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135. 저질렀어! 소연이가 또 저질렀다고!!
* * *
테러리스트로부터 미국의 자존심을 지켜낸 구국의 영웅!
강력한 힘과 아름다운 외모를 겸비한 금발의 여전사!
그 누구도 정체를 알지 못하던 베일에 싸인 은둔 고수! The Agent! 그 정체는 아카데미 경비원?!
온갖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발표된 채소연의 기자회견은 바로 다음날인 화요일 성황리에 실시되었다.
아카데미 안으로 기자들을 부를 수는 없었기에 회견은 인근의 한 체육관에서 열렸다. 체육관 바닥은 물론이고 관중석까지 꽉 채울 정도로 들이찬 인파에 안수호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규모가 크지 않습니까? 그냥 적당히 주요 언론사 기자들만 불러서 해도 될 텐데.”
안수호는 자신과 임시로 투맨셀을 짠 조유리를 바라봤다.
평소 극심한 남성공포증을 앓고 있는 조유리는 체육관을 가득 채운 남성들의 존재에 연신 불안한 눈치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안수호의 질문은 듣지조차 못한 것처럼.
“유리 선배?”
“어, 어? 규, 규모는 이참에 광고! 광고하려는 목,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닐, 아닐까……?”
“광고……말입니까?”
“으응……! 소연이가 경비대 소속이란 걸 밝, 밝히면 경비대 위신도 서고, 겸사겸사 아카데미 광고도 될 테니까 이, 이렇게 크게 연 것 같은데…….”
쭈뼛쭈뼛 대답한 그녀가 주위에 오가는 남성들을 피해 안수호 곁으로 바짝 붙었다. 안수호도 남성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같은 팀에서 일하며 익숙해진 덕에 그나마 나았다.
‘이태호가 있었다면 나았을 텐데.’
본래 조유리의 파트너는 이태호였다. 단, 그는 현재 기자회견을 나간 민채령 대신 팀장 대리 역할을 수행하느라 바빴다. 안수호의 파트너인 채소연 또한 회견에 나간 상태.
결국 파트너가 없는 두 사람이서 임시 투맨셀을 짤 수밖에 없었단 거다. 같은 팀이긴 하지만 묘하게 어색한 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맞추다 피하기를 반복했다.
“……그, 불안하면 초능력으로 호르몬 같은 거라도 조절해보면 어떻습니까? 선배 초능력이면 불안감 같은 것도 화학적으로 어떻게 억누를 수 있지 않나요?”
조유리의 초능력은 대사조절.
신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화학적 작용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녀가 느끼는 불안감 또한 결국 화학작용의 결과이니 억누르려면 얼마든지 억누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조유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벚꽃색 머리카락이 좌우로 흐트러진다.
“하, 할 수는 있지만 공포증이 나으려면 최, 최대한 공포에 정면으로 맞서는 편이 좋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래서…….”
“선배도 고생이 많군요.”
안수호는 이렇게 겁을 먹어서야 경비를 설 수나 있을까 싶었다.
허나 지금이야 이렇게 떨어대도 막상 상황이 발생하면 스위치가 눌리듯 사람이 딸깍 바뀐다는 걸 안수호는 알고 있었다. 3월 초 여명단과의 전투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허나 불안해해도 너무 불안해하는 조유리의 모습에 안수호가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대화에 집중하면 불안감이 조금은 가시지 않을까 하여.
“얼마 전에 유리 선배네 아버님인 것 같은 사람을 뵈었습니다. 흑룡회 소속 조광일 헌터라고…….”
“엇. 우리 아빠 맞는데……?”
네가 어째서 아빠랑 만났어? 하고 물어보듯 고개를 갸웃한 조유리에게 안수호는 그가 기사의 무덤 공략에 참가했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꽁꽁 숨겨야 할 사실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하고 다닐 사실도 아니었기에, 2팀 안에서도 안수호의 공략 참가 사실을 알던 건 민채령밖에 없었다.
