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140. 광란의 회식
* * *
속초 시내에서 위치한 고급 한우 전문점. 백와궁.
그 이름처럼 흰색 기와로 장식된 담벼락 너머에는 아름답게 꾸며진 산수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한 가운데에는 담장과 마찬가지로 흰색 기와가 올라간 으리으리한 한옥이 우뚝 서있었다.
척 봐도 ‘여기 엄청 비싼 가게요’하고 말하는 듯한 비주얼.
직장 회식보다는 고위급 인사 접대에나 어울릴법한 가게였으나 민채령은 일부러 이곳을 골랐다. 민채령은 이번에 아카데미 총장으로부터 회식비 명목의 상여금을 받았는데, 괜히 어중간하게 금액을 남길 바에야 한 번에 써버리자고 이런 비싼 가게를 예약한 것이었다.
‘인당 10만원은 우습게 깨지겠는데.’
본래 가난한 대학생 출신이라 이런 가게와는 연이 없던 안수호는 으리으리한 건물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른 팀원들도 차이는 있었지만 비슷한 반응이었다.
“들어가자.”
반면 가게를 예약한 민채령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오히려 그 얼굴에는 얼른 회식을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는 귀찮음마저 엿보였다. 그녀가 성큼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그 뒤를 채소연을 위시한 팀원들이 함께 따라 들어갔다.
“안수호.”
안수호 역시 그 뒤를 따르려 했으나 이태호가 그를 잠시 붙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오늘 회식에서 채소연을 전담 마크해줄 수 있겠나?”
“예……?”
그 말에 안수호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상사의 지시에 반문한 것도 모자라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짓는 건 큰 결례였으나, 이태호는 안수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굳이 나무라지 않았다.
“힘든 요구인 건 알고 있다. 술은 평범한 사람도 돌발행동을 하게 만들지. 하물며 채소연이라면 오죽 할까.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지금까지는 파트너였던 내가 맡았던 역할이지만 이제는 네가 채소연의 파트너지. 그러니 이제는 너의 역할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안수호는 빠르게 자신의 처지에 수긍했다. 막말로 파트너인 자신이 채소연을 전담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평소에는 옆에 찰싹 붙어서 과음하지 못하게 막는 정도지만……. 오늘 회식은 채소연이 주역이니 술을 못 마시게 하는 건 아무래도 어렵겠지. 차라리 빠르게 취하게 해서 잠재워버리는 게 나을 거다. 그 사이 일어나는 돌발 행동은 네가 옆에서 확실하게 차단하고.”
“아…….”
문자 그대로 술에 취해 날뛰는 채소연을 전담 마크하라는 소리였다. 벌써부터 앞이 막막해진 안수호를 보며 이태호가 한숨을 푹 내쉰다.
“익숙해져라. 이런 자리에선 너나 나처럼 상식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피곤한 법이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우리 2팀은 능력 위주로 뽑힌 대원들이라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대원이 많거든.”
“그래도 채소연만 하겠습니까.”
“평상시에야 채소연이 독보적이지. 그렇지만 한 번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아마 그 인상이 달라질 거다. 채소연만큼은 아니어도, 유리나 다른 두 사람도 술자리에서 꽤 피곤한 사람들이거든.”
그 말에 안수호는 이태호가 말한 나머지 두 팀원에 대해 떠올렸다. 배영웅과 김용빈. 안수호는 그 둘하곤 이렇다 할 교류가 없었다. 그래도 평상시엔 둘 다 평범한 직장인 느낌이었는데, 설마 술이 들어가면 180도 사람이 달라지는 걸까.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팀 회식은 늘 1차에서 끝나니까. 늦어도 10시 즈음에는 파하겠지. 세 시간만 버티면 된다.”
이태호가 건투를 빈다는 듯 안수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가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그 뒷모습을 쫓던 안수호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처럼 고급 한우로 위장에 기름칠 좀 해보나 했더니, 감정 노동만 잔뜩 하다 돌아가게 생겼네.’
그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겉모습과는 달리 모던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그를 맞이해 주었다. 안수호는 자신들이 예약해둔 별실로 향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와! 하여튼 막내가 빠져가지곤!”
