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35화 (136/266)

〈 135화 〉 134. 해냈어! 소연이가 해냈다고!!

* * *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 속 세상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소설 속 세상이기에 더더욱, 모든 결과에는 그에 합당한 원인이 따른다. 이에 우리는 그것을 개연성이라고 부른다.

천사 아라엘은 말했다.

쾌락천마가 내게 설정된 난이도를 조정한 탓에, 앞으로 나의 삶에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온갖 시련이 닥치게 될 것이라고.

그나마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가던 사건들조차 어떻게 비틀리고 뒤틀리게 될지 모른다고.

그러나 앞서 말했듯,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인과가 존재한다. 그리고 원인이 결과가 되기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그 말은 즉, 설령 내 삶의 난이도가 불지옥이 되었다 한들 바로 다음날 내 머리 위로 거대한 소행성이 17.5km/s의 속도로 내리꽂히진 않는다는 뜻이다.

원인이 결과가 되기까지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내게 위기가 닥친다 해도 아직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준비할 시간 정도는 있을 거라고.

허나 그건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뭐야?”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오른 나는 아카데미 정문에 멈춰선 채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네. 현재 그린하우스 앞은 등교중인 학생들과 소식을 듣고 온 다른 방송사 관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미국 언론에서 화제가 된 ‘에이전트’의 소재지가 밝혀진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벌써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가고…….”

정문 앞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방송사 차량들과 수십 명을 될법한 기자들로 가득했다. 정문 경비를 맡은 일반과 대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쳤다.

“다들 물러나주십쇼! 학생이랑 교직원들 출입에 방해됩니다! 다들 물러나주십쇼!”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겁니까?! 제휴 언론사 소속 기자는 말만 하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건 평소에나 그렇죠! 중간고사 기간 동안엔 사전에 허가된 외부인 이외엔 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설마 지금 국립 아카데미에서 언론의 자유와 대중의 알 권리를 침해하려는 겁니까!?”

“그, 그게 아니라……!”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보통 일은 아닌 듯 했다. 제발 좀 들여보내달라고 아우성치는 기자들을 지나쳐 정문으로 들어간 나는 경비실 문을 노크했다.

“실례합니다. 지금 밖에 무슨……어?”

“엉? 안수호?”

경비실에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날 반겨주었다. 내가 아직 일반과에 있을 시절 같은 팀 선배였던 권창욱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야,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냐? 특책과 생활은 좀 할만하고? 민 팀장 그 양반이 엄청 굴려대는 거 아니야?”

“하하하……. 뭐 그냥저냥 살만 합니다. 선배님은요?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뭐 늘 똑같지. 그래서. 경비실엔 무슨 일로 왔……. 아, 혹시 바깥에 저것들 때문에?”

권창욱이 턱짓으로 바깥의 기자들을 가리켰다.

“예. 보니까 제가 아는 뉴스 채널은 죄다 취재 나온 것 같던데요? 뭐 사건이라도 터졌습니까?”

“나도 아직 자세히 들은 게 없다. 대충 듣자하니 에이전트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를 진압해서 대통령인지 부통령을 구했다느니 어쩌니 하는데 도통 뭔 소린지 원…….”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랑 한국에 있는 저희가 무슨 상관입니까?”

“아무래도 그 에이전트가 우리 아카데미 관련자인 것 같아. 그래서 취재 때문에 저렇게 몰려든 거고. 자세히 보면 외신 기자들도 꽤 섞여 있어.”

그래서 더 골치 아프다며. 권창욱이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팔에 차고 있는 당직 완장을 보니 아마 밤을 샌 모양인데, 안 그래도 피곤한 와중에 퇴근하기 직전에 이런 일이 터졌으니 오죽하겠는가.

“안 그래도 시험기간이라 업무 과중인데 저것들 때문에 진짜 미치겠다 수호야…….”

“하하……. 그래도 곧 퇴근이시니 좀만 힘내십쇼.”

“그래야지. 이제 그만 출근해봐라. 오랜만에 얼굴 봐서 좋았고.”

권창욱과 인사를 나눈 나는 경비실을 나서 특책과 건물로 향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를 아카데미 관련자가 막았다라…….’