“……아하. 저번에 며칠 연차 쓴 이유가 던전 공략 때문이었구나. 어쩐지…….”
설명을 들은 조유리는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신기해하는 눈으로 안수호를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수호 너, 그렇게 강했었나?”
조유리가 안수호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은 두 번. 특수대책과 입사를 위해 대원과 대련했을 때와 서큐버스 사태 때 여명단과 맞붙었을 때. 그 두 번이었다.
‘2달 전에만 해도 기껏해야 C급 수준이었는데…….’
그녀가 기억하는 안수호는 잘 쳐줘야 C급 상위. 특수대책과 대원으로서의 요건을 아슬아슬하게 충족하는 정도였다. 헌데 오버랭크 던전 공략에 참가했다니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요 근래 들어서 부쩍 강해졌습니다.”
“……??”
안수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러나 조유리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었다. 안수호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진즉에 알아챈 민채령과 달리, 그녀에게 있어 안수호는 그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평범한 후배에 불과했으니까.
찰칵! 찰칵 찰칵! 찰카카칵!!
그때, 체육관 아래쪽에서 수백 개의 셔터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이 아래로 시선을 돌리자 막 기자회견이 시작된 듯, 뒤쪽 입구에서 회견 당사자 세 사람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린하우스 경비대장 김수현.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2팀 팀장 민채령.
그리고 동 소속 대원이자 이번 회견의 주인공,‘디 에이전트’ 채소연.
체육관 앞쪽에 마련된 자리에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주인공인 채소연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두 사람이 앉은 형태.
“그럼 지금부터 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질문을 받기에 앞서, 먼저 지난 토요일 있었던 테러 사건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곳에 있는 저는…….”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경비대장 김수현이었다. 그는 테러 발발 당시의 상황과 경과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허나 대부분은 기자들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이미 밝혀진 내용으로 하염없이 시간을 끄는 김수현의 모습에 기자들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 미국 부통령의 신변을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보호한 통칭 ‘에이전트’는 당시 해당 행사에 파견되었던 저희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2팀 소속 대원 ‘채소연’임을 알려드리는 바”
“그럼 거기 가운데에 있는 여성이 바로 그 에이전트라는 겁니까?!”
결국 김수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기자가 돌발적으로 질문했다. 주요 언론사가 아닌, 사전 질문 순서도 한참 뒤에 배정받은 소규모 인터넷 신문의 기자.
제 차례까지 시간이 허락되지 않으리란 판단에 뭐라도 건져볼 심산으로 던진 그 질문에, 김수현이 불쾌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풍기며 대답했다.
“질문은 사전에 정해진 순서에 맞춰 한 분씩”
“맞아요!!”
그때 채소연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내가 에이전트예요! 내가 미국에서 부통령님 구했……읍읍!”
돌발 행동에 미처 대응하지 못했던 민채령이 뒤늦게 소연이의 입을 틀어막아 자리에 앉혔다. 허나 이미 방아쇠는 당겨진 뒤였다.
“방금 발언하신 여성분이 에이전트라는 게 사실입니까!? 그 말은 즉, 조금 전 발언에서 나온 ‘채소연’이 바로 저 여성분이라는 건가요!?”
“채소연 씨! S랭크 초능력인 용인화 능력을 가지고도 왜 아카데미 경비대를 선택하셨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미국 공화당의 에이전트 지지 선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이전트 또한 공화당을 지지하시는지!?”
“지난 월요일 종말교 과격파 세력으로부터 에이전트에 대한 적대 관계 선언 발표가 있었는데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십니까?!”
“백악관 전속 경호원으로 발탁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전투 직후 찍힌 사진과 영상으로 인해 미국 내에선 채소연 씨의 팬클럽 회원 수가 이미 3만 명을 돌파했다는 거 아십니까?!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연쨔아아앙!! 이쪽 봐줘!! 이쪽 보고 스마일!! 스마이이이일!!!!!”
