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43화 (144/266)

〈 143화 〉 142. 민채령(2)

* * *

소원석.

그것은 내부에 금빛 아지랑이가 넘실거리는 붉은색 보석의 형태를 하고 있다. 효과는 그 이름대로 사용자의 소원을 이뤄주는 것이며, 그 소원의 범위에는 일절 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소원석은 ‘초인들의 시대’에 등장했던 온갖 아티펙트 중에서도 명실상부 가장 가치가 높은 아티펙트였다.

이를 증명하듯 관련 에피소드에서는 여러 길드나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여명단을 위시한 온갖 빌런 단체들까지 소원석을 탐냈다.

최강의 힘, 막강한 권력, 영원한 삶 등.

소원석에는 어떠한 소원이라도 다 들어줄 수 있는 힘이 내재되어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소원석이 정말 만능인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원석에 빌 수 있는 소원 자체에는 제한이 없으나, 소원석은 절대 사용자의 소원을 완벽하게 이뤄주지 않는다. 또한 소원을 이뤄주는 방식 또한 악의적일 정도로 제멋대로다.

가령 예전에 한 남자가 소원석으로 불로불사를 이루려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완벽한 불로불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천 년을 족히 살 수 있는 육체를 얻긴 했다.

그러나 세포의 생명력이나 재생력이 너무나도 강해진 탓에, 그는 전신에 암과 같은 악성 종양을 달고 살게 되었다. 종양을 잘라낸다 해도 곧바로 새로운 종양이 자라났으며 고통을 못 이겨 자살하려 해도 죽을 수조차 없었다. 이것이 소원석의 위험성을 경고할 때 대표로 드는 사례였다.

이처럼 소원석은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사용에 크나큰 리스크를 동반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당초 바랐던 소원을 어느 정도 이뤄주는 것은 사실. 이용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세상에는 소원석이 아니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염원이 차고 넘쳤다. 개중에는 저러한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소원석을 사용하겠다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기에 소원석은 초인들의 시대 세상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아티펙트로 거론되곤 했다. 액수로 따지면 수백 억 이상. 탈리스만조차 ‘따위’로 만들어버리는 가장 값지고 가장 희귀한 아티펙트.

그런데.

‘그게 왜 민채령한테 있는데?’

안수호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민채령의 상태창 제일 하단, ‘보유 아티펙트 : 소원석’이라는 글자에 그의 시선이 집중된다.

­띠링!

그러자 자신의 상태창을 열람할 때처럼 소원석의 상세 정보가 눈앞에 떠올랐다.

대부분은 안수호도 알고 있는 소원석 자체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제일 마지막줄에 결코 흘려 넘길 수 없는 서술이 있었으니.

[ 현재 ‘소원석’은 이미 사용이 완료되어 사용자 ‘민채령’에게 정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

소원석이 이미 사용되었다. 즉, 민채령은 이미 자신의 소원을 소원석에 빌었고 그에 걸맞은 결과를 얻었다.

그 사실만으로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물며 무언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민채령이 소원을 빈 것이 최근에 일어난 일이 아닌 이상, 안수호가 만난 민채령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미 소원을 빈 뒤의 민채령’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제아무리 달라질 게 없다 한들 머리가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민채령이 어떻게 소원석을 얻은 거지?

그보다 도대체 민채령은 소원석에 무슨 소원을 빈 거지?

설마 그 소원이란 게 조금 전에 말한 ‘꿈’과 관련이 있나?

그렇다면 혹시, 강하늘과도 무언가 연관이?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불안감과 초조함이 그의 뇌리를 가득 채운다. 그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굳고 입안이 바싹 마르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민채령은 마지막 담배를 전부 피웠다. 꽁초가 수북이 쌓인 종이컵을 든 채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슬슬 들어가자. 다른 애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안수호가 표정을 다잡았다. 자신의 동요를 민채령이 알아차리지 못하게끔. 그 노력이 효과를 본 것인가, 민채령은 별다른 추궁 없이 가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 강하늘이 1분반 애들하고 같이 놀이공원에 놀러 간다던데.”

순간 안수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얼굴에 흠칫 놀란 기색이 스친다.

“왜 그러니?”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안수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자 민채령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김빠졌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그럼 됐고.”

“…….”

“아무튼. 다른 학생들하고 같이 행동할 테니 위험한 상황은 안 생기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마침 너 내일 근무도 없는데 따라가 보면 어떨까 싶어서.”

“……안 그래도 따라가려고 했습니다.”

