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141. 민채령(1)
* * *
채소연과 김용빈이 술에 꼴아 잠들고, 조유리와 배영웅이 잔뜩 취해 날뛰고, 그 사이에 낀 이태호가 체념한 채 그 두 사람을 상대하고 있을 때.
칙. 치익.
민채령은 가게 뒤편 담벼락에 기대 담배를 태우는 중이었다.
“후우우.”
담배를 문 민채령의 얼굴은 지독한 권태로움에 찌들어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발치에 놔둔 종이컵에는 이미 그녀 혼자 피운 담배 꽁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애초에 흡연실이 있음에도 굳이 바깥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것도, 답답한 마음에 탁 트인 곳으로 나가고 싶었던 심리가 작용된 결과였으니.
하나의 담배가 전부 타오르면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7cm 남짓의 하얀 막대는 제 몸을 불살라 그녀에게 7cm만큼의 여유와 안정을 가져다준다.
그렇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그리고 열.
담배꽁초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쌓여만 간다.
조용히 타오르던 담배들은 피울 동안에야 안정감을 가져다주었으나, 전부 타버린 순간에는 여지없이 그녀에게 공허함을 안겨주었다. 폐를 가득 채우는 연기가 없으면 괜히 가슴이 텅 빈 것 같고 불안해져서, 그녀는 담배가 다 탈 때마다 멈추지 않고 다음 담배를 태웠다.
고작해야 담배 하나가 주는 안정감이라고 해봐야 별 거 아니지만, 또 없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민채령은 계속해서 담배를 태웠고.
그 흡연이 벌써 30분을 넘겼다는 걸 갓 알아차렸을 때, 때마침 안수호가 그녀를 찾아왔다.
“……도대체 담배를 얼마나 태우시는 겁니까?”
막 열한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그녀가 안수호를 바라보았다.
알싸한 술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간질였다. 안수호는 취할 정도로 마시진 않았지만, 적지 않은 양을 들이킨 탓에 얼굴에서 알음알음 술기운이 엿보이고 있었다. 알코올은 사람간의 경계심을 허문다고 하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민채령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다.
“미안. 생각할 게 있다 보니까 좀 오래 피웠네. 혹시 다들 나 찾고 있니?”
“태호 선배만요. 소연이랑 용빈 선배는 자느라 바쁘고, 영웅 선배랑 유리 선배는 술 마시느라 바쁩니다.”
“그럴 것 같았어.”
민채령이 열한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였다. 직후 희뿌연 연기가 매캐하게 허공에 퍼졌다.
“너는 안 피우니?”
“끊었습니다. 요즘 들어 담배가 맛없더라고요.”
“아마 일반 담배라서 그렇겠지. 나도 기성품은 너무 밍밍해서 초인용으로 따로 나온 것만 피우거든.”
민채령이 담뱃갑을 들어 보였다. 낯선 상표의 포장지 구석에 빨간 글씨로 ‘초인 전용’이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다.
“피울래?”
“…………아뇨. 그냥 이 참에 끊겠습니다. 원래도 습관 때문에 피우던 거였고, 또 여친들이 제가 담배 피우는 거 싫어하더라고요.”
“아주 공처가 납셨네. 마음대로 하렴.”
아니꼽다는 듯 웃은 민채령은 혼자 담배를 피웠다. 빠알간 불꽃에 담배가 타들어가고, 권태로움에 찌들었던 그녀의 표정에 다시금 약간의 여유가 깃든다.
“그거 몇 개비쨉니까?”
“10. 아니, 11개째인가?”
“진짜 많이도 피우셨군요. 뭐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고민? 하.”
민채령이 가소롭다며 헛웃음을 삼켰다. 게슴츠레 눈을 치켜 뜬 그녀가 안수호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왜. 내가 고민 있으면 네가 상담이라도 해주려고 그러니?”
“그렇게 건방진 생각은 안 합니다. 그렇지만 왜, 고민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저한테 말할 수 있는 고민이면 한 번 이야기라도 해보시죠.”
