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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49화 (150/266)

〈 149화 〉 148. 거래

* * *

거울미로 앞 대기줄에서 류설은 조마조마한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꼭 간식을 앞에 두고 ‘기다려’를 당한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그 모습은 보는 이마저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줄곧 앞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일행 선두에 선 류태현과, 그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두 여성에게.

바로 지예원과 강하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예원에게. 류설이 지예원의 옆모습을 미심쩍은 눈으로 훑는다.

‘도대체 저 은발 언니는 하늘이 남친이랑 무슨 사이인 걸까?’

류설은 안수호와는 안면을 이미 튼 상태였다. 그날, 류태현과 한겨울의 랭킹전을 관람한 날 관중석에서 우연히 마주쳤으니까. 그리고 그때 분명 안수호가 강하늘의 남자친구라는 걸 그의 입으로 직접 들었다.

그래. 거기까진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오늘 새로 나타난 저 여자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처음에는 안수호 쪽을 짝사랑하는 여자라고만 생각했다. 그가 이미 강하늘과 사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지 못해서, 모처럼의 데이트에 끼어든 방해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럼 수호 형 술자리에선 어때요? 막 이상한 술버릇 같은 건 없나요?”

“술버릇? 글쎄? 딱히 없는 것 같던데. 애초에 술을 워낙 잘 마셔서 술버릇이 나올 정도로 취한 걸 본 적이 없네. 오히려 술버릇하면 하늘이가 엄청 심하지.”

“하늘이가요?”

“어, 언니! 제가 뭐 심하면 얼마나 심하다고 그래요!”

“너 술만 들어가면 할 말 못할 말 구분 못하고 엄청 떠들어대는 거 몰라? 가뜩이나 주량도 약한 애가 술은 또 엄청 빨리 마시고……. 하늘이가 딱 같이 술자리 가지면 피곤한 타입이지.”

“그랬구나. 저희랑은 한 번도 마신 적이 없어서 몰랐네요. 전 매번 술자리마다 괜찮다고 빼길래 아예 안 마시는 줄.”

“흐트러지는 건 남친 앞에서만! 이런 거 아냐?”

“오.”

“오! 는 무슨! 그런 거 아니니까 그만 놀려요! 그리고 저 술버릇 그렇게 나쁜 편 아니거든요?!

조금 전부터 세 사람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강하늘과 지예원의 사이는 딱히 나빠 보이지 않았다. 지예원이 뭐라 할 때마다 강하늘이 틱틱대긴 했지만 귀여운 수준이었다. 적어도 특별히 악감정을 품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둘이 그 경비대원분 사이에 두고 싸우는 연적 아니야? 근데 왜 저렇게 친해? 아니면 설마 다른 관계인가?’

다른 관계. 라는 말에 류설의 두뇌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설마 레즈? 하늘이 남친이 아니라 하늘이가 좋아서 쫓아온 건가……? 그래서 둘이 저렇게 친해 보이는…….”

“넌 또 갑자기 뭔 소리야 그게.”

한창 망상을 꽃피우고 있는 동생을 보며 오빠 류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닌 것이, 그 또한 갑작스레 합류한 저 두 여성진에게 관심이 가긴 했다.

‘류태현도 그렇지만 그 경비대원도 여성편력이 꽤 심한가 보군.’

헌터과 내에서 류태현은 이미 알파메일의 표본이었다. 수려한 외모에 싹싹한 성격, 거기에 전교 탑에 달하는 성적과 무력까지. 사실상 1분반 여학생들은 거의 다 그에게 호감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류태현은 자신에게 향한 호의를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가 된 상대만 해도 벌써 몇이던가.

‘아마 그 경비대원도 비슷한 부류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류진이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부터 그 경비대원이 보이질 않는다며.

그리고 때마침 그 순간 류태현도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나저나 수호 형이 좀 늦네. 이러다 우리끼리 먼저 들어갈 판인데?”

“화장실이 많이 붐비나보지. 나도 좀 전에 갔을 때 사람 엄청 많았거든. 만약 자기가 늦으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어.”

그렇게 말하며 강하늘이 거울미로 쪽으로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이 방금 막 미로 안으로 들어선 한 남성을 쫓았다.

‘성공하길 빌게요. 오빠.’

강하늘의 시야 구석에 푸른색 타이머가 떠올라 있었다.

***

“하아아아아.”

샤오메이는 홀로 미로를 걸어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벽과 천장을 가득 메운 거울에 그녀의 착잡한 얼굴이 비친다.

