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46화 (147/266)

〈 146화 〉 145. 놀이공원 데이트(3)

* * *

국내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 네버랜드.

그 내부는 네버랜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동화풍으로 꾸며져 있었다.

꿈 속 세상을 표현한 듯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건물과 조형물들은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함은 물론이요, 어른들이 보기에도 나름의 멋이 있는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덕분에 네버랜드는 가족 단위 고객뿐 아니라 커플 이용객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특히 원내 곳곳에 위치한 다양한 컨셉의 촬영 스팟들은 커플들에게 있어 반드시 들러야 하는 단골 코스로 유명할 정도.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장미 정원에서 한창 사진 촬영 중이었다.

“그럼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소리와 함께 폰 렌즈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그대로 셔터를 몇 번 더 누른 이름 모를 남자가 이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다 찍었습니다.”

“넹 감사해요.”

강하늘이 히히덕거리며 폰을 건네받았다. 사진을 찍어준 남자의 시선이 잠시 강하늘에게 머물렀다 이내 내게 향했다. 그러곤 내 옆에 앉아 있는 지예원을 바라본다.

“오빠! 언니! 이거 보세요. 사진 진짜 잘 나왔어요! 진짜 완전 화보처럼 나왔다니까요?”

“나 원. 얼마나 잘 나왔길래 그래?”

기쁜 얼굴로 호들갑 떠는 강하늘의 뒤편에서 남자가 언짢은 건지 부러운 건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묘하게 힘없는 발걸음으로 일행에게 돌아갔다.

“어때요? 진짜 이쁘게 나왔죠?”

“오.”

화면 속에는 장미 덩굴로 만들어진 아치 아래 서있는 우리 세 사람이 찍혀 있었다. 강하늘의 말마따나 꼭 화보를 보는 느낌이었다. 배경도 배경이지만 지예원과 강하늘 둘 다 한 미모 하는 여성들이었기에.

“둘 다 잘 나왔네. 이렇게 보니까 내가 진짜 복에 겨운 놈으로 보이는걸?”

“새삼스럽게 무슨. 복에 겨운 놈 맞잖아.”

“그니까요. 이렇게 예쁜 여자들이랑 대놓고 양다리 걸치고 있는데 그게 복에 겨운 게 아니면 뭔데요? 설마 둘로는 부족하다는 건 아니죠?”

강하늘의 장난스러운 핀잔에 나는 무안하게 웃었다. 그 말대로 두 사람은 내게 충분하다 못해 과분한 여자들이었다. 나는 오늘따라 유독 빛나 보이는 두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둘이 엄청 대비되네.’

두 사람의 패션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

먼저 강하늘은 전체적으로 발랄하고 화사한 느낌이었다.

눈부실 정도로 흰 블라우스에 핑크색 테니스 스커트. 거기에 발목을 감싸는 하얀 스웨이드 부츠로 포인트를 줬다. 더불어 끄트머리가 하늘색으로 물든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싱그러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야말로 갓 스무 살이 된 여자아이가 한껏 꾸민 듯한 발랄한 패션.

반면 지예원에게선 강하늘과 반대되는 캐주얼함이 엿보였다.

오버사이즈 파랑 맨투맨에 아주 짧은 핫팬츠. 그 아래로 이어지는 검정색 레깅스와 깔끔한 컨버스화. 캐주얼하면서도 후줄근하진 않은 그 모습에선 묘한 절제미나 세련미가 느껴졌다.

거기에 더해 지예원은 혹시나 자길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흰색 캡모자에 까만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팬들 몰래 외출 나온 연예인 같았다.

“왜 그러세요?”

“뭘 그렇게 빤히 봐?”

두 여자가 내게 동시에 물었다. 양옆에서 내게 꼬옥 달라붙는 그 모습에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래. 내가 복에 겨운 놈이지.’

주위를 둘러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다들 한 번씩은 내 쪽을 흘긋 바라보고 지나갔다. 보란 듯이 양 옆에 여자 둘을 끼고 다녔으니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두 사람과 함께 외출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행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놀이공원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눈앞에 다양한 어트랙션들이 펼쳐졌다.