방에 들어서자마자 채소연이 그를 나무랐다. 벌써부터 텐션이 잔뜩 업된 그녀를 아니꼽게 바라보며 안수호가 그 곁에 앉는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밑반찬이 세팅되어 있었고 잠시 후 미리 시켰던 고기와 술이 들어왔다. 고기는 그 비싸다는 안창살과 채끝살. 반면 술은 평범하디 평범한 소주였다.
“일단 한 잔씩 알아서들 채우렴.”
민채령의 말에 팀원들이 각자 술잔을 채웠다. 모든 팀원이 잔을 채우자 민채령이 술잔을 살짝 들었다. 마치 건배사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
허나 민채령의 얼굴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가 팀원들을 한 번 쭈욱 둘러보더니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다들 회식이랍시고 개인 시간 뺏어서 미안해. 나도 딱히 하고 싶진 않았는데 총장님께서 워낙 눈치를 주셔서.”
“아닙니다 팀장님!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다 모이겠습니까? 전 좋습니다!”
“저도요! 저도 총장님 돈으로 소고기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러니? 그럼 다행이고.”
배영웅과 채소연의 말에 민채령이 피식 웃었다. 그녀가 잔을 높게 들자 다른 사람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래도 금요일에 너무 시간 뺏기는 미안하니까. 적당히 편하게 먹고 마시다 늦기 전에 일찍 파하자. 자, 짠하자 짠.”
쨍.
일곱 개의 잔이 조촐하게 부딪혔다. 회식치고는 별다른 건배사도, 건배 구호도 없었다. 이상할 건 없었다. 지금껏 2팀의 회식은 늘 이래왔으니까.
민채령 본인부터가 시끄러운 술자리를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2팀의 회식은 그저 명분이 생길 때마다 남의 돈으로 비싼 음식 먹고 적당히 헤어지는 자리에 불과했다. 애초에 건배사랍시고 덕담이니 포부니 늘어놓는 건 민채령의 성격이랑 안 맞기도 했고.
그러나.
“팀장님!! 건배사 해줘요 건배사!!”
여느 때의 회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 회식의 주연이 채소연이라는 점. 그리고 그 때문에 채소연의 텐션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외침에 술잔을 마시려던 팀원들의 움직임이 우뚝 정지했다.
“오늘 제 덕에 회식하는 거잖아요! 그럼 칭찬이라든가! 덕담이라든가! 열심히 노력한 소연이를 위해 건배!! 같은 거 해주시면 안 돼요?”
“하아…….”
민채령에게서 짙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그러나 마시려던 술잔을 다시 드는 걸 보니 정말 건배사를 해주긴 해주려는 모양.
팀원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채소연은 얼굴 가득 기대감을 띄운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 채소연과 지그시 눈을 맞추던 민채령이 이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소연이 이번에 참 고생 많았고. 다음부터는……좀 더 의젓하고,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부터 하고, 제발 조금이라도 더 사리분별을 할 수 있었음 좋겠구나. 자, 건배.”
“으히히……네?”
“건배!”
째앵.
다시 한 번 잔이 부딪히고 이번에야말로 팀원들이 술잔을 들이켰다. 반면 채소연만은 건배에 참여하지도 않은 채, 조금 전 민채령의 말을 곱씹으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팀장님……? 그게 칭찬이에요? 칭찬 아닌 거 같은데……?”
“자 뭣들 하고 있니? 건배도 했고 술잔도 돌렸으니 얼른 고기부터 구우렴.”
그런 채소연을 뒤로한 채 팀원들은 각자 회식을 시작했다.
“팀장님 고기는 제가 맛깔나게 구워드립죠! 수호야! 그쪽 테이블은 네가 할 수 있지?”
“예. 선배님. 저한테 맡겨주십쇼.”
배영웅과 안수호는 각자 테이블에서 집게를 잡았고.
“조유리. 내일 낮에 근무 잡혀있으니까 오늘은 과음하지 마라.”
“오, 오후 4시 근무인데 상관없잖아…….”
