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136. 밤하늘이요? 아니면 제가요?
* * *
기자회견이 열린 다음날. 수요일.
“하아…….”
특수대책과 2팀 팀장실. 민채령은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각종 공문이 인쇄된 서류가 즐비했고 노트북 화면에도 온갖 기관에서 발송된 메일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전부 채소연에 관한 것들이었다.
채소연 취재 요청, 방송 출연 제의, 자선 행사 초청, 정부 기관 홍보대사 채용, 기타 등등.
“이럴까봐 기자회견 때 닥치고 있으라 했던 건데…….”
안 그래도 미국의 영웅이니 에이전트니 하면서 대차게 관심을 끌어버린 주제에 회견에서 그 난리를 쳤으니 언론의 주목을 안 받는 게 이상했다. 이번 사태를 최대한 조용히 넘기려고 했던 민채령은 채소연의 트롤링 덕에 팔자에도 없던 격무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하아…….”
그리고 격무에 시달리는 건 안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일과가 일찍 끝난 덕에 쉬고 있던 안수호는 때마침 일손이 필요하던 민채령에게 붙잡혀 그녀의 서류 작업을 분담하고 있었다.
‘네 파트너가 벌인 일이니까 너도 책임을 져야지?’
반박하려면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었지만 안수호는 그러지 않았다. 민채령의 기분이 무척 나빠 보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퇴근 시간까지 할 일도 없으니 겸사겸사 도와주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햄버거 프렌차이즈 CF 섭외……. 저녁 7시 지상파 토크쇼 패널 초청……. 성남시 일일경찰 홍보활동까지……. 연락이 이렇게 많이 오니 거절하는 것도 일이군요.”
“거절하더라도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하렴. 제의는 감사하나 아카데미 치안 유지 활동에 여념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무슨 느낌인지 알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타닥. 타다다다닥.
조용한 팀장실에 두 사람이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작업에 몰두하던 안수호가 이따금 초조한 기색으로 시간을 살핀다.
“오늘 약속이라도 있니?”
그 기색을 알아차린 민채령이 넌지시 물었다.
“예. 하늘이랑 만나기로 해서요. 이론과목 시험 하나 남기고 다 끝났다길래, 잠시 숨 좀 돌리라고 저녁이나 사주려고요.”
“자상하네. 누가 보면 둘이 사귀는 줄 알겠어.”
민채령의 너스레에 안수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사귀는 중입니다.”
우뚝.
그 말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민채령의 손이 우뚝 멈췄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안수호를 바라본다.
“……둘이 사귄다고?”
“알고 계시던 거 아니셨습니까? 하늘이한테 감시 붙이시면서 저랑 자주 다니는 거 보셨으면서.”
“그거야 그렇지만…….”
확실히 민채령은 안수호가 요 근래 들어 강하늘과 유독 가깝게 지내는 걸 알고 있긴 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친한 오빠 동생 사이 정도로만 생각했지, 두 사람이 연인 사이가 될 거라곤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예원은 어쩌고?”
“예원이랑도 사귀고 있습니다.”
“뭐?”
“소위 말하는 양다리죠. 두 사람도 저한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거 알고 있고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민채령에게 그간 있었던 세 사람의 갈등을 전부 설명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허…….”
허나 그 담담한 답에 민채령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놀란 것 같기도 하고, 허탈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민채령이 그런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의외라, 안수호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며 슬쩍 물었다.
“놀라셨습니까?”
“그야 놀랍지. 당당하게 양다리를 걸치는 것도 놀랍지만. 그것보다는…….”
민채령의 두 눈이 가늘게 찢어진다. 어느새 표정을 수습해 평소의 민채령으로 돌아온 그녀가 안수호를 떠보듯 물었다.
“용케도 순순히 그 사실을 나한테 말한다 싶어서. 저번에는 지예원이 너한테 별로 소중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존재라며? 물론 거짓말인 거 뻔히 티 나긴 했지만. 무슨 심경의 변화야?”
“팀장님 말씀대로 뻔히 티 나는 거짓말이기도 하고. 저희가 비밀 연애하는 것도 아니니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실 테니까요. 게다가…….”
안수호가 민채령과 눈을 맞췄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한 시선.