“웃겨 진짜. 오늘따라 왜 이렇게 친절해? 뭐 잘못 먹었어?”
“술은 조금 마셨습니다. 그리고 모처럼 회식이잖아요. 오늘처럼 좋은 날까지 서로 발톱 세우며 으르렁대면 피곤하잖습니까.”
안수호의 너스레에 민채령이 입을 꾹 다물었다. 혼자 타들어가던 담배를 그녀가 물고 뿌연 연기를 후우우 내뱉는다.
“……하긴. 그건 그러네.”
체념한 듯 내뱉은 그 말씨는 그녀치고 유독 부드러웠다. 안수호가 술기운 덕에 성격이 누그러졌다면 그건 민채령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마신 술, 오랜만에 가진 회식 자리에 그녀의 마음도 평소보다는 조금 풀어져 있었다.
“그래서. 무슨 고민이십니까?”
“고민은 아니고. 그냥 이래저래 생각할 게 많아서. 안 그래도 요즘 바쁜데 경찰에선 저번 서큐버스 사건 이후로 여명단 추적에 계속 협조해달라 하고. 여일에서 강하늘한테 계속 눈독 들이는 것도 신경 써야 하고. 게다가 소연이 일까지 겹치니까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더라. 아니, 열 개면 충분하고도 남으려나? 아무튼…….”
“지치신겁니까?”
“지친 것 까지는 아니고 그냥…………. 좀 피곤하네.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도저히 술 마실 기분이 아니라 중간에 빠져나온 거야.”
안수호는 가만히 담배를 태우는 민채령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에게 있어 민채령은 믿을 수 없는 상사, 내지는 언젠가 적대하게 될 빌런 예비군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민채령은 사뭇 달랐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일에 치여 힘들어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평소보다 묘하게 인간미가 느껴졌다.
“하다못해 부하들이라도 날 잘 보필해주면 편할 텐데. 소연이는 없던 일을 만들어서 가져오질 않나. 막내라고 뽑아둔 애는 여친도 둘이나 있으면서 매일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니……. 내가 피곤하지 않고 배기겠어?”
그리고 평소보다 상대에게 편안한 감정을 느끼는 건 민채령도 마찬가지였다. 비꼬는 식이긴 하지만 그녀가 이런 농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평소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안수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자 민채령이 피식 웃었다.
“왜, 나는 농담도 못 하니?”
“……평소엔 농담의 농자도 안 꺼내시던 분이 이러시니 놀랄 노자군요. 별로 안 드신 줄 알았는데 술 많이 드셨습니까?”
“나도 원래 농담도 하고 우스갯소리도 할 줄 아는 사람이야. 네가 워낙 나를 날 선 태도로만 대하니 보여줄 기회가 없던 거지.”
“그거야 다 팀장님 탓이죠. 수상한 티 풀풀 내시면서 절 휘두르다 예원이 목에 폭탄 심어서 협박한 건 어디 사는 누구랍니까?”
“…………일부러 그러는 거니,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거니? 농으로 던진 말은 농으로 받아주면 좀 덧나?”
“방금 그게 농담이었는데요?”
“직장 상사한테 하는 농담치곤 좀 많이 건방진데?”
“그런가요? 그럼 사과드리는 의미에서, 팀장님께서 선 씨게 넘는 농담 하셔도 한 번은 참고 넘기겠습니다. 자, 해보시죠.”
“허…….”
민채령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안수호를 올려다봤다.
‘……얘 취했나?’
민채령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술기운은 느껴지지만 사리분별 못할 정도로 취한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는 건 즉, 원래 성격이 이렇다는 뜻이리라.
“너 정말……. 되게 건방져졌다.”
“제가 건방진 거야 면접 때부터 그러지 않았습니까?”
“하긴. 그건 그렇지.”
