도.
안수호의 말 때문에 필요 이상의 공격을 하지 않으려던 류태현은 그 모든 공격을 쳐내고 흘려내려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날카로운 궤적에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피슛!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팔에서 붉은 핏물이 튀어올랐다.
“류태현!”
안수호가 가세하려던 찰나 김주연이 지면을 박차며 크게 물러섰다.
“태현이 너 괜찮”
괜찮냐고. 그렇게 물으려던 안수호의 말문이 막혔다. 류태현의 양팔에는 나이프에 의한 자상이 몇 갈래나 그어져 있었다.
붉은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류태현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 저 여자 상대로는 몸 사리다 잘못하면 죽겠는데?”
아예 죽일 각오로, 전력을 다해서 싸우지 않으면 오히려 이쪽이 당할지도 모른다고.
류태현은 아주 짧은 공방만으로도 눈앞의 적의 실력을 가늠했다. 그러나 안수호는 그의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류태현의 말은 즉, 눈앞의 여자가 그와 엇비슷한 강함의 소유자란 뜻이니까.
‘여명단 간부급이 아니고서야 류태현한테 상대가 될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설마 간부급이란 건가. 그렇게 의심해도 안수호로선 알 방법이 없었다. 원작 내용이야 수십 번도 넘게 읽어 다 꿰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텍스트 속 인물의 생김새까지 꿰차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
“……리더! 저 녀석들 보통이 아닙니다! 한 놈은 진석이 형을 묵사발로 만들지 않나, 한 놈은 날아오는 총알을 잡아챘다고요!”
“알아. 나도 다 봤으니까.”
유성태의 말에 김주연이 나이프를 휘리릭 돌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긴장감이 감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 보이네. 둘 다 최소한 A급 초인 이상이야.’
김주연의 초능력 ‘색적’은 응용법이 무궁무진한 능력이었다. 가령 조금 전처럼 탐지 대상을 눈앞의 한 사람에게 집중하면 그 사람의 강함이나 약점은 물론이요, 움직임의 버릇이나 다음 공격까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조금 전 아주 잠시나마 류태현을 몰아붙일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하물며 적은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게다가 그녀가 보기에 안수호의 강함 역시 류태현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김주연이 입술을 잘근 씹으며 자기 부하들의 상태를 살폈다.
‘민우랑 수아는 뻗었고 성태 얘도 보니까 멀쩡해보이진 않네. 그나마 멀쩡한 건 진석이 뿐인가. 망할…….’
부하들은 하나같이 멀쩡한 이가 없었다. 그나마 진석이라 불린 남자만이 경상에 그쳤으나, 그조차 안수호의 공격에 몸을 뒤덮은 결정이 너덜너덜 부서져 있었다.
‘재수가 없으려니. 그냥 중국 브로커년 하나 협박해서 물건만 받아내면 되는데 왜 저딴 놈들이 튀어나와가지고. 게다가 아이기스 이 자식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고작 백몇 미터 떨어진 곳인데. 게다가 좀 있으면 경찰들이 들이닥칠 거라고. 시발, 지부장님이 이번 임무는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그러셨는데. 시발. 시발. 시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김주연이 어금니를 까드득 물었다.
그녀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샤오메이에게서 태초의 은을 받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활로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설령 남은 부하들과 눈앞의 두 사내에게 덤빈다 해도 결코 이길 수 없으리라. 하물며 경찰이 뜨기 전에 일을 끝내는 건 불가능할 터.
‘……빌어먹을.’
후퇴도. 그렇다고 전진도 허락되지 않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김주연은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쐐애애액!!
허공을 가르는 파공성에 류태현이 빠르게 반응했다. 그가 안수호의 팔을 잡고 있는 힘껏 끌어당겼다. 직후 반투명한 무언가가 두 사람의 살갗을 쏜살같이 가르고 지나간다.
투화악!
“크윽!”
“윽.”
두 사람의 몸에 깊은 자상이 새겨졌다. 안수호는 왼쪽 어깨에. 류태현은 오른쪽 팔뚝에. 날카로운 칼로 잘린 듯한 상처에 안수호가 당황한 찰나, 그 공격이 어디에서 왔음을 알아차린 류태현이 고개를 돌렸다.
뚜벅. 뚜벅. 뚜벅.
그 방향은 조금 전 류태현이 왔던 방향이었다. 미야의 무대가 있던 방향이기도 했다. 그 방향에서 갈색 머리의 서양인이 형형한 살기를 뿜어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끄으……. 으으으…….”
그 한 손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뭉개진 남자가 붙들려 있었다. 조금 전 아이기스에게 구원을 요청하러 간 델타6였다.
“…………야. 이 빌어처먹을 일반대원 나부랭이들아. 니들이 일처리 좆같이 해서 마지막 곡 못 들었잖아 씨발.”
외모와 달리 유창한 한국말. 그래서 그런가 말에 담긴 분노가 더욱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주연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반면, 류태현과 안수호의 표정은 창백하게 굳었다.
“……류태현.”
안수호가 나지막히 그를 불렀다. 동시에 그의 손에 끼워진 탈리스만이 맹렬한 빛을 발했다.
“조금 전에 내가 했던 말은 잊어. 지금부턴 전력으로 싸워야 해.”
그가 긴장된 얼굴로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