채소연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기자회견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질문과 플래시 세례. 민채령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김수현이 미간을 짚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 여러분! 일단 진정하시고 차근차근 한 분씩 질문 부탁드립”
“영상에 찍힌 모습과 현재 채소연 씨의 모습은 상당히 다른데요! 설마 다른 사람을 불러놓고 에이전트라 속이려는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라뇨!! 저 맞거든요?!”
민채령이 수습에 나선 사이 채소연이 다시 한 번 외쳤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같은 사람이 맞는 것 확실합니까!? 신장도 체격도 영상과는 완전 다릅니다만?!”
“못 믿으시겠다면 증거를 보여드리죠! 합! 변신!!!!!”
직후 말릴 새도 없이 채소연이 괴상한 포즈와 함께 초능력을 발동했다. 130을 간신히 넘기던 키가 순식간에 170 가까이 자라나고, 그와 함께 신체 곳곳에 용인의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머리 위로 곧게 뻗은 붉은 뿔.
뺨과 목, 그리고 두 팔에 번진 파충류의 비늘.
굴곡이라곤 하나도 없던 가슴은 어느새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고, 말려 올라간 셔츠 자락 아래로 보이는 허리에는 뽀얀 속살과 함께 세로로 앙 다문 배꼽이 슬쩍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세로로 쭉 갈라진 금빛 동공이 좌중을 훑었다. 그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압박감에 질문 세례를 퍼붓던 기자들이 일제히 정지한다.
“오. 오오……!”
그리고 이내 하나둘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그 늠름한 자태야말로 모두가 알던 디 에이전트.
미국을 지켜낸 구국의 영웅이자, 히어로라고.
“우와아아아아아아앆!!!!!”
“Holy shiiiiiiitttttt!!!!!! That`s awesome!!!!!!!”
“I knew it!!! I knew it!!!”
“뭘 멍때리고 있냐! 빨리 찍어! 찍으라고!!”
찰칵! 찰카카칵! 찰카카카카카카카칵!!!!!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과 각양각색의 말소리. 셔터 소리. 그리고 눈앞을 밝게 채우는 플래시 세례.
“으히히히히힛!”
그 모든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채소연이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고 웃었다. 그 옆에서 민채령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반쯤 벌어진 입을 닫지도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본다.
“소, 소연이 너, 내가 분명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
“채소연 씨! 이쪽! 이쪽 보고 웃음 한 번만 지어주세요!!”
“네엡!”
어느 연예지 기자의 요청에 채소연이 밝은 미소로 답했다. 민채령의 표정이 더욱 썩어들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채소연은 카메라를 향해 연신 웃으며 포즈를 지어댈 뿐이었다. 속에 든 내용물과 달리 능력을 발동한 채소연의 외모는 상당히 아름다운 편에 속했다. 그런 그녀가 화사하게 웃으며 셔터 찬스를 만들어주니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를 그쪽으로 향했다.
‘좋았어! 이건 무조건 1면 각이다!’
처음 웃음을 주문했던 연예지 기자가 주먹을 꽉 쥐며 쾌재를 불렀다. 그의 머릿속에선 이미 채소연의 외모와 그녀의 활약상, 그리고 적절한 국뽕을 섞은 특종급 기사가 주르륵 써내려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질서라곤 하나 없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회견장.
“…………하아.”
그 현장을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안수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옆에서 자그마한 한숨 소리가 함께 들린다.
고개를 돌리자 조유리도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그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이태호도 지금쯤 같은 표정이겠지.’
이 자리에 없는 다른 선배를 생각하며 안수호가 피식 웃었다. 실소였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튀어나온 허탈한 웃음.
“망했군요.”
“그, 그러게…….”
카메라 앞에서 신나게 폭주해대는 채소연의 모습을 두 사람이 말없이 지켜봤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2시간 뒤.
당초 예정된 것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기자회견이 끝나고.
“쁘에에에엥. 잘못해씀미다…….”
채소연은 별도로 마련된 대기실에서 30분 넘게 민채령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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