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39화 (140/266)

〈 139화 〉 138. 류태현vs한겨울(2)

* * *

경기장에 내려앉은 잠시간의 정적.

그 정적 아래, 류태현은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어깨를 부여잡았던 손을 살짝 내렸다. 그러자 불에 녹아 눌어붙은 디펜시브 코트가 드러났다. 그 사이로 보이는 맨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야. 위력 한 번 살벌하네.’

쏘아낸 불꽃의 크기는 작았으나 그 열기는 이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마치 그간 사방으로 흩뿌리기만 해대던 불길을 한 점으로 압축한 것처럼.

‘수호 형이랑 대련하면서 뭔가 깨우치긴 했나봐?’

내심 그는 안수호와의 대련으로도 별로 달라질 게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예기치 않았던 한겨울의 성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작정 불꽃을 넓고 뜨겁게 뿌려대기만 하던 전과 달리, 지금의 그녀는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었다.

­씨익.

그 괄목할만한 성장이 기꺼웠던 류태현의 입가에 다시금 웃음이 그려졌다.

류태현은 전투광이었다. 초인으로서 독보적으로 강하게 태어난 그는 늘 자신의 강함을 체감하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그는 늘 싸움에 굶주려 있었다.

허나 그건 단순히 치고받는 걸 좋아한다는 게 아니었다. 자기보다 월등히 약한 사람에게 주먹을 휘둘러봤자 지루할 뿐이었다. 그가 원하는 싸움이란, 그가 지닌 모든 것을 온전히 부딪칠 수 있는 대등한 싸움이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팽팽한 공방을 주고받는 아찔한 전투.

그런 전투 속에서만 류태현은 비로소 자신의 강함을 체감하고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아카데미 랭킹전 따위 소꿉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랭킹전 2위인 한겨울조차 그가 원하는 기준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 한겨울이 자신을 이기기 위해, 오직 자신만을 위해 칼을 갈고 나왔다. 그것도 엄청 날카롭게 말이다. 확실하게 자신의 목을 베어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게.

“……그래. 이래야 싸움이지.”

­찌이이익!!

류태현이 눌어붙은 코트 어깨 부분을 거칠게 찢었다. 반쯤 드러난 어깨 근육 위로 선명한 핏줄이 울긋불긋 돋아났다.

“겨울이 너. 오늘 날 이기려고 아주 작정하고 나왔구나?”

­화르르륵!!

한겨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양손에 시뻘건 불꽃을 거세게 피워올렸다. 그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녀의 투지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류태현이 기분 좋게 웃었다. 뭇 여성들이 가슴을 두근거릴 정도로 상쾌한 웃음.

“……수호 형을 소개시켜주길 잘 했네. 진짜로.”

허나 다음 순간 그 웃음이 뚝 사라지며 살벌하게 굳은 표정으로 변했다. 육체와 정신의 모든 것을 오로지 전투에 집중한 그가 지면과 일자가 될 정도로 자세를 낮추고.

­투콰앙!!!

이내 거센 폭발 소리와 함께 한겨울에게 달려들었다.

­퍼버버버버벙!!

한겨울이 뒤로 몸을 피하며 다시 한 번 버드샷을 날렸다. 수십의 산탄이 류태현의 몸을 두드린다. 허나 돌진의 기세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는다.

“쳇…!”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류태현.

그런 그를 막고자 한겨울이 지면을 쾅! 밟았다. 다음 순간 그녀의 앞에 거대한 불의 벽이 솟아나 두 사람 사이를 갈라두었다.

그러나.

­투화악!

류태현은 불꽃 따위 아랑곳 않고, 주먹을 앞세워 불꽃의 벽을 돌파해 그녀에게 다다랐다. 호전적인 눈빛을 한 그의 주먹이 한겨울의 가슴에 꽂히려던 찰나.

­스파앙!!

그보다 한 발 먼저 쏘아진 백색 섬광이 류태현의 가슴에 작렬했다. 불의 벽으로 시야를 가린 사이 준비한 AP샷. 그의 가슴에서 화끈한 작열통이 올라왔다.