민채령은 강하늘이 류태현 일행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 본래 강하늘은 당일 사건에 휘말릴까봐 놀이공원에 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다 안수호가 마침 그날 놀이공원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의견을 바꿔 그와 함께 가고자 한 것이었다.

허나 민채령은 그러한 내막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강하늘이 그저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놀러가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안수호는 그 부분을 정정하려다가, 원작 에피소드니 태초의 은에 대해서 귀찮게 돌려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뭐야. 괜히 내가 말 안 했어도 됐네. 자기 여자친구 일이라서 그런가? 되게 철두철미하네?”

“놀이공원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걱정되더라고요. 하늘이가 바깥에 나갔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그거야 그렇지. 나주용한텐 내가 따로 경고했으니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동감입니다.”

“그럼 당일 행동은 어떻게 할 거야? 학생들 노는 곳에 눈치 없이 끼어들려고?”

“그거야 뭐 양해를 구해야죠. 다행히 내일 놀러가는 애들 대부분 저랑 안면을 튼 상태라서­”

­띠리리리리리!

그때, 민채령의 핸드폰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바지 주머니로 향했던 그녀의 손이 우뚝 멈췄다.

­띠리리리리리!

바지 주머니에는 그녀의 핸드폰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벨소리가 울리는 건 그쪽이 아니었다. 슬쩍 안수호쪽으로 시선을 보낸 그녀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외투 안쪽에서 울리던 또 다른 핸드폰을 꺼냈다.

“……먼저 들어가줄래?”

민채령이 안수호를 의식하며 전화를 받았다. 반면 안수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직장인이 업무용과 개인용 핸드폰을 따로 두는 거야 그다지 특이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럼 먼저 들어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안수호는 모르고 있었다. 방금 민채령이 꺼내든 핸드폰은 그런 표면적인 용도가 아니었다. 그 핸드폰은 민채령의 뒷면과 연결된, 그녀가 음지에서 일할 때 쓰는 핸드폰이었다.

“……용건이나 보고사항은 가급적 문자로 하라고 했을 텐데. 왜 멋대로 전화질이니?”

안수호가 들어가자 민채령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그녀의 부하였다. 부하라고는 해도 경비대 부하들과는 다른, 음지에서 구축한 커넥션이었지만.

­죄,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워낙 급한 일이라 직접 전화로 연락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급한 일?”

그 보고에 민채령의 얼굴에 불안감이 떠올랐다.

특수대책과 안에서 그렇듯 음지에서도 민채령의 권위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부하들은 그녀의 명령을 목숨과도 같이 지키려고 했다. 오히려 음지의 부하들은 그녀의 잔혹한 면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녀에게 복종했다.

헌데 그런 부하가 명령을 무시하면서까지 전화할 정도로 급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전화를­”

­박지현이 도망쳤습니다.

“……뭐?”

다음 순간, 민채령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

부하의 전화를 받은 뒤, 민채령은 곧바로 안전가옥으로 향했다. 회식 자리에는 ‘급한 일이 생겼으니 알아서 적당히 마무리하고 해산해라’라며 카드만 던져주고 왔다.

그 행동에 이태호의 낯빛이 어두워지고 조유리와 배영웅이 쾌재를 불렀지만, 민채령은 그러한 반응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띠리링.

복잡한 보안장치를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좀 전에 그녀에게 전화했던 부하가 그녀를 맞이했다. 의정부 슬럼가에 널리고 널린 무호적자 여성으로, 민채령에게는 임시로 ‘노아’라는 가명으로 불리는 부하였다.

“왜 너만 있어? 김호철은?”

“……죽었습니다.”

노아의 대답에 민채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자그마한 반응에도 노아는 흠칫흠칫 놀랐다. 그녀가 민채령의 눈치를 보며 작게 말했다.

“일단 지하로 가시죠. 가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래.”

두 사람은 박지현과 유현호가 감금되어 있는 지하 시설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 노아가 입을 열었다.

“30분 전에 평소처럼 감시역을 교대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김호철이 입구에 나오지를 않더군요.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없고, 그래서 집 안 어딘가에 있겠다 싶어 찾다가 지하에 내려갔는데…….”

두 사람이 지하로 내려가자 굳게 잠긴 철문이 다닥다닥 늘어선 긴 복도가 이어졌다. 민채령의 시선이 그중 유일하게 활짝 열려있는 철문으로 향했다.

박지현이 감금되어 있던 곳.

두 사람이 그 방으로 향하자, 활짝 열린 철문 앞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노아보다 앞선 시간대에 감시역을 맡고 있던 민채령의 부하, 김호철이었다.