“상관없기는 무슨. 네가 한 번 마시면 다음날 저녁까지 숙취에 골골대는 건 우리 팀원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러 주말에 근무 잡아둔 거니 적당히 마시다 집에 가라.”
“너, 너무해…….”
한편에선 이태호가 그렇게 말하며 조유리 앞에 놓인 술병을 치웠으며.
“맞다 용빈아. 낮에 부탁한 자료 정리는 다 끝났니?”
“팀장님. 엄밀히 퇴근 이후인 회식 자리에서까지 일 이야길 하시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
“그건 모르겠고. 나 내일 당직인데 자료 주말 안에 넘겨받을 수 있을까? 일요일 아침에 나 퇴근하기 전까지.”
“…………토요일 밤까지 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자, 한 잔 받으렴.”
다른 쪽에선 팀 내 전산 관련 업무를 도맡아 하는 김용빈이 괴로운 얼굴로 민채령의 술을 받고 있었다.
“티, 팀장님……?”
채소연이 다시 한 번 서러움을 담아 말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반쯤 일어섰던 그녀가 툭 자리에 앉으며, 울먹이는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젓가락을 들었다.
“……안수호. 나 고기 줘.”
“아직 안 익었어.”
“그럼 술 따라줘.”
“고기 굽느라 바빠. 알아서 잔 채워.”
“……히잉.”
그의 차가운 태도에 채소연이 히끅 딸꾹질하며 혼자 잔을 채웠다. 그렇게 눈물을 머금은 술잔을 외롭게 비우고, 채소연은 노릇노릇하게 익은 두부부침을 입에 가져와 오물오물 씹었다.
그런 채소연을 보며 안수호가 생각했다.
‘생각보다 평범한데……?’
평범하다고 할까, 회식 자리치고는 조용했다. 본래 대학생이던 안수호는 직장의 회식 문화를 경험해볼 기회가 없었으나, 그가 알고 있던 회식은 이렇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회식이란 가령 시종일관 왁자지껄 시끌벅적하게 말소리가 오가고. 상사는 부하들에게 계속 술을 권하며. 막내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 노래든 장기자랑이든 흥을 돋우고. 이따금 권위를 앞세운 성추행 따위가 일어나는 이벤트였다.
헌데 2팀의 회식은 그런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이제 막 시작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안수호는 점점 이태호의 경고에 대해 의문만 깊어져갔다.
당초 이태호는 그를 제외한 2팀 대원들이 무슨 브레멘 음악대마냥 술자리에서 미쳐 날뛸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실상은 회식에 참석한 평범한 직장인과 하등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이제 다 익었어?”
“어. 자, 여기.”
“오예!”
‘채소연만 잘 관리하면 별 일 없이 끝나겠는데?’
볼을 가득 부풀리며 밥과 고기를 흡입하는 채소연을 보며 그가 생각했다. 어쩌면 이태호의 경고는 단순 과장이었거나, 혹은 채소연을 그에게 짬 때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한 게 아니었나 하고.
그러나.
특수대책과 2팀의 유일한 상식인이라 자부하는 이태호가 그렇게 경고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안수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으헤헤헤헿. 야 안수호. 알고 있냐아? 내가. 내가 미국에서 지금 슈우퍼 히어로지롱! 내 팬사이트도 생겼다? 대단하지? 응? 대단하지이?”
“그래. 대단하다 대단해.”
“대단하면 짠하자 짠! 대단짜안!”
비틀거리는 손으로 채소연이 술잔을 들자 안수호가 술을 잔 위로 찰랑거릴 정도로 가득 따랐다. 이태호의 충고대로 어중간하게 음주를 제한하느니 차라리 잔뜩 맥여서 일찍 재워버릴 속셈이었다.
그래도 한 30분 전까진 어떻게든 술을 못 마시게 그녀를 막아서려 했으나, 술 안 준답시고 용인 형태로 변신까지 하려는 그녀의 모습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짜아아아안!!”
쨍.
안수호와 건배한 채소연이 거진 따랐던 술의 반을 흘리며 잔을 들이켰다. 직후 그녀가 포옥 하고 안수호의 팔에 고개를 기댔다. 안수호의 어깨에 오싹한 소름이 달린다.