­퍼억!!

“끄흑?!”

그러나 류태현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움푹 들어간 한겨울의 가슴에서 우득, 하고 자그마한 분쇄음이 울린다.

한겨울의 몸은 그대로 수십 미터를 날아가 지면을 미끄러졌다. 몇 바퀴나 구르며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던 그녀가 가까스로 기세를 죽이고 자세를 다잡는다.

“허억……!”

그러자 단숨에 올라오는 고통에 한겨울이 신음했다. 폐 속의 공기가 전부 빠져나와 숨을 들이킬 수조차 없었다.

그런 한겨울을 노리고 류태현이 다시 달려든다. 순식간에 좁혀오는 수십 미터의 간격.

­화르르르륵!!!

한겨울이 다급하게 오른팔을 휘둘렀다. 거센 파도와 같은 불길이 류태현과 함께 경기장의 절반을 순식간에 덮는다.

그러나 류태현은 멈추지 않았다. 타오르는 불길을 가르며 그가 씁쓸하게 웃는다.

‘……조금 성장했나 싶었는데. 한 방 먹이니까 바로 이 꼴인가.’

범위에만 치중한 미지근한 불꽃으론 류태현을 저지할 수 없었다. 오히려 광범위하게 뿌려진 불꽃은 한겨울의 시야마저 가려버리기에 오히려 류태현을 도와주는 꼴이다.

이는 이전의 대련에서 안수호가 지적한 부분이었다. 실제로 류태현은 예전에도 몇 번,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한겨울의 불꽃을 역으로 이용해 그녀에게 역습을 가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류태현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겨우 한겨울이 자신의 호적수로 성장했나 싶었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그래도 그 짧은 시간에 이 정도나마 성장한 게 대단한 거지.’

­콰앙!!

그가 있는 힘껏 지면을 박차 날아올랐다. 불꽃을 흩뿌리며 공중에 뛰어오른 그가 한겨울이 있던 방향을 향해 발차기를 뻗는다.

그러나.

‘없잖아?’

그녀가 있어야 할 지점에 한겨울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주변을 전부 둘러보아도 한겨울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화르르르르륵!

주변에 보이는 건 오직 불꽃뿐. 사방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간질인다. 목표를 잃고 착지한 그가 사방을 향해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운 순간.

­스파앙!!!

날카로운 섬광이 그의 관자놀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짐승과도 같은 감으로 피해낸 그가 섬광의 궤적을 쫓는다.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꽂혔다. 그렇다는 건…….’

전후좌우. 네 방향만 살피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펑! 펑! 퍼버버버버벙!

그러자 그의 눈에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한겨울이 잡혔다. 두 손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어 자신을 조준한 채, 두 발에서는 연신 불꽃을 터뜨리며 위태롭게 하늘을 날고 있는 그녀의 모습.

‘대단해.’

그 모습을 관중석에서 바라보던 안수호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금 전. 한겨울이 광범위하게 쏘아낸 불꽃은 공격이 아닌 교란용이었다.

불꽃에 의해 류태현의 시야와 청각이 차단된 찰나의 순간,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발밑으로 불꽃을 분사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결과 그녀는 류태현의 사정거리에서 완전하게 벗어났다. 그것도 류태현에게 들키지 않은 채로.

직후 이어진 AP샷을 류태현이 괴물 같은 감각으로 피해내지만 않았어도, 이번 랭킹전의 승리는 한겨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대박……. 겨울이 지금 날고 있는 거 맞지?”

그 말대로 한겨울은 비록 위태로운 모습이긴 하나 공중에 정지한 채 ‘부유’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불꽃의 추진력으로 비행 비슷한 도약을 보여주긴 했지만, 완벽하게 공중에 정지한 모습을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발화능력자가 불꽃으로 공중을 나는 건 무척 고난이도 기술에 속한다. 단발적인 도약에 불꽃의 추진력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지속적인 비행을 위해선 중력을 거스를 정도의 고출력의 화염을 지속해서, 그것도 세밀한 컨트롤로 조절해가며 방출해야 하기에.