“……제가 발견했을 땐 이미 이 상태였습니다. 온몸에 피가 한 방울도 안 남아있는 걸 보고 곧바로 박지현에게 당한 거구나 알아차렸죠.”

그 말대로 김호철의 시신은 미이라처럼 바싹 말라있었다. 그러나 민채령의 관심사는 그쪽이 아니었다.

“얘가 왜 여기 있지? 감금실 문은 왜 열려있고?”

“그게…….”

잠시 망설이던 노아가 이내 들고 있던 태블릿을 건넸다.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거라며. 노아가 감금실에 연결되어 있던 CCTV 영상을 틀었다.

영상 속에는 침대 위에 벨트로 고정되어 있는 박지현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몸에 실오라기 한 장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박지현은 잔잔하게 숨만 쉴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 정지화상 같은 영상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김호철이 감금실 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난 누구도 감금실에 출입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왜 들어온 거지?”

“…………보시면 아실 겁니다.”

노아가 차마 말하기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직후 영상 속 김호철이 희희낙락한 얼굴로 박지현의 위에 올라타더니 바지 버클을 풀기 시작했다. 민채령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진다.

“하. 이게 무슨…….”

“…………과거 영상을 찾아보니 김호철이 감시역을 맡을 때마다 영상 기록이 1시간 정도씩 비더군요. 아마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겁니다.”

CCTV 화면 속에는 성욕에 잡아먹힌 김호철이 의기양양하게 자기 물건을 껄떡대고 있었다. 아무리 여자에 굶주렸다고 해도 들키면 민채령이 가만 두지 않을 텐데. 김호철은 그런 것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때.

“아.”

김호철이 박지현의 몸을 옭아맨 구속용 벨트를 푼 순간, 미동도 하지 않던 박지현의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김호철을 꽈악 안은 박지현이 그의 목에 이빨을 꽂아 넣었다.

김호철이 기절하듯 침대 아래로 풀썩 쓰러졌다. 박지현의 흡혈에는 대상을 매료하고 무력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나마 김호철의 경우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은 채 입구로 기어갔으나, 목에 달라붙은 박지현을 떼어내지 못한 이상 그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툭.

얼마 지나지 않아 김호철이 다시 한 번 쓰러졌다. 딱 지금 그의 시체가 있는 위치였다. 김호철이 쓰러진 뒤로도 박지현은 한참 동안 그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몸에 남은 단 한 방울의 피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그렇게 5분여가 지나고. 마침내 흡혈을 마친 박지현이 터덜터덜 감금실을 나서는 것으로 영상이 끝났다.

“…….”

노아가 슬쩍 민채령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덤덤한 표정으로 재생이 끝난 태블릿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핏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노아는 저 잔잔함 아래 폭풍 같은 분노가 휘몰아치고 있음을 직감했다.

‘김호철 이 미친 새끼. 여자가 고프면 차라리 사창가를 가든가! 왜 움직이지도 않는 반 시체에 욕정해서는……!’

노아는 이미 죽은 김호철을 다시 한 번 죽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노아.”

그때 마침내 민채령이 입을 열었다. 그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노아가 말을 어버버버 더듬으며 대답하자.

“속초경찰서 박 경위한테 내 이름으로 연락해. 지금 당장 이 안전가옥 주변 CCTV 전부 조회해달라고. 그리고 서하한테 연락해서 당장 여기로 오라 그래.”

“네, 넵!”

담담한 말씨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분노와 짜증에 노아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가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거는 한편, 민채령은 박지현이 구속되어 있던, 그러나 지금은 텅 빈 침대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아아. 진짜, 요즘 들어 하나같이 되는 일이 없네.”

CCTV 영상에 찍힌 시각은 2시간 전. 2시간이면 박지현은 이미 저 멀리 도망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이제 와서 붙잡는 건 거의 무리라고 봐야겠지.

박지현의 도망친 게 그리 큰 위기는 아니었다. 어차피 여명단 정보야 유현호로부터 다 캐낸 뒤였고, 여명단 범죄자니 감금으로 자신을 신고할 수도 없을 테니까.

복수? 복수하러 온다면 오히려 좋다. 새로운 정보원이 늘어나는 격이니까. 범죄자 따위가 몇이 몰려온들 민채령은 능히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묘하게 불안하단 말야. 묘하게…….’

무언가 알 수 없는 위기감이 그녀의 본능을 툭툭 건드렸다. 스멀스멀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민채령이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의 일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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