그런 일이 원작에 있었나 생각해보았으나 기억나는 건 없었다. 애초에 원작에 미국 배경 에피소드 자체가 없었다. 기껏 있는 외국 에피소드래봐야 일본 게이트 공략이랑 류태현이 일리아나, 한겨울하고 영국에 있는 셜록 박물관에 간 정도였나.

‘별 일 아니어야 할 텐데…….’

허나 지금껏 일어난 원작에 없던 사건치고 별 일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벌써부터 훤한 고생길에 절로 한숨이 푹푹 쉬어졌다.

그래도 바라건대. 제발 이번만은 부디 별 일 아니기를.

***

특수대책과 2팀 사무실.

다른 직장은 안 다녀봐서 모르지만, 특책과의 경우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한 주의 업무 내용과 특이사항을 팀장이 간단히 브리핑하는 시간을 가진다.

말은 브리핑이라곤 하나 별 건 아니고, 그냥 자리에 앉아있으면 민채령이 10분 정도 이런저런 지시나 업무 확인만 하고 끝나는 간단한 절차다.

오늘 브리핑은 9시라고 했으니 슬슬 시작하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자, 옆자리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히히히. 으힛. 으히히히.”

고개를 돌리자 채소연이 책상에 얼굴을 파묻은 채 어깨를 흠칫흠칫 떨어대며 웃고 있었다.

‘얜 또 왜 이래?’

무슨 마약이라도 한 주사 꼽은 것 같은 그 모습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뭘 그리 혼자 웃고 있어?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히히히. 안 말해줄거지롱.”

채소연이 혀를 베에~ 내밀며 대답했다.

“아. 그래.”

나는 일부러 관심 없는 척 대답했다. 채소연이 저런 식으로 말할 때는 한 번 무시해주는 게 답이었다.

아마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진짜 안 궁금해? 정말로? 진짜진짜 안 궁금해?’ 하며 혼자 전전긍긍하다가 제 풀에 지쳐 있는 말 없는 말 전부 말해주겠지.

“히히히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웬 일인가. 채소연은 나 따위 관심에도 없다는 듯 다시 혼자 웃어대기 시작했다. 묘하게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에 살짝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무슨 일이냐고 물을 수도 없다.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뭐 보나마나 별 일 아니겠지.’

엊그제가 마침 토요일이었으니 로또 4등이나 5등 당첨이라도 됐나 보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으나, 옆에서 계속 실실 쪼개고 있으니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궁금했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묻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하물며 다시 물어봤더니 또 ‘안 가르쳐줄거지롱~’하면서 혀를 베에~ 내밀기라도 하면 얼마나 꼴받을까.

그렇지만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 자기자랑 좋아하는 채소연이 남들한테 말하지도 않은 채 혼자 실실 쪼개고 있는가. 설마 진짜 로또 1등이라도 당첨된 건가.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아라엘이 말한 난이도 상승. 그 영향이 채소연의 로또 1등일 수도 있다. 그게 왜 나한테 위기냐고? 채소연 성격상 갑자기 그렇게 많은 돈을 손에 쥐면 온갖 트러블을 일으킬 게 당연하니까.

설령 로또가 아니더라도 채소연에게 있어 즐거운 일이 내게는 좆같은 일로 다가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야, 채소­”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내가 다시 물어보려던 찰나.

­벌컥.

“다들 출근했지? 슬슬 이번 주 브리핑 시작하려고 하는데.”

팀장실 문을 열고 민채령이 그렇게 말했다. 나를 포함한 팀원들이 전원 자리에서 기립했다.

­또각. 또각. 또각.

하이힐 굽 소리를 울리며 도도하게 걸어 나온 민채령이 대충 사무실 가운데쯤 서서 말했다.

“일단, 다들 알겠지만 이번 주부터 중간고사인 거 알지? 저번 주랑 마찬가지로 이번 주도 순찰이나 시설 경비 근무 늘어났으니까 다들 근무일정표 다시 한 번 확인해봐. 괜히 근무 없는 줄 알고 퇴근하지 말고.”