‘현재 국내의 발화능력자 중 자유로운 비행이 가능한 건 염제 박철 단 한 사람뿐. 물론 한겨울의 수준이 박철 정도라는 건 아니지만…….’

한겨울의 비행은 척 봐도 위태로웠다. 출력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지 연신 공중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렇긴 하나 그녀가 염제만이 가능한 ‘발화능력에 의한 비행’을 성공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진짜 오늘 잘하면 한겨울이 일 낼 수도 있겠는데?”

비단 안수호뿐 아니라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오늘 1학년 랭킹전의 1, 2위가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륵.

그리고 그건 당사자인 류태현도 마찬가지였다. 뜨거운 작열통과 함께 그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하마터면 영문도 모르고 질뻔했어.’

그 얼굴에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씁쓸함은 보이지 않았다. 당혹감과 긴장감. 그 사이로 보이는 기쁨과 유쾌함에 그의 입가에 다시 한 번 웃음이 떠오른다.

­키이이이잉!!

그런 류태현을 내려다보며 한겨울이 다시 한 번 불꽃을 모았다. 양팔 가득 차오른 불꽃이 두 팔을 포신 삼아 손끝으로 집중되고, 이내 노도와 같은 기세로 쏘아진다.

­스파앙!

­투콰앙!

그 섬광에 맞서듯 류태현이 지면을 박찼다. 경기장 바닥이 쩌저적 갈라지고 류태현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휘릭!

직후 디펜시브 코트를 벗어던진 그가 코트의 등판으로 백색 섬광을 막아냈다.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녹아내린 코트를 던지며 그가 한겨울에게 주먹을 뻗는다.

­퍼버버버버벙!!

그러나 그의 주먹은 한겨울에게 닿지 못했다. 추진을 위한 불꽃의 화력을 더한 한겨울이 5미터 정도 더 상승한다. 애꿎은 허공만 때린 류태현이 입맛을 다시며 바닥에 착지했다.

­펑! 퍼버벙! 퍼벙!

“꺄흑?!”

직후 한겨울의 발에서 뿜어지던 불꽃이 불규칙적으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아래로 떨어지던 그녀가 급하게 자세를 다잡으며 가까스로 비행을 유지한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한겨울은 아직 비행에 익숙하지 않았다. 허나 그녀가 당면한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한겨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이마뿐 아니라 그녀의 전신에는 끈적한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고화력의 불꽃을 지속적으로 쏘아내고 있는 탓에, 그녀의 현재 체온은 40도를 가뿐히 넘어선 상태였다.

‘생각보다 부담이 훨씬 심해. 오래 끌었다간 내 몸이 못 버텨. 빨리 끝내야 해.’

잠시 지면에 착지했다가 다시 날아오른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세밀한 비행이 불가능한 이상 착지하는 순간을 노려 류태현이 공격을 걸어오면 피할 수 없으니까.

­화르르르륵!!

그녀의 손끝에 다시 한 번 백색 섬광이 서렸다. 경기장 바닥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류태현을 향해, 그녀가 연속해서 섬광을 뿜어댔다.

­스파앙! 스파앙! 스파앙!

압축된 불꽃의 궤적은 마치 하늘에서 지상으로 꽂히는 낙뢰 같았다. 겉모습뿐 아니라 속도도 낙뢰처럼 빨랐다.

­퍼억!!

“크윽?!”

한 줄기의 불꽃이 회피일변도였던 류태현의 팔을 스쳤다. 디펜시브 코트를 방어용으로 써버렸기에 맨살에 그대로 꽂힌 일격. 지금까지완 비교도 안 되는 작열통에 그가 주춤한다.