‘샤오메이와 한가람의 거래 시간은 오후 2시. 대충 4시간 정도 남았나.’

이런저런 준비 시간을 감안해도 아직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너무 여유부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거래 시간이 되기 전까진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고로 일단은 모처럼의 놀이공원을 즐기도록 하자.

“기구가 진짜 많긴 하네. 우리 뭐부터 탈까?”

“일단 익스트림코스터 예약부터 해두죠! 그거 그냥 기다리면 두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데요!”

“매표소에서 받은 어플로 예약하면 된다고 했지?”

“네. 맞아요.”

네버랜드는 매 정각마다 각 어트랙션의 우선 입장권 예약을 받는다. 가령 12시 정각에 예약에 성공하면 1시간 뒤인 1시부터 1시 20분 사이에 해당 어트랙션을 기다리지 않고 탑승할 수 있는 구조.

마침 10시 정각 직전이었기에 어플을 킨 나는 시간이 10시가 되자마자 예약 버튼을 눌렀다.

“11시 타임 세 명 예약했어. 그럼 그때까진 뭐 하고 있지?”

“1시간이면 놀이기구 하나나 둘 정도 타면 되지 않을까요? 적당히 돌아다니다 재밌어 보이는 거 있으면 그거 타죠!”

“그럼 저건 어때?”

지예원이 멀찍이 있는 놀이기구를 가리켰다.

“회전컵?”

회전컵. 원래 세상에서도 흔히 봤던, 커다란 컵 안에 들어가 가운데 있는 핸들을 돌리며 이용객이 기구의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놀이기구.

간혹 멀미에 약한 사람이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확실히 무난한 선택지였다. 앞에 기다리는 사람도 거의 없어 보이고.

“응. 앞에 간판 보니까 고강도 소재 접목 어쩌구 하면서 초인이 돌려도 끄떡없게 만들었다는데 궁금하지 않아?”

“그건 좀 궁금하긴 하네.”

“저도요. 얼마나 빠르게 돌릴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그럼 가보자.”

지예원의 의견에 따라 우리 세 사람은 회전컵 앞에 도착했다. 줄도 얼마 없었고 워낙 회전율이 높은 놀이기구라 금방 우리 차례가 되었다.

“핸들은 누가 돌릴까?”

“여기선 제일 힘 센 사람이 돌려야 재밌지 않을까요? 일단 전 아니에요.”

“그럼 안수호? 아니면 난가?”

“글쎄. 핸들이 크니까 둘이서 같이 돌려도 되지 않을까?”

“그러다 부러지면?”

“그렇게 튼튼하다고 앞에다 광고까지 붙여놨는데 설마 부러질 리가.”

그러는 사이 기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컵들이 올라간 거대한 원판 모양의 바닥이 회전하고 우리가 탑승한 컵도 자동으로 조금씩 회전했다.

“일단 돌려보자.”

“그래.”

우리 두 사람은 가운데 있는 철제 핸들을 돌렸다. 확실히 묵직한 맛이 있는 것이 어지간히 강하게 돌려도 망가지진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있는 힘껏 핸들을 돌리기 시작하자, 점차 컵의 회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오, 오오?”

강하늘이 당황과 흥분이 합쳐진 표정으로 입가를 씰룩였다. 그녀가 컵 가장자리 손잡이를 세게 붙잡았다.

광고 문구가 허위는 아니었는지, 못해도 다른 컵과 비교해서 네다섯 배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음에도 핸들은 멀쩡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괜히 오기가 생긴 나와 지예원은 핸들을 돌리는 손놀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어, 어어?”

옆에서 당황한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우리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후.

“으에에에에…….”

이내 기구가 멈추고 고개를 들자, 강하늘이 손잡이에 기댄 채 골골대고 있었다. 반면 나와 지예원은 멀쩡했다. 신체 강도나 평형 감각, 뭐 그런 부분에서의 차이 때문이겠지.

“괜찮아 하늘아?”

“괜찮아요. 괜찮……은데. 세상이, 세상이 빙글빙글 도네요오…….”