민채령의 뇌리에 면접날 안수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채용 면접에서 대뜸 자기 합격 여부를 걸고 아카데미 교수의 비리를 주장하던 그의 모습이.
‘그러고 보면 그 일이 얘랑 엮이기 시작한 계기였네.’
당돌하게 자기 말이 맞으면 합격시켜달란 모습이 건방지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흥미가 동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에 민채령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안수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런저런 일이 있던 끝에 결국 그를 자신의 팀으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래도 그때는 나름 귀엽기라도 했지. 지금은 아주 뱃속이 시커매가지고 골치 아파 죽겠어 정말. 이런 놈한테 눈독 들인 내 잘못이지…….”
“제 이야깁니까?”
“그럼 너 말고 누구겠니?”
민채령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핀잔하자 안수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찾아따!!”
골목에 울려 퍼지는 상큼한 외침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골목 저편, 채소연이 잔뜩 풀어진 모습으로 두 사람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범상치 않은 속도에 안수호가 놀란 찰나 그녀가 탓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러곤 두 팔을 벌린 채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민채령의 품에 포옥 안겼다.
“채령 언니 여기 있어써요? 내가 하아아아아안참 찾았는데 안 보여서 아무리 찾아도 안 보였는데 여기 이썼네? 왜 숨어서 담배 펴요 언니이? 혹시 숨박꼭지이이일??”
“……소연이 많이 취했구나?”
“웅!”
채소연은 마치 퇴근한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민채령의 품에 볼을 부비며 앵겼다. 어쩔줄 몰라하며 애매하게 허공에 멈췄던 민채령의 두 팔이 이내 체념한듯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채령 ‘언니’?”
한편 안수호는 허물없는 그 호칭에 의아해했다. 그가 살며시 민채령에게 묻는다.
“둘이 사석에선 친한 사이였습니까?”
“마쟈! 나랑 채령 언니 엄청 친해! 와아아아안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롱!”
대답한 건 채소연이었다. 민채령의 풍만한 가슴에 한쪽 뺨을 푸욱 묻은 채, 고개만 뺴꼼 돌려 안수호를 바라본 채소연이 민채령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배시시 웃었다.
“채령 언니는 완젼 내 인생 언니야……. 초등학생 때 나 괴롭히던 애들도 언니야가 혼내줬고오! 중학생 때랑 고등학생 때 공부도 맨날 도와줬고오! 또, 또 채령 언니 덕에 아카데미도 잘 들어가고, 또 잘 졸업하고? 이러케 경비대 들어온 것도 언니 덕이고? 이히히. 채령 언니 엄청 대단하지이? 난 언니 업스면 못 살아…….”
“사실입니까?”
“…………대체로 거짓말은 아니야.”
애매한 대답이었으나 부정하지 않는 걸 보면 거의 사실인 듯 했다.
안수호는 새삼 신기하다는 눈으로 민채령을 바라봤다. 저 말이 다 사실이라면, 그녀는 사실상 채소연이 초등학생 꼬꼬마였던 시절부터 그녀의 뒤치다꺼리를 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럴 일은 없어. 소연이는 절대 날 떠나려 하지 않을 거거든. 협박이나 강압이 아니라, 애초에 오직 나만을 따르게끔 키워왔으니까.’
그때 문득, 안수호는 수요일에 민채령이 했던 그 말을 떠올렸다. 채소연이 자진해서 경비대를 떠나려 하면 어떡할 거냐는 질문에 대한, 민채령의 자신만만한 대답.
‘키워왔다’라는 말에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으나 이제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문자 그대로 민채령은 어릴 적부터 채소연을 키워온 것이었다.
자신의 입맛에 맞게.
오직 그녀 자신만을 따르도록.
그녀에게 한없이 의지하고, 또 의존하도록.
“채소연!!”
그때 골목 저편에서 다시 한 번 외침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이태호였다.
성큼성큼 다가오던 그가 술기운 때문인지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그대로 한 3초 정도 미간을 짚던 그가 이내 고개를 들더니, 빠르게 다가와 민채령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제가 잠시 한눈 판 사이 채소연이 팀장님께 민폐를…….”