‘생각보다 공격이 세. 한 발 정돈 맞아도 버틸 수 있겠지만 이건 실전이 아니라 대련이야. 한 발이라도 맞으면 아마 닥터 스톱으로 경기가 끝나겠지. 잘못하면 눈 먼 공격에 맞아 어이없게 져버릴 지도 몰라.’

류태현이 긴장된 얼굴로 한겨울을 올려다보았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랭킹전에서 긴장이라곤 해본 적이 없던 그가, 명백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류태현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승리를 위한 도식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저 비행 상태는 겨울이한테도 부담이 클 거야. 오래 유지하지는 못하겠지. 그렇다면 지구전으로? 아냐, 의외로 오래 버틸지도 모르고 판정으로 넘어갔다간 내가 불리해. 애초에 도망 다니는 건 내 성미에 맞지도 않고.’

‘그럼 조금 전처럼 뛰어올라서 공격할까? 하지만 세밀한 비행이 불가능하다 해도, 내 공격 한 번 피하는 것 정돈 어렵지 않을 거야. 조금 전에도 그랬었고. 게다가 공중에 떠오른 상태에선 나도 겨울이의 공격을 피하지 못해.’

‘막막하네 진짜. 하다못해 비행 높이가 좀 낮아지기라도 한다면 피하기도 전에 공격할 수 있을 텐데…….’

“!!”

그 순간 류태현의 뇌리에 하나의 아이디어가 번뜩이며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자신이 딛고 있는 경기장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단단하게 굳은 모래 바닥. 그 아래엔 아마 콘크리트든 바위든 암석질로 된 기반이 있을 터.

‘이거다!’

한겨울의 공격을 피하며 경기장을 달리던 그가 촤르르륵 지면을 미끄러지며 제동을 걸었다. 직후 어깨를 잔뜩 당기며 주먹을 말아쥔 그가 있는 힘껏 지면을 때렸다.

­콰아아아앙!!!!!

자욱하게 일어나는 흙먼지.

허나 연막으로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공중에 떠오른 한겨울에겐 류태현의 위치가 너무나도 잘 보였다.

‘갑자기 뭐하는 거지?’

한겨울이 의문을 품은 채 새 공격을 준비했다. 빨갛게 일어난 불꽃이 그녀의 손끝에 압축되기 시작하고.

­콰아아아아앙!!!

직후 다시 한 번 커다란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공중에 떠오른 한겨울은 그 땅울림을 느낄 수 없었지만, 관중석의 사람들은 분명하게 그 울림을 느꼈다.

“뭐지? 갑자기 경기장 바닥은 왜 때리는 거야?”

“흙먼지로 연막……을 치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나저나 주먹 한 번 살벌하네. 바닥에 쩌억쩌억 금 간 것 좀 봐.”

그 말처럼 류태현이 딛고 선 경기장 바닥에는 깊은 균열이 그려져 있었다. 지면에서 주먹을 뗀 그가 한겨울을 올려다보았다.

­씨익.

이내 그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진다. 그 미소에서 정체모를 불길함을 느낀 한겨울이 다급하게 공격을 쏘아내려던 찰나.

­콰아아아아아앙!!!!

류태현이 지면을 거세게 밟자 세 번째 굉음과 함께 경기장 바닥이 뒤집혔다. 앞서 그어졌던 균열 모양대로 크고작은 바윗덩이들이 솟아난다.

‘방패? 아냐, 저건…….’

한겨울이 주춤한 순간, 류태현이 그중 가장 커다란 바위를 잡아 집어 던졌다.

­후우우웅!!

“히익?!”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집채만한 바위에 한겨울이 급하게 불꽃을 쏘았다. 허나 육중한 바위를 질량도 없는 불꽃으로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퍼버버버벙!!!

결국 그녀가 선택한 건 회피였다. 억지로 출력을 끌어올려 고도를 높인 그녀의 발밑으로 거대한 바위가 스쳐 지나간다.

허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후웅!! 후웅!! 후우우웅!!

“이런 미친…….”