“팀장님은 합리적이신 분이시잖습니까. 예전이랑 달리, 이제는 저랑 적대해봤자 손해일 뿐이라는 걸 아실 테니까요.”
그 말에 민채령의 관자놀이에 빠직 힘줄이 돋았다. 안수호는 온건하게 표현했지만 반쯤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내 사람을 건드리지 마라.
내게 적대하지 마라.
만약 적대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그러니 합리적인 판단을 해라.
안수호의 말은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 말에 민채령은 불쾌하면서도 분한 기색을 풍기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한 달 전만 해도 안수호가 저런 식으로 말했다면 가소롭다며 웃어 넘겼을 것이다. 너 따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밟아줄 수 있다고. 그렇게 자신했으리라.
허나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오버랭크 던전의 공략 기록은 어지간한 권한 없이는 열람조차 불가능하지만, 민채령의 연줄을 동원하면 그쯤이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안수호는 이번 공략에서의 활약으로 자신의 가치를, 혹은 위험도를 민채령에게 똑똑히 각인시켰다.
“……네 말이 맞아.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일단은’ 협력 관계인 너랑 굳이 적대할 필요는 없지. 그게 합리적이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덧붙인 민채령의 몸에서 서서히 살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무슨 우연인지 때맞춰 천장에 매달려있는 형광등이 지직, 지지직 하며 점멸하기를 반복한다.
“너무 건방지게 굴지는 마. 네가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조금 성가신 정도에 불과하니까. 너야말로 합리적으로 판단해. 알겠어?”
“피차 마찬가지죠.”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노려봤다. 조금 전까지 평화로웠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묵직한 긴장감만이 팀장실 안을 감돈다.
“너…….”
민채령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를 노려봤다. 허나 안수호는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민채령은 이미 지예원을 통해 안수호를 통제하려 든 전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민채령과 원만하게 지냄과 동시에 어느 정도 대등한 관계를 구축해야 했다.
그녀가 두 사람을 볼모로 안수호를 협박할 수 없게끔. 그리고 협박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자의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끔.
“…………됐다. 너랑 이렇게 기 싸움 해봤자 나만 손해지.”
그런 기색을 읽은 것인가. 먼저 물러선 것은 민채령 쪽이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푹 내쉰 그녀가 능글맞게 미소 지었다.
“좋아. 네 말대로 너랑 네 주변 사람들. 지예원이든 강하늘이든 가급적 건드리지 않을게. 그러니 너도 쓸데없이 나한테 이빨 들이밀지 마렴. 알겠지?”
민채령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당장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민채령은 필요하다면 지예원이든 강하늘이든 얼마든지 이용해먹을 작정이었다. 하다못해 지예원이라면 모를까, 진즉부터 강하늘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그녀가 강하늘을 건드리지 않겠다니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네. 그러도록 하죠.”
안수호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그러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었다. 이렇게나 경고했으니 민채령 본인의 목적 때문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안수호를 통제하기 위해 쓸데없이 두 사람을 건드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정말이지. 요즘 너 이렇게 단둘이 있을 때마다 나한테 으르렁거리는 거 알고 있니? 하여간.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조금 강해졌다고 기고만장해져선…….”
나긋나긋한 어조로, 마치 어린아이를 꾸짖듯 말한 민채령이 슬쩍 시계를 보았다.
“슬슬 퇴근 시간이니 나 도와주는 건 이쯤 하고 가봐. 이따 9시에 근무도 잡혀있는데 세 시간이라도 좀 푹 쉬어야지. 아, 강하늘이랑 데이트 약속 있다고 그랬나? 어디로 가려고? 가게는 예약 했니?”
“시험도 안 끝났으니 그냥 주변에서 적당히 먹을 생각입니다. 게다가……. 어차피 하늘이가 어디서 뭘 하는지는 이미 다 파악하고 계실 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가급적 아카데미 주변은 벗어나지 마. 또 납치될 지도 모르니까.”
“명심하죠.”
노트북을 닫은 안수호가 테이블 위에 어질러둔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뇌리를 스친 생각에 그가 민채령을 슬쩍 바라봤다.
“저, 팀장님.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방송 출연이나 행사 초청이야 뭐 그렇다 쳐도. 소연이 앞으로 이런저런 길드나 기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꽤 오지 않습니까? 그런 제의도 다 팀장님 선에서 컷하시는 건가 싶어서요.”