그녀는 몹시 지쳐 있었다. 관광으로 위장해 중국을 떠나고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녀는 공안의 감시자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제 딴에는 몰래 감시하고 있다고 하지만 샤오메이의 눈에는 감시자가 어디에 어떻게 붙었는지 훤히 보였다. 그녀가 어딜가든 따라붙는 선글라스 차림의 남자들의 시선에, 그녀는 정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물건만 넘기면 돼. 물건만 넘기고 나면 마음 편히 쉴 수 있어. 그러니 좀만 더 힘내자. 좀만 더……..’

“후우우우.”

속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내자던 샤오메이가 신경질적으로 숨을 뱉었다. 그녀의 시선이 스을쩍 등 뒤로 향했다.

‘누가 쫓아오고 있어.’

감시자는 아니었다. 그나마 몰래 미행하려는 노력이라도 하던 그들과 달리 지금 그녀를 쫓아오는 이는 노골적으로 그녀의 뒤를 밟고 있었다. 딱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의 미행.

‘발소리로 들어보면 한 명인데. 단순히 경로가 겹친 건가?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 지나친 갈림길이 몇 갠데 계속 쫓아온다는 건…….’

샤오메이가 발걸음을 빨리하자 뒤따라오던 이도 속도를 높였다. 그녀가 쯧, 하고 작게 혀를 찬다.

어쩌면 지나가던 행인이 그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앞에 가는 사람에게 따라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필시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일 터.

­탁.

이윽고 그녀가 거래 장소에 도착했다. 사방이 거울로 꽉 막힌 막다른 길.

­탁.

그리고 그녀를 쫓던 이도 그 막다른 길에 들어서는 모퉁이에 딱 멈춰 섰다. 이로써 미행인이 의도적으로 그녀를 쫓아왔음은 명백해졌다. 만약 평범하게 미로를 헤매던 행인이라면 앞이 막다른 길인 걸 확인하고 곧장 발걸음을 돌렸을 테니까.

‘공안은 아니야. 그럼 누구지? 혹시 예전에 나랑 거래했던 사람이 날 알아보고 쫓아온 건가? 그렇지만 왜? 예전 고객이 날 쫓아올 이유가 없잖아. 지나가다 마주쳐서 인사하겠다는 것도 아닐 테고. 날 쫓아왔다는 건 나한테 뭔가 목적이 있다는 건데…………설마 거래 정보가 어디서 샌 건가?’

샤오메이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여차하면 도망쳐야겠지만 장소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꽉 막힌 미로의 막다른 길. 도망치기 위해선 미행인의 옆을 반드시 지나쳐야 하니까.

그때.

­뚜벅.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미행인이 발걸음을 옮겼다. 샤오메이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샤오메이가 뒤를 돌아보자 180 후반 정도 되어보이는 남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까만 모자에 까만 마스크. 그 위에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척 봐도 ‘나 수상한 사람이요’하는 듯한 차림새.

‘시발. 뭔데.’

샤오메이가 긴장된 표정으로 남자를 올려다봤다. 뚜벅뚜벅 걸어오던 남자는 샤오메이의 5미터 앞에서, 마치 그녀의 퇴로를 차단하듯 통로 가운데를 딱 막아선 채 멈췄다.

“…….”

묵직한 긴장감과 함께 흐르는 정적.

샤오메이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순간.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샤오메이. 접니다.”

정중한 인사와 함께 남자가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샤오메이의 얼굴에 이채가 돈다.

“……한가람?”

드러난 얼굴은 샤오메이가 기억하고 있던 거래 상대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자신의 이름을 불린 남자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아아아.”

그러자 샤오메이가 맥빠진 한숨을 내쉬었다. 정체불명의 미행인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그 정체가 거래 상대였다니 맥이 빠질 만도 했다.

“……아직 2시까지는 10분 정도 남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예요?”

“미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당신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바로 따라붙었습니다.”

“저한테 감시자가 붙어있는 건 잊으셨나보죠? 그렇게 바로 따라붙으면 공안 놈들이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잖아요.”

“그럴 줄 알고 당신이 줄 서는 타이밍에 맞춰 뒤에 붙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공안이 보기엔 그저 평범한 이용객으로만 보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물건은 가지고 왔습니까?”

남자가 묻자 샤오메이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 전에 당신이 ‘진짜 한가람’인지 확인부터 하는 게 먼저겠죠. 어쩌면 변신 능력자가 절 속이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

“……나선계단.”