굽 있는 부츠를 신은 채로 비틀거리는 모양새가 꽤 위태로워 보였다. 내가 말없이 팔을 건네자 그녀가 지하철 손잡이에 기대듯 내 팔에 포옥 안겼다.

“되게 힘들어하네. 좀 자제할 걸 그랬나?”

“아니에요 언니. 돌 때는 진짜 재밌었어요. 근데, 이게 멈추고 나니까 갑자기 멀미가 확 올라와서…….”

“힘들면 좀 쉴까? 어디 앉아 있을래?”

“아뇨. 그냥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아으으…….”

취한 것처럼 내 몸에 매달리다시피 기대는 강하늘. 그런 그녀를 보며 나와 지예원이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강하늘은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그 뒤로도 한동안 계속 골골댔다. 덕분에 시간이 애매해진 우리는 다른 놀이기구를 타는 대신 이곳저곳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마침내 11시가 되었고, 우리는 네버랜드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익스트림코스터에 탑승했다.

최대 높이만 해도 88미터에 720도 회전트랙부터 시작해 온갖 기상천외한 궤적을 자랑하는 아찔한 절규머신!

“……으음. 의외로 평범했네요. 광고에선 성인 남자도 눈물 흘릴 정도로 무섭다고 그랬는데.”

허나 그 아찔함이란 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인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롤러코스터의 재미는 보통 속도감이나 낙하감에서 오는데, 따라서 신체 강도나 자극, 압력에 대한 내성이 강한 초인은 상대적으로 그 재미가 덜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의 회전컵과 달리 초인이라고 해서 딱히 속도가 빨라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때문에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일반인들한텐 충분히 스릴 넘쳤을걸? 봐봐. 사람들 반응 보니 누가 초인이고 누가 일반인인지 뻔히 보이네.”

지예원의 말대로 출구에서는 탑승객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거나 안색이 하얗게 질린 이들은 아마도 일반인. 상대적으로 멀쩡한 이들이 아마 초인이겠지.

‘대부분 커플들이네.’

성별에 관계없이 초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반인 이성과 함께 온 것 같았다. 우리처럼 초인만으로 이루어진 조합은 보이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온 우리는 다음 놀이기구를 물색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정도로 끌리는 기구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전에 탄 롤러코스터가 생각보다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성민이 초인 주제에 왜 놀이공원에 오냐고 따지던 것도 이해가 되네.’

초인에게 있어 놀이공원은 계륵 같은 곳이었다. 볼거리는 충분하고 어트랙션도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흔히 놀이공원의 명물로 꼽히는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같은 기구의 ‘스릴’을 느끼기에 초인의 몸은 강인해도 너무 강인했다.

그나마 앞서 탔던 회전컵처럼 초인의 사양에 맞춘 기구도 종종 있곤 하지만…….

“어!”

그때 강하늘이 무언가 발견한 듯 탄성을 질렀다.

“여기 디스코 팡팡도 있네요! 우리 다음엔 저거 타보면 어때요?”

“디스코 팡팡?”

“네. 혹시 타본 적 없으세요?”

“응. 한 번도.”

디스코 팡팡이면 월미도에 있는 그건가. 대충 뭔지는 알지만 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기껏해야 어쩌다 유튜브에 뜬 영상을 보고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만 아는 정도.

‘커다란 원판이 뱅글뱅글 돌면서 클럽 음악에 DJ가 적당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대충 그런 기구였지 아마?’

기구 자체의 속도감이나 스릴 보다는 음악과 분위기를 즐기는 기구라. 확실히 초인인 우리들에겐 그 편이 오히려 더 즐거울 지도 모른다.

“언니는요? 언니는 타본 적 있으세요?”

“나도 처음이야. 하늘이 넌 자주 타봤나 보네?”

“네! 고딩 때 거의 디팡 죽순이였거든요! 본가가 인천이라 일주일에도 2, 3번씩 친구들이랑 월미도로 놀러가고 그랬어요.”