“괜찮아. 회식 날인데 이럴 수도 있지 뭐.”
“마쟈! 나 민폐 아닌데 왜 민폐라고 해요?! 오늘 회식이 누구 덕분인데! 내가 싫으면 오늘 먹은 술이랑 고기 다 뱉어내세요! 뱉어내! 뱉어내! 뱉어내애애!”
“…….”
이태호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금 전까지 술기운 때문에 힘들어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태호에게 있어 채소연의 지랄은 어지간한 숙취해소제보다 효과가 좋았다.
“…………팀장님. 채소연이 많이 취한 것 같습니다만, 제가 데리고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싫은데! 안 들어갈 건데에! 나 채령 언니랑 같이 여기서 숨박꼭질 할 건”
“그래. 데리고 들어가렴.”
“……뎃?”
“따라와라. 채소연.”
“채령 언니? 아, 아니. 팀장님……?”
채소연이 애처로운 눈으로 민채령을 올려다봤지만, 민채령은 자기도 곧 들어간다며 손만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목덜미를 잡힌 채소연이 속절없이 이태호에게 잡혀 가게로 끌려갔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안수호가 민채령에게 넌지시 말했다.
“팀장님도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뭐가 말이니?”
“소연이 말입니다. 지금도 저런데 어릴 때는 얼마나 지랄맞았을까 싶어서요.”
“글쎄? 어릴 때도 지금이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즉 채소연의 저러한 천성은 초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 뜻을 파악한 안수호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니 의외네요. 같은 동네에라도 살았던 겁니까?”
“아니. 내가 의도적으로 접근한 거야. 우연찮게 용인화 능력을 가진 어린 초인의 정보를 알아내서, 나중에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어릴 때부터 준비했지.”
딱히 숨길 사실도 아니라는 듯 민채령은 당당하게 사실을 밝혔다. 안수호의 표정에 놀라움이 떠오른다.
채소연의 나이는 24살. 민채령은 27살이었다. 그리고 채소연의 말을 들어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 건 아무리 늦게 잡아도 채소연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부터.
즉 민채령은 최소 중학교 3학년일 때부터 미래를 생각해 채소연에게 접근했다는 이야기였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팀장님도 참 어릴 적부터 철저하셨군요. 설마 그때부터 2팀 인원을 꾸리기 시작하신 건…….”
너스레를 떨던 안수호가 문득 든 의문에 말끝을 흐렸다.
“왜 그러니?”
“……갑자기 의문이 들어서요. 팀장님 실력이면 경비대보다 훨씬 좋은 직장에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아카데미 경비대를 선택하셨나 싶어서.”
“…….”
안수호의 질문에 민채령이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 전 채소연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했던 것과 대비되는 태도.
‘……뭐, 밝혀도 상관없겠지. 안수호가 내 뒷조사를 한다면 금방 알 수 있는 이야기니까.’
잠시 고민하던 민채령은 궁금하다는 얼굴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안수호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경비대에 입사한 건 20살 때였는데. 그땐 아직 힘도 빽도 뭣도 없어서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거든. 애초에 경비대도 연줄로 낙하산 입사한 거지만.”
“그랬습니까?”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거니.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거니?”
현 그린하우스의 이사장은 민채령의 의붓아버지였다. 대외적으로 밝혀진 사실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은 알음알음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 안수호라면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민채령은 그가 일부러 시치미를 뗀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내가 본격적으로 힘이나 인맥을 키우기 시작한 건 경비대 입사 이후야. 중간에 다른 직장으로 옮길까도 생각해봤지만, 살아보니까 국립 아카데미 경비대도 딱히 나쁘진 않더라고. 유명 길드처럼 남들의 이목이 끌리진 않지만 정작 힘을 뻗칠 수 있는 곳은 많거든. 어지간한 국가기관하곤 한두 다리 건너 연결되어있고, 고위 인사들하고 마주칠 기회도 많고…….”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팀장님께선 그렇게까지 힘이나 인맥이나 연줄, 부하 같은 거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글쎄. 이루기 어려운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어서?”