류태현이 산산조각난 경기장 바닥을 한겨울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주먹 크기의 짱돌부터 거의 사람만한 크기의 바위까지. 족히 수십은 될법한 투석 세례에 한겨울이 다급하게 몸을 피하려 한다.

허나 그녀의 비행은 아직 걸음마 단계. 세밀한 회피 기동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퍼억!

“꺄흑?!”

수박만한 돌덩이가 한겨울의 다리에 격돌했다. 그 탓에 불꽃의 추진 방향이 비틀어진 그녀의 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런 그녀를 노리고 수십 개의 돌덩이가 날아들었다.

­퍼억! 퍼억! 퍼어억!!

투석의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버티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는 수준. 허나 위태로운 비행을 유지하고 있던 그녀에겐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투석 세례를 버티며 비틀거리던 그녀는 어느덧 자신의 고도가 상당히 낮아졌음을 깨달았다.

‘안 돼! 지금 당장 고도를 올려야……!’

뒤늦게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 발 늦었다. 터억! 소리와 함께 류태현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흐읍!!”

류태현이 한겨울의 몸을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팽그르르 돌아가며 떨어진 그녀의 몸이 지면에 쾅! 격돌했다.

다시 날아오르기엔 늦었다. 그렇게 생각한 한겨울이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최대 화력의 불꽃을 준비했다. 류태현은 현재 디펜시브 코트를 벗은 상태니 버틸 수 없을 거라며.

­퍼억!

허나 이번에도 류태현의 움직임이 빨랐다. 불꽃을 모으던 오른손을 걷어찬 그가 쓰러진 그녀의 위에 마운트 포지션을 잡았다.

“크윽!!”

그럼에도 한겨울은 포기하지 않고 저항하려 했지만 속절없이 두 팔을 류태현에게 붙잡혔다. 꽈아아악! 그가 힘을 주자 피가 통하지 않아 안 그래도 흰 한겨울의 손이 더욱 창백하게 질렸다.

“꺄아아아악!!”

“항복해 겨울아. 네가 졌어.”

“아, 니야……! 아직 난 안 졌어!!”

“현실을 직시해.”

­꾸우우우욱!

류태현의 손아귀에 더욱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아래에 깔린 한겨울이 고통스런 표정으로 몸부림치다 그를 노려본다.

“아직, 안 졌다니까……!”

­화르르륵!

그녀의 양손에서 거센 불길이 일어났다. 그걸 본 류태현이 작게 혀를 찼다. 기량은 전보다 성장했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쓸데없는 자존심은 여전하다며.

­퍼억!

“케흡?!”

류태현이 재빠르게 한겨울의 명치를 때렸다. 숨이 턱 막히며 그녀가 경직될 찰나, 한겨울의 멱살을 잡은 그가 있는 힘껏 그녀를 경기장 바깥으로 던졌다.

‘안 돼! 자세, 자세를 다시, 다시 잡아야…….’

허공을 날아가며 한겨울이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급소 타격으로 인해 경직된 몸은 그녀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투욱.

결국 그녀의 몸은 속절없이 경기장 바깥에 떨어졌다.

­그만!

그 순간 울려 퍼지는 심판의 외침.

­한겨울 학생 장외! 이로써 이번 랭킹전의 승자는 류태현 학생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린하우스 1학년 랭킹전 중간결산! 그 영광의 1위를 류태현 학생이 지켜냅니다!!!

그 매몰찬 선언에 반쯤 몸을 일으켰던 한겨울이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허망한 표정을 한 그녀가 말없이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도 이번에도 변함없이.

또 져버리고 말았다고.

그것도 장외로. 이렇게나 허무하게.

­와아아아아아아!!!!!

한겨울이 분한 듯 주먹을 꽈악 쥐었다. 허나 경기장은 류태현의 승리를 축하하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마치 그 누구도 이번 승패에 이견이 없다는 것처럼.

“어째서…….”

그 거센 함성 속에서, 한겨울의 중얼거림이 힘없이 흩어졌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