그 말처럼 시험기간은 경비대에게 있어 여러모로 바쁜 시기였다. 그 원인은 바로 매 시험마다 꾸준히 발생한 시험지 도난 시도 때문이다.

그린하우스는 국내 최고의 헌터 아카데미. 그 위상은 여타 명문대 못지않았다. 그런 그린하우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은 사실상 초인 관련 진로에 있어서 자유이용권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그 ‘우수한 성적’을 거머쥐기 위해 해선 안 될 짓까지 서슴지 않는 학생도 꽤 나오는 편이다. 뇌물이나 청탁, 성적 조작, 랭킹 어뷰징, 그리고 방금 말한 시험지 도난 등등.

‘분명 매년 적발되는 시험지 도난 시도만 해도 서른 번이 넘던가.’

그 30번의 도난 시도는 학생이 교수 몰래 교수실에 침입해 시험지를 훔친다……같은 귀여운 수준이 아니었다. 교직원에게 뇌물을 먹여 대신 훔쳐오게 시키는 경우조차 약과요, 아예 슬럼가 등에서 청부업자를 고용해 대대적인 도난을 벌이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었다.

실제로 기록을 찾아보면 시험지를 사이에 두고 경비대와 학생이 고용한 청부업자간의 무력 충돌도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 여타 아카데미물이면 일상 속에서 벌어진 단순 해프닝이었겠지만, 초인들의 시대에선 자칫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대형 이벤트였다.

‘원작에서는 교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시험지를 지키는 정도만 나왔었는데, 경비대가 새로 생기니까 그 일을 경비대가 하는구나.’

하긴 교수가 담당 교수실에 24시간 상주하며 시험지를 지키고, 그 시험지를 빼돌리기 위해 학생들이 막고라를 건다는 건 무리수가 많은 설정이긴 했다. 참고로 이 또한 쾌락천마와 키배가 붙었을 때 내가 지적한 사항 중 하나였다.

“하여튼. 중간고사는 금요일에 끝나니까 앞으로 일주일만 더 고생하면 돼. 특별 수당이랑 유급 휴가도 나온다니까 그것만 보고 버티자. 다들 알겠지?”

이런저런 지시사항을 내리던 민채령이 그렇게 말하며 이야기를 일단락했다. 당초 예상했던 대로 별 내용은 없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아, 그리고 전달사항이 하나 더 있어. 다들 오늘 아침에 정문에 기자들 몰려온 거 봤지?”

그 말에 엉거주춤 앉으려던 자세를 다시 바로했다. 그러고 보니 그 일이 있었지.

“혹시 이중에 무슨 일인지 들은 사람 있어?”

“하아아…….”

민채령의 물음에 이태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저러나 싶어 고개를 돌리자 그 옆에 서있던 조유리가 쭈뼛주뼛 손을 들며 말했다.

“주말에 미국에서 일어난 종말교 테러 때문 아닌가요?”

종말교. 영어로는 아포칼립스 어쩌고 하는 그 종교는 게이트 사태로 인해 전세계에 퍼지기 시작한 신흥 종교였다. 대충 게이트로 인해 세상에 종말이 도래할 거라는 기독교 기반의 사이비 종교로, 원작에서는 별다른 비중 없이 다뤄지지 않은 배경설정이었다.

‘시발. 불안한데.’

만약 놈들이 원작과 달리 본격적으로 깽판을 치기 시작한다면 나로서는 미리 대처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여명단과 달리, 나는 종말교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으니까.

“맞아. 자선행사 중이던 미국 부통령을 노리고 종말교 과격 신도들이 테러를 일으켰어. 미국은 주마다 주요 길드의 분포나 게이트 발생율의 차이가 크잖아? 때문에 공략 실패나 던전 크라이시스도 자주 발생하는 편인데, 그거랑 관련해서 테러를 통해 경각심을 심어주겠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민채령이 스윽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전원 초인으로 이뤄진 30명의 무장병력이 일으킨 대규모 테러. 그 테러를 단신으로 진압한 통칭 ‘에이전트’가 우리 아카데미 관계자거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팀 대원이야.”

아니, 민채령이 보고 있는 건 내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옆에서 꼴받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히히히.”

잠깐. 설마?