“당연하지. 소연이는 내 꺼야. 이래저래 부족한 면이 많긴 해도 내가 공들여서 손에 넣은 아이인데 남한테 선뜻 넘길 리가 없잖니?”
손에 넣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수호가 보기에 채소연은 그저 민채령의 직장 부하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채소연이 경비대를 퇴사하고 싶어 하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가고자 마음먹기라도 하면 금방 깨어질 관계.
“만약 채소연 본인이 경비대를 떠나고 싶어 하면요? 그건 못 막지 않습니까?”
“아니.”
그러나 민채령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마치 그런 가능성은 있을 수조차 없다는 듯.
“그럴 일은 없어. 소연이는 절대 날 떠나려 하지 않을 거거든. 협박이나 강압이 아니라, 애초에 오직 나만을 따르게끔 키워왔으니까.”
“키워……왔다고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으려 했으나 민채령은 말없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무언의 축객령이었다. 설령 물어본다 해도 대답해주진 않겠지.
“…….”
결국 안수호는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팀장실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자리로 가 짐을 정리한 그가 퇴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을 나선다.
‘채소연이 자기만 따르게끔 키웠다고? 무슨 소리야 그게. 정말 말 그대로 키웠다는 건가? 겨우 세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별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돌아온 의미심장한 대답. 안수호는 건물 계단을 내려가며 ‘키웠다’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이거다 싶은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흐음…….”
“오빠!”
그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안수호가 상념으로부터 벗어났다. 어느새 경비대 건물 밖으로 나온 그가 저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강하늘을 알아차렸다.
강하늘은 몸에 착 달라붙는 흰색 쫄티에 착 달라붙는 레깅스라는 가벼운 차림이었다. 조금 전까지 공부하다 왔다는 걸 보여주듯 한쪽 어깨에 멘 에코백에는 전공책이며 필기구며 노트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반가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안수호가 묻자 강하늘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별로 안 기다렸어요. 한 5분? 오빠 슬슬 퇴근할 시간일 거 같아서 미리 나왔어요.”
“그냥 도서관에서 기다리고 있지 그랬어. 아직 시험도 다 안 끝났다며.”
“어차피 한 과목밖에 안 남았는데요 뭘. 그리고 제가 마중 나오면 일찍 만날 수 있으니까 더 좋잖아요. 히히.”
‘저 잘했죠?’ 하고 덧붙이며 칭찬을 바라는 듯한 그 모습에 안수호가 피식 웃었다. 그가 잘 했다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강하늘이 그의 품에 폭 안겼다.
“헤헤.”
안수호의 손길을 받으며 기분 좋게 몸을 비비던 강하늘이 이내 앗 하고 놀라며 주변을 둘러본다.
때마침 퇴근 시간이었기에 경비대 건물 앞에는 학생이며 직원이며 사람이 많았다. 오고가는 군중들 한복판에서 대놓고 애정행각 하니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얼른 출발해요! 오빠 9시에 야간 근무 있다면서요. 시간도 별로 없는데 빨리 밥 먹고 푹 쉬어야 밤에도 열심히 일하죠!”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 너 점심도 꽤 늦게 먹었다며. 시간 많으니까 잠깐 산책이라도 하면서 저녁은 천천히 먹으러 가자.”
“으음…….”
안수호의 제의에 강하늘이 침음성을 흘리며 그를 빼꼼 올려다봤다. 고개는 숙인 채 눈만 살짝 위로 치뜬 것이 꼭 고양이가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저야 그러면 좋긴 하지만 괜찮아요? 제가 괜히 오빠 휴식 시간을 뺏는 것 같아서…….”
“무슨 소리야. 너랑 산책하고 밥 먹고 하는 게 나한테는 쉬는 건데.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래요? 그럼 저랑 같이 놀면서 자안뜩 휴식하세요! 이히히.”
강하늘이 배시시 웃으며 안수호의 손을 꼬옥 잡았다. 조금 전에는 남들의 시선을 부끄러워했으나 그 정도 애정행각은 허용범위 이내인 모양이었다.
“어? 근데 하늘이 너…….”
그때 안수호가 무언가 알아차린 듯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지금 아바타 상태야? 왜 머리카락 끝에 색이…….”