샤오메이의 말에 남자가 대뜸 의미 불명의 단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딱정벌레. 폐허도시. 무화과타르트. 딱정벌레. 돌로로사의 길. 딱정벌레. 특이점. 지오토. 엔젤. 자양화. 딱정벌레. 특이점. 비밀황제……였나요? 도대체 뭡니까? 이 쓸데없이 긴 의미 불명의 암호는.”

“예전에 재밌게 봤던 만화에 나온 암호예요. 왜요? 불만인가요?”

“아뇨. 저도 그 만화 봤었거든요. 덕분에 외우기 쉬웠습니다.”

“참 신기한 우연이네요.”

피식 웃은 샤오메이가 품에서 자그마한 앰플을 꺼냈다. 자그마한 향수병 정도 크기의 병 안에는 은색의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그게 바로…….”

“태초의 은. 중국 정부의 공인을 받은 진짜배기 특급 아티펙트예요. 자.”

샤오메이가 휙 하고 앰플을 던졌다. 특급 아티펙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건성인 태도.

“물건은 확실하게 넘겼어요. 잔금은 저번에 말한 계좌로 확실하게. 말 안 해도 알고 있죠?”

“……잔금은 길드에서 확실하게 치러줄 겁니다.”

앰플을 받아든 남자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치 수은처럼 병 안에서 찰랑이는 태초의 은을 그가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한 푼이라도 빼먹을 생각하지 말아요. 그랬다간 당신들뿐 아니라 나도 위험해지니까. 제 뒤에 있는 당신들 거래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 있죠?”

“공산당 무슨 위원……이라고만 들었습니다. 저도 운반책이라 자세한 사정은 모르거든요.”

“그럼 당신한테 입 아프게 설명해봤자 소용없겠네요. 그쪽 높은 사람들한테 알아서 잘 전해줘요.”

샤오메이가 뚜벅뚜벅 걸어와 남자의 옆을 지나쳤다. 그러곤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미로 저편으로 사라졌다. 물건을 넘긴 이상 자기 일은 다 끝났다는 태도였다.

혼자 남겨진 남자는 잠시 앰플을 내려다보다 이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대로 5분 정도 기다리며 샤오메이와 거리를 벌린 그가 이내 자신이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뚜벅. 뚜벅. 뚜벅.

거울미로에 그의 발걸음 소리만이 작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앗.”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남자가 어떤 여성과 부딪혔다. 비단 같은 검은색 머리카락 끝이 하늘색으로 물든 묘령의 여성.

“이거 죄송합니다. 다치신 곳은 없나요?”

“네? 네. 괜찮……아요.”

“저쪽으로 가시는 거면 돌아가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저쪽은 꽉 막힌 길이거든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 그렇구나…….”

슬쩍 남자가 온 길을 살펴본 강하늘이 남자를 올려다봤다. 얼떨떨한 감정이 떠올라있던 그녀의 입가에서 이내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온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예요? 지금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혹시 네 뒤에 누구 따라왔을까봐 그랬지.”

남자가 그렇게 말한 순간 그의 몸이 밝은 빛무리에 휩싸였다. 이윽고 빛이 꺼지자 모습을 드러낸 건 한가람이 아닌 안수호였다.

“그 여자는 잘 속였어요?”

“응. 속을 수밖에 없지. 얼굴, 체격, 목소리 다 똑같이 위장한데다가 암호까지 제대로 말했으니까.”

안수호가 품에 넣어둔 앰플을 살짝 꺼내보였다. 그러자 강하늘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빠도 진짜 대단하네요. 보통 사람이 소설 스토리 정도는 기억해도 에피소드 하나에만 나온 암호까지 기억하진 못하잖아요. 심지어 엄청 길던데.”

“암호 자체가 다른 작품 패러디였거든. 그래서 기억하기 쉬웠어.”

“그니까 오빠가 씹덕이다 그거죠?”

“이게 오빠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안수호가 장난스럽게 강하늘의 볼을 콕 찔렀다. 그러자 강하늘이 반대급부로 볼을 있는 대로 부풀린 채 뾰루퉁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래봤자 안수호가 보기엔 귀여울 뿐이었다.

“나은솔은 내 말대로 했지?”

“네. 이쪽으로 오려던 거 제가 잘 타일러서 다른 길로 보냈어요. 다른 애들은 지금쯤 거의 미로 끝까지 갔을 거예요.”