정작 강하늘은 그런 이유보다는 단순히 오랜만에 디팡을 타보고 싶었던 것뿐인 것 같지만.

“그럼 한 번 가볼까?”

디스코 팡팡 쪽으로 이동하자 시끄러운 음악이 스피커에서 뿜뿜 울려댔다. 빠른 비트의 클럽 음악이나 아이돌 노래들.

그중에선 귀에 익숙한 노래도 꽤 있었다. 원래 세상에 있던 아이돌 중 이쪽 세상에서도 존재하는 그룹이 꽤 되는 모양.

­이야. 거기 커플들 사이에 낀 남학생 둘 저거저거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왼쪽에도 커플 오른쪽에도 커플……. 어어어 갑자기 고개는 왜 숙여? 울어? 우는 거야? 하이고. 거기 왼쪽에 커플들 자리 좀 바꿔줍시다. 안 그래도 주말에 남자들끼리만 놀이공원 온 것도 서러운데, 커플 사이에 껴있으니까 더 슬퍼 보여!

­안 되겠다. 저 불쌍한 남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턴은 이제 멘트 없이 빡세게 돌려서 커플들 다 찢어놓겠습니다. 자, 뮤직 큐!

가까이 다가가자 DJ의 경쾌한 멘트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나와 지예원은 그 높은 텐션에 살짝 질려 어색해하는 반면, 강하늘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벌써부터 신나하고 있었다.

­자, 이번 턴은 여기까지! 다들 수고하셨고 놓고 가는 물건 없나 고개 잘 돌리면서 확인들 해 보시고. 그럼 다음 분들 입장하시죠!

20분 정도 기다리자 우리 차례가 되었다. 적당히 자리에 앉은 나는 생각보다 커다란 기구의 크기에 조금 놀랐다. 영상으로 본 크기보다 거의 두 배는 더 커보였다.

“하늘아. 원래 디팡이란 게 이렇게 큰 기구였나?”

“아뇨? 저도 이렇게 큰 건 처음 타 봐요. 그래도 크기가 크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강하늘이 입구에서 가져온 담요를 허리에 능숙하게 두르며 말했다.

확실히 원심력을 이용하는 기구니 직경이 커지면 커질수록 속도가 더 빨라지긴 할 거다. 그래봐야 일반인이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강도겠지만…….

­구구구궁…….

­자 출발합니다! 양팔 벌려서 손잡이 꽉 붙들어 매시고! 손잡이 놓고 구르고 묘기 부리는 거 다 상관없지만 그러다 다치면 저희는 책임 하나도 안 진다는 점! 다들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럼 뮤직 스타트!

그 순간 경쾌한 비트와 함께 기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덜컹거림도 심해서 하마터면 손잡이를 놓칠 뻔했다.

“꺗!”

오른편에 앉은 지예원의 몸이 부웅 떠올랐다. 그녀가 귀여운 비명을 뱉으며 날 붙잡았다. 나처럼 방심하고 있다 손잡이를 놓친 모양.

“괜찮아?”

“어? 으응. 새, 생각보다 빠르네?”

지예원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내게서 떨어졌다. 반면 강하늘은 능숙하게 한 팔로 몸을 지탱한 채 반대 팔을 붕붕 휘두르며 신나게 기구를 즐기고 있었다.

­어라. 전 차례는 완전 커플밭이었는데 이번엔 별로 안 보이네? 남자도 여자도 죄다 동성친구들 밖에 없어! 게다가 거기 카키색 스웨터 설마 아버님이세요? 옆에는 따님? 이야, 건전해도 너무 건전하다. 이러면 제가 입을 털고 싶어도 털 수가 없어요! 응? 으음?

기구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음에도 나는 DJ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는 걸 느꼈다. 정확히는 내 옆에서 신나게 즐기고 있는 강하늘에게로.

­거기 하늘색 투톤 헤어 친구 진짜 재밌게 탄다. 디팡 한두 번 타본 게 아닌가봐? 혹시 올해로 몇 살?

“스무 살이요! 스무 살!”