“좋은 말로 할 때 떨어져라.”
“이히히히히. 안수호. 이 귀여운, 내 귀여운 후배야. 이힛. 야. 이번에 상 받을 걸루 나 진급하며언, 너 나한테 존댓말 써야하는 거 알지?”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김칫국 마시지 마라.”
“왜애! 왜 그럴 일이 없는데 왜애!”
“인사과에 널 부팀장 자리에 앉힐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없거든.”
“내가 멍청하다는 고야?!”
“똑똑하진 않지.”
“이씌! 나 안 멍청하거드은?! 내가 너보단 똑똑하거든?! 안쇼 넌 고졸이지만 난 아카데미도 졸업했단 말야앗!”
“그 머리로 졸업을 했다는 게 대단하다.”
“그치? 나 대단하지?”
“그래. 대단하니까 한 잔 더 받아라.”
“오예에에. 자 짜아아아안……히끆!”
안수호가 따라주는 대로 족족 받아 마시던 채소연의 눈이 반쯤 풀렸다. 그녀의 머리가 힘없이 좌우로 흔들리다 이내 뒤쪽으로 넘어갔다.
“으흐흐흐. 난 대단해애……. 천하무적 미소녀전사 용용이 소연이이…….”
콩, 하는 앙증맞은 소리와 함께 드러누운 채소연이 고양이처럼 고로롱 고로롱 졸기 시작했다. 장장 두 시간 동안 채소연에게 시달리던 안수호의 인내와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수호야아♡”
허나 안수호의 앞에 드리운 고난은 채소연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느 새 그의 옆에 다가온 조유리가 그에게 바짝 붙어 술잔을 내밀었다.
“우리 후배가 따라주는 술 나도 한 잔 받고 싶네?”
“이제 그만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은”
“따라줄 거지? 응? 따라줄 거지? 따라줄 거지? 따라줄 거지이?”
“……잔 대십쇼.”
왼팔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압박감에 안수호가 별수 없이 술을 따랐다. 그의 시선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태호에게 향한다.
“으하하하! 태호 너 여전히 술 더럽게 약하네! 어떻게 초인이란 놈이 소주 세 병을 못 버티냐 세 병을!”
“…………끄응.”
배영웅이 이태호의 등을 팡팡 치며 말했다. 반면 이태호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숙인 채 골골대고 있었다.
“그래도 술은 마시면 마실수록 는다! 자, 한 잔 받아라!”
“……선배님. 저 이제, 이제 그만 마시고 싶”
“어허! 부팀장이라는 놈이 술을 못 마시면 쓰나! 선배 제치고 완장 찼으면 마 포부가 있어야지 포부가! 으이!? 자 받아라!”
“제발…….”
본래 이태호는 조유리가 과음할 수 없게끔 전담 마크하는 역할이었나. 회식 초반까지는 그 역할을 잘 수행했으나, 문제는 고기를 어느 정도 구운 배영웅이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배영웅은 키만 해도 거의 2미터에 온몸이 두꺼운 근육으로 감싸인 거한이었다. 그 외양만큼이나 술도 잘 마시던 그는 민채령과 이태호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차마 민채령과 대작하긴 껄끄러웠는지 그는 자기가 술을 마실 때마다 이태호를 붙잡고 반쯤 억지로 잔을 권했다.
그 결과 조유리를 전담해야 할 이태호가 먼저 뻗어버렸고, 고삐가 풀린 조유리는 실컷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취했다. 안수호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저, 유리 선배. 제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선배는 도대체 왜 취하는 겁니까?”
“왜 취한다니이? 술을 마시니까 취하지이?”
평소에 남성공포증 때문에 덜덜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거야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안수호는 그녀가 술에 취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가 안 되었다.
“선배 초능력은 대사조절이잖아요. 그 초능력이면 알코올 같은 것도 바로바로 분해해버리니까. 이론상 절대 취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처럼 조유리의 초능력은 대사 조절. 신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화학적 작용을 조절하는 능력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이론상 술을 얼마나 마셔대든 절대, 결코 취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거야 그렇지! 그치만 난 술 마실 때는 저어어어얼대 초능력 안 쓰기로 약속했거든! 누구랑? 나 자신이랑!”