강하늘의 머리카락은 본래 흑발이었으나 지금은 끝에 10cm 정도가 하늘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검정에서 하늘색으로 그라데이션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그 모습은 인위적인 염색으로는 만들 수 없는 형태였다.
“아, 이거요? 저번에 오빠랑 예원 언니랑 술 마시고 자고 일어나니까 이렇게 변해있더라고요. 아마 연심의 벚꽃의 영향 아닐까요? 그날 오빠한테 능력치 빌려줬다 다시 받았던 거…….”
강하늘은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마침 그녀가 자주 취하던 아바타의 머리색도 하늘색이니 스킬의 영향인가 싶기도 했다. 허나 정확한 원인은 안수호도 알 수 없었다.
“뭐 별 일 아닐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거 꽤 이쁘지 않아요? 검정색이랑 하늘색이랑 자연스럽게 이어진 게, 꼭 해가 지고 난 뒤의 밤하늘 같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강하늘이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은 아직 주홍빛 노을에 물들어 있었으나 노을빛이 닿지 않는 반대편은 천천히 까만 밤하늘이 도래하고 있었다.
그 경계 부근은 하늘색과 진한 청색이 맞물려, 강하늘의 말마따나 그녀의 머리카락과 비슷해 보였다.
“그러게. 되게 이쁘다.”
“밤하늘이요? 아니면 제가요?”
“둘 다 하늘 아니야?”
“그건 그런데요! 저 위에 있는 하늘이 이쁘다는 거예요, 아니면 제가 이쁘다는 거예요?”
“응? 하늘이 이쁘다니까?”
“똑바로 말해요. 제가 이쁘다는 거죠? 그렇죠?”
안수호와 맞잡은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간다. 강하늘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안수호를 노려봤다. 그 시선을 받아내던 안수호가 이내 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저 위에 밤하늘보다 내 옆에 있는 하늘이가 더 예뻐.”
“어째 엎드려 절 받기 같지만……. 오빠가 예쁘다고 해주니까 기분은 좋네요.”
서로 바라보던 두 사람이 이내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도로를 거닐며 대놓고 염장을 지르는 그 커플의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마다 흐뭇해하거나, 부러워하거나, 혹은 불쾌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우리 밥은 한 7시? 그때쯤 먹는 걸로 하고. 그 전에는 어디 가있을까요? 그냥 이대로 쭉 걷기만 해도 전 좋긴 한데.”
“글쎄. 카페라도 가서 커피나 한 잔씩 마실까?”
“아. 저 밥 먹기 전에 커피는 조금……. 게다가 이따 밤에도 잔뜩 마실 것 같아서 지금은 마시고 싶지 않아요.”
“오늘도 밤 새려고?”
“아예 새지는 않고 한 4시간 정도만 자려고요. 예원 언니가 족보 주긴 했는데 아직 개념 부분이 부족해서…….”
웅성 웅성.
그때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50미터 정도 떨어진 야외 경기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뭐지? 오늘 저기서 무슨 행사라도……아.”
그 인파의 원인을 알아차린 안수호가 낮게 탄성을 뱉었다. 한 박자 늦게 강하늘도 ‘그러고 보니…….’ 하며 운을 떼었다.
“오늘 류태현이랑 한겨울 랭킹전이 야외 경기장에서 열린다 했는데 그거 아닐까요? 분명 6시 30분이라 했는데.”
시간을 확인해보자 6시 15분이었다.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고. 그렇게 대답한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보고 갈까요?”
“응. 나도 똑같이 말하려고 했어.”
“결과야 알고 있지만 궁금하긴 하죠? 아무래도 원작에 나왔던 사건이니까…….”
중간고사 기간에 실시된 류태현과 한겨울의 대련. 원작의 내용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강하늘도 그 에피소드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응. 확실히 궁금하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반면 안수호는 순전히 결과가 궁금했다. 랭킹전을 대비해 안수호와 두 차례의 대련을 거친 한겨울은 원작의 같은 시점과 비교해 상당히 강해졌다. 그런 그녀라면 어쩌면, 원작과는 다른 결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안수호의 가슴 속에서 호기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경기장 쪽에 시선을 고정한 그를 올려다보며, 강하늘이 잡고 있던 손을 슬쩍 이끌었다.
“멍하니 있지 말고 얼른 가요. 빨리 가서 좋은 자리 잡아야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