­이제 갓 스물이야? 어쩐지 머리카락 색도 그렇고 되게 파릇파릇하더라. 근데 잘 타도 진짜 너무 잘 타고 안정감 있는데 혹시 초인인가?

“맞아요!”

­키야. 여러분. 이게 초인분들이 또 저한테는 애증의 손님들입니다. 이분들이 워낙에 힘이 세고 균형감각이 좋아서 아무리 튕겨도 넘어지지를 않으니까 재미가 없어요! 근데 또 손잡이 놓쳐서 굴러도 다칠 염려가 없으니 편하긴 편해! 저기 저 하늘색 친구도 봐! 거의 양손 다 놓다시피 하는데도 의자에서 떨어지질 않네! 아주 우리 안전요원보다 고수야 고수!

“아하하하하핫!”

강하늘이 즐거운 표정으로 과시하듯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같은 초인인 나나 지예원은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균형도 잡기 힘든데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 수많은 경험으로 회전이나 덜컹거림에 숙달된 덕분이겠지.

­뭐야뭐야. 그냥 대놓고 서있는데도 흔들리지를 않네? 이거 죄송합니다 손님들. 아무래도 이번 턴 조금 거칠 게 돌려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오늘 기필코 저 하늘색 친구 넘어뜨리고 말겠습니다. 자, 볼륨 업!!

DJ의 선언과 함께 기구의 회전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사방에서 즐거운 비명이 터져나오는 한편, 강하늘은 여전히 별 거 아니라는 듯 자신의 균형 감각을 과시했다.

“오빠. 제가 재밌는 거 보여줄까요?”

강하늘이 날 돌아보며 살짝 윙크했다. 재밌는 거라니? 하고 물어볼 새도 없이 그녀가 총총 걸음으로 기구 중앙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능숙하게 회전 속도에 맞춰 뒷걸음질 치며 DJ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명백한 도발이었지만 일반인 이용객이 섞여있기에 이 이상 기구를 난폭하게 운전할 수도 없을 터.

이를 증명하듯 DJ의 한탄 섞인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새어나왔다.

­아! 여러분! 제가 지금 너무 화나거든요! 제가 디팡 DJ만 15년째인데 이렇게 자존심 상한 적이 처음입니다 진짜!

“아하하핫! 그래도 여기 디팡이 제가 타본 디팡 중에 제일 재밌어요!”

­아주 병 주고 약 주고 여유만만이네 그냥!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친구! 기다리시는 분들 즐겁게 뭐 재미난 묘기라도 하나 보여주고 들어갑시다. 초인이면 그 정돈 할 수 있잖아?

“당근이죠!”

자신 있게 대답한 강하늘이 제자리에서 통통 뛰며 시동을 걸더니 그대로 내 쪽으로 달려왔다.

­탓!

그러더니 원래 앉아 있던 자리를 밟고 그대로 날아올라 백플립을 시전했다. 공중에서 두 바퀴 회전한 뒤 다시 중앙에 착지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나 쟤 넘어뜨리는 거 포기. 저거 완전 고인물도 아니고 썩은물이야 썩은물. 근데 하늘색 친구. 방금 백플립 우리 채널에 영상 클립으로 업로드하고 싶은데 혹시 괜찮을까?

“좋아요!”

그 사이 카메라는 또 언제 발견했는지, 강하늘이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훌륭한 서비스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인터넷 방송에서의 모습도 그렇고, 그녀는 남들에게 관심 받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 것 같았다.

“하늘이 쟤 진짜 대단하다.”

“그러게. 근데 백플립 정도는 예원이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아?”

“할 수야 있지. 근데 그거랑 쟤처럼 남들 앞에 나설 수 있는 건 별개니까. 난 저렇게 못해.”

그 말에 나는 지예원이 강하늘처럼 디팡 한 가운데에서 발랄한 표정과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음. 확실히 어울리진 않네.

­자. 멋진 묘기와 영상각 뽑아준 우리 하늘색 초인 친구한테 다시 한 번 박수! 그럼 슬슬 다음 목표를 잡아보죠! 어디보자, 거기 빡빡머리 친구 유독 눈에 띄는데 혹시 군인인가? 응? 해병대라고? 마! 니 해병 몇 기가!?