“소연이가 저번에 총장님 따라 미국으로 출장갔던 건 기억하지? 그래, 맞아. 지금 미국 언론에서 난리가 난 정체불명의 영웅 ‘에이전트’의 정체가 바로­”

“바로 나지롱!!”

민채령의 말을 끊으며 채소연이 책상을 밟고 자리에서 탓! 뛰어 올랐다. 민채령의 옆에 착지한 그녀가 두 손을 파박! 움직이며 괴상망측한 포즈를 취했다.

“나쁜 테러리스트들한테서 미국 대통령을 지켜낸 정체불명의 영웅 디 에이전트!! 드래고뉴트!! 하프드래곤!! 그 외 기타 등등! 온갖 이름으로 지금 미국 언론에서 화제가 된 그 영웅이 바로! 바로 나! 채소연이란 거지! 으헤헤헤헤헿­!!”

“하아아…….”

이태호가 두통이라도 느끼는 듯 미간을 짚은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반응을 보니 그는 민채령에게 듣기 전부터 내막을 알고 있었던 모양.

“총장님 스케줄에 그 자선 행사 참가도 있었거든. 그때 마침 테러가 일어났는데, 부통령 경호팀이 움직이기도 전에 소연이가 뛰쳐나가서 테러리스트들을 전부 제압했어. 단 5분 만에.”

“4분 39초예요 팀장님!”

“……그래. 4분 39초 만에. 우리 소연이가 참 대단한 일을 해냈어. 그치?”

“에헤헤헷!”

말은 칭찬이었지만 민채령의 표정은 탐탁치 않아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총장을 경호하라고 붙여둔 놈이 지키라는 총장은 안 지키고 테러리스트들 한복판으로 뛰어든 꼴이니.

결과가 좋았기에 다행이지 만약 총장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했으면 절대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이태호가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그냥 당분간 채소연이 시끄러워질 것 때문에 한숨이 나오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보니 좀 작아졌네.’

채소연의 본래 키는 140 중후반대. 허나 지금 그녀는 130을 가까스로 넘기는 정도로 보였다. 능력을 사용한 반동에 의해 몸이 쪼그라든 것이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어제 밤에 현지에서 소연이의 정체가 뉴스를 탔어. 그래서 오늘 정문 앞에 기자들이 저렇게 몰려온 거고. 뭐, 아마 점심 즈음에는 다들 돌아갈 거야. 내일 바로 기자회견 열 테니 질문은 그때 하라고 공지할 예정이거든.”

“기자회견……? 팀장님. 설마 채소연이 기자들 앞에 선다 그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이태호가 사색이 된 채 물었다.

“맞아요!! 나랑 팀장님이랑 경비대장님! 이렇게 셋이서 기자회견하기로 했어요!!”

대답한 건 채소연이었다. 해맑게 손을 번쩍 들며 외친 그 모습에 이태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팀장님. 저 빡대가……채소연이 기자들 앞에 서면 자칫 부적절한 답변을 하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꼭 기자회견에 채소연 본인이 나갈 필요는­”

“단순히 사실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는 거야 나나 경비대장님만으로도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소연이가 얼굴 정도는 비춰줘야 해.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 당시 사건의 내용보다도 테러리스트로부터 미국의 자존심을 지켜낸 영웅이 누구냐이니까.”

“영웅? 채소연이 말입니까?”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영웅은 영웅이야. 미국 쪽에선 이미 온갖 방송에서 소연이가 구국의 영웅이라며 포장하기 바쁘던데?”

“에헷. 구국의 영웅이래. 아이 참. 그 정도까진 아닌데.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니까. 으히히히.”

“허어…….”

몸을 배배 꼬며 좋아라 죽는 채소연을 보며 이태호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다른 팀원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고.

‘뭔 시발.’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저 빡대가리 참피가 미국을 지켜낸 구국의 영웅이라니. 해가 서쪽에서 뜨다 못해 공중제비를 돌아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히히히.”

그런 우리들의 심정은 하나도 모른 채, 채소연은 연신 해맑게 웃어대기만 했다.

분명 훌륭한 일을 해낸 게 맞음에도 묘하게 꼴받는 게,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지는 얼굴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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