“……네?”
그러나 안수호가 간과한 것은 바로 조유리가 2팀 안에서도 독보적인 애주가라는 점이었다. 그것도 술의 맛이나 향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술에 취하는 느낌을 좋아하는 애주가였다.
“좀 이해가 안 되네요. 선배 능력이면 술 한 모금 안 마셔도 취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취할 수 있을 텐데…….”
“…………자기 능력에 의한 쾌락에 중독되면 답이 없으니까. 유리의 능력이면 24시간 내내 마약이라도 빤 것처럼 도파민과 엔돌핀을 잔뜩 만들어낼 수도 있어. 그래서 유리는 스스로 정한 거야. 스스로의 쾌락을 위해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풀어질 땐 확실하게 풀어지자고.”
대답한 건 조유리가 아닌 이태호였다. 배영웅이 따라주는 술을 연신 거절하며 그가 안수호의 궁금증에 답해주었다.
“맞아! 그래서 평소에 울적한 일 있을 때도 능력 안 쓰고 집에서 혼술만 하고 끝내고 있어. 되게 건전하지 않아? 내 능력이면 머릿속에서 천연 마약을 자아아아안뜩 만들 수 있는데.”
그러니까 한 잔 더 줘! 하고 잔을 내미는 조유리.
안수호가 이태호를 바라보자 그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더는 못 드리겠습니다. 태호 선배가 유리 선배한테 더 주지 말라네요.”
“야 이태호! 니가 뭔데 내가 술 마시는 거에 일일이 참견해!? 니가 내 엄마라도 되냐? 어?!”
“……분명히 말했을 거다. 내일 근무 있으니 적당히 마시라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숙취는 내 능력으로 얼마든지 지울 수 있잖아!”
“그렇게 말해놓고 늘 ‘숙취도 술을 즐기는 방식의 일부’라며 일부러 골골대잖나. 더는 안 속는다.”
“그건 쉬는 날에만 그렇고! 나도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거든? 그러니까 수호야. 나 한 잔만 더 주라♡ 응?”
조유리가 앙탈부리듯 안수호의 어깨에 뺨을 부비부비 비볐다. 이태호가 한숨을 푹 내쉬며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옆에 붙어있던 배영웅이 술을 가득 채운 잔을 억지로 그에게 들이밀었다. 기다리다 지친 조유리도 안수호의 손에서 억지로 병을 빼앗아 자기 잔에 넘치도록 따랐다.
“자 다같이 짜안! 태호도 짠! 수호도 짠! 영웅 선배도 짠! 용빈 선배는……벌써 뻗어버렸구. 아무튼 짠! 짠! 짜안!!”
“응?”
그때 안수호는 문득 한 사람이 자리에서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이태호에게 넌지시 물었다.
“선배. 팀장님께선 어디 가셨습니까?”
“…………그러고 보니 좀 전에 담배 피우러 나가신다 하신지 벌써 30분이 넘었군.”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가 시계를 확인하더니 바깥을 바라봤다. 물론 실내에 있는 별실이기에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민채령이 보일 리가 없었다.
“제가 한 번 나가볼까요? 마침 저도 한 대 피우려 했고.”
안수호가 그렇게 말했다. 기실 민채령도 담배도 다 핑계에 불과하고, 그저 잠시나마 이 혼란스러운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만 역력했다. 이태호 또한 그 심리를 알아차렸으나 일부러 모르는 척 해줬다.
“그래. 나가서 무슨 일이신지 여쭤보고 와라. 슬슬 회식 자리도 마무리해야 하니까.”
“빨리 다녀오죠.”
찰싹 달라붙은 조유리를 옆으로 살며시 떼어놓으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별실을 나서며 살짝 돌아보자, 배영웅과 조유리에게 시달리던 이태호가 달관한 표정으로 술잔을 받고 있었다.
‘자, 그럼…….’
민채령은 도대체 뭘 하고 있길래 30분째 줄담배 중일지. 안수호가 종종걸음으로 건물 바깥으로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