“넌 어떻게 중간에 빠져나왔어?”

“별 거 없어요. 지갑 흘렸다고 뻥치고 다시 돌아왔죠. 아, 예원 언니는 태현이네랑 같이 있으니 걱정 마세요.”

저 잘했죠? 하고 말하듯 강하늘이 엣헴 하며 가슴을 폈다. 피식 웃은 안수호가 강하늘의 정수리를 쓰다듬듯 톡톡 두드렸다.

“그럼 우리도 슬슬 나가자. 다나카 진은 지금쯤 흑룡회 헌터들이 잡아두고 있겠지만, 혹시 다른 여명단원이 올 수도 있으니까.”

“네. 얼른 나가요 우리.”

두 사람이 나란히 뚜벅뚜벅 출구 방향으로 걸어갔다. 사방이 거울이라 헷갈릴 만도 했지만 초인의 감각 앞에선 그리 큰 장애물도 아니었다. 심지어 강하늘은 이미 출구 직전까지 한 번 가봤기에 두 사람은 더욱 수월하게 길을 찾아갔다.

‘태초의 은도 손에 넣었고. 다나카 진은 설아현한테 맡겨뒀으니 괜찮겠지. 암살팀이라든가 미야라든가 걸리는 게 한두 가지 있긴 하지만 일단 목적은 이뤘어. 남은 건 예원이를 데리고 놀이공원 바깥으로 나가기만 하면…….’

­띠리리리리리!

그때 안수호의 핸드폰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설아현에게서 온 전화.

다나카 진에 대한 보고인가 싶어 안수호가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수호 씨. 문제가 생겼어요.

이어지는 설아현의 말에 안수호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습격자가 한 명이 아니라 셋이었다고요?”

­처음엔 한 명이었는데 나중에 둘이 추가로 더 붙었대요. 다행히 저희 쪽 사람들은 무사하지만, 추가 습격자 중 한 명이 한가람 헌터를 납치해 도망쳤다고 해요. 그래서 수호 씨한테 연락을…….

“한가람 헌터가 납치된 게 정확히 언제입니까?”

­20분 전이에요.

20분. 한가람이 있는 위치에서 놀이공원까지 오기엔 빠듯한 시간. 허나 그를 납치한 이가 그에게서 거래 장소에 대한 정보를 캐내 놀이공원에 대기하고 있던 동료에게 전달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아현 씨. 추가로 뭔가 나오는 게 있으면 바로 연락주세요.”

­죄송해요 수호 씨. 수호 씨가 미리 경고해줬는데도 이렇게 실망스런 모습 보여드려서…….

“아닙니다. 적이 셋이나 된다는 건 저조차 예상 못한 일인걸요. 아현 씨 탓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안수호가 전화를 끊자 강하늘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이에 안수호가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아. 혹시 모르니까 너한테 빌린 능력치도 지금 다 반환할게.”

현재 안수호는 연심의 벚꽃의 효과로 강하늘의 초능력과 능력치를 빌려온 상태였다. 당장 그가 조금 전 한가람으로 변신한 것도 강하늘의 아바타 능력 덕분.

때문에 안수호에게 능력을 빌려준 강하늘은 지금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기습이라도 당하면 대처하지도 못하고 당해버리겠지.

그렇지만.

“아뇨. 일단 반환하지 말고 가지고 계세요.”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랬다간 네가­”

“무슨 말씀인지는 알아요. 그렇지만 한 번 능력치를 반환하면 24시간 이내엔 다시 못 빌려주잖아요.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데. 일단은 이대로 있어요.”

그녀의 안전 따위 도외시한 의견이었다. 그러나 일리 있는 의견이요, 효율적인 의견이기도 했다.

그 사이에서 잠시 갈등하던 안수호가 이내 힘겹게 대답했다.

“……만약 네가 위험해질 것 같으면 곧바로 돌려줄게.”

“그러지 말고 그냥 오빠가 절 지켜주면 되잖아요. 지금 오빠 스펙만 보면 류태현보다 쎌 걸요? 왜요? 그런데도 자신 없어요?”

안수호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일부러 가볍게 말하는 그 배려에 안수호가 고맙다며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결국 안수호는 강하늘에게 능력을 돌려주지 않은 채, 그녀의 손을 붙잡고 미로의 출구를 향해 내달렸다.

이윽고 두 사람이 출구 직전에 다다른 순간.

­타아앙!!

커다란 총성이 미로에 메아리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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