DJ의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이용객에게 향하고, 강하늘이 총총 걸음으로 다시 내 옆에 와서 앉았다. 강하늘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배시시 웃는다.

“어땠어요 오빠? 저 되게 잘 타죠?”

“응. 진짜 잘 타더라. 무대 매너나 서비스도 좋고. 역시 방송하는 사람은 뭔가 다르긴 하네.”

“히히히. 그렇죠? 제가 원래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해서­”

“응? 방송? 그게 무슨 소리야?”

지예원의 물음에 나와 강하늘의 얼굴에 동시에 아차 하는 기색이 스쳤다. 강하늘이 빠르게 수습에 나섰다.

“어, 언니! 그게 아니라요. 그, 제가 예전에 방송사?에서 알바를 했. 아니, 그쪽 일에 관심이 많아서 공부를 좀­”

“하늘이 너 혹시 인터넷 방송해?”

어떻게든 얼버무리려 했지만 지예원은 곧바로 정곡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 날카로운 물음에 강하늘이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문다. 사실상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제스처.

“아무래도 맞나 보네. 무슨 일 하냐고 물었을 때 얼버무리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바, 방송은 맞지만 언니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방송은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게임 방송……이거든요?”

“진짜?”

“진짜야. 나도 몇 번 봤거든. 건전하게 게임만 하는 방송이었어.”

내 변호에 지예원이 잠시 미심쩍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더니 이내 납득했다는 듯 시선을 거뒀다. 강하늘은 몰라도 내가 거짓말을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휴우.”

강하늘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지예원이 허를 찌르듯 물었다.

“근데 하늘이가 방송이라니 되게 궁금하네. 방송 플랫폼이랑 닉네임이 뭔데? 떳떳하고 건전한 방송이면 나도 함 봐도 되지?”

“네? 어, 언니가요? 왜요?”

“왜. 나한테 못 보여줄 이유라도 있어?”

“그, 그런 건 아니지만 부끄럽잖아요! 오빠한테 들켰을 때도 쪽팔려서 죽고 싶을 정도였다고요! 절대 안 말해줄 거예요!”

“중간고사 족보 공유해준 은혜는 벌써 잊었나 보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거든요! 절대 안 돼요! 저어어얼대!”

강하늘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모습에 지예원이 풋 웃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쩔 수 없지. 네 방송 캐보는 건 깨끗하게 포기할게. 나름 네 사생활이니까. 존중해줘야지.”

그렇게 말한 지예원이 내 귓가에 대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나중에 따로 알려줘.”

짓궂은 웃음기가 떠오른 그 얼굴은 그야말로 요망한 악마 같았다. 그녀는 모처럼 알게 된 강하늘의 약점을 결코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강하늘과의 의리를 생각하면 결코 말해선 안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지예원이 방송 가지고 강하늘을 짓궂게 놀리는 모습이 보고 싶기도 했다. 하늘이는 워낙 감정도 풍부하고 리액션도 좋아서 묘하게 괴롭히는 맛이 있었기에.

‘진짜 고민되네. 이를 어쩐다?’

팔자에도 없는 참 행복한 고민이었다. 이윽고 기구가 멈추고 나는 지예원에게 무어라 확답하지 않은 채 기구에서 내려왔다. 지예원은 구태여 날 보채지 않았다. 마치 내가 결국 말해주리라고 확신한 것처럼.

“끄으으으응!!”

한껏 즐긴 강하늘이 상쾌하게 기지개를 켰다. 지예원과 내 사이에 은밀한 거래가 오갈뻔했음을 알지 못한 채, 그녀가 허리에 두르고 있던 담요를 반납하며 말했다.

“슬슬 점심 먹으러 갈까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시간을 확인하자 막 정오를 넘긴 시점이었다.

즉, 샤오메이가 한가람을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앞으로 약 두 시간.

‘점심 먹고 나서 슬슬 준비해야겠네.’

머릿속으로 원작 스토리와 계획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원내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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