“꿈……말입니까?”
안수호가 되물었으나 민채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 안수호에게서 고개를 돌린 민채령이 열두 번째 담배를 꺼내 물었다.
“또 피우십니까?”
“이게 돛대라서.”
마지막 담배라 그런가, 유독 깊게 연기를 마신 그녀가 허공에 뿌연 구름을 수놓았다. 매캐한 담배 연기 사이로 흐릿하게 느껴지는 사과향이 안수호의 코끝을 간질였다.
‘꿈……인가.’
안수호는 민채령의 꿈이 뭘까 궁금했다. 그녀가 저렇게 말하는 꿈이니 결코 평범한 내용은 아니리라. 국내 최고의 권력자라든가 뒷세계의 거물 같은, 일반인이 듣기엔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허황된 목표라도 민채령이라면 진지하게 노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단순한 꿈은 아니겠지.’
일종의 직감……같은 것이 안수호의 본능을 간질였다. 아무런 단서도 없이 민채령의 꿈에 대해 추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B랭크에 달하는 행운 능력치가 안수호에게 진실의 편린을 본능의 예감이란 형태로 알려주었다.
“혹시 그 꿈이라는 거에……. 하늘이도 관련되어 있습니까?”
그 말에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조금 전까지의 부드럽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안수호가 민채령을 바라보자, 그녀는 차갑게 식은 얼굴로, 그리고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글쎄? 별로 대답해주고 싶지 않네? 그 이상 알려고 하진 말아줬음 하는데…….”
서로 깊게 파고들지 않기로 했던 거, 기억하지?
그렇게 덧붙인 민채령이 안수호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차가운 한기가 안수호의 어깨에 침투한다. 안수호는 순간 민채령이 한여름처럼 냉기 능력자라도 되나 싶었으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느껴지는 한기의 정체는, 그녀가 발하는 살기를 안수호의 감각이 멋대로 한기로 착각한 것이었다.
“……제가 괜한 걸 물어봤군요. 이 이상 묻진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오늘은 모처럼 너랑 분위기 좋았는데, 결국 끝에는 이렇게 되네.”
정말 아쉽다며. 민채령이 어깨에 얹었던 손을 스르륵 내리며 손가락으로 안수호의 몸을 훑었다. 얼핏 유혹적인 제스처로도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안수호 입장에선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 예감이 정답인 것 같은데…….’
민채령이 말하는 ‘꿈’이라는 것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강하늘이 관련되어 있다고.
안수호는 하루 빨리 민채령에 대해 조사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일리아나에게 조사를 의뢰하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쓰든 방법을 강구하자고.
‘상태창.’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 안수호는 별 이유 없이 민채령의 상태창을 열람했다. 상태창이라곤 해도 대상의 심리나 숨겨진 비밀 같은 게 적혀있진 않으니 정말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
[ ‘민채령’의 상태창 ]
이름 : 민채령
성별 : 여성
신장/체중/나이 : 171.9cm/52.9kg/27세
직업 : 아카데미 경비팀장
소속 :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보유 초능력 : 절대방어(A)
[ 능력치 ]
근력 A
민첩 A
내구 A
마력 A
기교 A
의지 A
행운 A
[ 보유 스킬 ]
1. 근접 격투(커먼. A)
2. 화술(레어. A)
3. 위압(유니크. A)
[ 보유 아티펙트 ]
1. 소원석.
===
그 의미 없는 행동이 우연치 않게 안수호에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경비원 스킬의 등급 상승에 의해 대상이 보유한 아티펙트를 확인할 수 있게 된 안수호는 상태창 가장 마지막단에 적힌 글귀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원석? 이게 왜 민채령한테 있어?’
그의 두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